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록사 선생의 레플리카(replica) 고려불화전이 열린다. 굳이 복제(reproduction)이라는 말을 피하고
레플리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복제 중에서도 원작자 자신에 의해 복제된, 혹은 ‘공인
된 복제’라는 정통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전통 석채(石彩)로 재현된 여느 고려불화도 감히 따르지 못하리라 믿어지는 완벽한 조형과 경건한 신
앙이 여기 있다. 돋보기 루페로도 볼 수 없는 부분을 5%로 잡아 95%까지 접근했다고 자부하는 만큼
백퍼센트 이상의 완벽함을 구현했다는 뜻이다.
그림들은 눈을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상호는 단엄하고 의발은 경건하다. 색채는 절묘하고 짜임
새는 완벽하다. 티끌 하나 털끝하나 빠뜨리지 않았고 석채의 빼어난 색감을 추호도 흐트러뜨리지 않
았다. 5백년 풍상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찌든 때자국을 말끔히 걷어내고 배채와 퇴금으로 알려진
설채법을 그대로 되살린다. 마치 시대와 매체를 거슬러 이제 막 탄생하는 고려불화를 뵙는 듯한 착각
을 준다.
고려인이 이 그림을 보면 의관을 추스리고 황황히 삼배를 올린 후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그리고서
물러나 황홀하게 그림을 떠올리며 그 감회를 글로 적었을 것이다.
“이렇게 진실한 그림이 어찌 인간의 것이리요. 천공(天工)일시 분명하다.”
그렇게 보면 이 그림들은 시공을 뛰어넘은 성취에서만이 아니라 매체를 초월한 경건한 신앙의 금자
탑이라 할만하다. 오늘 그려진 그림이 고려시대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는 말은 조성 당시의 빼어난 기
량을 되살렸다는 뜻이요, 유화로 그려진 불화 앞에서 불보살의 상호를 관상할 수 있다 함은 이미 이
그림들이 인간의 매체분류를 넘어선 저 피안의 신앙으로 승화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려불화는 일본 대화문화관에서의 전시와 한국 호암미술관의 전시를 거쳐 성보문화재단에서 펴낸
『고려시대의 불화』를 통해 세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서서히 열기가 달아 올라 논문,
책자,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착실히 그 영역을 확장하여 이윽고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다.
오늘날 알려진 고려불화는 대략 130여점, 고려사경을 합하면 약 200여점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일본내에 소장되고 있으며 미국, 독일 등에 몇 점이 분산 소장되어
있다.
강록사 선생이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28점은 아미타도상, 관음도상, 지장시왕도상, 민간신앙도상으
로 나뉠 수 있다. 아미타도상에는 아미타여래도, 아미타 삼존도, 아미타구존도가 있다. 관음도상은 수
월관음도, 백의관음도, 양류관음도가 그려진다. 지장도상은 지장보살도와 시왕도로 나눌 수 있다. 민
간신앙도상으로는 마리지천도가 선보인다.
이들 도상들의 분포는 묘하게도 현존 고려불화의 거의 비슷한 분포를 보여준다. 즉 아미타도상이 가
장 많고 관음-지장의 순서로 자연스레 표집되는 것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려불화가 표집의 형태로
조성당시 고려불화의 보편적 분포를 보여준다면 강선생의 이 그림들 역시 당시의 보편적 신앙을 체
득하여 보여주는 개가라 할만하다.
이렇게 강록사 선생의 그림을 살펴본다. 아름다운 고려불화가 왜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을 한결 증
폭한 것이 이 그림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고려불화를 찬탄
한다.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답다는 표현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왜 그 그림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밝혀내
지 못한다. 그 아름다움을 결과로서의 그림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갖춘 이 나라의 주도적 화가였다. 그러다
가 고려불화에 심취했다. 누가 시켰을까. 온몸을 던져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을 재현하여 28점의 작품
을 선보인다. 하루 10시간씩 만 4년이 걸려 이루어낸 집념과 의지의 개가였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 땅에 내 손으로 그린 고려불화를 모시고 싶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차츰 신명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신명만으로 불화가 그려질까. 친구가 권하는대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니
그렇게 어렵던 관음의 상호가 자비의 화신으로 화면에 자리잡았다. 이제는 원화를 그린 화공의 얼굴
을 남겨진 고려불화에서 볼만큼 혜안이 생겼다. 원화를 베끼고 베끼는 작업을 비교하여 조성의 선후
를 가릴 만큼 안목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조성된 원화에서도 틀린 곳과 빠트린 곳
을 찾아 넣을만큼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고려불화공처럼 신명을 바쳐 그리는 세월에 수도승처럼 식(識)이 맑아져서 선친(先親)과 선고(先姑)
의 별세를 그림으로 예견하기도 했다. 열반도(涅槃圖)를 그리려다 선생 당신의 죽음을 미리 보곤 캔
버스를 밀쳐두었다. 실명에 가까운 시력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돋보기를 들이대어 잃어버린 원형을
되살리면서 선생은 남은 고려불화 모두를 재현하려 한다. 그리고 만족스레 열반도를 그려 자신의 귀
거래사를 마감할 것이다.
