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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혼자인 나는 어른이다. 여럿인 나는 어린이다.
"어감이 좋구나. 시 같네."
나는 아버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한 바람이 터널을 훑었고 나는 한참을 콜록거려야 했다. 멀리서 닭이 울었지만 터널 끝에는 어둠뿐이었다. 해가 지고 터널이 어둠에 잠기면 나는 무중력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터널 모양의 우주선을 타는 기분이었다. 바깥으로 헤드라이트가 스쳐 가면 흡사 별똥별이었다. 나는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터널 안을 휘청거렸다. 그러다 잠든 쥐라도 밟으면 나는 우울했다. 함께 항해에 나선 좋은 외계인 친구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나는 공벌레나 달팽이, 해파리 흉내를 냈다. 구르거나 기거나 부유하다 보면 동이 텄고, 그건 지구 대기권에 진입했음을 의미했다. 아버지는 빛이 싫다고 했다. 감시 카메라 같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데도 괜히 죄책감이 든다고. 그 환한 파도가 덮칠 때면 자신이 꼭 죄인 같다고 했다. 그런 사실과 무관하게 아버지는 가장이었다. 그의 그림자가 노란빛 너머로 멀어지면 동생들은 나에게 달라붙었다. 몸은 앙상했지만 눈에서는 별빛이 헤엄쳤다. 나는 양쪽에 둘을 끼고 옛 노래를 불렀다.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 위로 오한 된 바다
암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 끊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영광이는 깔깔대며 손뼉을 쳤고 은혜는 코를 훌쩍거렸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면 잔뜩 토라져서는 영광이 저건 뭐가 좋다고 웃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노래가 슬퍼서 우는 거 아니냐고 달리 물어도 은혜는 그 대답이었다. 노래가 뭐가 슬프냐고. 노래는 노래라고.
어둠을 가르고 빛이 쏟아졌다. 눈이 따가웠다. 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빛이 싫다 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벌써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닭이 울었지만 동은 트지 않았다. 기침이 나왔다. 동이 텄지만, 닭은 울지 않았다.
오래된 터널이 가이바이와 그 자식들의 보금자리라는 소문은 금방에선 유명했다. 하지만 확인하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터널의 양쪽 입구, 이자 출구의 앞으로는 쭉 뻗은 강처럼 거대한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80년대 어느 설계사가 지었다는 터널은 철저히 착오로 만들어졌고 수십 년 동안 방치됐다. 설계사는 국고를 낭비한 책임을 톡톡히 치러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와 절친한 사이였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찾아와 친구의 행방에 대해 물었고, 아버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가 옷장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파트란 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 여러 개를 심어놓은 것 같다는 그 건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계단을 올라 길게 놓인 복도를 지나면 각자의 문이 있다 했다. 그리고 문을 열면 된장찌개 냄새가 몸을 감싸면서 금방 잠들 것 같은 편안함이 밀려온다 했다. 우리는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터널에 살게 된 건 가이바이가 되면서부터였다. 아버지는 비밀이 많았다. 어쩌다 아파트를 잃었는지, 왜 가이바이가 됐는지, 엄마는 누구인지. 우리는 묻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가이바이였다. 그가 파는 건 외국의 오래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CD라는 것과 손톱깎이, 지압깔창 따위였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잡상인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가이바이라는 이름이 더 좋았다. '잡상인'은 '손톱깎이'나 '지압깔창'처럼 용도를 나타내는 이름에 불과했다. 반면에 '가이바이'는, 동양의 어느 철학자 같은 느낌이었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꽤 거창하고 좋은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에겐 정해진 구역이 없었다. 소속도 없었다. 그를 마지막 가이바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가이바이의 출현은 90년대 경제 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의 수많은 사장과 공장주들은 재고를 박스째 들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장정리', '재고 땡처리' 등의 문구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가이바이 전선에는 사건사고가 끊이는 날이 없었고, 아버지는 날마다 멍과 흉터를 달았다. 시간은 지하철처럼 흘렀고, 새천년이 밝았다. 아버지는 2000년이 되면 세상이 쿵 하고 멸망할 줄 알았단다. 솔직히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2000, 2001, 2002… 또 이렇게 천 년쯤 흘러야 3000년이고, 그래도 세계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돌아갈 것이고…. 새천년, 5살의 나는 터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지나는 차들을 보고 있었다. 밤이 되어 폭죽이 터지고 환희에 찬 소리가 뭉텅이로 들렸다. 영광이가 폭죽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순전히 그 이유로 나는 2000년이 싫었다. 아버지도 2000년을 좋아하지 않았다. 멸망할 줄로만 알았던 세상을 0부터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처음과는 달랐다. IMF가 끝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가이바이였다.
