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투병 끝에 하늘로 떠난 김인원 일경 부친의 사자곡(思子曲)

[황해거인]

영원히 아니 올지 모를/ 가출한 내 아이의 영혼이/ 안개처럼 다가와 맴을 돌고/ 삼백초 이슬같은 작은 생이/ 갈가리 찢겨져/ 새벽 하늘에 허허로이 나부낀다

1996년 6월 14일, 전남경찰청 기동 9중대 3소대 소속 김인원 일경은 광주광역시 조선대로 출동했다. 조선대 노천극장에선 조선대 총학생회와 북한 김형직 사범대학 자매결연식이 열리고 있었다. 공안당국은 이 불법행사를 막기 위해 전의경 1800여명을 투입했다. 김 일경은 그 중 한 명이었다.

현 장은 돌, 화염병,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었다. 학생들과 대치하던 김 일경은 정문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이 그의 왼쪽 발목에 맞아 불길이 일었다. ‘퍽!’. 불길에 놀라 고개를 숙인 김 일경 뒤통수를 시위 학생이 쇠파이프로 내리쳤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쓰러진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집단구타까지 당했다.

시위 진압 중 쇠파이프로 뒤통수 얻어맞고 쓰러진 아들
끝내 의식 되찾지 못하고 17년 5개월만에 숨져

그때로부터 17년 5개월이 흐른 작년 11월15일 김 일경은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숨졌다. 9차례에 걸친 수술도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 그의 나이 서른 일곱이었다.

오 랜 세월 의식 잃은 아들의 병상을 지켜온 아버지 김정평(67)씨를 전남 여수시 봉계동 집에서 만났다. 아파트 현관문 옆에는 ‘국가유공자의 집’이란 황금빛 명패가 붙어 있었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아들을 묻은 그는 매주 목요일 여수 덕충동 석천사(石泉寺)에서 재(齋)를 지낸다.

작년 11월 15일 광주보훈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정평씨가 17년간 투병하다 숨진 둘째 아들 김인원씨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문가에 들어서자 그가 말했다. “모든 아픔… 이 가슴 속에 다 묻고… 이제 잊으려는데, 왜 자꾸 헤집으려 하시오.” 그의 눈가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모든 아픔 가슴 속에 묻으려는데, 왜 헤집으려 하시오”

“인 원이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게 이쯤에서 놓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니지, 언제 눈 번쩍 뜨고 아버지 하고 부를지 모르는데…’ 생각이 들어 마음 고쳐 먹은 게 어디 하루 이틀이겠습니까. 6300일 버텨준 인원이가 그저 고마울 뿐이지요.”

―김 일경의 마지막은 편안했습니까.
“11월 15일 새벽 4시 17분,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떠났어요. 담당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러지 말자고 했어요. 그냥 보내주자고….”

―혹시 아들에게 마지막 말을 하셨나요.
“이 세상을 떠나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거라.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가라고 했습니다.”

―17년 전 그날 일은….
“1996 년 6월 14일, 잊을 수 없는 날이지요. 그날 여수대에서 일했는데 퇴근 무렵 연락을 받았습니다. 택시를 대절해 광주 조선대병원으로 정신없이 달렸지요. 중환자실에 누운 인원이 머리에 호스가 꽂혀 있었는데 뇌압(腦壓)이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거라며 ‘죽을 수도 있다’고 해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전남경찰청장에게 무조건 서울대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원이 영혼 앞에 할 말이라도 있겠다 싶어서. 다음날 아침에 헬기 편으로 서울로 올라갔지요.”

―상태는 어땠습니까.
“며 칠 뒤 큰 출혈이 있었어요. 집단구타 당하면서 몸 안에 고여있던 피가 빠져나와서 그런 거라고 합디다. 그 때가 인원이와 마지막인가 싶었는데, 17년을 버텼습니다. 뇌 속의 핏줄이 터져 봉합수술을 받았고, 화상 입은 발목까지 큰 수술만 7~8차례 받았어요. 1999년 전역할 때까지 서울대병원에 있었고 그 뒤로는 광주보훈병원에 있었지요.”

―간병이 무척 힘드셨을텐데.
“부 대에서 대원 두 명을 붙여서 도와줬어요. 전역 후에도 석 달 정도는. 그 뒤론 오롯이 우리 부부 몫이지요. 고생스럽진 않았습니다. 힘겹게 투병하는 아이도 있는데…. 희망으로 버텼지요. 지금은 저렇게 누워 있지만 언젠가는 건강하게 일어설 것이란 그 믿음으로….”

작년 5월 광주보훈병원에서 아들 김인원 일경을 간호하는 김정평씨.

