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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7강,9강 중에서
-개혁주의 5대 교리 형성 배경
신조 한나라의 통치자의 종교가 등달아 그 나라 백성들이 같은 종교를 요구하던 시대이다.
개인이 자유 신앙을 주장하는 것은 최초로 재세례파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성인들의 고백이 아니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의 사 때문에 교회에 가입한 것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유아세례 받았으면 다시 세례받아야 한다.
이 파에서는 개인의 신앙에 따라서 교회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나머지 루터, 칼빈, 쯔빙글리, 카톨릭, 영국국교회등 모두는 통치자의 종교에 백성들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신조란 것은 내가 믿는데 무슨 필요가 있는가?
신조란 교회의 정치화이다. 교회를 그냥 가만 두지 않고, 국가 정치화 시킬때 신조가 필요로 한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를 정치적으로 교회를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들어 낸 것이 루터교, 칼빈교, 영국의 청교도, 미국의 신개척지의 교회들에 반대하는 자들은, 통치자의 통치에 동의하는
영국에 헨리 8세 아주 막나니 같은 자가 등장했다.
멀리 있는, 바티칸에 있는 교황이 영국 백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국왕, 나의 종교가 전국민을 지배한다. 싫으면 죽어라. 요즘 세상에서 볼 때에는 이상하다.
그러면 왜 그런가? 하나님 밑에 국가의 왕은 하나님이 세운 왕이다. 이 논리는 구약의 논리이다. 역대상하, 열왕기 상하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관리 할 때 왕을 통해 관리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구약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따로 있다. 그래서 왕에게 복종하면,
제대로 된 왕이 있으면 그 나라 백성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왕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면 그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망한다는 정치적 철학을 갖고 있다. 구약성경을 보고.
지금 만약에 구약 성경을 보라고 하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나님의 합당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겠구나. 그 나라 백성은 그 자체로 영생이요 구원이요 축복으로 간주할 것이다.
잘못되었지만 그냥 성경을 던져 주어서 성경을 보게 되면, 그 당시 왕의 잘 잘못으로 나라가 잘되고 잘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열 번이 못되고 한 번 잘되는 것을 그것이 자신의 진면목이라고 간주할 때가 많다. 한번 잘 될 때
아이들 모의고사 칠때 아이가 305 나오다가 우연히 345가 나오면 345가 자신의 실력이라 간주한다.
원래계산해 보면 305가 자신의 실력인데, 한번 잘 나온 것을 자신의 실력이라 간주한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그 뜻이 무엇인고 하면, 구약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면 나라가 복받는다는 것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왕이 잘 되어야 하고, 백성들은 그 휼륭하신 왕의 종교를 따라가 주어야 복을 받는다. 나라꼴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종교가 없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왕, 통치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전담하고 있는 기관인 교회의 총수인 교황에게 약간의 정치적 타협이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다른 종교는 없으니까.
그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전공이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는 없다. 황제가 교황이나 주교급들을 불러 모아 자꾸 공의회를 여는 이유가, 공의회를 열면 그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진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왕이 그 뜻에 복종하게 되면 구약대로 복을 받는 채널이 된다. 복을 받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여러분 교회사 정치적 분위기가 파악이 됩니까?
오늘날과는 다르다. 그러니 자기 왕은 하나님의 뜻을 전담하는 교황말을 들어, 니케아 회의의 칼케돈 신조에 의해 삼위일체 형성, 이 삼위일체에 부합하지 않으면 신의 노를 자초하는 것이니 큰일날 일이고, 삼위일체를 인정하고, 삼위일체 문제 뿐 아니라, 마리아의 죄가 예수님의 죄에 영향을 미쳤느냐, 연옥의 문제, 성만찬 유아세례문제 등 이 많은 문제점을 왕은 수시로 교황중심으로 수시로 모이도록해서
신조로서 구축해서 백성에게 전해준다.
왕의 역할은 교회확립한 교리, 신조에 어긋나는 자를 색출하는 일을 해야한다.
구약 아간의 죄악으로 전체가 실패했지 않느냐. 여리고성 전투에서는 힘을 합쳐 시키는 데로 했는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실패.
금은을 숨겨 놓았다가 불에 태워짐,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러니 신이 계시고 신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서 왕의 임무는 교회의 말을 들어, 교회교리를 백성들이 잘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를 잘 감시해서 잘못되었으면 작살낸다. 그래서 중세 유행한 종교재판.
중세에 종교재판을 했다.
마녀 사냥을 했다. 칼빈, 루터가 다 인정했다. 제네바에 종교재판이 있었다.
삼위일체반대하는 자들은 사형당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니까?
다만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해석이 교황주도하에 있는데, 카톨릭에서는 교황이 예수님을 대리하여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베드로의 열쇠를 쥐고 통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교황인격이 문제가 있더라도 교황직분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19세기 말에 교황무오설이 선언된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위클리프, 오캄에 의해 일어난 것은 교회가 성경해석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그런 기운이 유명론자들 등에서 나오다가
훗서에서 노골적으로 말하는데.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되는데, 교황이나 교회가 성경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성경의 내용만이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동안 천주교가 성경에 없는 여러 가지 잡스러운 허래허식같은 것을 마구 교회에다 집어 넣어, 이것을 성경과 더불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각 나라에 유포를 한다. 황제가 받아 백성에게 유포함.
그런데 성경과 전통(허례허식)이 섞여 있으면, 성경과 전통이 충돌이 따르면 성경을 따라야 할 것인데, 교회란 것이 교회자체 정당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존속한다. 잘된다면 그것도, 성경말씀도 거부한다.
교회란 사람들의 집단이다. 사람들이 있어야 왕도 있고 교회가 있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납득이 될 수 있도록 전통들이 만들어 진다.
납득이 된다는 말은 인간 심성, 자연적의 법, 인간 양심에 호소에서 근거를 가지고 교회의 기초를 쌓아 올라 왔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재세례파가가 과감하게 외침.
이렇게 외치니 카톨릭 쪽에서는 그러면 좋다. 그러면 너희들이 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러면 성경에 합당한 교회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을 내어 놓어 보아라. 하니.
천주교에 일년 스케줄이 있다. 거룩한 날이 그렇게 많다.
천주교에서는 성자 축일이 매우 많았다.
그 당시 성경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순교자나 신앙 좋은 사람들을 본받자는 식으로 목회를 해 왔다.
여러분이 목사가 아니기에 목회란 것이 어떤 것을 두고 말합니까 할때, 목회란 월급을 받았으니 내 놓아야 할 것이 있어야 하는가? 교인들 하고 노닥거릴 수 있는 것을 만든다.
그래서 일년 스케줄을 짜는 것이다.
그 스케줄 대로 하는 것이다. 사순절, 오순절을 자꾸 만들어서 목사나 사제가 돈값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를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을 읽으라면 읽는다.
성당은 제사, 즉 미사를 드린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자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미사 참여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서 일년을 보낸다.
여기에 아기 놓으면 세례주고, 견진 세례하고, 결혼하면 세례하고, 죽으면 종부성사하고, 연옥문제 거론하고, 굉장히 바쁜다. 이 바쁜 스케줄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스케줄 대로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성당에만 종이 없다. 밀레의 저녁종을 보면, 이삭줍는 여인, 만종을 보면, 하루 일과를 감사합니다. 그 스케줄을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 것이다.
성당의 종소리에 따라 넓은 농부들의 하루일과가 결정된다.
내일 종교적 행사가 어떤 것이 있는가?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제공한다. 어려운 자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것도 성당이 정한다. 자금은 영주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성당 스케줄에 매여 산다.
이렇게 매여 살 때 그럴때 죽을 때 천국가고, 죽은 자도 연옥에서 빼내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보겠는가?
그런데 성경을 직접 보게 되면 이 성당에서 하는 99프로가 미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재세례파는 그 당시 성경유포 되니 성경대로 하자는 주장을 한다. 이 말은 간편하게 하자는 말이다.
복음으로, 십자가중심으로 하자는 말이 아니다.
칼빈, 루터, 쯔빙글리의 성경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너무 복잡하니, 복잡하다는 말은 자기 스케줄에 아니라 성당스케줄에 매여 있으니, 신부에게 꼼짝도 못하니, 그러니 종교개혁의 융성지역은 도시상공업자들에서 맞아 떨어짐, 칼빈의 경우, 스위스 제네바에서, 1534년에 장로교 헌법이 등장한다. 계급이 네개있다. 목사 교사 장로 집사. 그런데 상공업자들은 농촌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본, 이자를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자는 시간따라 돈을 받는데, 그 전 까지는 시간 따라 돈을 버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간은 하나님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이용해 돈을 버는가, 그것이 죄악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보면 유대인들의 얼마나 지독한지, 돈 안 값으면 피 안내고 살찜 떼어낸다.
