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큰스님 - 지금은 "아미타불" 화두를】
화두(話頭)란 것도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중국 송나라때 나왔습니다.
화두를 지금 놔야 한다는 당위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불자님들도 깊이 생각하십시오.
소홀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화두를 자기 할아버지가 했다든가,
금생에 자기 스승이 했다든가,
또는 전통적으로 우리 종단에서 했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인습적으로 묵수(墨守)해서
덮어놓고 따라갈 그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정보화 시대는 지적인 정보를 가지고
정사(正邪)를 따져야 합니다.
비판해서 가려야 합니다.
화두라는 것은 중국 송나라때 대혜종고 스님이 비로소
정형화를 시켰습니다.
또 송나라 때도 다 화두를 한 것이 아니라,
대혜종고 스님 일파에서만
화두를 정형화시켜 유도했습니다.
그 당시도 저사(抵死)해서 화두를
반대한 스님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는 화두없이 잠자코 마음을 관조 하자는
조동종의 천동정각(天童正覺)이었고,
또 하나는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아미타불 넉자 화두를 해라”
하시고 나선 분은 대혜종고 스님과 같은
시대의 진헐청요(眞歇淸了)스님 이였습니다.
진헐스님은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아미타불 넉자
화두(四字名號)를 해라,
아미타불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본래면목이기 때문에
또 우리 마음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니까,
기왕에 화두를 할 바에는 의심만 주로 하는쪽이 아니라
부처님을 일백퍼센트 신뢰하는 아미타불 화두를 하라”
하면서, 아미타불 화두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송나라를 지나 명나라 때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때는 송나라 때보다 고승이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바로 화두를 한 그 파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화두를 반대했습니다.
고승들의 종파는 같은 화두파였는데,
그 분들은 다 화두를 반대했습니다.
운서주굉(雲捿株宏)스님 감산덕청(敢山德淸)스님
지욱우익(智旭우益)스님 자백진가(紫柏眞可)스님,
이 네분이 명나라 때 사대 고승입니다.
사대 고승이 다 한결같이 염불 쪽에다 역점을 두고서
불교를 창도하신 분이란 말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어찌하여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송나라 때가 한국으로 치면 고려 때에 해당합니다.
당시 대혜종고 스님이 이끄는 세력이 제일 강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법을 배울 때
그 중 세력이 제일 강한쪽에 가서 배우려고 하겠지요,
그래서 그 화두하는 쪽에 가서 배워 왔습니다.
그때는 마침 한국은 고려 말엽으로 불교가 정치 세력과
밀착되어 신돈같은 사람이 나올 정도로
부패 타락했습니다.
새로운 정치세력인 이씨 조선이 서고,
이조 오백년 동안에는 고려때 불교의 잘못이나,
부패한 과보로 배불(排佛)이라,
유교인들에게 핍박을 당해서
스님들이 도성 안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불교가 발전 할수 있겠습니까.
중국은 원나라,명나라,청나라 때
불교가 가장 왕성했습니다.
불행히도 명나라 때 불교가 우리나라에 못들어왔습니다.
설상가상 으로 일제 강점기 삼십육년간 이나
또 팔일오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대로 발전을 못했습니다.
어떤 스님네는 화두를 한번도 안해보고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다”고 합니다.
한국 선방의 모습이 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선방에서도 화두 아니면 참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한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가 한 것도 아니고,
육조대사가 한 것도 아니고,
지금 참선의 교과서 같은 육조단경에도
화두란 말은 한마디 없습니다.
출처: 청화 스님 마음 부처가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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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스님,
잘 못을 바로잡아 주시는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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