가이바이들의 마진율은 절반 정도, 많이 팔면 하루에 십만 원도 챙길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가끔 통닭을 먹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가이바이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경제위기가 가라앉았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되찾았다. 돈을 모은 가이바이가 자신의 이름이나 역 이름을 따 유통, 혹은 조합을 만들었고 그것들은 '조선 유통','중표 유통', '반월당 유통' 등으로 불렸다. 자칭 조합장인 가이바이들은 동네 백수건달이나 체격 좋은 노숙자, 실직자를 쓸어 모아 역 몇 개를 점거했다. 언제부터인가 역 하나 둘이 그들의 '구역'이 됐지만, 아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에 그들은 진짜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말이다. 돈다발을 끌어모으려고 인간을 말이지. 인간을 기계처럼 굴리는 괴물 공장이란다. "
2005년 폐지되기까지 철도 보안법은 거의 국가 보안법만큼 엄격히 집행됐고, 때문에 남은 가이바이들과 조합 간 충돌도 얕은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잡상인들은 비교적 화목했다고 아버지는 작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보안법이 폐지되면서 조합원들은 경찰이나 역무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고, 역마다 각자 권리행사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늙고 약했다. 이 역 저 역을 떠돌던 아버지는 조합의 텃세에 시달렸다.
"넘어졌단다."
나는 믿지 않았다. 여러 명에게 맞은 흔적이 역력했고, 물건을 빼앗기기도 했다. 아버지의 왼손 약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감각이 마비됐지만 아버지는 환상통에 시달렸고, 비 오는 밤이면 손을 잡고 굴렀다. 이제 아버지가 알던 모든 가이바이는 취직했거나 죽었거나 조합에 들어갔다. 거대 조합들이 저들끼리 몸을 불리고 자리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죽지도, 취직하지도, 조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마지막 가이바이였던 아버지는 칼집에서 뽑히지도 않는, 너무 오래된 유물이었다.
일요일이면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터널을 나섰다.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를 건넜다. 우리는 교회에 갔다. 가서 1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집에 갈 때가 되면 목사가 우리 손에 500원씩 쥐여줬다. 우리는 하느님이니 예수님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찬송가도 입모양으로만 불렀다. 동생들에게는 1시간 앉아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하지만 칭얼대거나 하는 대신 몇 번 뒤척이거나 저들끼리 속삭이는 것으로 해결했다. 우리 옆자리에는 아버지를 닮은 남자들이 일렬로 앉아있었다. 그들에게선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 난 동생들을 일부러 제일 구석에 앉혔다. 딱히 위협이 돼서라기보다는 은혜를 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쥐가 지네를 발견했을 때 서서히 다가가면서 뿜어대는 눈빛과 비슷했다. 예배가 끝나고 우리는 거기서 밥을 해결했다. 원래는 그러고서 터널로 돌아왔지만, 노숙자들이 '코스'라는 것을 돌며 돈을 더 얻는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예배를 마치고 예배를 두 번 더 보고 나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셋이 합쳐 몇천 원을 모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으로 통닭 반 마리를 사거나 겨울이면 붕어빵을 사먹었다. 노숙자들은 하루에 예배를 열 군데나 보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돈은 전부 경매장에다 썼다. 일확천금을 노렸겠지만 다음 주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타났다. 다 잃었단 소리였다.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예수님 표정이 그럴 것 같았다. 오늘도 5억 개의 기도가 왔구나… .