시간관리를 본인이 한다는 것은 본인이 종교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종교생활을 간편하게한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한 하나님 밑에 한 왕이 신앙생활를 잘하고 ,백성들은 이것을 따를 때 구약처럼 복을 받는다.
그래서 그 왕은 교황의 전체 결정을 따라 주어야 복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런 도시 발달, 십자가 운동 하다 보니, 물자가 필요하고, 무역발달과 함께 이자 발생등.
그래서 신앙생활을 간편하게 하자고 하니, 모든 성일을 다 없애 버리고, 주일 지키는 것, 세례하는 것, 성만찬하는 것, 이것 조차 가끔 해도 괜찮고, 또 한 가지는 성경의 교리, 이 네 가지를 지키면 당신은 우리편 해줄께라고 한다.
종교개혁시대에도 개인이 결정한다는 것은 개신교 중에서 재세례파만의 주장이고,
나머지는 칼빈, 쯔빙글리, 루터 등은 정치꾼의 종교가 모든 백성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종교는 세 개이다.
영국국교, 정통카돌릭, 개신교가 있었다.
1535년에 생겼다. 이때 교육받은 사람이 존낙스이다. 스코트렌드 종교개혁.
영국 변두리에 칼빈주의 사상이 들어가 상공인들 중심으로 장로교가 생겼다.
장로교가 무엇인가?
장로교란 사제를 교인이 뽑는 것이 장로교이다.
사제가 없는 것은 재세레파.
사제를 교황이 뽑는 것은 카톨릭이다.
통치자가 사제를 임명하는 것은 영국국교, 루터교, 칼빈주의적인 요소를 지닌 개혁교회가 그러하다.
개혁교회가 통치자를 임명한다. 왜 그런가 왕이 제대로된 신앙을 갖고 있으면 복을 받는다.
회원들이 직접 뽑는 것은 장로교회이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이와 다르다.
개혁주의는 성경대로 스케줄을 간편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중 하나가 장로교회이다.
장로교회는 교인이 뽑는 것이고, 재세례파는 목사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받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교인 될 수 없고, 성령받으면 모두가 다 남에게 권면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
재침례 외에는, 즉 개혁주의 장로교등 모두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청교도 혁명, 크롬웰이 장로교를 핍박한다. 같은 편이 아니다.
크롬웰의 주장은 칼빈주의 입장에서 영국국교를 만드는 것이다.
크롬웰은 영국 통치자이다. 그는 개혁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 각 교회 사제를 누가 임명해야하는가. 자신이 임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장로교는 그 교회 목사는 그 교회 교인들이 뽑는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제도이다. 통치자가 아무리 칼빈, 루터라도.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맞는데 왜 반대하는가?
그것은 나라가 되려면 그 나라 자체가 신의 나라인데, 신의 나라에 교회가 있다는 말은, 신의 나라에 통치자가 둘이 되지 않는가? 통치자 하나 있고, 교회의 사제가 있고.
신의 나라가 되었으면 마땅히 교회성도들도 왕의 백성이다. 그 백성의 신앙의 책임자가 왕 본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그 백성에 합당한 사제를 왕 본인이 임명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너희들 마음대로 목사를 뽑는가? 어떻습니까?
어느 것이 옳다고 봅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유럽교회 아직도 그렇다.
국가가 신정정치를 하면 사제의 봉급이 국가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사 봉급을 주지는 않지만 세금을 면제해 주지 않는가?
이것은 근대 국가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나라 목사가 세금을 내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다.
선교의 자유를 핍박하지 말라.
중국의 경우에는 공산당에서 월급이 나온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면,
하늘나라의 통치지는 두 곳으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로 될 때 안정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 크롬웰 이후, 카톨릭을 반대한 개신교로 간 영국국교는 다시 핍박하여 미국으로 건너감
낭트칙령이라 하여, 위그노(동맹)파, 칼빈의 사상을 받아 영국개신교가 25프로까지 증가. 성바들로메 대 학살에서 많이 죽었다. 이들을 핍박, 이들이 미국으로, 독일에서도 오고, 네덜란드에서도 온다. 네덜란드 경우는 그야 말로 개신교가, 1648년 베스타 팔렌 조약으로 독립,
남쪽 스페인 영향받은 벨기에,
그때 신조가 벨직신조, 이것은 칼빈신조를 그대로 베낌.
신조에 대해 1536 제네바. 1545년 스위스 신앙고백, 네티앙 신앙고백, 벨직신앙고백, 1563년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36개조신조(영국개혁주의신조). 스코틀렌드 신조, 아일랜드106개신조등등.
신조가 막 터져 나온다.
이 모든 신조가 칼빈의 스위스 신조에서 나왔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조가 많은가?
그것은 통치자가 신조 같은 사람끼리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나라 만들면 무엇이 좋은가? 자기 종교가 국가적으로 보장받는다. 어떤 곳에서도 혜택을 받는다.
우리 나라 국교가 있어, 기독교라면 황우석이나, 이건희가 장사를 못한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 신자가 편한 나라가 된다.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면 이 종교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로 인해 국가적 혜택이 주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목숨 걸고 카톨릭과, 영국 국교와 싸웠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장로교이다. 개혁교회가 핍박을 받으니 미국으로.
처음에서 카톨릭과 개신교, 영국국교와 비국교도와 싸웠다.
나중에서 종교 있는 국가와 없는 국가가 싸운다. 나폴레옹은 수도원을 작살낸다.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감. 미국 남북 전쟁 때에, 미국남부는 면화 발달, 면직류 생산을 위해 노예가 필요 했다.
북쪽은 장로교들이었다. 노예를 반대했다. 이 노예 반대해서 남북전쟁이 벌어진다..
천주교는 미국남부로, 주로 케나다로 갔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라고 했는데. 필 그램.
청교도들은 사제 옷 입지 말자고 데모하면서 생겼다. 이들이 미국에 건너 올 때 두 가지 파가 있었다.
하나는 영국국교를 인정하되 칼빈주의로 하자는 입장과, 영국국교 때려 치우고 우리끼리 장로교 하자는 파가 있었다. 이것은 종교전쟁이 아니라 자기 생존에 좀 편하게 살아보자.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내가 결정한 내 종교에 대해서 외부정치권력이 나의 보탬이 되는 식으로 해보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종교전쟁이 발생한다.
그러니 예수님과 상관없다. 복음과 아무 관계없다.
재세례파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거부하고, 세례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한다.
믿음으로가 아니라 물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중생된 자만 교회인데 중생된 증거들을 찾아야 한다. 나름대로 신조가 있다.
이런 개혁주의 분위기 속에서 유니테리안이 크게 성한다. 단일신 사상, 소시니안주의.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은 신이 아니다.
천주교 공의회 결정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다 나왔다. 개신교의 신조가 다 칼빈의 신조에서 나왔다.
루터는 왜 신조를 만들지 않았는가? 루터는 체계적인 교리주의자가 아니다.
루터는 교회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리를 만들어 버리면 스콜라철학이 된다. 루터의 뛰어난 점이 이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가 되어야 되는 쪽과 스톨라, 17세기 개신교 스콜라,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 버리면 무엇이든지 문자라는 것은 문자적 해석과 영적해석이 나누어 진다. 본인이 결정할 것 같으면 문제가 없는데 외부에서 강제로 결정시킨다. 어떤 신조든 문제점은 신조가 있어 버리면 자체 모순이 생긴다. 성경이 제일 우선이다. 개신교란 교회전통하지 말고 성경믿자고 나온 것인데, 성경 믿기 위해 신조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성경을 믿을 것인가 신조를 믿을 것인가? 성경이란 성령의 역사로 계속해서 깊은 뜻이 나온다.
신조라는 것은 신조를 믿어 버리면 자연적으로 성경적 내용을 추가했기 때문에 성경을 핍박한다. 성경을 버릴 수가 있다.
제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노회 재판국 담당자가 와서 하는 말이. 이 목사님은 웨스트 민스터 신조를 믿습니까.
웨스트 민스트 신조안에 모든 진리는 성경에서만 나온다는 것이 들어 있다.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이고 그 외에는 진리가 없다.
성경이 유일한 진리의 기준이라고 답변하니, 인간들이 말을 못 알아 듣고, 성경 말고 웨스터 민스트 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웨스터 민스트 신조를 내가 믿습니다고 하면 웨스트 민스트 신조 자체가 거부한다.
웨스터 민스트 신조가 거부한 것을 웨스터 민스트 신조가 적어놓고 있다.
그러니 웨스트 민스트 신조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면 그런 모순이 있다고 하고 웨스터 민스트 신조를 참조하면 된다.
참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웨스터 민스트를 믿느냐고 묻느냐고 하면, 신조를 내가 갖게 되면 신조가 나를 위한 신조가 된다.
