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flinty light, it's midnight
And stars collide
Shadows run, in full flight
To run, seek and hide
I'm still not sure what part I play
In this shadow play, this shadow play
은은한 불빛 속에서 자정이 되었고
별들이 부딪힌다
그림자가 달려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찾고, 숨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신하지 못해
이 그림자극에서, 이 그림자극
In the half light, on this mad night
I hear a voice in time
Well, I look back, see a half-smile
Then it's gone from sight
Won't you tell me how I can find my way
In this shadow play, this shadow play
Shadow play, shadow play
희미한 불빛 속에서, 이 미친 밤에
시간이 지나면서 목소리가 들린다
글쎄, 뒤돌아보니 반쯤 미소가 보인다
그러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겠니?
이 그림자극에서, 이 그림자극
그림자극, 그림자극
Sounds come crashing
And I hear laughing
All those lights just blaze away
I feel a little strange inside
A little bit of Jekyll, a little Mr. Hyde
소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나는 웃는 소리를 듣는다
그 모든 빛들이 타오르고
내 마음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야
약간은 지킬박사, 약간은 하이드씨
Sounds come crashing
And I hear laughing
All those lights just blaze away
I feel a little strange inside
A little Mr. Jekyll, a little Mr. Hyde
소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나는 웃는 소리를 듣는다
그 모든 빛들이 타오르고
내 마음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야
약간은 지킬박사, 약간은 하이드씨
Thoughts run wild, free as a child into the night
Across the screen a thin beam of magic light
Things they just don't look the same
In this shadow play, this shadow play
Shadow play, shadow play
I can't run away from this shadow play
생각은 거칠어지고, 밤 속의 어린아이처럼 자유롭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마법의 얇은 광선
똑같아 보이지 않는 것들
이 그림자극에, 이 그림자극에
그림자놀이, 그림자놀이.
이 그림자극에서 도망칠 수 없어
Rory Gallagher
1948년 3월 2일
아일랜드 얼스터 주 도니걸 발리쉐논에서 탄생한
로리 갤러거는 버디 홀리, 에디 코크런, 제리 리 루이스,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하울링 울프의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웠으며
9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배워
15살 때엔 스쿨밴드의 리더가 되었다.
1960년대 초,'폰타나 쇼 밴드' 라는 이름으로 당시 인기를 끌던
스키풀 장르의 밴드를 조직하며 순회공연을 다녔고,
1965년엔 그룹명을 '임팩트'로 바꾸었다.
그 후 독일 함부르크에서 정기적으로 연주활동을 했으며,
아일랜드에선 3인조 밴드 '테이스트'를 이끌며
1969년에 영국 런던으로 진출,
기타 연주 중심의 앨범들을 발표하였다.
그룹 테이스트는 블루스나 컨트리 뮤직 취향의 곡들을
하드 록 스타일로 연주해 서서히 지명도를 넓혀갔고,
1970년 전설의 와이트 섬 페스티벌의
첫 오프닝 무대에 서는 영광을 얻게된다.
그 후 테이스트가 해산하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몇몇 소규모 밴드들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했다.
1972년엔 당대의 미국 블루스 음악계를 꽉 휘어잡고 있던
아티스트 머디 워터스의 런던 세션 앨범에 참여했고,
1977년에는 영국 스키풀 계의 거물 로니 도네가오의 재기작
'Putting On The Style'에 참여하였다.
특히 블루스와 로큰롤 분야에 관심이 있는
기타리스트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라인전개를 펼쳤다.
특히 그중에서도 'Daughter Of The Everglades', 'Livin', Like A Trucker',
'For The Last Time', 'Hands Up', 'There’s A Light', 'Take It Easy Baby' 와
같은 연주곡들로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블루스 거장 제리 리 루이스와 생전에 녹음한
롤링 스톤즈의 명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의
커버 또한 명연으로 손꼽힌다.
철저하게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를 싫어했던 그의 성격은
TV 쇼 출연조차도 거부하고 오로지 앨범과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만 음악을 계속했던 그의 생전 활동에서 드러난다.
그가 이끈 테이스트는 8장의 앨범을 내놓고 해체했지만
로리 갤러거 본인은 솔로 활동을 통해 유행의 변화에 쫓지 않고
록 음악에 바탕을 둔 정통 블루스 연주자로서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나갔다.
실제 롤링 스톤즈와 같은 거물급 밴드에서 오는
러브콜들을 정중히 거절하는 자세에서 볼 수 있었으며,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1994년 말까지 라이브를 계속함으로써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착을 알 수 있다.
1995년 1월 당시에는 공연을 앞두고 극심한 복통으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병세가 나빠졌다.
그는 평소에 주기적으로
폭음을 하는 좋지 못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과음을 계속할수록 그의 간은 계속해서 나빠졌으며,
더군다나 평소에 비행공포증이 있던 그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자주 투여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음주, 약물 습관은 그의 몸을 갉아먹어 종래에는
간 이식을 받아도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병세가 악화된다.
1995년, 그는 영국 런던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으나,
수술 직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되었고,
끝내 이를 이겨내지 못한 채
향년 4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