늦은 오후에 우리는 터널로 돌아왔다. 도로를 건널 때면 나는 항상 불안했다. 물론 동생들은 또래 누구보다 날랬지만,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그럴 뻔한 적도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고, 낡은 시계의 시침이 12를 가리키도록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고, 나는 둘을 품에 안고 있었다. 천둥번개가 치고 터널로 물이 찼다. 그날 밤은 어쩐지 이상했다. 입구 쪽으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회색빛으로 피어올랐고 번개는 붉었다. 비 오는 밤이었지만 꿈에 빠진 듯 공기는 온화했다. 나는 아버지는 찾으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버지가 12시 넘도록 들어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회색 아지랑이가 계속 손짓을 했다. 이리 오라고. 해가 지고는 절대 터널 밖을 나서지 말라 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 말을 어기기로 했다. 동생들을 자리에 누이고 빗물을 퍼냈다. 영광 이는 침낭 안에서 강아지처럼 떨었다. 둘은 나오고 싶어 했다. 안 될 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멀어지듯 동생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도로에 들어서자 해진 운동화 속으로 물이 들어왔다. 비가 오는 데도 정신없이들 달렸다. 빨간 아반떼가 지나가자마자 나는 뛰어들었고,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빗물과 땀이 같이 흘렀다. 마침내 도로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날카로운 비명이 뒤통수를 때렸다.
"오빠아!"
난 쇳소리를 냈다. 뒤돌아본 그곳에 언뜻 붉은 아지랑이가 춤을 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광대놀음이었다. 6살에 본 서커스가 열 배속으로 재생되고 또 재생됐다. 빨간 코의 광대가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또 한 번 번개가 쳤고 나는 머리가 무거웠다.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언뜻 젊은 여자의 음성을 들었다. 낮고 웅얼거리는 노래가 들렸다. 물결 위로 오한된 바다… 애 끊이 사라져 나 홀로… 수심 뜬 바다를…. 나는 정신을 잃었다.
오래된 꿈이 있었다. 비 오고 음습한 밤이면 생쥐처럼 파고들었다. 말 그대로 쥐가 귓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빗소리만 들었다. 쥐는 뇌 여기저기를 들쑤셨고 머리가 저릿저릿했다. 아버지는 그게 가위눌린 거라 했지만 나한테는 '쥐가 들어온다.'가 더 적절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 눈앞에 들이댄 빚문서처럼 꿈이 나타났다. 꿈에서 나는 가이바이였다. 어떤 유통이나 조합에도 들지 않으면서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어 물건을 사갔고, 난 빈 수레를 끌며 역을 빠져나왔다.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난 쥐처럼 날랬고, 힘이 장사였다. 까부는 조합원들을 때려눕혔고 '사장'들은 설설 기었다. 난 빚을 모두 갚고 아파트를 샀다. 한강이 보이는 높은 집이었다. 난 엘리베이터란 것도 탔다. 길게 놓인 복도를 지나 내 몫의 문을 열면, 거기에…
"…왜 아무도 없지."
나는 밖으로 그대로 뛰어내렸다. 땅이 울렸지만 내 다리를 멀쩡했다. 난 계속 달렸다. 낡은 터널에 들어섰을 때 침낭에 웅크린 소년이 있었다.
"영광아!"
"형."
난 영광이를 쳐다봤다. 머리가 아팠다.
"은혜야?"
그렇게 부르고 보니 소년의 얼굴은 은혜가 됐다. 은혜는 눈물을 흘렸다. 은혜의 목소리는 지네의 그것 같았다. 길고 유연하지만 우울했다.
"오빠. 아빠는?"
아빠? 아, 그래. 아버지는 어디 갔을까. 나는 가이바이였다. 그럼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나다."
아버지가 오셨다. 난 인사를 하려다 문득 그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란 걸 알았다.
"아빠?"
"그래, 나다."
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아버지였다. 나는 은혜를 안았다. 은혜는 내 턱에 얼굴을 비볐다. 까칠까칠했다.
"아버지?"