성경을 믿을 때 어떤 인간도 아무리 이단이라고 성경은 나를 위해 있다고 할 수 없다. 예수님만이 하실 말씀이지, 아무리 이단이라도 뻔뻔 스럽게, 너희들 성경과 관계 없어, 나와 관계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님과 관계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조가 되어 버리면 신조를 인정하는 나를 위한 신조가 되어 버린다.
만일 내가 만든 신조에 불복하면 너는 이단이 된다.
이런 짓을 누가 했는가? 천주교가 그동안 해 왔는데, 개신교가 신조가 남발되면서 이제는 개신교가 천주교 그 짝이 난다. 개신교가 천주교를 그대로 답습한다.
신조 들여대고 내편, 네편 재판하고, 마녀사냥을 했다.
그래서 아메리카에 이주한 사람들이 유럽에서 배운 대로, 정치와 교회가 하나가 되는-신정정치-, 칼빈의 이상처럼, 이상적인 신정정치를 실현하려 시도하려다가 실패로 끝났다.
왜 실패로 끝났는가? 그들이 아메리카에 온지 몇 십 년 되지 않아 교회 출석률이 10퍼센트로 떨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16세기 전쟁할 때, 교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누구와 싸울 때에는, 만약 지묘교회가 우리에게 이단이라고 할 때에는 힘을 합쳐 싸우는데, 지묘교회가 알았다고 하며 싸움을 걸지 않을 때에는 누가 문제가 생기는가? 우리 교회가 태만해지고, 나태해지고 안일에 빠진다. 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단체에서 너희들 이단이지 하면 다시 힘을 합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고 하면, 입술로는 살아계신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자기 자존심과 일체화 하고 있다.
성경의 십자가 이야기 한다는 것은 십자가 부러짖는 자가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이야기 하는 너도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 한다. 없어져야 하고 조그만해 져야 한다.
예수님만 의롭다는 말이 아닙니까? 예수님만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가끔 나타나는 예수님입니까?
사실 세상 끝날 까지 늘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늘 주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나는 자존심없다. 자 깨었다 해 놓고 막상 자기를 공격하니, 그때 바짝 우리 힘 합쳐 대항하자 해 놓고, 그런 적들이 사라지니, 나태에, 안일에 빠져 교회도 나오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하면, 아메리카에 온 사람들은 유럽에서 온갖 핍박을 받았다. 카톨릭으로부터. 그 당시 왕들이 카톨릭 신자였다. 합세부르크 왕가.유럽 대부분을 통치했다.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핍박 없는 곳에 왔을 때 그들은 더이상 공격하는 주체자가 없으지니 그들은 그 다음 부터는 명목상 교인이지, 본래 자신의 욕심대로 살다보니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교회 나오지 않으니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더욱더 강력하게 신조를 강화시킨다. 신조를 강화시키니 이제는 카톨릭이 자기 종교를 공격하다가 이제는 스콜라된, 관념화된, 논리적인, 소위 경직화된 교리가 자유로운 신앙양심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해 자연적으로 반발을 일으킨다.
그 반발이 바로 이신론. 사람이 이성으로 따져 봐도 신을 아는데 이따위 교리가 뭐 필요한가? 교리가 뭐 필요한가?
그러니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점을 매꾸기 위해 예수님이 하늘로서 오셔서 그 예수님이 피 흘려 우리를 용서했다. 그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 동정녀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났고, 천지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인격자이시고, 세례를 통해 중생, 거듭난다.
몇 가지만 알고 나머지 교리는 다 버리자.
개신교가 간편을 위해서 카톨릭에서 나왔다. 개신교에서 더욱더 간편하게 하는 방법은 교회의 복잡한 교리를 다 버리고, 내가 편한대로 내가 대충 믿을 것만 대충 챙기자라고 나오다가.
이성,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꼭 성경 보지 않아도 된다. 라고 나오다가.
여러분들이 토요일 피곤하시니 중요한 것만 걸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카톨릭에서 간편한 교회, 이것을 성경대로 교회-, 물어 보겠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성경대로 교회가 무슨 교회라는 뜻입니까? 성경대로 교회는 사실은 정치화된 교회.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간편한 교회 즉 개신교였다. 그런데 주적이 없다.
간편한 것이 교회가 돈벌이 바쁘다. 칼빈이 돈벌이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사명이다. 거룩한 소명이다. 성직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사하고, 농사짓는 것도 거룩한 소명이다.
거룩한 소명을 이루기 위해 시간은 누가 관리하는가? 목사가 아니다. 고난주일 오세요, 안갑니다. 수출해야 하니. 장사해야 하니.
부활절, 바이어 오는데 못간다. 옷가게 열었다. 이번 주일날 성만찬인데 오실랍니까? 그런데 교회오려고 하는데 삐리리 전화 와서, 계약 체결하려는데, 단골 놓치면 두 번 다시 안 온다. 교회 오다가 차를 돌려 만나고 난 뒤 오후 예배 참석한다.
누굴 지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시간관리, 스케줄 관리 내가한다. 내가 하다 보면.
스콜라적인 목사. 목사가 복잡한 교리를 말해도, 그것은 다 듣지 않는다.
그것은 간편하게, 이단 아닌 정도만 하다가, 이것조차 과학이 발달하면, 이렇게 교회를 통해서 오지 않으니, 교회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럴 것 같으면 만날 교회 가야지. 교회 살아야지. 그러나 인간 속에 이성이 있어서 신의 계시로부터 이성이 온다. 17세기 후반 칸트가 나오면, 신의 이성이 무엇인고 하면 결국 도덕이다. 도덕적이 되어 버리니.
여기서 유니테리안이 나온다. 단일신론.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말이 안된다. 인간의 교리에서 나왔고 헬라철학에서 나왔다.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면 끝이다.
유니테리안의 체닌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대신 죽이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몇몇 가지 속죄, 재림을 생각하다가 여기서 하나둘 빠지면서 반발이 일어난다. 전통기독교에 반발이 나오다가
남는 것은 끝에 도덕만 남는다. 그래 착하게 살게 만 남는다. 그런데 도덕은 누구에게 밀리는고 하면, 돈에게 밀린다. 도덕과 양심은 돈에게 밀린다. 돈 있을 때에 도덕이지 없으면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여기서 나온 것이 1725년부터 1760년까지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드의 대각성 운동, 1700년 초반에 영국 존 웨슬레의 감리교가 일어난다. 너무 방탕하다 이유는 교회교리를 믿지 않으니, 나도
신이 있는 것을 아는데. 안 믿으면 되지 왜 바쁜데 나에게 교회 나오라고 하느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그 근거가 웨스터민스터 신조이다.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순서, 35개조항.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영원한 경륜에 대해서, 창조의 섭리에 대해서. 인간의 타락과 죄의 회복에 대해서.
이미 미국이 18세기가 되면, 타락이라는 것, 죄의 형벌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인이 되는가?
날 때부터 유아사례, 성만찬하고, 세례다받고, 목사 시킨대로 하고, 목사를 사회 유지로 존경하지만, 목사는 우리 대신해서 우리 마을 복받기 위해 대신 착한일 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홍글씨를 보면, 어떤 목사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과부인줄 알고 관계 맺었다가 남편이 살아 돌아오니, 남편 있는 여인과 관계를 맺었기에 못 견디고 괴로워한다. 여자는 간음죄로.
이것을 무엇을 뜻 하는고 하면, 이미 도덕이 모든 교리를 대표했다.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설명한다.
그러한 영향속에 웨스터민스트 신조를 18세기 신앙 운동에 집어넣으니, 진짜 교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정현 평양 교회가 회개운동 하듯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회개하는 것을 부흥이라고 착각하듯이. 그래서 대각성 운동은 실패이다.
대 각성 운동 후 얼마 되지 않아 1759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다윈의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이 일어난 후, 미국까지 파급되어 온통 진화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라이신푸스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천국이다.
니체. 하낙 독일신학이 미국까지 파급. 뭐 십자가 구원받고 속죄 치워라.
예수님을 뜻은 도덕적 정신, 지상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재세례파는 천년왕국.
뮐러라는 사람은 1700년 말에, 어떤 사람은 1800년 말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주장.
극단적으로 1909년 스코필드 세대주의의 등장. 이보다 더 극단으로 가는 것도 있었다.
초창기 칼빈의 웨스터 민스트를 이야기 하면서 도덕적으로 사용했다.
죤 웨슬레나 미국의 각성운동이었다.
그러면 원래 웨스터 민스트 신조 정신은 무엇인가? 계약사상, 언약사상이다.
여러 가지 신조가 많지만 웨스터 민스트 신조에서 조합되었다.
최초 신조는 기독교강요. 1535, 1536년 스위스신조.
계약사상, 언약사상, 코게이우스라는 사람이 최초로 언약사상을 밝혔다.
