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4(83,5)세로 되어 있었다. 평균 수명이 급속히 늘어나는 현 추세대로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수(白壽)를 누리게 될 것 같다.
죽어서 천당 가기보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에서 살아있기를 바라는 맘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좀 더 오래 살아 있고 싶은 게 살아있는 자의 맘이라면, 그에 따라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곱게 늙어 가는지, 추하게 늙어 가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갑, 진갑대의 나이는 차치(且置)하고라도 칠순, 팔순, 구순을 다 넘긴 나이이면서도 가림 없이 자기 과시에 그냥 들떠 있다면 그 보다 더 추한 꼴 또 있겠는가.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졌다는 이들이 함부로한 말, 대중없이 쓴 글을 듣고 볼 때가 있다. 어느 모임에 초대받아 나온 분이 남의 저서를 두고 그 가치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짓밟아 버린 일 있었다. 심지어 한 달이면 한 수레만큼씩 받는 책의 대부분은, 그대로 쓰레기로 처리하고 만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다. 실상이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 앞에서 주저없이 해야할 말인가 싶었다.
또 하나는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어느 두 분이 시차를 두고 한 장소에서 가졌던 문학 강연에서 보인 예다. 한 분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내용으로 줄곧 듣는 이의 귀를 기울이게 한 반면, 다른 한 분은 그러하지를 못하였다. 그러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을 내내 과시한 데 있었다.
언젠가 기성 작가(수필가) 한 분이 쓴, 글쓰기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갈등을 일으켰던 적 있었다. 그의 글 가운데 글을 쓴 사람을 일컬어 짐승 이름에 빗댄 말이 있었다. 즉,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라는 뜻으로 쓴 글이 "개나 소나 다 쓴다." 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사람을 짐승 이름에 쉽게 빗대어 부르는 작가의 글을 두고서, 밤을 새워가며 제 가진 것 그대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이름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글 보다 더 나은 글이라 어떻게 하겠는가?
정상배(政商輩)들의 말이나 글이야 대부분이 제 속셈을 깔아놓고 시작하는 터이기에 아예 외면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소위 문학의 한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분이 이러할 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그분의 글이 세상의 어느 글보다 빼어났다고 평론가라는 평론가는 하나처럼 평(評)했다 해도 그의 글을 두고 진정한 박수는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바탕으로 하여 모인 자리는 어느 자리 못잖게 중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리에선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일시적인 분위기에 취하여 남의 작품을 예사롭게 무시하거나 짓밟는 일은 없어야겠다.
글쓰기의 요건 다 갖춘 뒤에 글을 써야한다고 한다면, 과연 이 자리에서 다 갖춘 글을 주저없이 쓸 분이 몇이나 될까. 제 글을 두고 만인이 다 감복한다고 해서 자신마저 그에 얹혀 도도해진다면, 그의 글은 정상배가 쓴 글이나 다름이 없다 하겠다.
오가다 보면 제 공적(덕) 기린 비를 세워 놓고, 살아있는 제 눈으로 그 비문 확인해 가는 인사들이 있거늘, 글 쓰는 이 어이 그들처럼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써 온 이력이 길고 길며 뭣보다 화려하고 화려하다 해도, 써온 글 아무리 뛰어났고, 그러한 글로써 걸출한 작가가 됐다고 해도 남을 향한 그의 맘자리가 오만 불손하였고, 지금도 불손하다면, 그가 쓴 모든 글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평가 받게 된다는 것을 이즈음에서도 보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천명(知天命)이니 이순(耳順)이니 종심(從心)이니 망구(望九)니 망백(望百)이니하는 연륜 고비마다, 백지 위에 처음 붓을 대는 마음처럼 새롭게 살아가려고 노력들 하는데, 하물며 널리 알려진 분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중(自重)하는 맘, 자신을 낮추는 맘, 이 보다 더 중하게 여길 게 또 있을까.
공들여 쌓은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인간의 공명(功名)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늘 마음속에 새겨놓고 있어야 하겠다.
거미가 그침 없이 체액을 뿜어가며 한참에 그물망 만들어 가듯,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글을 썼고, 쓴다 해도 생의 반 이상을 넘긴 연륜에선,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갈 것인가를 놓고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2022. 10. 9-
첫댓글 이선생님! 깊은 의미가
가득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모두가 생각을 해봐야할 주제 아니겄습니까?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남평선생님!
언제나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하고 감사한 가운데서도, 민망한 맘은 지울 수 없습니다.
밤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시각입니다. 밤마다 편히 주무시는 가운데 강녕하시시기를 바랍니다.
이성혁 선생님
좋은 글에 공감하며 박수를 드립니다
언제 국화차 한 잔 나눕시다
이병훈 회장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지금도 낭송 문학회 운영에 진력코 계시리라 여깁니다.
무한 무궁한 발전과 돋보이는 그 전통 이어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범어동 로타리 그 밥집에서 다시 뵈올 날이
또 있으련지..... 내내 강녕하시기를 바랍니다.
공감합니다.제 생각으로는 개나 소의 글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학장님께서 공감 주시니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시는 문학 활동, 모든 이에게 영향 주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늘 강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개나 소의 글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점.
멍멍멍 짓기만 할까요? 눈만 끔뻑이며 묵묵히 일하면서 수행자의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잘난 사람의 글, 오만한 광기를 부리는 글보다 진정성 있답니다.
개나 소가 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맘 다하여 쓴 글을, 가슴 두근거리며 내 놓은 사람을 두고, 개나 소로 취급한 그 분(문단에 널리 알려진 그 수필가)처럼은 하지 말자는 뜻으로 올린 글입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