그리고 은혜는 아버지였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머리 위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아버지는 슬픈 표정이었다.
"은혜는 어디 있니. 영광이는. "
"여기요."
그리고 나는, 영광이였다.
"은혜는 어디 있니."
아버지였다. 난 자리를 정리하고 아버지를 맞았다.
"은혜는 어디 있니."
"저기 있네요."
은혜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은혜는 옛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제목을 몰랐다.
"은혜야."
은혜는 종종걸음으로 아버지에게 안겼다. 은혜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누런 이를 보이며 웃었다.
"영광이는?"
아버지는 수레를 내려놓고 쥐 한 마리를 걷어찼다. 모여 있던 서너 마리가 흩어지며 마른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자리를 냈다. 은혜를 거기 앉히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영광이도."
곧 해가 질 참이었다. 도로에 나가보니 영광이는 건너지는 않고 멀리서 흙을 파고 있었다. 터널과 도로 사이에는 작은 균열이 여러 군데 있었다. 영광이는 심심할 때마다 그곳을 하나씩 파헤쳤다. 지렁이며 굼벵이를 전리품처럼 들고 오곤 했다.
"영광아!"
옷에 흙투성이였다. 하지만 털어내도 어차피 옷은 누더기였다.
"아버지가 옛날 얘기해주신대."
"아니."
영광이는 바닥에 손가락을 문질렀다.
"옛날이야긴데?"
내가 물었다.
"없앨 거래."
"뭐?"
"여길 없앤다 그랬어."
"여긴 우리 집이야."
"알아."
난 허리를 숙여 영광이와 눈을 맞췄다. 초점 없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버지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옛날 얘기는 들을 거지?"
영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손을 잡고 터널에 들어왔다. 은혜가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오빠!"
아버지가 웃었다. 난 아버지가 웃으면 불안했다. 곧 떠날 것처럼 미지근한 웃음이었다.
"모두 앉아라."
<내가 갓난아기인 큰 오빠를 데리고 이 터널에 왔을 때, 물론 영광이는 아직 이 세상에 없었지, 터널 안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시체 냄새 같기도 했고, 일주일 된 쥐똥 냄새 같기도 했다. 거기 그림자 하나가 벽에 기대 있었는데, 난 그게 시체인 줄 알았다. 몇 년 만에 들어가 본 터널은 엉망이었다. 기영이가 사라지고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가까이 가보니 웬 할아버지 한 분이 눈을 감고 계셨다. 인기척을 내니까 갑자기 눈을 뜨셨지. 할아버지의 눈동자는 탁한 하늘색이었다. 해도 달도 없을 것 같은 색이더구나. 할아버지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입 냄새가 아주 지독했지. 곰보가 잔뜩 핀 얼굴, 그, 곰보란 건, 이거. 아빠 볼에 여기, 그래. 이게 잔뜩 있었고 군데군데 살이 썩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등은 벽에 붙어버린 것 같았다. 알아듣지 못할 말만 했지. 할아버지의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도 있었고 젊은 여자도 있었고 어린 꼬마도 있었다. 내 생각에 그건, 할아버지의 가족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빠는 할아버지, 정확히는 그 가족들과 함께 터널에 살게 됐지. 너희는 아마 잘 기억이 안 날 거다. 할아버지는 정확히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나한테 다 털어놓고서 가셨다. 안 그랬음 정말 벽에 뿌리를 내리셨을 거다. 하루는 젊은 여자가 돼서 시아버지 흉을 보고, 그러니까 자기 흉을 보고. 하루는 나랑 비석 치기를 하고. 하루는 자기 살아온 얘기를 하셨지. 할아버지는 내가 오기 몇 달 전에 터널에 왔는데,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노숙자셨다. 가족이 모두 하늘나라로 가고 혼자 거리를 헤매셨다. 나중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셨다더구나. 그릇 하나를 들고 식당에 들어가서는 사람들이 먹고 있는 김치며 밥을 뺏었다. 그리고 골목을 뛰어다니며 그걸 입에 퍼넣으셨다더구나. 그러다 찬 바람에 기력이 쇠하셔서 쉴 곳을 찾다가 터널에 흘러들어오신 거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자신일 때는 무척 지쳐 보이셨다. 빨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하셨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가족이 할아버지를 놔주지 않았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가족을 놓지 못하셨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할아버지는 그렇게 한 달을 사시다가, 하늘 맑은 날 해 질 녘에 돌아가셨다. 찹쌀떡이 먹고 싶다고 그렇게 칭얼대시더니 금세 눈을 감고 회상에 잠기셨다. 그러다 잠든 것처럼 숨을 거두셨지. 그날 나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큰 오빠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 할아버지를 묻어 드렸지. 막 말을 시작한 요한이 네가 흙 한 줌을 구덩이에 던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가 할아버지 집야, 집.>
"여길 없앤댔어요."