구약의 전부를 언약 하나에다가 집대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제가 하는 언약과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약속이다.
이것은 초창기 코케우스나, 웨스터 민스터나, 재세례파도 언약사상을 많이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 약속을 했다. 이게 그 당시 웨스터민스트 언약사상이다.
언약이 무엇인가? 안식일 언약(예레미아)-주일로 바뀌었다. 세례, 성만찬, 영원한 언약을 우리가 믿었고, 늘 그 약속 속에 있음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웨스터 민스터 신조의 중심사상이다.
코케이우스의 사상, 성부와 성자사이에 영원한 언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잘 보세요. 차이점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다. 저는 이것을 복음적, 성경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초창기 다른 사람이 말하는 언약사상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약속 속에 있어야, 약속이 유지되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가는가? 우리가 들어간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약속에서 약속을 지켜야, 위반하지 않아야. 애를 써야 그래야 구원받는다. 그 약속이 재세례파에서는 세례, 칼빈주의에서는 웨스터 민스터 신조 내용이라 본다.
이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우리가 구원받게 되어있다.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왜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언약은 무엇인고 하면, 초창기 개신교는 천주교와 싸웠다. 천주교는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다. 천주교 교리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약대로 믿어야 구원받는다. 그들은 천주교와 싸우기에 바빴다.
따라서 웨스터민스트가 아는 것은 항상 적이 있다. 다시는 천주교나 영국국교도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교회의 감독이나 사제를 교인들의 손에 의해서 뽑는다.
조나단 에드워드
그 뒤에 나오는 부흥회, 19세기 말, 진화론 발달했을때, A.A.핫지, 휫필드, 네첸, 밴틸, 19세기 말, 네덜란드
미국은 전체 이신론으로 교회숫자가 확 줄어 버림.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개신교, 카톨릭 교회가 다 날아가 버린다.
종교와 정치꾼의 싸움에서 정치꾼이 이긴다.
나폴레옹(19세기 중순), 이때부터는 정치와 종교는 빠이빠이였다.
빠이빠이 하면서 정치가 종교에 대해 돕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이때부터 개인의 신앙은 개인이 결정한다는 근대종교사상이 있었든 것이다.
오늘날 내가 원하는 종교는 내가 결정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시대에는 없었다.
19세기가 되어야 그것이 나온다.
국가는 국가대로 가 버리고, 개인이 믿든지 말든지 그것은 개인적으로 가버린다.
따로 따로 갔다는 말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성경, 종교는 국가의 힘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니 어느 한 시대 한 순간도 신앙적 복음 시대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찰스 핫지, 휫필드, 이 사람들이 하도 소위 기본적인 교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언약을 할 때
언약을 믿어야 한다.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언약
그 사상에서 안식일 완성으로서 주일지키기가 웨스터 민스터에 나온다.
그것이 왜 들어가고 왜 지금도 장로교에서 이것을 주장하는가?
안식을 지키게 되면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무엇을 구별할 수 있는고 하면, 일요일 마다 내 교인인가 아닌가를 구별할 수 있다. 측정이 가능한다. 십일조는 없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개신교가 나왔다.
십일조는 토지가 있을때 십일조이지. 구약 토지가 있을때, 장사하는데 무슨 십일조를 내는가.
구약의 십일조란 무엇인가? 토지 주인이 여호와이다. 토지 값, 임대세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십일조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의사, 부동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립되지 않는다.
웨스터 민스트는 그정도는 안다. 그래서 없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많은 사람 가운데 내 종교 내 교회에 소속된 사람을 누군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말인데.
내 교회 교인이 누군가는 안식일, 영원한 계약, 하나님 언약 어기면 안된다. 이것이 주일로 바뀌었다.
그 다음, 웨스터 민스트에 의하면, 천주교는 반대했다. 천주교를 반대했다는 말은 천주교 사제는 교황이 임명한다. 그런데 장로교는 교인들이 임명하고, 영국 개혁주의 같으면 영국 왕이 임명한다. 이들이 하는 세례식과 성만찬, 안식일을 언약으로 간주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교리이다.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목사 설교가 중요하다. 목사 설교가 우선되는 교회가 개신교의 특징이다.
목사 설교가 특징이다는 말은 교회 책임자를 목사에게 맡겼다고 본다. 목사는 교회를 책임진다. 그렇다면 목사가 내 교회 교인과 아닌 교인 아닌 사람을 판단할 권한이 있다는 말이다.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비록 내 교회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목사가 성령주지 않는다. 목사가 성령주지 않는다면 목사는 무엇만 확인하면 되는가 하면, 목사는 그 사람이 성령이 있는가 즉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가를 확인해 주면 된다. 그에 대한 고백속에서 그들을 섬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목사가 내 교인 인가 아닌가를 구분한다는 것은, 이미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 아니다. 주님의 방식을 떠나 버렸다. 내가 목사인데, 내 교인 따로 있다는 말은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면 옛날 네덜란드나 스코틀란드, 존낙스 시대에 나라 전체가 교회였다는 말은, 그 교회 통치권자가 왕이 되어 왕의 말을 따라 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대로 교회라는 이름의 소규모 국가로 모습만 바뀌었다. 여기서 왕노릇은 목사가 하고 교회는 정치적 통치를 받아야 한다. 장로와 감독은 정치가가 된다. 이것이 칼빈이 원했던 것이다. 칼빈이 왜 이것을 원했는가? 칼빈은 교회가 이렇게 해서 원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와 달라야 한다.
개신교가 천주교와 달라야 한다. 간편하게 한다. 성경대로 교회한다. 복잡한 것이 많이 들어가니,
간편하게 한다. 간편하게 한다는 그러한 쪽으로 나라자체가 나라인 동시에 교회였다.
제네바에서 총수는 칼빈.
칼빈의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오늘날 목사들이다. 그것은 자기 교회교인들이 신앙에 대해 본인들이 관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 문제가 큽니다.
예수님이 대행자라는 것입니다. 대리 사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정신이 없고 싫으면 가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 싫으면 가라는 것입니다 .
자 봉사하고, 싫으면 가라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쉬운 예로, 지묘동 동사무소가 있습니다.
제가 호적등본떼러 갑니다. 호적등본 떼 주세요 하니.
당장 하는 말이 당신은 우리 동장님께 복종하겠습니까?
이렇게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호적등본 떼어 주면 그만인데.
기차따기 위해 기차표를 사는데 복종하겠습니까가 말이 되느냐 말입니다.
손님 잘 모시겠습니다.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러면 왜 목사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 교인의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머리노릇을 왜 하려고 하는가?
노회제도가 문제가 있습니다.
노회라는 것이 원래 없습니다.
교인들이 뽑아준 교회의 장로들의 모임인데,
교인들이 그 목사 아니라고 하면 그 목사 그만 두어야 하는데 그런데 교인들이 목사 나가라고하면 목사 저들끼리 한편이 되어 왜 노회 지시에 반발하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로봇이 로봇 만든 인간들에게 반발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
이것은 목사 장로의 책임이 아니라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교회에 온다. 오게 되면 뭔가 지도자를 원한다. 성경에 지도자는 예수님만이다. 마태복음20장에 나오지요. 땅에 무슨 애비가 있고 지도자가 있는가? 지도자는 그리스도 뿐이다.
교인들 자체가 성경을 모르니 나를 지배해 달라 통치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성경말씀 안다고 해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참고로 알려주면 각 사람속의 성령이 알아서 판단해서 알아서 섬김을 받으면 그만인데, 자꾸 지도자 지도자 지도자를 찾고 있으니,
칼빈의 제네바처럼, 자체가 나라요 교호인 것처럼.
각 교회가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정치 집단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되면 무식한 교인이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면, 우리 집단의 교회가, 내가 속한 교회가 내 생존에 얼마나 유리하냐, 그것은 내가 다닌 교회 어떤 장로가 동구청장이다. 나는 장로님을 잘 아는 집사다고 할 때, 내가 동구지역에 건축 인가를 받으려 할 때, 시청가서 하지 않고, 교회에서 만날 때 장로님 인가 잘 안 나네요. 장로 왈 건축법 위반이네요. 아유 좀 봐주세요. 장로 왈. 알았어 알았어.
자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권력단체가 된다.
이것은 무엇과 같은고 하면 옛날 봉건사회시절에 영주가 갖고 있는 종교에 백성들이 좋든 싫든 영주에게 복종하면 사람들 살기에 편하다.
그래서 중세종교개혁사를 보면, 백성과 영주의 종교가 달라서 집단적 이주를 한다. 자신과 같은 종교를 가진 통치자를 찾아서 이주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런 모습을 뛰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예수님 안에 있다. 어떤 표현인고 하면, 거울 안에 있다. 거울 속에 들어가 본적이 있습니까? 비쳐보는 것 말고, 그림 속에 못 들어가지요. 유화 속에 들어갑니까? 못들어 갑니까? 못들어가지요.
