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10-ZfSLSkQ?si=g1G_7t_FNvZ7TcnL
‘카덴차(cadenza)’는 화려한 기교가 요구되는 자유로운 무반주 부분으로, 카덴차 디 브라부라(cadenza di bravura, 숙련의 카덴차), 카덴차 피오리투라(cadenza fioritura, 개화의 카덴차)의 줄임말이다. 기악곡에서는 보통 협주곡의 1악장 및 종악장에, 독창곡에서는 콜로라투라의 아리아에 들어 있다. 오늘날에는 같은 곡이라 해도 작곡가나 후대의 연주가가 남긴 여러 가지 카덴차를 연주자 임의로 선택해 연주하고 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연주의 순간이 곧바로 창작이 되는 재즈 음악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에서 즉흥성은 이른바 ‘엉덩이 꼬리뼈’ 같은 존재입니다. 부단한 퇴화를 거쳐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악보 상의 여백이 많은 바로크 음악이나, 즉흥성을 또 다른 실험 대상으로 삼는 현대음악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가 적어 놓은 음표를 따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미덕으로 정착된 지 오래입니다. 사실 모차르트와 베토벤처럼 작곡가가 곧바로 연주자를 뜻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꼬리뼈가 가끔씩 통증으로 우리에게 존재감을 알리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에서도 퇴화된 것처럼 보였던 즉흥성이 불쑥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카덴차(cadenza)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주로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에서 갑자기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멈추고 독주자만 바라보는 경우가 있지요. 이때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관객만 바라보면서 독주를 통해 화려한 기교를 과시합니다. 이처럼 악장이 절정에 이를 때 독주자가 홀로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라고 부릅니다.
당초 카덴차는 오페라 아리아에서 가수들이 즉흥적으로 꾸며 부르는 소절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점차 기악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됐습니다. 작품이나 악단의 규모가 모두 확장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카덴차에도 작곡가나 당대의 유명 연주자들이 일일이 써 넣은 버전들이 생겨납니다.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가 쓴 베토벤 바이올린 카덴차가 대표적입니다. 지금도 베토벤의 이 협주곡을 연주하는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채택하고 있는, 일종의 정본(定本)입니다. 나치 시절, 유대인 크라이슬러의 작품 대부분이 금지됐지만 이 카덴차만은 막을 수 없었다고 하지요.
바이올리니스트 루지에로 리치(Ruggiero Ricci)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하면서 이 곡을 헌정 받은 요하킴을 비롯해 크라이슬러와 외젠 이자이(Eugène Ysaÿe),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등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남긴 카덴차 16개를 모두 연주했지요. ‘골라 듣는 카덴차’의 재미를 선사한 것입니다.
영국의 ‘악동’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Nigel Kennedy) 역시 카덴차를 주제로 흥미로운 실험을 벌였습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녹음하면서(EMI) 1~3악장에 자신이 직접 카덴차를 써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지극히 이례적인 건 카덴차를 작곡하고 연주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카덴차에 쓰인 악기입니다. 말끔한 연미복과 구두 대신 펑크 복장과 군화 차림으로 비발디와 바흐를 연주했던 이 악동이 이번엔 모차르트 협주곡의 카덴차를 전자 바이올린으로 녹음해버렸습니다. 이 같은 파격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재즈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효과를 빚어냅니다.
실제 케네디는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드는 연주자로 자신의 재즈 밴드와 연주할 때는 전자 바이올린을 사용합니다. 그는 “내 해석은 전적으로 ‘오늘날’이라는 시간대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올바른 방법으로 연주하고 보여줄 수 있다면 모차르트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지난 25년간 모차르트를 거의 연주하지 않았던 그는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 아들의 이름에 ‘아마데우스’를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못 말리는’ 케네디의 ‘못 말리는’ 모차르트 음반은 클래식 음악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즉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글 김성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면 래틀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
https://youtu.be/uDKZwjUmUAk?si=GmfEMOY8dd5XYLvH
출처 : 김성현, <클래식 수첩>(아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