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인물의 생김새를 나타낼 때,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하다'고 말한다. 왜 눈, 입, 코 다 놔두고 하필이면 귀(耳)를 앞에 세우는 것일까. 눈, 입, 코에 얼굴의 노른자위 땅(그런 게 있다면)을 내주고 그야말로 두 귀퉁이에 겨우 달라붙어 있는(그래서 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도) 귀의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를 어여삐 여겼음일까. 하기는 빠져 나오기는 눈, 코, 입, 귀가 같이였을 텐데, 생일을 눈빠진 날, 코빠진 날, 입빠진 날 하지 않고 귀빠진 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들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줄서기, 엄정한 서열 같은 것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귀는 겉귀와 속귀로 나뉘는데, 그 갈피를 이루는 것이 귀청이다. 청이란 어떤 물건에서 얇은 막으로 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대나무의 안 벽에 붙은 얇고 흰 꺼풀을 대청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귀라고 생각하는 귀, 그러니까 '귀가 크다'고 할 때의 귀는 귓바퀴를 말하는 것으로, 귓바퀴의 가장자리를 귓가나 귓전이라고 한다. 귓바퀴의 아래쪽으로 늘어진 살이 귓불이고, 귓불의 두께를 귓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귓바퀴의 바깥쪽이 귓등이므로 그 반대쪽, 그러니까 귓구멍이 있는 쪽은 귓배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적어도 사전에는 그런 말도, 그에 해당하는 말도 없다. 등만 있고 배가 없는 괴물이 바로 귀인 것이다. 귓구멍의 밖으로 열린 쪽을 귓문이라고 하는데, 귓문 옆에 젖꼭지처럼 볼록 나온 살은 귀젖이라고 한다. 사람의 몸에는 목젖과 귀젖 그리고 진짜 젖, 이렇게 세 가지의 젖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주의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흘려듣는 것을 '귀넘어듣는다' '귓전으로 듣는다'고 하는데, 반대로 정신을 바짝 차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귀담아듣는다' '귀여겨듣는다'고 한다. '눈여겨보다'와 통하는 말이다. 한 번 본 것이라도 눈여겨보고 곧 그대로 흉내를 잘 내는 재주를 눈썰미라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귀여겨들어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재주는 귀썰미라고 한다.
어떤 좋은 소리나 마음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맛을 귀맛이라고 하는데, 귀맛이 나는 소리, 옳고 바른 소리를 마음대로 실컷 듣고 싶을 때 '나는 몹시 귀가 고프다'고 말하면 된다. 배가 아니라 귀가 고픈 것이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뱃속이 비어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은 상태를 말한다. 귀가 고픈 것은 쓸데없는 소리, 거짓말, 헛소리, 소음 따위가 아니라 바르고 옳은 소리로 귀를 채우고 싶다는 뜻이다. 고프다는 것은 비어서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다는 것, 그러므로 술고프다고 말하는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말 자체로서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차라리 술잔이 고프다고 말하는 쪽이 더 그럴 듯하다. "술 한 잔 따라 줄래"하는 것보다 "내 술잔이 고프구나"하는 쪽이 더 술맛을 돋울 것이다.
귀따갑다, 귀가렵다, 귀아프다는 듣기에 거북하다는 뜻인 귀거칠다와 함께 귀가 느끼는 감각으로 어떤 상태를 나타낸 말들이다. 둔감하여 남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귀질긴 사람이고, 반대로 남의 말을 쉽사리 곧이들어 잘 속아넘어가는 사람은 귀여린 사람이다. 너무 질겨도 문제, 너무 여려도 문제.
귀에도 중용의 도, 질기지도 여리지도 않은 적당한 탄력이 필요한 것이다. 좋은 본보기가 되는 귀가 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은 당연히 돼지 머리를 좋아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돼지 귀를 좋아한다. 속어로 순풍(順風)이라고 불리는 돼지 귀를 많이 먹으면 순풍에 배 가듯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려 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순풍이야말로 귀의 도, 즉 질기지도 여리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왜? 그래야 씹기에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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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 둘 만한 도사리들
귀맛 : 어떤 좋은 소리나 마음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맛.
귀썰미 : 귀여겨들어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재주.
귀질기다 : 둔감하여 남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