그처럼 예수 안에는 못들 어가요.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는 들어간다. 다니엘 세 친구를 집어 던진 간수들은 다 죽었다. 이것은 못 들어간다. 그런데 산채로 들어가보니 네 번째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다. 이처럼 재현된 것이 신약에 예수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어떤 권력이라도 죽음이라도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정죄함이 없다는 신분을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세상 모든 권력을 이기는 능력으로 덧입혀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게 복음적이라면. 웨스터 민스트 신조 필요합니까?
신조란 옛날 식으로 카톨릭 식으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
이게 신조입니다. 이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신조끼리 모이면 신앙인이 되는가? 가짜들이 많습니다. 신조보고 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생존에 유리한가를 보고 들어온다. 형식적으로 신조를 외운다. 외우면서 이것 알아서 밥 먹고 살자.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서 신조를 뒤집어 쒸어 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알고자 교회사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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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수주의라는 것의 뿌리, 개혁주의 사상의 뿌리가 종교개혁이후에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지난 시간에 자유주의
거기에 맞춘 보수주의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1618-1619년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네덜란드 도르트 총회가 있었다.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공격하기 위해서 도르트 총회가 열렸다. 우리 교재를 보면,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다음에 알미니안 사상이 나오는데, 거기 알미니안 사상을 몇가지 이야기 하면 예수님을 믿느냐 안믿느냐는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말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그 말에 굉장히 공감을 할 것이고, 기독교 신자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머리까락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도 하나님의 간섭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던가요? 사실 우리가 성도라면 늘상 하나님이 간섭을 온몸으로 충만하게 느끼며 살아야죠.
실상 그렇게 느끼지 못하지요, 느끼면 은혜인데 실상 은혜롭지 못하고, 자기가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 까지 다 예언되어 있다.
지난 시간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토대가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의 성경책이 예언책이고 예언대로 되었다.
예언책이란 말은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에 속해 있는 예언된 대로만 현재 인류역사는 끌려 가고 있다. 이것을 믿으면 보수고 안 믿으면 보수가 아니다.
그러니 자유주의에서는 무엇이라고 공격하는고 하면 예언 덩어리인 성경책 너는 별거냐 예언책이 하나의 만화책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는 비어있는 시간과 같아서 지금 내가 무엇을 채우면 채우는 대로 착착 쌓인다는 것이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끌려간다는 사고 방식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신자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란 알미니안 주의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가 자신에게 달렸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 도로트신경에 나오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된 대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도르트 회의의 주장이다. 이것은 칼빈이후이다.
이런 알미니안 사상이 여기에 초점이 있다.
알미니안 주의가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선택하셨는고 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조건 하나를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조건만 선택했다. 이것을 믿고 안 믿고는 인간이 하기 나름이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이 현대에 들어오면, 침례교, 감리교, 모든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뿐 아니라 믿을 사람인지 믿지 않을 사람인지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셔서 둘이 만나게 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 사고방식이다..
여기에서 도르트 신경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면, 그렇게 되니 구원의 조건이 십자가의 속죄사상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 인간을 창세전부터 이 속죄가 믿어지도록 결정 되었는가 라고 시비 걸고 나왔다. 여기에 대해 그야 그렇지 창세전부터 그 사람을 선택해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속죄를 믿도록 결정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죄도 짓기 전에 예수님의 속죄부터 먼저 예정되어 있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죄를 지어야 되겠네 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속죄를 믿도록 결정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반드시 죄를 짓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타락도 예정되어 있는가. 인간 범죄도 예정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니 타락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면 아담이 선악과를 안 따먹을 수는 없었는가. 없었다. 아담은 반드시 따먹도록 되어 있나. 따 먹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따먹을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밖에 더 되는가라는 말이다.
알미니안 주의는 무엇을 제일 난처하게 여기는고 하면, 하나님 심판을 하시는데 인간의 자기 책임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외부의 관습을 받지 않고 자기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되고, 의를 행했으면 의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공의, 하나님의 공의성인데 인간 자기 책임이 없는데 그냥 심판만 감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믿도록 된 사람이 반드시 믿어진다면 결국 전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전도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인데, 또 회개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나서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르트 신조에 의해 다섯 가지 개혁주의 교리가 생긴다.
제한적 속죄, 창세전 선택, 거부할 수 없는 은총, 견인-한번 구원한 사람은 탈락시키지 않고 끝까지 구원시킨다. 전적 타락. 전적으로 완전히 인간이 타락했다. 이것이 도르트 신조에서, 다섯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저쪽은 다섯 가지를 공격한 쪽이고, 이쪽은 다섯 가지를 갖고 되받아 치는 전쟁이 21세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게 교회사다.
그런데 되받아 치는 가운데, 보수주의에서 무언가 낌새가 좋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칼빈주의 오대교리로 버텨야 하는데, 그것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버티는 기운이 있었다. 1883년부터1897년까지 14년 동안 정기적으로 나이아가라 사경회가 있었다. 여기서 근본주의 오대교리가 확립된다.
근본적 오대교리는 성경의 문자적 영감설, 모오성,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 되심. 인간되는 것 말고. 세 번째는 동정녀 탄생. 무념동정녀와는 다르다. 마리아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은 천주교 이론이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네 번째 구원의 대속성-하나님의 의가 주입되었느냐 아니면 전가되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주사바늘로 주입하듯이 주입되면 우리가 착한 일을 하게 된다. 전가된다는 말은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우리가 의라고 쳐 주는 것이다. 의라고 해 주는 것이다.
주입된다는 것은 동생이 수능치는데 똑똑한 형에게 그 지식을 다 배워 저도 똑똑히 되어 좋은 점수 맞는 것이 주입이고. 전가는 무엇인고 하면 바보 동생이 시험을 치는데 400점 만점에 400점되는것, 형의 점수로.
시험은 동생이 쳐도 형이 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전가이다.
전가 쪽은 근본주의 쪽이다. 주입 쪽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의롭게 되었기에 의롭게 살아야 된다.
이 의의 전가와 의의 주입을 보니 오늘날 성화론 주장하는 자들이, 주입주의, 자유주의 알미니안 주의이다.
알미니안 주의의 특징은, 믿고 안 믿고는 누구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까? 내 손에 달렸다. 이것이 모토이다. 믿고 안 믿고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혼인잔치 벌려놓아도 음식에 손대고 안 대고는 내게 결정할 문제다. 왜냐하면 내가 결정해야 그에 대한 책임론에 의해 심판이 주어지지. 강제로 먹여놓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에 어긋난다는 것이 알미니안 주의이다.
이것에 대해 타락전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은 1618년 도르트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다.
이것과 이것이 싸운다.
다섯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부활과 반드시 재림하신다.
구원의 대속성은 안셀무스 이론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 다섯 가지로 인해 근본주의 용어가 튀어 나온다.
근본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신복음 주의, 신정통 주의, 세대주의 다 다르다.
1800년 중반에 오면 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찰스 핫지, 무디, 스펄젼, 핫지 제자인 워필드, 메이첸.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부흥회 했는고 하면 그 당시 성경을 다 찢고 붙이고 난리 났다.
왜 칼빈주의 오대교리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 무엇을 토대로 했는가? 성경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오대교리가 나온 것부터 폭격을 가해 버리면 저절로 오대교리가 날아가 버린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하게 되니, 성경의 무오성이 나오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말해서 체닝이라는 사람, 18,19세기 걸쳐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칼빈주의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예정의 교리를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도덕성을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체닝의 목표는 기독교를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교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인간의 완전 타락은 인간 도덕성, 선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에무스- 가장높은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고 본다.
무한한 자유가 다 있다고 본다.
부쉬네르-모든 교리를 와해 시키면, 교리를 부셔 버리면 거기서 참된 진리가 나온다. 예수님의 대리적 희생이라는 것은 그것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고 그것으로 인간이 용서한다는 가르침은
인간의 도덕적인 것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다 라고 본다.
인간의 착함은 교육으로도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 만약 대신 다 죄를 처리해 버리면 교육의 의미와 가치가 다 버린다.
아버지가 대신히 자식이 깨끗해 지만 아버지가 자식에게 애야 바르게 살아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대신 죽는다 하지 말고 좋은 산상설교 같은 것으로 교육시키면 , 구태어 예수님이 죽을 필요 없이 인간이 점점더 향상 되니까 그것이 하나님 자녀다운 생활이 아닌가?
사회복음 라이신 부스- 하나님의 천년왕국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참된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뜻이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투스-예수님이 말하는 복음이라 기독교 사회학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웃사랑으로 축복을 받는, 서로 베풀고 베풀어 줌으로, 그런 베풀어 주는 상태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기독교로 본다.
그러니 이런 것이 일부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 쪽이 90퍼센트가 넘는다. 열명 중 하나만 오대교리 주장하고 나머지 9명은 자유주의이다.
