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중앙일보] 발행 2020/12/15 종교 16면 입력 2020/12/14 18:06 수정 2020/12/15 12:08
낙태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계
바이든은 "낙태 정책 완화할 것"
"성소수자 위한 평등법 내놓겠다"
기독교계는 바이든 당선 내심 불편
신분 때문에 고민하는 한인 교인들
"복지 소수계 대우 정책 등 기대"
조 바이든 당선 예정자가 취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예정자는 지난 12일에도 델라웨어주 그린빌 지역 브랜디와인 성 요셉 성당에서 집전된 주일 미사에 참석했다. [AP] |
인수위원회 명단 발표는 물론 취임 후 각종 정책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인 종교계는 어떤 반응일까.
미국은 종교계의 표가 많다. 그만큼 종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바이든의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앞두고 교계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종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당선 예정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초등학교부터 가톨릭 계열 학교에 다녔다. 그는 대선이 끝난 첫 일요일에도 자택 인근 성당에서 집전 된 주일 미사에 참석했다. 그만큼 종교적 색채를 지닌 인물이다.
정책과 신념의 괴리는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그의 종교적 배경은 주로 낙태를 반대하는 가톨릭이다. 반면 민주당의 정책적 기조는 낙태를 찬성한다.
바이든은 오래된 정치인이다. 경력이 50년에 이른다. 때문에 정치적 배경과 종교적 배경 사이의 괴리를 그 누구보다 잘 인식한다.
그는 대선 전 가톨릭계가 낙태 정책에 대한 입장을 요구할 때 "나는 낙태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이를 법적으로 불법화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빠져나갔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바이든의 당선이 매우 불편하다.
최근 크리스천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의 의제를 공개하면서 "바이든은 낙태 제공 단체(플랜드 페어런후드)에 대해 다시 자금을 지원하고 건강보험개혁법에 피임 보험을 포함 낙태 등을 반대하는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실행했던 정책들이다. 즉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와 정반대로 가겠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멕시코 시티 정책'을 보면 바이든의 의중이 보인다.
이 정책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시행됐었다. 낙태 지원 국제 단체의 자금 지원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레이건 행정부 이후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 등을 거치며 폐지와 재도입이 반복됐다. 바이든 행정부 의제에는 이 멕시코 시티 정책에 대한 철회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견지하는 성소수자 정책도 보수 기독교계 입장에서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동성애자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은 적도 있다.
지난 1일 민주당 척 슈머 연방상원 원내대표 역시 "바이든의 LGBT 관련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당선 예정자는 "성소수자를 위한 평등법을 취임 후 100일 안에 통과시킬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하원을 통과했지만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에서 막혔다. 성전환자가 선천적 성별과 반대되는 화장실 샤워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성적 선택의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발언과 정책적 기조는 보수 기독교계 입장에서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향후 4년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잣대가 된다.
그럼에도 바이든에게 묻어나는 종교적 색채는 여전히 짙다.
그는 대선 직후(11월7일) 당선 승리를 확정하는 연설에서 성경 구절을 꺼내들었다. 전도서 3장 1~3절이었다. 해당 구절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내용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진영에 대해 분열 보다 '통합'을 강조하며 성경 구절을 토대로 손을 내민 셈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찬송가(On Eagle's Wingsㆍ독수리 날개 위에) 가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최근 추수감사절 메시지 영상에서도 시편의 작자를 의미하는 '사미스트(psalmist)'를 '팔마스트(palmast)'로 발음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바이든에게 종교적 배경이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달리보면 바이든이 종교적 색채를 부각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한 축을 이루는 종교계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민자로 구성된 종교계는 시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한인 교계의 경우 바이든의 이민 정책은 상당히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때와 달리 이민 정책은 상당수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패서디나 지역 한 신학교 관계자는 "그동안 유학 비자 등의 발급이 까다로워 신학교들이 외국인 학생 모집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적어도 이민 정책에 대해서는 한인 교계나 신학교에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이민 정책 완화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연방법원 뉴욕주 동부지법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DACA)' 프로그램 축소 시행령과 관련 원상복구 판결을 내린 바 있다.
LA한인교계 한 관계자는 "교인들 중에 서류미비자도 많고 신분 문제 때문에 '기도 제목'까지 내놓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이 많다"며 "민주당 정책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이민 복지 소수계 대우 정책 등은 한인 교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보수 기독교계는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가 급진적 정책을 추진할 경우 기독교계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기독교인 유정순(68ㆍLA)씨는 "동성결혼 허용 등 미국이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었던 오바마 시절로 다시 돌아갈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며 "그런 부분을 걱정하는 교인들이 많다. 바이든이 민주당이긴 하지만 어느정도 정책적으로 균형을 잡아주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 개신교인들의 선택은 '도널드 트럼프'였다. 대선 직후 에디슨리서치 등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 중 62%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바이든에게 표를 던진 개신교인은 37%에 불과했다.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는 기독교계가 바이든에게 갖는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바이든 당선 예정인에게는 숙제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배경을 갖고도 종교계 표심을 얻지 못한 것은 향후 임기 기간 동안 바이든에게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인 교계 한 관계자는 "특히 종교계는 강한 신념이 작용하기 때문에 낙태 동성애 등 단일 문제만 놓고 판단하는 '싱글 이슈(single issue)' 유권자가 많다"며 "유독 기독교인 중에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부분을 바이든 당선인이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