한참을 있다가 그는 말을 이었다. “한달쯤 지났을까. 누가 그래요. 사고 난 곳에 가서 인원이가 평소 입었던 옷을 흔들면 떠나간 영혼을 부를 수 있다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 조선대 앞에서 인원이가 입던 티셔츠와 바지를 허공에 흔들며 짐승이 울부짖듯 소리질렀습니다. 영혼아, 제발 돌아오라고. 다 부질 없는 일이 됐지만요.”

“짐승이 울부짓듯 소리질렀다. 영혼아 돌아오라고”
아들 병상 지키면서 차오른 비감(悲感) 절절한 시어로 토해내기 시작

김 씨는 시인이다. 1994년 ‘철쭉 앞에서’란 시로 등단했다. 자연과 일상에서 느낀 감상을 섬세하게 표현해 왔다. 2007년 첫 시집 ‘황홀한 일몰’ 이후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냈다.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아들의 사고 이후 내 시가 달라졌다”고 했다. 아들의 병상을 지키면서 차오르는 비감(悲感)을 절절한 시어로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심 전도 파란 선을 타고 뛰는/ 맥박 수 80에서 153/ 체온 37도 7분/ 간간이 뒤트는 몸부림/ 아들아/ 누구의 엄청난 사죄의 제물로/ 누구의 희열 넘친 승리를 위하여/ 슬프도록 여린 스물 한 살 꽃잎을/ 가녀리 떨며 지려하느냐?//… 날뛰는 젊은이의 잔치에/ 북어 찢듯 찢기어/ 산 같은 처절로 팔딱이는/ 토끼같이 양순한 내 아이야/ 누가 이 철부지 광란의 무대 위/ 가면을 쓰고 활보하는/ 보이지 않는 비무장지대를/ 살기 좋은 금수강산이라 했는가…’(유월 어느 하루 I). 서울대병원 3층 중환자실에 의식 잃고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을 김씨는 이렇게 기록했다.

자신의 시집에 대해 얘기하는 김정평씨. 아들의 병상을 지키며 기록한 시를 모은 시집이다. 그는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내 시를 읽고 작은 위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채성진 기자

그는 이 시를 보면서 말했다. “그 때 그 감정을 누르고 어떻게 시로 완성했을까 싶습니다. 능력이 부족해 내 감정을 표출할 시어를 찾지 못해서 그랬지 제 심정은 시보다 백배, 천배 더하면 더했겠지요.”

―절망의 순간이 많았을텐데요.
“왜 없었겠습니까. 한 4~5년 정도 지나니까 인원이가 깨어난다고 해도 제대로 사람 구실 하고 살 수 있겠나 싶었어요. 9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자는 생각도 숱하게 했지요. 그 때마다 ‘내가 살아있을 때 인원이를 보내줘야지’라며 마음 고쳐먹었습니다. 인원이 형과 동생이 무거운 짐 지도록 할 순 없잖습니까. 따뜻한 인원이 손을 잡을 때면 그래도 행복했어요.”

그 는 “인원이 어릴 적 모습이 나오는 꿈을 꿀 때가 많았다”고 했다. “건강하게 뛰놀던 모습을 꿈에서 보고 잠을 깨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가슴을 치고, 미친 사람처럼 한밤 중에 아파트 주변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 는 17년간 부인과 함께 평일 여수의 시장을 돌았다. 아들에게 싱싱한 해산물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굴과 바지락, 홍합, 소라, 전복를 믹서에 곱게 갈아 쌀가루를 넣고 끓여 먹였지요. 코와 위를 연결한 관을 통해서 하루 800에서 1000cc 정도. 버섯도 넣고 집 근처 텃밭에서 키운 부추와 삼채도 함께 넣었죠. 힘 떨어지지 않도록 민물장어와 가물치도 먹였어요. 그런데 이젠 허사가 됐네요….”

김정평씨가 낸 시집들. 첫 시집인 '황홀한 일몰'부터 작년 7월 낸 '노래하는 새도 목이 타는가' 등 4권이다.