그래서 핫지, 무디, 스펄젼, 윗필드, 등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세대주의가 나온다.
세대주의는 하도 저쪽에서 성경작고 물어 뜯어니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해야 한다.
문자적 무오성이 문자적 해석으로 세대주의가 나온다.
세대주의는 기독교의 역사를, 진화론-인간이 한때 원숭이, 한때 지렁이, 한때 고기, 종이 점점 더 바뀌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의 조상은 아담이 아니고 원숭이다. 이것이 일부가 아니라 90퍼센트이다.
그러니 이것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과학책이라고 본다. 근본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자들은 세대를 일곱으로 나눈다.
처음 아담이 죄짓기 전에는 순결의 세대, 아주 순결했던 세대.
그리고 아담에서 노아까지를 양심의 세대,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를 인간통치의 세대.
양심의 세대란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는 양심대로 심판을 하신다. 노아의 구원은 양심이 고아서 구원받고 양심이 곱지 않으면 저주받는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인간통치의 세대.
아브라함과 모세 전까지를 언약의 세대, 모세부터 오늘날 교회까지를 율법의 세대, 그 다음 교회부터 마지막 천년왕국까지를 교회시대, 교회시대 끝나면 종말까지를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세대주의에서 무엇이 부각 되는고 하면 천년왕국개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년왕국개념이 등장했다.
천년왕국이 이상적인 낙원 같다. 여기에서 엄청난 양의 이단들이 등장한다. 여호와 증인 몰몬교, 안식교. 전부다 이 한 가지 갖고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때 부흥운동, 즉 찰스 핫지, 무디, 스펄젼 등 이 시대와 더불어 이단들이 많아짐. 이단들이 노리는 것은 우리교를 믿으면 천년왕국에 왕노릇 한다.
천년왕국의 네가지
전 천년설, 후 천년설, 무 천년설, 세대주의 천년설(전 천년설과 비슷하다)
세대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자들을 공격할 때 그냥 학문으로 따지면 밀리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밀어붙인다.
오직 성경의 문자적 무오성으로 버틴다.
이 다섯가지 원리와 칼빈주의 오대 교리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그리고 이 세대주의가 날짜를 계산한다.뮐러 1840년 경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고, 여호와 증인 1924년, 이장림 1999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사기친다. 전부다 근본주의에서 나온다. 문자적 해석.
몰몬교는 지금도 유월절 지켜야 되고, 안식교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문자적으로.
전천년설이란 최종 종말되기 전에, 천년왕국을 거친 후, 천년왕국이 지나면 그 때 옥에 갇힌 마귀들이 잠시 풀려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론 중 한가지이다.
지금 문자 적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된다. 로마서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임에도 그들이 십자가를 믿지 않고 행함에 의지하여, 그들의 구원이 유보된 상태이다 라고 본다. 선택은 되었는데 십자가의 온전한 의로움을 챙기지 못해서 유보된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으려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으려면 온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패자부활전이죠.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예수님 오실 때 이방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휴거되고, 그 다음 지상에 아직도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있다. 아브라함 족속들이 있다. 이 때 마귀들을 풀어 놓으니, 이들을 심하게 압박하니, 그 때 유대인들이 이렇게 내가 고생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구나. 우리가 주님을 몰라 보았습니다 하고, 천년동안 회개한다. 실제적으로 천년이다.
이단들이 천년계산한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본다.
그렇게 고생하니, 고생이 너무 심하니까 그들이 예수님 믿어 줄께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들이 구원받고 모든 것은 마귀야 애썻나 너는 유황불에 들어가야지. 그때 믿지 않는 자들(천년동안 고생해도 믿지 않는 독한 자들)과 마귀와 함께 둘째 사망 지옥 불에 들어간다.
나중에 천년왕국 때 기회가 한 번 더 있다. 그래야 요한 계시록의 문자대로 다 맞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년왕국 이론들이 이게 현재 대한 예수교 합동 측의 기본 천년왕국설이다.
이렇게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천년왕국을 설명하는 기법을 다른 모든 성경에서 똑같이 권위 있게 적용하겠다는 그러한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천년왕국설에서 보여 주고 다른 것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그래야 자유주의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천년왕국에 대해서 18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두 사람의 보수주의가 나온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이다.
교재에 나온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철학, 상당히 길고 어렵게 되어 있다.
하기 전에 한 가지 빠뜨린 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근본주의 오대교리를 보니, 문자적 해석을 하니, 문자적 해석에서 발전해서 영적해석이 나온다. 영적해석은 대중들의 구미에, 호기심에 부합해야 하니, 천년왕국 상태와 그리고 재림날짜와 연관된다. 여기서 문자적 해석에서 퍼진 것은 , 결국 문자적 해석을 한다는 말은 성경에 서로 맞지 않는 문자를 끼어 맞추다 보니 이단들이 양산된다. 영적해석하려면,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되면 문자적 해석이 영적해석으로 한마디로 개판된다.
성경보고 기도하며 해석.
이현레 집단. 나이가 많다.
휘트니스 리, 자기는 영해이다. 영적해석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한국의 부흥사들 전부다 영적해석. 동일교회 조돈제 목사, 조용기 목사, 이장림, 전부다 날짜 계산했다. 책임지고 나간 사람들 한사람도 없다. 부흥사들.
그러니 성경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문자적으로 입 맞에 맞추어 막 하면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누구를 공격하겠는가? 자기들은 칼빈주의 오대교리 강조하고 , 근본주의 오대교리 강조하고, 자유주의 공격하면 전통보수가 되고, 개혁이 되고, 참된 신앙이 된다. 얼마나 쉬운가.
자유주의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보수주의에서 이단들이, 정상적인 탈을 쓴(웨스트 민스트 고백 인정, 삼위일체 인정) 이단들이 전통적인 참된 신앙으로 껍데기를 다 걸치고 말았다.
이게 오늘날 장로교이다.
여기 우리 교재를 보면 창세전 타락, 창세후 타락.
이 논문을 쓴 사람이 무엇이라고 변호하는고 하면, 타락 전 선택, 타락 후 선택, 둘 다가 맞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것이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 절차라서 그렇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브라함 카이퍼- 무엇을 주장했는가? 이 사람은 일반은총을 주장했다. 일반은총을 주장함으로써 아브라함 카이퍼는 신 칼빈주의란 소리를 듣는다.
카이퍼, 바빙크 ,도이벨트를 신 신칼빈주의, 근본주의, 신정통주의-칼바르트, 부루너, 신복음주의-카넬 헨리, 근본주의에서 나온 메이첸, F.F.부루스
카이퍼가 말하는 일반은총이란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죽으리라 했는데 안 죽었다. 열심히 땅에서 일하면 빵이 생기도록 조치를 하셨다. 카이퍼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은총인 성경을 중시했다.
왜냐하면 칼빈과 루터, 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성경을 만들고 그러니 교회가 먼저 다는 카톨릭의 주장에 대해 교회전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 그대로가 하나님이 계시고 그 외에는 교회전통과 관습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 오직 성경을 통해 주셨지 교회를 통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천주교는 개신교보고 답답하다. 성경을 성경으로 정한 것이 누구인데, 칼타고 회의 때 대충 정경이 정해지지 않았는가?(323년) 이것까지는 정경이고 이것은 위경이다. 정경에 넣으면 안돼.
히브리서는 나중까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냐? 교회다. 그러니 교회가 결정한 성경을 갖고 성경이 우선이다고 하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역사적이 아니라 초 역사적인 무리수가 아닌가? 라고 카톨릭이 말한다.
마치 이것과 같다. 천주교에서 노리는 것은 제직회 하면 제직회의록이 나온다. 회의록이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제직회의록이란 교회가 있고 제직이 있고, 제직이 만든 회의록이 있다. 이것이 성경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칼빈 루터는 그것이 아니다. 칼빈 루터는 교회는 성령께서, 여기에서 어렵다.
메이첸 후배 벤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직 성경을 통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경을 염두에 두고 교회되게 하셨다.
개신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성경 안에서만 일하신다. 특히 성령께서는.
콘스탄티 회의에서 성령론 확정.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한다.
교회이전에 성경이 먼저 있고, 나중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 개신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성경이 먼저 있고 교회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무런 계시를 받지 않았을 때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하나님 뜻으로 보았는가?
여기에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것을 일반은총을 주장한다. 일반은총이 먼저이고, 그 다음 하나님의 계시가 꿈으로,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고 그것이 모아져 특별 은총이 되고 ,그 특별 은총의 예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교회이다.
