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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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까페 근황을 소개해 보려니 왠지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 번 '먼 젊음의 뒤안길'이란 글을
올릴 때만 해도 우리 공간엔 무언가 꿈과 낭만이 서려있었는데..
이제 일부 손님들은 흰 마스크를 쓰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나면 다시 마스크를 쓰는 광경이
좀 덜 낭만적인 느낌이라할까 여유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우리의 찐 단골들은 우리의 이 공간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마치 이곳이 그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는 것 처럼.
우리가 이마을에 온지 2015년에 왔으니 10년이 되었는데 나는 우리애에게 철밥통인 공무원을 때려
치고 이곳에 낙향하게 해 준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목숨걸고 밤세워 공부해 겨우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우리애를 떨어뜨린 그 꼴통들. 그 이유도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한 것이었으니.
지금 낙동강의 녹색라떼 끈적거리는 강물을 보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기득권편이겠지... 그들은
방사능오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바닷생선도 잘 먹고 있을까.
초등1학년 때부터 선생의 비 합리적인 교육방법에 반기를 들고 그 비교육적인 숙제방식에
저항하여 절대 숙제를 안해가서 늘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던 아이.
그 반항은 고교까지 계속되어 학교공부라곤 안했으니 낙제안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할까. 그러나
그 자유분방한 정신(?)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아 예를 들어 소풍가서 전교생을 열광시키던 그 춤과
노래 말빨의 끼는 유명했다한다 (통 말을 안하여 나는 그런 사실을 나중에 그애가 대학생이 된 후
에야 그 시골 고교친구들이 말을 해주어 알았다. 미리 알았다해도 자유방목주의인 나는 별 간섭을
안했을 것이지만. 그건 지 인생이니까.)
그런데 지가 진짜로 학문에 관심을 두고 독서를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였으니 역사 철학
현대과학 외국어 정치.. 등 닥치는데로 대학 도서관에서 책들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한번 빠져서
그것도 너무 탐닉을 하여 그 때부터 지금까지도 항상 틈만 나면 손에서 책을 놓치 않고 있다. 세상
만사 중에 학문처럼 무궁무진 흥미진진한 분야가 없다면서. 우리 북까페에 들어오면 삼면이 책장
으로 둘러쌓인 곳에 그 카운터옆에는 항상 사장님이 두꺼운 책을 읽고있어 그건 고정 그림이 되어
자연스럽다. (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리거나 손님들과 잠시 대화를 나눌 땐 빼놓고)
올 초에는 한번 지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며 서울가서 '인문학강사 자격증'이란 국가고시를
하루종일 치루었는데 간단히 합격을 하였으니 단골들은 와 우리 사장님.. 이라며 더욱 존경을 바치고
있다. 우리애는 그들의 자존심이자 자랑이 되어있는 듯 하다. 무언가 그들의 대리만족인 카타르시스
역할처럼.
노는 주말중 한번씩은 공짜 영화상연을 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즐기게 하고 향토사학자들이나
유명인들을 초대하는 강연회 등 동네를 위해 여러가지 이벤트도 벌인다.
지난 년말 송년회엔 까페 테이블들을 조금만 남기고 대부분 한쪽으로 밀어부쳐두고 단골들에게 맡겨
재미있는 행사를 벌이게 했다. 한명씩 나와 장끼자랑도 했는데 한 프로에선 자기들 끼리 엄선해 뽑은
네명의 가수(!)들이 나와 미리 연습한 데로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모두 들썩이며 같이 춤도 따라하고
신이나 있었는데 주위에서 '사장님도 나가 같이 춤을 춰 보시죠' 라 하자 '아이 전 춤을 못춰요..'라며
부끄러워한다.
그런데 그 가수들이 갑자기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는데 '.. 에잍 쎄븐 씩스...투 원 제로..'라 소리지르자
조용히 앉아있던 우리애가 갑자기 뛰쳐나가 현란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것 이었다!
그들은 티비를 통해 잘추는 춤은 가끔 보았지만 실지로 눈앞에서 그토록 눈부시게 잘추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본다며 거의 기절해 버렸다고.. 몸은 낙지 오징어같은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마음대로 돌아가
사람 몸이 아닌 듯 보였으니.. 항상 조용히 혼자 책보기를 좋아하고 작은 소리로 조용조용 말하는
얌전한 사장님이... 와, 우리 사장님 최고시다, 사장님은 못하시는 게 머에요.. 그들은 그 사장님이
고교 때 전교를 주름잡던 한량이었던 것은 알리가 없다.
