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피아노와 지금 네멋대로해라가 나에게 이번에 큰작품으로 남았있을것같네요..
로망스는 이쁜장면만 기억하구 .별기억이......
난 네멋대로 해라에 빠져죠 고복수에게 ..
난 복수의 죽음이 가면..정말 슬프것같네요 ..
세상을 착하게 만드는 최고의 마음을 가진.....그를 보내야하다니
슬포요
갑자기 영화 8요일이 생가나네요
그 지체장애인두 세상에 아름다움을 주고 세상을 떠나죠..(이영화 안보아지만..)
암튼 복수야....살아해...이말이 저절로 나오네요
옛날엔 이런 죽음을 가는 사람에게 뻔한내용이라구 했지만
착하게 만드는 드라마속에 그것느끼게 하니까
살아야해 ..
이렇게 외치구 있죠..
--------------------- [원본 메세지] ---------------------
'인랑(人狼)'이라는 애니에서 오래토록 가슴에 남는 말은 '야수와 인간이 만난 이야기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난다' 이다. 그런 관점에서 좀 무리해서 본다면 대개의 이야기 구조가 그렇게 흐른다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굳이 야수라는 단어적 존재가 아닌 그 상징성이 갖는 이질적인 두세계의 만남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피아노를 보자. 억관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 사회의 밑바닥 인생이다. 깡패에서 삼류. 팔자에도 없는 삼일 천하를 누려보지만 그것도 잠시 곧 양아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인생. 그러한 그가 한 여인을 보고 '이쪽' 세계로 발을 들인다. 아마 그 여인은 그에게 구원의 빛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는 결코 순탄치 않다. 억관과 여인이 만나는 그 수간부터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불행의 구렁텅이로 말려들고 끝내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던 억관의 죽음을 거치고서야 모든 갈등은 해소된다.
이러한 이질적 세계의 만남이 또 무엇이 있을까?
기억이 짧으니 명랑소녀가 있겠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그러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마니 말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캐릭터 뿐만 아닌 스토리에 있어서도 명랑만화적 요소가 짙으니 그러한 비극으로 끝난다면 말이 안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로망스'는? 이것은 사실 여교사과 남제자, 부잣집 딸과 가난한 디자이너의 이질적 관계로 보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는 시작에 이미 둘의 관계는 선생과 제자가 아닌 여비서와 복학생으로 서울의 대기업의 딸과 지방 중소기업의 그래도 있는집 아들로써 그 만남을 시작하는 안전 장치를 깔고 있다. 그러니 사실 그들의 시작이나 출신성분은 결코 이질적일 게 없는 것이고 해피엔딩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론이 길었다. 그럼 이번에는 '네 멋대로 하라!'는 어떠한가?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거론했던 드라마들 못지 않게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만남이다. 하나는 가난한 소매치기이고 하나는 부잣집 음악가. 나는 여기에서 나타나는 도로의 장면에서 언젠가 보여주었던 둘 사이를 가르고 있는 큰 강과 같은 길을 사이에 둔(두 인물이 화면의 양끝에 있는 가운데로 큰길이 세로로 화면을 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에서 분명 연출자가(또는 작가가) 그런한 것을 부각시키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건 좀 다르다. 처음엔 그렇게 이질적 세계로 가르더니 점점 두 세계는 닮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확연히 드러나던 복수 주변인물들의 설정과는 달리 회가 지날수록 조금씩 나타나는 경의 주변 인물들의 설정이 조금씩 설득력을 갖기 시작하면서 두 세계가 비록 계층적 외형으로 차이는 나지만 그 알맹이는 상당히 닮아 있음을 볼수 있다.
...그렇더라도 비극은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결국 고복수는 죽고 미래와 경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은 그들이 사랑하던 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이 드라마는 일종의 구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 '오버(誤報가 아닌 Over)'된 생각도 해본다.
고복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고, 또 경이라는 인물을 알고부터 변한다. 그리고 고복수라는 '앵커'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계를 떠돌던 배들은 하나 둘씩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점염병과 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를 변하게 한다. 경이는 복수로 인해 복수는 경이로 인해 미래는 경이로 인해 역시 경이도 미래로 인해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렇게 전염병이 번지듯 퍼져나가며 사람들은 하나 하나씩 변하고 그들 안에 있던 아픔이 드러나고 부딛혀 갈등을 이루기도 하고 결국엔 해소를 하기도 할 것이다.
내 바람이라면 복수의 아비와 어미가 다시 결합해서 아비 없는 동생은 아비를 얻을 것이고 자식을 잃은 아비는 그렇게 새로운 자식을 얻게 되고, 경이는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 역시 딸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고 지금으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수 없는 경이의 모자의 문제 역시 속으로 곪아 아파하기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 터지고 칼을 대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두에 거론했던 '인랑'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보여주지 않고 철저히 어두운 비극으로 결말을 맺고 '피아노'에서는 불행의 원인이 사라지므로서 비로소 갈등이 해소되는 수동적인 비극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마치 한바탕 씻김 굿과 같이 그 이전에 모든 것들이 해소되고 가버리는 방향으로 이전의 것들과는 좀 다르게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큰 만큼 그 에너지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이루고 나면 고복수는 고요히 두 눈을 감을 것이다. '다 이루었도다'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