카이퍼는 개신교이죠. 그런데 성경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전에 일반은총이 먼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카이퍼 너는 칼빈 주의에서 벗어났다. 칼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일반 은총적으로 일반계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렴푸이 알고 있어도 정답이 아니고 또렷하게 아는 것은 특별계시이다. 거울에 김이 서리면 얼굴이 잘 안보지요.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아는데 로마서 1장21절. 너희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데 어떤 하나님인지 모르기에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셨다.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다.
이방인들아 구약 이스라엘역사를 보아라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또렷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생각이다.
루터는 일반 은총이 특별 은총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카이퍼는 일반은총, 특별 은총 둘 다 알아야 한다. 칼빈 같이 되어 버리면, 일반은총이 특별은총에 흡수 통합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일반은총이 가치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19세기 말에 그 당시 사회복음 할 때 보수주의 오대 교리갖고 아무것도 못한다. 문화적으로 과학발전에 아무것도 못한다.
그냥 오대교리, 삼위일체 하나님, 이래서는 교회가 영향력이 없다.
교회란 세상의 중심인데 세상에 할말이 없다는 것은 신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니 이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당시 이미 성경은 산산조각 난 상태에 있었다. 분위가 자체가 몇 퍼센트 했습니까? 거의 90퍼센트 다 넘어 갔다. 이제 교회라면 사회에 대해 이웃 사랑으로 착한일 하는 것, 단정하고 바르게 사는 것, 모범적으로 사는 것, 빛과 소금이 되는 것, 민주주의 옹호하고. 다른 사람 구제하고,
대표적인 사람이 테레사 수녀. 그런 일을 하면 칭송과 존경을 받고, 돈이 생기면 교회 기부해 착한일 계속해, 후원금도 많이 줄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교회가 사회에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그러면 인류역사 발전에 있어서, 과학발전, 모든 기계가 발전하고, 모든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 절대 군주가 없는,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밑에 인간 없다는 민주주의 사회가 발전된 상황에서, 교회도 가치 있는 기관으로 함께 넣어 준다는 그런 분위기이다.
주변에 있는 이런 사상에 대해 교회가 받아들이면,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받아 들이면 교회가 발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만약 이것에 대해 거부하면 교회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교회에 아무도 안 오면 장사 말아먹는 것이 아닌가. 교회가 문 닫을 판이다. 이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는 부흥운동이 있어가지고 그나만 명목 유지하지만, 부흥운동 여파로 인하여 성령운동으로 이어진다. 성령운동, 말이 성령운동이지 이것은 자아도취 아닙니까? 도피주의, 염세주의, 허무주의, 내세주의.
이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 천년 왕국 때 한몫 챙긴다, 라는 식의 그러한 자기들만의 집단주의, 사회적으로 반
도덕적, 반사회적 낙인이 찍힐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위험스러운 그룹으로 달라져 버린다.
그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인식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고 산업이 복잡화 된 이런 마당에 일주일 만에 천지가 다 생겼다는 것을 어느 바보가 믿느냐?
화석이 나오고. 신생대 고생대가 나오는데. 지구 연대가 46억년인데.
먼지가 뭉치가 되고 행성이 되는 과학이 있고 로케트가 올라가고 검증하고 확인되는 이백억년 된 우주역사가
과학적으로 다된 판에, 여전히 창세기 일장에 나오는 칠일 만에 짠 하고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래서 타협점이 무엇인고 하면 그래 진화론 맞다. 창세기 일장은 과학이 많고 2장 삼장은 우리가 맞다. 이렇게 타협적으로 나오니까, 듣는 쪽에서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권위로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먹기 따라서 이것이 이것은 괜찮은 것이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하나님의 영감된 곳이네.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런 교회가 아슬아슬한 판에 아브라함 카이퍼가 일반은총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칼빈은 일반은총이 희미하게, 기능이 뚝 떨어지 계시이기 때문에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받아들이는 전제적인 배경이다
일종의 마치, 초등학교 가기 전에 초등학교 교과를 미리 당겨 배우는 유치원, 그 정도로 보았는데. 그래 보아서는 안된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계획은 진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이다. 그동안 주권은 교회가 있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에베소서 2장.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이제는 모든 방면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으니 하나님의 주권을 주권답게 행세하려면 일반 은총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담이 쫓겨 난 뒤에 땅을 메었다든지, 가족을 구성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책이다. 이러한 보호책이 지금도 불신자들,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쫙 깔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칼빈 같으면 일반은총에 있는 사람들아 오직 예수님을 믿어서 특별은총을 받아 들이세요 이렇게 지금까지 해 왔다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러지 말고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이 모든 방법에서도 이렇게 뛰어 나고 하나님의 복된 것을 보여주고 증명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모든 부분에서.
예를 들면 지금 ccc 에서나 일반 선교 단체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술을 행한다고 합니다.
전에 한 30년 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라드 풍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라는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유행가 아닙니까? 유행가 풍으로 가사를 바꾸어 불러도 되는가? 안되는가? 찬송가만 부르자고 하다가 이것이 학생들에게 먹혀 들어가니 된다고 했다.
하용조 목사의 온누리 교회에서 전도란 이름으로 온갖 쇼를 다 벌인다. 이것을 다른 교회에서 욕했다. 그런식으로 애들을 다 끌고 간다.
그런데 불신자들을 끌고 오려면 쇼를 벌이든 무용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오도록 해야 한다.
전혀 기독교 냄새가 안 나는 것으로 해 놓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 이것은 그동안 교회는 거룩하고, 밖은 거룩지 않다는 이분론에서 이제는 교회가 모든 방면에서, 그런 것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느 부분에서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방면에 도사가 되어.
황우석 교수처럼 예수 믿는 사람도 더욱더 많이 배아줄기 세포를 많이 연구해야 한다.
노래를 하든, 유행가를 하든 기똥차게 잘 불어 모든 부분에서 영광을 돌려야 한다.
모든 문화 자체를 하나님의 문화로 변혁시켜야 될 사명을 우리 기독교 신자가 갖고 있다.
그 전까지는 방어체제로 오다가, 아브라함 카이퍼는 방어체제가 아니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데 직접 달라 들어 그것마저 하나님의 은총으로 정복하면 되지 라고 나가서, 적극적으로 교회가 교회 안에 머물지 말고, 나가서 문화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바다 라는 것이
긴 논문의 특징이다.
그래서 인류의 모든 역사는 일반은총의 역사라 보고, 그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이다. 모든 방면에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기적을 베풀지 못한 것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따라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그런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을 우리가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물위를 걷고, 오천명을 먹이고. 믿음이 없어서 문제이지 믿음이 있으면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곳이 고신측이다.
그러면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 사람의 문제점은 바로 창세기 3장부터 나타난다.
창세기 삼장에 아담과 하와가 즉사하지 않고 오래 산 이유는, 그전 까지는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하면, 특별계시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을 주셨다는 것이다. 특별계시보다 일반은총이 더 오래 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 헤르만 바빙크. 바빙크의 계시론. 카이퍼의 계시론과 동일하다. 성경보다 계시가 더 넓다.
칼빈은 성경 자체가 곧 계시고, 계시가 곧 성경이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렇게 주장했다.
여기 문제점이 무엇인가?
과연 아담이 즉사하지 않고 오래 산 것이, 아담이 계시를 받기 전의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담이 죽지 않고 산 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배경이었다.
죽음이란 십자가에 가야 죽음의 의미가 된다. 목숨 끊어지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가 진짜 죽음이다.
인간의 죽음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망이 있고 둘째 사망이 있다. 계시록 20장.
첫째 사망.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둘째 사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영원한 지옥가는 것이다.
첫째 부활, 둘째부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첫째 부활로 본다. 부활로 본다는 것은 이미 죽었는데 살았다는 것이다.
마리아,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예수님은 살았다고 보는데 저들은 죽었다고 우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면서 답답해 하셨다. 울면서 죽음에서 끌어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라는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되고, 믿어진다.
지금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의 약속의 입장에서 모두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류역사를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그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가 역사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단지 교회가 인기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호감을 끌 수 있는, 인기를 끌 수 있는 상품권을 계발하고 있다.
교회가 조직체로서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세해서 교회로서 존속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성경에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소관은 주님의 소관이다.
일곱 교회가 다 사라져도 일곱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로마서에 나오는 가이오의 집에 몇 명 되겠습니까. 그래도 교회라 봅니다.
교회라는 것은 여러 군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다. 왜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교회를 여러 개로 볼 수 없다. 구태여 에규메니컬 할 필요가 없다. 교회가 원래 하나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한분이시기에 머리도 하나고 몸도 하나이다.
몸이 살아있고 머리고 살아 있는데 교회가 죽었다고 한다.
워낙 자유주이가 거세니까 평소 보수주의에 호감있는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어쩔 줄을 모른다. 대비책이 그래서 나름대로 신조를 만들어 동의를 받아 내면 자기편인줄 착각하고 있다.
조금전 근본주의 만들어 이단된 것을 알죠. 순복음도 삼위일체, 웨스트 민스터 동의합니다.