작년 7월 펴낸 그의 네 번째 시집 ‘노래하는 새들도 목이 타는가’에는 ‘아픈 유월에 다시 서서·1’라는 제목의 시가 실려 있다. ‘… 그들만의 진리와 사상이 담긴/ 쇠파이프와 돌덩이 화염병으로/ 의경 하나 짓밟던 그들은/ 이 밝고 따뜻한 세상에/ 병든 사상의 잔해를 끌어안고/ 얼마나 값있는 인생을 걷고 있을까’

―아들을 저 지경으로 만든 이들에 대한 원망이 참 많았겠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한 것이죠. 왜 하필 우리 인원이를…. 17년, 그 긴 시간 동안 그 학생들이 한 번쯤은 와서 고통 받는 우리 아이를 보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보 훈병원 단상’이란 부제(副題)가 붙은 시에서 그는 ‘최루탄 가스가 숨통을 조이고/ 쇠파이프에 천 갈래로 찢겨진 채/ 조국에 바친 너의 살덩이가/ 휘청거린 보도 위를 뒹굴 때/ TV 화면이 얼른 주워 비추인 순간/ 민중들은/ 그들 가슴에 무엇을 새겼으며/ 아직도 그 처절을 잊지 않고 있을까…’라고 썼다.


“아…, 제가 쓴 시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네요”


13편으로 이뤄진 ’전역 그 후’ 연작시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질 풍 노도로 달려든 광풍과/ 천둥 번개 뇌성벽력으로/ 나의 살점들이 찢겨져 뒹굴던/ 1996년 6월 14일/ 내 눈물강은 홍수로 범람했고/ 하늘도 무정하여 땅을 치던/ 그 눈물강이 시방/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다…/ 체념으로/ 흐르는 강심에 둑을 짓고/ 이제는/ 산같은 슬픔도 말라버린 강 언덕엔/ 갈대처럼 웃자란 허무만/ 노을빛에 힘없이 한들거리다/ 아픈 정을 씻는 실비에 젖어도/ 핏발선 언어 하나 토하지 못한 채/ 허기진 눈물강 메마른 언덕을/ 간절한 그리움으로 서성이고 있다.’
시를 읽던 그가 말했다. “아…, 제가 쓴 시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네요.”

“정 부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 때 젊은 병사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1계급 특진에 훈장 받고 흉상까지 세워주면서 명예회복 해 주는 다른 아이들을 볼 때면 쓸쓸히 잊히는 인원이 처지가 불쌍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대통령, 국무총리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나라 위해 몸 바친 우리 아이에게 이럴 수 있냐고. 달라진 건 없었어요. 작년에 네 번째 시집을 내면서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시집에 편지를 담아 보냈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렇게 인고의 삶을 살고 있지만 부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그 뒤 지난 6월에 광주보훈병원에서 옥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많이 늦은 일이지요.”

작년 11월 광주보훈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성한 경찰청장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숨진 고 김인원 일경의 영정 앞에서 분향하고 있다.

그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고향집은 나로우주발사기지 조립동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다. 군 제대 후 부산으로 이주해 트롤 어선과 상선을 타고 바다를 누볐다. 둘째 인원이는 그 무렵 태어났다. 여수대 교직원으로 전직한 아버지를 따라 여수에서 초·중·고교를 마치고 여수대 해양학과에 입학해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그 녀석이 해양학과에 입학한 걸 보면 바다를 무대로 살겠다는 생각을 품었나 봅니다. 장래에 대해 깊은 얘기를 못 해봤는데, 지금도 아쉬워요.” 그는 “원양실습 나가는 아들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쓴 시가 있다”고 했다.

‘해 양학을 전공했던/ 네 푸른 항로에는/ 나침반이 녹슬어 방향을 잃고/ 쓰다 둔 볼펜 한 자루만/ 임자 없는 책상 위에 외롭게 뒹군다// 95학번 네 벗들이/ 국가에 충성하고 다시 모여/ 원대한 꿈을 위해/ 설렌 가슴으로 대양에 오르는데/ 너는 어찌하여/ 길 잃은 나그네처럼 맴만 돌고 있는가’(전역 그 후·12)

‘타 버린 아빠의 가슴 위로/ 이슬 맞은 나의 꽃잎은/ 낙엽처럼 흩어져 멍을 지운다’

아 들의 빈소가 마련됐던 광주보훈병원에서 김씨는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며 오열했다. 군복을 입은 영정 속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는 소리 높여 울었다. “17년간 살아서 내 곁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 는 그 순간을 어쩌면 시로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히 아니 올지 모를/ 가출한 내 아이의 영혼이/ 안개처럼 다가와 맴을 돌고/ 삼백초 이슬같은 작은 생이/ 갈가리 찢겨져/ 새벽 하늘에 허허로이 나부낀다// 넌들 어이 오고픔이 없으랴?/ 애처로운 기다림은 산 첩첩 물 첩첩/ 옛처럼 안을 수 없는/ 타 버린 아빠의 가슴 위로/ 이슬 맞은 나의 꽃잎은/ 낙엽처럼 흩어져 멍을 지운다’(아버지의 사자곡·思子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