어려서부터 학교 교육방법에 반기를 들고 공무원들의 꼴통 무능.. 그 남자 상관공무원들은 우리애가
맡기는 일들을 무엇이든 너무나 정확하게 잘 해치운다고 점점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까지 전부 우리애
에게 맡겨놓고 자기들은 편안히 기대앉아만 있었으니 우리애는 일에 치여 퇴근도 혼자 밤늦게 하고
집에까지일꺼리를 들고와 건강이 과부하로 쓰러져 버렸는데 상관들은 그애를 그냥 놓치기 아까웠던지
1년유급병가를 줄테니 잘 치료받고 일년후에 다시 복귀하라고 하였다. 하나의 프로젝트 서류를 완성
하려면 적어도 세명의 결제를 거쳐 수정을 거듭하여 한나절이 지나야 겨우 작성되는데 우리애에게
맡기면 고칠 것도 없이 바로 완성되므로 모든 서류들은 처음부터 점점 우리애에게 맡기고 그러면
그들의 일은 훨씬 수월하고 여유가 생겨서 편하게 쉴 수 있었으니.
의사는 과로로 인한 갑상선암이 의심된다며 치료받으며 절대안정을 취해햐한다 했는데 우리애는
그 때 알았다. 그 직장에 있으면 절대로 자신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애를 위해 결국 시골에 가서 그 희망대로 조용히 까페를 운영하게 하여 그애는 그 일년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학원에도 다니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그 일년 후 직장을 사퇴했던 것이다.
나는 그애를 위해 모든 힘을 쏟아 까페를 차릴 작은 건물을 매입했고 그애는 점점 안정을 찾아 건강도
회복해 갔다. 주위에선 그 꿈의 직장 공무원을 그만 두다니 적극 말렸어야지 공무뭔이란 1순위 신부감
인데..라며 아까워했지만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건 항상 상대적인 법이니.
나는 우리나라 출산율이 현재 0.7이라하여 인구 일인당인줄 알았더니 여성한명 당 이라하여 깜짝 놀랐다.
여성한사람이 2명을 낳아야 현상유지가 되는 것인데 0.7이란 3분의 1이란 뜻 아닌가! 금방금방 우리의
인구는 3분의 1 식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니 보통일이 아니다. 우리애들에게 엄마는 그래도 2명을 낳았
으니 최소한의 의무는 한 셈인데 너희는 한명도 안낳으니 민족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결혼을 해서
두명씩은 낳아라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한다.
큰애는 그래도 결혼까진 했는데 작은 애는 엄마를 보니 여자에게 결혼이란 오로지 손해만 보는 일이라
저는 절대로 그렇게 밑지는 짓은 안할 거란다. 너희아빠 집안은 워낙 경상도의 수구 보수적인 집안이라
그런거지 대부분의 전라도 남자들 처럼 자상한 남자에게 가면 괜찮을 거라 해도 말만이라도 고려해 해
보겠다는 언급조차 없다.
그러니까 작은 애에게 학교 교육, 직장의 꼴통 상사들, 보수적 한국남자들은 모두 비민주적인 대상들
이니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커다란 쟁점들이라 하겠다.
인문학강사 자격증을 땄을 때 나는 잘되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 강의도 해보라고 했더니 그애는 고개를
젓는다. 그건 그냥 지 자신을 테스트해본 것 뿐이라면서.
그 때 나는 알았다. 그애 마음 속엔 커다란 상처가 있어 속으로만 침잠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것은
초등학교 어린아이일 때 아이들앞에서 매일 매일 회초리를 맞으며 이미 시작된 트라우마였다는 것을.
그애는 분명 외할아버지의 정의감 고집 등의 피를 받은 것이 분명한데 다른 점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강력한 가정교육이 있었던 데 비해 우리애는 꼴통 보수의 봉건집안에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다는 점.
그렇다면 나라도 그애를 이해하고 밀어주었어야 했는데 나 자신도 그 봉건적인 집안에서 살아남으려
직장생활에 고된 농장노동 시댁식구들 봉사에 있는 힘을 다 소진하고 있었으므로 그애에게 관심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불행히도.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렸다.. 그것은 모두 신이 짜놓으신 각본이었고 나의 카르마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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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르마..
저도 공감합니다.
언니의 카르마였을까요 어린사장님의 카르마였을까여
언니는 작은 사장님을 보호하지 못한 카르마 아닐까요
그러니 작은 사장님을 이해 하지 못했겠지요
매 맞는 그 심정을 누가 알까요
신은 그 사람이 견딜만 큼만 시련을 주시니
언니는 두사람 중 누구의 카르마가 더 컸을까요/?
내가 키재기를 해보니 똑같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