동생들이 잠들고 내가 말을 꺼냈다.
"언제?"
"몰라요. 그치만. 그 사람들은 공무원예요."
"그래. 공무원."
아버지가 눈을 비볐다.
"요새 앞이 갑갑하구나."
"잘 안 보이세요?"
아버지 얕게 숨을 내뱉었다. 쥐가 울었고, 구슬픈 노래였다.
"떠나야 되겠어."
"어디루요."
아버지가 웃었다.
"어디로든. 영광이 어딨니."
"침낭에요."
"그 아이도 지 갈 길을 가야 해. 은혜도."
영광이는 내 친동생이 아니었다. 서울역에 홀로 남겨진 영광이가 가지고 있던 건 만 원짜리 지폐와 붕어빵 2개가 담긴 종이봉투였다. 한 마리는 꼬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를 터널에 데리고 왔다.
"이제 보내줘야 한다."
"은혜는 왜요."
"여기 있으면 안 된다."
"걔들은 내 동생이에요."
아버지는 내 눈을 봤다. 아버지는 평생 혼자였던 것처럼 쓸쓸해 보였다.
"내일부터 같이 나가야겠다. 일을 배워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네."
"그래."
"끔찍해요."
"꿈이 더 나을 때가 있단다."
"난 아녜요. 진짜인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진짜인 건 암것도 없지."
아버지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터널은 햇빛에 반쯤 잠겨 있었다.
"가자."
난 수레를 끌었다. 오늘은 CD였다. 이것들로 어떻게 노래를 듣는 지 난 몰랐다. 알 필요가 없는 걸 아버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when I need you, I will, Shape of my heart, Vincent, Dancing queen. 10살부터 갖고 놀던 CD곽에는 알 수 없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읽는 법을 가르쳐줬다. 왠아이니쥬, 아이윌, 쉐입오브마이헐트, 빈센트, 댄싱퀸. '아파트'처럼 어감이 통통 튀었다. 하지만 정이 가진 않았다. 아버지는 그게 서쪽 사람들의 말이라고 했다. '터널'도 사실은 그 나라 말이라고. 난 충격에 빠졌다. 그 뒤로 나는 터널이란 말을 내뱉지 않았다. 우리의 보금자리를 외국인들의 말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동생들에게도 그렇게 시켰다.
지하철 입구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아버지는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갔다. 난 속도를 따라잡느라 쩔쩔맸다. 사람들이 기계에 카드를 찍거나 넣었지만 우리는 기계를 뛰어넘었다. 아버지는 다람쥐처럼 날랬다. 나는 유리창 너머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표정 없이 잠깐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왜 붙잡지 않아요?"
"친하다. 나랑."
