몇주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임산부의 산전 검사를 주제로 다루더군요. 우리나라가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임신중에 여러가지 검사를 통해 태아의 장애 여부를 미리 알아내는 기술 수준이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검사를 통해 이상을 발견했을때 대다수의 의사는 낙태를 권유하고 또 많은 부모는 그에 동의한다는 사실에 문제 제기의 촛점을 맞췄습니다. 일본이나 미국같은 선진국에서는 산전 검사를 통해 장애가 발견되면 곧바로 전문가의 상담으로 연결해줘 부모가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아이를 낳으면 양육 과정에 국가와 사회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실태를 비교해 줍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복지 수준은 미약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더 문제인 것 많습니다. 예비 엄마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아서 키울 엄두가 나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쉽게 차별하고 편견을 갖는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그렇고 학교내 왕따 현상이 그렇습니다. 어떤 아프리카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에서 자신의 국적을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멸시하지만 미국에서 온 흑인이라고 하면 대접이 180도 달라진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요즘 극장가에서 입소문을 타고 꾸준하게 흥행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 [말아톤]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청년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장애인으로서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안에 완주했고 철인 3종 경기에도 도전한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라는 처음 소문만 듣고는 그저 그런 휴먼드라마이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실제 영화는 평범할 듯한 소재를 꼼꼼하고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스크린에 옮겼습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원이(조승우)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합니다. 초원이 때문에 엄마(김미숙)와 아빠는 불화가 심각하고 초원이에게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엄마 때문에 초원이 동생은 방황합니다. 얼룩말과 초코파이 외에 초원이가 좋아하는 것은 달리기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증세도 나아지고 해서 엄마는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키기로 마음먹습니다.
마침 초원이가 다니는 학교에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마라토너 정욱(이기영)이 사회봉사명령을 받아 나오자 초원이 엄마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안에 뛰는 '서브 3'에 도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부탁합니다. 선수 세계에서는 물론 2시간 벽 돌파를 앞두고 있지만 3시간 주파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는 꿈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마라톤에서 은퇴하고 술과 경마로 나날을 보내는 등 극심한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던 정욱은 억지로 떠맡듯이 초원이를 가르치지만 영 신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는 초원이가 진정으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초원이에게 부여한 달리기라는 목표가 실제로는 엄마의 대리 만족이 아닌지 고민합니다. 정욱은 초원 엄마의 이런 방식에 불만을 느끼며 자신의 방식으로 초원이를 이끌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영화 [말아톤]은 주인공 초원에게만 촛점을 맞춰 인간 승리를 보여주는 휴먼드라마의 도식성에서 탈피한 것이 가장 뛰어난 미덕입니다. 선입견으로 재단한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그저 그런 영화이겠거니 하는 기대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초원과 엄마, 코치, 그리고 동생과의 관계에서 주변 사람들이 초원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며 또 어떻게 생각하고, 그 생각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면서 입체적인 조망을 확보합니다.
그래서 초원이가 현실에는 찾기 어려운 특별하고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장애인을 둔 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해줍니다. 특출난 사례를 보여주며 감동을 자아낸다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엄마로서 아들로서 코치로서 각각의 입장에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라톤 훈련할때 코치가 자신의 간식을 몰래 먹자 다음날부터 초원이가 아예 가방을 들고 뛰는 연습을 한다든지, 놀라운 기억력으로 오히려 정상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모습 등 영화 곳곳에 잔잔한 웃음도 적절하게 배치돼 지루함을 덜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감독이 억지로 "여기서 감동해야돼, 이 부분에서는 웃게 만들어야지"하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고 물 흐르듯 산들 바람이 불듯 자연스럽게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이 영화를 가치를 높여줍니다.
편안한 호흡에 동화돼 느긋하게 무장해제된 관객들은 초원이가 온 몸으로는 비를 맞고, 손끝으로는 사람들을 느끼며 마라톤 코스에서 수영장을 가로지르고 편의점을 지나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마지막 부분의 환타지에서는 자연스러운 감동의 절정을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한달째 든든하게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잔잔한 이 영화를 만나는 것은 어떨까요. 장애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이고 또 그것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이지 우리보다 '못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생각을 마음에 담고 극장문을 나서는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첫댓글정말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가슴에 남아있는 잔잔한 여운... 요즘 젊음처럼 자극적이고 톡톡튀는 장면들은 없지만.. 가슴바닥에 깔리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그리고 그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직접 느낄수있는 현실적 상황들.. 여튼 말그대로 잔잔한 현실영화.. (기왕이면 영화방에 올려놓지..)
첫댓글 정말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가슴에 남아있는 잔잔한 여운... 요즘 젊음처럼 자극적이고 톡톡튀는 장면들은 없지만.. 가슴바닥에 깔리는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그리고 그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직접 느낄수있는 현실적 상황들.. 여튼 말그대로 잔잔한 현실영화.. (기왕이면 영화방에 올려놓지..)
복사해서 올릴까요? ㅋㅋ 하라면 분부대로 합죠^^ㅋ
나는 보고싶어도 못봤는데..조승우 연기 넘잘하지 않나요?
눈물나게 잘해쏘~~~~ㅎㅎ 감동 받앗담서 ㅋㅋ 정말루 재미잇게 본 영화다면서
오.. 글 좋네요.. 하긴영화를 보니 제 잘못된 시선이 얼마나..새삼 다시 돌아보게 하는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