선생은 이 작품이 일본에서 전시되면 일본인의 소장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럴 것이다. 일본인
들이 원화보다 원화를 더 잘살린 선생의 작품을 놓칠리 있겠는가. 그러므로 선생은 누군가가 한국에
서 볼 수 없는 고려불화를 그려 한국인에게 물려주려는 충정을 헤아려 고려불화박물관이라도 이 땅
에 세워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선생은 다시 남은 고려불화를 복원할 것이다. 그
것이 자신의 팔자요, 삶의 마지막 교두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동서양 회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새로
운 사조에도 불구하고 전통불교회화 분야는 재료의 차별성을 고수하면서 철옹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구나 불교회화가 지닌 필선의 정교함이나 전통 안료의 활용은 독자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작품전이 마련되어 있다. 서양화단의 원로이신 姜鹿史화백
의 고려불화 재현전이 그것이다. 강화백께서는 캔버스에 유화로써 고려불화를 재현하고 있으므로 불
교회화의 기존관념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면서 불교회화가 지닌 재료의 벽을 뛰어 넘어 유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강화백이 구사한 화풍은 화려한 색채의 향연 속에서 한없이 평화롭고 천진무구한 순수의 세
계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작품 경향이 불화의 세계에서 여지없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오묘한 진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믿음의
정성으로 일관된 강화백의 불꽃같은 조형의지가 아니었다면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양화
의 기법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려불화 특유의 사라 표현이나 유연한 필선을 취하여 붓을 새로 개발
한 강화백의 창작정신이야 말로 황무지를 개척하는 농부의 심정 그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모든 예술세계는 끝없는 자신과의 고독한 투쟁에서 얻어지는 고귀한 생명력의 창출이지만, 고희를
맞은 노화백의 고려불화 재현전은 오늘날 불교미술 창작에 던진 일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실험
정신을 크게 사야할 젊은 예술학도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아가 화업에 종사하
는 많은 예술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자유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노화백이 지닌 불굴의 조형의지가 가져온 예술정신의 개가라는 점에서 문화계의 경
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화백의 깊은 신심과 예술정신에 경의를 표하면서 고려불화 재현전의 성공적 개최를 현대 불교미술
의 화두로 삼아야 하리라 본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서양화가 강록사(姜鹿史.69)씨가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를 유화로 재현해냈다.
강씨가 지난 5년 동안 재현한 고려불화는 모두 28점. 대상이 된 불화는 일본의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는 작품들로 '수월관음' 7점을 비롯해 '아미타 삼존' 5점, '
지장보살' 4점, '아미타 구존' 3점, '아미타 여래' 2점 등이다.
그의 작품은 석채 기법의 고려불화를 유화물감으로 재현한 보기드문 사례로 꼽
힌다. 강씨는 "모두 100호 크기인 재현작품은 깊이의 중후함에 색채의 화려함이 더
할 뿐 아니라 변질도 잘 안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 전통예술의 백미로 꼽히는 고려불화는 대부분 일본으로 유출된 가운데
현재 국내에는 10여점만이 남아 있는 실정. 강씨는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는 130여
점에 이른다"면서 "이 불화들의 도판을 입수해 가감없이 그대로 옮겨 그렸다"고 설
명했다.
그가 고려불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이었다. 고려불화의 대
부분이 우리 곁을 떠나 있어 직접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를 작품화하려는 화가도
찾기 힘들어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작업을 모두 중지하고 고려불
화에 매달린 끝에 28점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강씨는 "작품을 재현하는 동안 건강이 나빠져 고생했지만 여태껏 체험하지 못한
희열도 느꼈다"면서 "나머지 고려불화에 대한 재현작업을 앞으로 계속하겠다"고 다
짐했다.
재현 불화는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프레스센터의 서울갤러리에서 열리는 개
인전에 출품되며 이후 지방에서 순회전시된다.
검색은 엠파스 메일은 엠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