그런 이치였다. 우리는 승강장에 내려갔다. 바글바글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모두 깔끔한 차림이었고 여자들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곧 말로만 듣던 지하철이란 게 들어왔고, 마른 바람이 불었다. 그 많은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놀랍게도, 그만큼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왔다. 쥐떼들 같았다. 끊임없이 밀치고 밀렸다. 지하철을 꾸역꾸역 사람들을 토해내고 또 집어삼켰다. 아버지와 나도 간신히 탈 수 있었다. 아버지의 팔엔 벌써 빨간 흉터가 있었다. 우리는 재빨랐지만 결정적으로 약했다.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었다. 난 수레를 잡고 있었다. 지하철이 으르렁거리며 출발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터널에서 우주선 놀이를 하는 것보다 몇 배는 이상했다. 나는 문득 많은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옷이 달랐고, 머리 모양이 달랐다. 내 얼굴은 때가 묻은 창백한 회색이었고 그들은 반질반질한 노란빛이었다. 사람들은 몸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벙어리였다. 그들의 마른 침묵을 뚫고 아버지가 작게 말했다. 올드팝 CD 다섯 장 들이가 만 원입니다.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사실 분 안 계십니까? 난 그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 말에 대답이 없다니. 배워먹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지하철이 멈추고 다시 출발할 때마다 내 가슴은 요동쳤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속도였다. 출근 시간이 끝나고 해가 중천에 올랐다. 그때까지 아버지의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햇빛이 파고들고 나른한 공기가 지하철 안을 채웠다. 우리는 김밥을 먹고 다시 CD를 팔았다. 2시가 될 때까지 만 원을 벌었다. 아버지는 지쳐 보였다. 나도 목소리를 냈다. 내 목소리는 작고 가늘었다. 꽉꽉 채웠습니다. 노약자석에 앉은 노파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눈동자는 탁한 하늘색이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요."
우리는 중간에 내려 작은 의자에 앉았다. 초록색 의자에는 장기매매 광고 따위가 붙어 있었다.
"우리와 달라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눈을 비볐다.
"안 보이세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대신 마른기침을 뱉었다. 앞에 서 있던 키 큰 여자가 우리를 흘끔 쳐다봤다.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뭐가요?"
"둘 다 말이다."
"그래요."
지금 선로에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가자."
나는 수레를 끌었다. 아버지는 지하철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끌려나갔다. 문이 닫혔다. 난 문을 두드렸다. 얼굴이 검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눕혔다. 아버지가 마구 굴렀다. 열차가 출발했고 나는 반대로 뛰었다. 뛰어도 뛰어도 아버지와 멀어졌다. 나는 무엇에도 가까워질 수 없었고 다만 다음 역이었다. 울음이 날 것 같았다. 빛이 따가웠다. 졸음이 쏟아졌다.
<어디로 달리는 걸까.
난 관심 없어.
넌 나야.
아버지는?
아버지?
그래.
아버지는….>
"요한아."
아버지는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른 나무였다. 난 기어갔다. 어지러웠다.
"요한아."
"제가 왔어요."
아버지가 웃었다.
"내가 왔지. 잘 잤니."
"난, 난."
"꿈을 꿨니."
"꿈이 아니었어요."
"아니, 꿈이었다."
"그치만."
"가자."
난 아버지를 일으켰다.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휘청거렸다. 터널은 너무 멀었다.
"이곳 거주자 되십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피투성이였다. 그들의 눈썹이 잠시 들썩였다.
"시청에서 나왔습니다. 터널을 헐고 화단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꽃밭을?"
아버지가 물었다. 남자들이 대답하기 전에 내가 말했다.
"여긴 우리 집이에요."
"시 미화사업의 일부입니다. 터널 철거는."
"우리 집이라구요."
내가 나섰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요한아."
"철거는 다가오는 목요일 중에 실시합니다. 거주자는 두 분이신가요?"
"동생들은 어려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걸어가 그들 중 한 명에게 말했다.
"두 명이오. 서둘러 나가겠소."
"시 업무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가 있으시면 이리로."
아버지는 명함을 받아들고 잠시 우두망찰했다. 난 터널로 들어가 쭈그려 앉았다. 영광이와 은혜가 몸을 바짝 붙이고서 입구 쪽을 보고 있었다. 그림자 같은 검은 무리는 잠시 일렁이더니 흩어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은혜야. 영광이 데리고 잠깐 나가있거라. 길 건너진 말고."
은혜가 영광이를 일으켜서 손을 잡았다. 둘은 쫄쫄거리며 걸어갔다.
"아버지."
"그들은 공무원이다."
