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2월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거의 60년이 되었으니 한낱 추억에 지나지 않지만 개인사에 있어서는 기억의
저장고에선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때 훈련병시절을 기억해 내면 아련함이 함께 묻어 나온다. 난 서울병력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젊은이들이랑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군번을 부여 받았었다.
xxxx3661 이상현, xxxx3662 한영진, xxxx3663 정영남, xxxx3664 이창흥 이렇게 4명이서 나란히 군번을 부여
받았었는데 우연찮게 4 명이 모두 논산훈련소 전반부 교육을 마치고 똑 같이 수송병(주특기 610)과를 지원했다
제3 보충대인가? 춘천에 있었는데 여기서 뿔뿔히 발령을 받아 흩어졌다. 우리 중에 이창흥 이병이 사회운전면허증이 있고,
운전경험이 있었다고 원주 주둔 헌병대에 의해 차출이 되어 갔다고 제댓날에 만나서 알게 되었다.
난 제2군단 수송자동차 대대에서 2개월간 자동차 운전교육을 받았다. 일제 도요타 10륜 디젤트럭으로 운전교습을
받았는데 기어를 넣다 뺐다(중립으로)하면서 변속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대형버스도 자동변속기를 달고 다니는데 60년전에는 자동변속기는 언감생심었던 시대였다.
소양강변에 대형차를 세워 놓고 세차를 하려고 고생깨나 한 기억이 난다.
8주간의 운전교육을 마치고나니 당시 사창리에 주둔하고 있던 사단 구호 "이기자" 의 27사단 예하부대 78연대
CS 중대로 배속이 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부대~ 그래서 더욱 그리운 부대, 27사단!
사창리 산골짜기에서 겨울을 나는 이등병의 생활은 전투의 연장이었다. 내복을 졸졸 흐르는 냇물에 빨랫비누를
문질려 빨라치면 바윗돌에 철컥철컥 얼어 붙었다 떨어졌다. 손엔 동상도 걸렸었다. 그래도 견뎌냈다.
내무반에서의 상급자들의 심심풀이 기합도 잘 견뎌 냈다. 수송부의 군기는 여타 중대나 소대보다 도 쎄다고 했다.
그래도 잘 견뎌 냈다. 차량의 공구를 몰래 빼다가 술로 바꿔 먹는 못된 선임의 횡포를 잘 견뎌 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니까 어느 덧 나는 이등병에서 병장으로 승진이 되어 있었고, 대대장의 지프차를 몰게 됐다.
그리고는 제대날짜를 손꼽는 처지가 되었다. 헌데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공작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바람에 전역날짜가 연장이 되었다. 제대날자가 가까워 지니 운전 운행도 시키지 않았다.
군대가 그런 곳이다. 이등병은 달달 볶아 대더니 제대 말년이 되니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이등병 시절~ 논산훈련소 화장실에 앉아 있는 데 모자를 벗껴 가지를 않나 행군장비에서 야전삽을 도둑질해
가지를 않나? 군대는 아둔한 나를 깨우쳐 준 고마운 곳이다. 아둔한 이등병을 성숙하게 해 준 곳이다.
제대후에도 우리 4총사는 사회친구로서 만나서 왕래를 했었다. 이상현은 경찰에 투신하여 내무부 치안본부장
의 승용차운전요원으로 종사했었고, 이창흥은 유한양행의 외근사원으로, 한영진은 회사원으로 근무했었다.
* 논산훈련소
논산훈련소는 **대한민국 육군훈련소(Army Training Center, ATC)**를 말합니다. 한국에서 현역으로 입대하는 대부분의 남성이 처음 5주 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곳이에요.
✔️ 위치
첫댓글 저도 34년전에 군생활을 했습니만 선생님의 군생할하고는
비교도 안되게 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충성! 아니 '이기자!' ` 첫눈사랑님도 군필자이시니 존경합니다.
군대 안 가려고 요리 조리 피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다
보니 다시 우러러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