"내 동생들이에요. 대체 뭐가…."
"나는 빚쟁이다. 바깥에 빚졌다."
"그런 건 나도 알아요."
아버지가 헛웃음을 냈다.
"그랬구나."
"빚쟁이가 아닌 사람은 이런 집에 살지 않아요."
"우린 나갈 거다."
"우린 4명이에요."
내가 터널의 입구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내 손가락을 접었다.
"여긴 터널이다. 지나가는 곳이다."
"아버지는 겁쟁이예요."
"아니다."
"거짓말쟁이예요. 엄마는 어디 있나요."
내가 소리쳤다. 아버지가 눈을 비볐다.
"엄마는 하느님과 있다."
"그런 건. 없어요."
"그래."
"난 본 적이 없어요. 교회는 500원이에요."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주무세요."
"내일모레구나."
"우리 집은 여기에요."
난 동생들을 불렀다.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었다.
"은혜야. 여기가 어디지?"
"우리 집이야."
"그래."
난 어지러웠다. 은혜의 얼굴이 흔들렸다.
"여기 누워."
은혜가 자리를 만들었다. 난 몸을 누이고 눈을 깜박였다. 은혜와 영광이가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난 수레를 잡았다. 밤새 식은땀을 흘린 아버지는 창백했다. 영광이가 부스스 일어나 머리를 긁었다.
"형. 꿈을 꿨어."
난 빛을 등지고 영광이를 봤다.
"형이 도망쳤어. 괴물이 나타났어. 그러다가."
"그러다가?"
영광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형이 잡아먹혔어."
"형은 빨라."
"알어."
"갔다 올게."
"괴물을 만나면 도망쳐 꼭!"
영광이가 소리쳤지만 자동차 소리에 묻혔다. 수레를 안고서 도로 너머로 뛰었다. 해가 쨍쨍했다. 수레가 탈탈거리는 소리를 냈다. 왠아이니쥬, 아이윌, 쉐입오브마이헐트, 빈센트, 댄싱퀸… 나는 중얼거렸다. 서른 번쯤 반복했을 때 역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갔다. 점점 속도가 붙더니 사람들을 모두 제쳤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기계를 뛰어넘었고 역무원에게 목례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듯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올드팝 CD 다섯 장 들이가 만 원입니다.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사실 분 안 계십니까?
"얘야. 뭐가 들었다구?"
어제 봤던 노파였다. 탁한 하늘색의 눈동자, 해도 달도 없을 것 같은 색이었다.
"올드팝이요. 5장에 만 원이에요."
"그러니까 그 올드 뭐라는 게 뭐야."
"저도 잘 몰라요. 노래 같은 거에요."
노파가 앓는 소리를 냈다.
"뭔지도 모르는 걸 파는구나."
"그러게요. 사실래요?"
노파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거의 노란색이 된 만 원 지폐를 꺼냈다.
"하나 다오. 국 끓여 먹어봐야겠다."
난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나처럼 수레를 놓고 물건을 파는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아버지와 닮았지만 훨씬 젊었다. 서른 살 정도로 보였다. 남자는 수레를 끌고 내 옆에 섰다.
"너 어디 소속이냐."
남자가 속삭였다.
"없어요."
"소속이 없다구? 어디 개수작이야. 너 좀 내려봐라."
남자가 말했다. 난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가 작게 욕을 했다.
"요새 핫한 아이템 지압깔창이거든요 이게? 구두용도 있슴다. 손만 드시면 바로 달려갑니다. 자 마지막! 저 이번 역에 내려요."
남자가 말했다. 난 그를 올려다봤다. 지하철이 멈췄다. 남자가 날 끌고나갔다.
"얌마. 어디 소속이냐구. 이번에도 수작 피우면 묻어버린다 진짜."
"난 혼자예요. 울 아버지가 김 기영이에요."
"김 기영? 허, 잠깐."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박 형. 여기 애새끼가 지가 김 기영이 아들내미라네? 엉, 그래, 그니까 말야. 와봐야겠어."
난 남자의 눈을 봤다. 난 도망가지 않았다.
"야. 뭘 봐. 암튼 너랑 니 애비는 오늘 다리를 분지르든지 해야겠다."
난 도망가지 않았다.
"뭘 보냐구!"
남자가 내 뺨을 쳤다.
"요한아."
멀리 계단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 옆으로 남자와 같은 수레를 든 사내가 내려왔다. 두 남자가 서로 인사를 했다.
"노인네도 있네."
방금 온 남자가 말했다.
"가자 요한아."
남자들이 콧방귀를 꼈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쥐일 수 없었다.
"아니요."
'나는 아버지의 말을 두 번째로 어겼다. 내일 아버지가 집을 떠나라 한다면, 그때가 세 번째일 것이었다.
"요한아."
"노인네도 어여 내려와. 애새끼가 깡이 있네."
난 도망가지 않았다.
"어쩔 건데요."
주먹이 왔다. 처음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곧 얼얼하더니 입술 사이가 짰다. 먼저 온 남자가 나를 밀었다. 발이 날아들었다. 난 웃었다.
<이런 건 아프지 않아, 당신들은 나를 아프게 할 수 없어.>
나는 뒹굴면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당신은 도망가면 안 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절뚝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아버지가 왼손을 달달 떨었다. 환상통이 도진 것이었다. 남자들은 나를 밟았다. 쥐 잡듯이 밟았다. 나는 쥐가 아니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남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절뚝거리면서, 손을 떨면서, 눈을 비비면서 달려들었다. 남자들은 아버지도 넘어트렸다. 그리고 각자 한 사람씩을 밟았다. 우리는 각자 밟혔다. 나는 웃었고 아버지는 울었다.
"요한아, 요한아."
아버지는 자꾸 날 불렀다. 사방이 노랬다. 혜성이 떨어졌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요한아…."
아버지는 초주검이 됐다. 검은 피를 흘렸다. 아버지는 일어날 수 없었고, 손을 떨었고, 눈을 비볐고, 피를 흘렸고…. 아버지는 도망가려고 했다. 자꾸만 그랬다.
"뭐하시는 겁니까 거기!"
역무원이 달려왔다. 남자들은 침을 뱉고서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버지가 꿈틀거렸다. 나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집으로 가야 했다. 집을 지켜야 했다. 동생들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 집에 가요."
나는 아버지를 끌다시피 했다. 역에는 수레 하나가 있었다. 다섯 장 들이 만 원짜리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아버지와 내가 팔았던, 뭔지 모를 것들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정말 느리게 걸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나는 웃음 한 모금을 흘렸다.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빵조각을 흘린 것처럼. 꼬마일 때 밤낮으로 읽었다. 결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마녀에게 잡아먹히던가? 아니면 마녀를 잡아먹던가.
해가 질 때까지 아버지는 세 번 피를 토했고, 동생들은 삼십 번은 울었다. 해가 뜰 때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피를 토하지 않았고, 동생들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동생들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할 줄 아는 노래는 하나뿐이었다. 아버지 들으라고 더 크게 불렀다. 닭이 울었고 쥐가 숨었다. 쥐는 왜 숨었을까? 닭이 운다고 해가 뜨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영광이도 알았다. 터널의 입구가 점점 빛에 잠겼다.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빛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오실 거야."
빛을 뚫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버지는 말쑥했다. 아버지는 웃었다. 언제나 함께일 것처럼, 경쾌한 웃음이었다.
"여긴 우리 집이다."
나는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은혜는 어디 있니. 영광이는."
"여기요."
"여기요."
내가 대답했고, 내가 대답했고,
"큰 오빠는?"
"여기요."
내가 대답했다.
"그래. 모두 모였구나."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 위로 오한 된 바다
암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 끊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우리는 벽에 기댔다. 영광이가 웃었고, 은혜가 웃었고, 아버지가 웃었고, 내가 웃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우리는 언제고 웃을 것이었다. 혼자인 나는 어른이다. 여럿인 나는 어린이다.
"어감이 좋구나. 시 같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였다.
ㅡ제목을 정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