칼빈주의 오대 교리, 근본주의 오대교리는 인정해 놓고 나머지는 사람들의 대중의 호감을 끌 수 있는 것으로 한다.
기도하면 병낫고, 기도하면 부자 되고, 기도하면 교회 부흥되고, 천년왕국 이야기 하고, 기도하면 기적 일어나고, 목사 섬겨야 복받고.
이것이 오대 교리 안에 안 들어 있다. 다섯 개만 피하면 이단 되지 않는다고 본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
십일조 하고 주일 지키고, 십일조는 돈 되고 봉사 받고. 이러한 근본주의에 반대하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워필드-이것은 아니다. 문자주의 해석은 아니다. 세대주의는 아니다.
그는 저쪽이 성경을 깨니 성경 방어하기 위해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핫지는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상식철학을 만들어 내어, 워낙 자유주의가 똑똑하니까,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상식적으로 성경을 보면 된다고 주장. 그 상식이 무식한 사람도 목사 되고, 무식한 사람도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면 영적해석이 된다는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대교리,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은혜,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들의 인내.
이 다섯 가지가 성경자체가 의심되니 이것도 왕창. 주저 않는다. 전적 타락도 아니고, 제한적 구속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것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면 그것도 좋은 신앙적인 태도라고 유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워필드는 또 주장하기를 진화론도 받아들였다.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역사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화론을 꺽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
왜 그런가 성경 창세기 일장을 보면서 성경은 과학책이다. 성경도 과학이다 라는 이 말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뜻이고 하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기 화이트 보드가 있고 보드매직이 있습니다.
모나미 제품은 좋은 제품이다. 그런데 북한공장에서 엉터리를 만들어서 백두산 보드가 최고다라고 나온다.
그러면 백두산 보드, 그래 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될 것인데, 우리도 백두산 보드 만큼 좋다 말이야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우리 모나미도 백두산 보드 매직만큼 좋다 말이다.라고 한다. 비유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너희끼리 좋아.
그것을 시기할 이유가 없는데. 너 마음대로 좋다고 해. 우리는 모나미 보드가 최고라고 하면 되는데
우리도 백두산 보드만큼 좋다고 해달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니 지구역사가 56억년. 창세기 일장이 다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자체가 진리가 아니다라고 하면 될 것인데.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 신의 창조가 얼마나 과학적인데,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데, 제발 과학적으로 믿어줘 라고 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억지를 내기 시작한다. 창세기 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성경해석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창세기 일장부터 예수님과 결부시켜 해석해야 한다. 전부다.
과학적으로 납득되도록 해석해 버리면 실컷 성경해석해 놓고 복음이 안나온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보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성경 자체가 저주를 받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성경본 후에는 저주에서 멀어질 줄 착각한다. 성경에서 복음적으로 해석해 내지 못하면 성경을 천번을 읽어도 저주를 받는데.
다시 할께요. 내가 전한 복음 외에는 저주받는다. 성경을 백번 읽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칼빈주의 오대교리, 웨스트 민스터, 근본주의 오대교리를 믿지 않으면 저주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워필드, 그 당시에는 교회라는 것을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기 위해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고 설득이 되도록 그들의 원하는 쪽으로 입맞추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카이퍼고 바빙크도 그렇고.
쉽게 말해서 교인들이 목사님 기도해도 낫지 않네요. 하면 초대교회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라는 말은 어디에 맞는고하면 카이퍼나 바빙크는 맞지만 어디에 어긋나는가? 갈라디아서 1장8절에 어긋난다.
갈라디아서 1장10절을 보면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교회를 운영하든 목사들이나, 그 당시 신학자들은 사람을 좋게 하지 않으면 그 비율이, 10퍼센트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에서 급하게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복음을 전하는 부흥운동이 아니라, 옛날의 칼빈주의 울겨먹고, 옛날 웨스트 민스터 울겨먹고, 오대교리 울겨먹고, 옛날로 돌아가자.
브리스톤 신학교에서 갈라진 것이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 이다. 메이첸.
웨스트 민스터 신학출신, 벤틸, 벤틸 제자, 제가 공부했던 박아론 교수이다. 그 사람이 반틸의 사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유주의, 성경을 다 때려 부수는, 성경을 옛날 만화책으로 보는 것에 대항하는 신정통주의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람이 칼 바르트, 부루너(스위스)이다.
이 사람들은 일 이차 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는 전부다 자유주의에 물들었다.
칼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오직 성경으로만, 복음중심의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 사람의 주장은 노no에서 에스yes로 나간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십자가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저주했다. no 라고 하고,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부활위에서 모두가 오너라. 모두가 에스가 된다. 내가 다 용서 해 줄께.
여기서 남는 것은 다 저주받고, 부활로 말미암아 다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예수님만 선택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난다.
이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난다.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따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예수님이 버림받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대표자인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우상이고 모든 신은 거짓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알수 없다.
no 이니까. 모든 것이 부정된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시키셨다. 인류의 대표자가 부활하셨다는 말은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용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류의 대표자이니. 인류의 대표자가 버림받고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말은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며, 이것이 변증법이라 하는데.
그래서 칼 바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신다. 새로운 에스가 된다. 이것을 칼 바르트는 기쁜소식, 복음이다. 그래서 이 신앙, 다버리고 다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착함과 선함과 행함과 도덕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것을 알 수 있다
고가그텐, 부루너가 동의했다.
고가르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순종할 때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역사가 일어난다.
부루너라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칼바르트와 함께 하다가 나중에 갈라선다.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불신자와 접촉점이 없다고 본 것이 칼바르트. 어떤 경우든 다 우상이기 때문에 없다. 부루너는 자연계시가 있어서 접촉점이 있다고 본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다고 보면 된다.
콘스탄틴 노플에서 381년 제정된 성령,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강조했다.
코넬리우스 벤틸은 메이첸 제자이다.
벤틸은 신복음주의를 공격했다.
신정통주의는 다른다. 이 차이점은 신정통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고, 신복음 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카넬, 헨리.
신복음 주의와 근본주의 차이는, 신복음 주의는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인간 양심을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메이첸과 벤틸이 공격 많이 했다.
박아론 교수에 의한 벤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다른 쪽에서 메이첸을 공격하기를, 저것이 장미꽃이다라는 것이 진리다라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메이첸 같은 근본주의 자들은 이것이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메이첸은, 누가 공격하는가. 신복음 주의자들이 공격할때. 메이첸 같은 근본주의 자들은 마이크를 두고 마이크를 말하면 거짓이라고 말한다고 말한다.
삼위일체의 의한 마이크라고 해야 진리라고 믿는다라고 신복음 주의 자들이 근본주의를 공격한다.
여기에 대해 벤틸이 반박하기를, 우리 스승 메이첸이 그냥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에 미흡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미가 있다면 저 장미를 장미라 하면 안 된다. 장미가 삼위일체에 의해 만들어진 장미라 해야 진리가 맞다.
수학에서 삼 더하기 오가 팔이 맞습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성경특별계시 진리와 이 진리 두 가지 진리를 다 인정하자는 것이 신복음주의 주장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는 삼 더하기 오가 팔이라고 아는 지식이, 저질러진 범죄가 무엇인고 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삼 더하기 오가 팔인 것을 안다면
무엇 때문에 성경을 보느냐? 이런 것은 과학과 인문과학이 발달하면 다 되는 것이지.
교회 다니는 요리사가 요리할 때, 간짜장 만들 때 재료를 무엇으로 넣는가 할 때, 이걸 꼭 삼위일체 집어 넣어야 되는가? 아니면 경험상 하면 되는가?
경험적으로 만들어도 맛있는 간짜장이 나온다. 그러면 간짜장 만들때 기도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성경에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광이 안된다는 것이다라고 근본주의가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신복음주의가 공격해 댄다.
성경의 진리도 있고 성경 밖에도 진리가 따로 있다.
근본주의는 이것에 대해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이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간짜장 이야기를 꺼집어 낸다. 기도하면서 간짜장 만들어라.
그러면 불교신자 만든 세탁기 사용하면 안되고, 여호와증인이 운전하는 택시 타면 안되고, 박태선 만든 간장 먹으면 안 되고, 그러면 통일교에서 만든 천연 사이다 먹으면 안 되고, 집 계약 할 때 몰몬교 집을 계약하면 안되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팀이 할렐루야 팀이고, 신자들 우리 팀만 하라고, 그 반대로 나온 팀이 성남 축구단이 나오고, 누구 소유입니까? 통일교 것 아닙니까? 문선명 통일교는 어디에 속합니까? 근본주의에 속한다.
근본주의는 자기 집단의 절대성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자기 집단의 절대성이, 인간에게 자기 집단이 되면 몸 바치고 정성 바치고, 물질 바치고 다 바친다.
왜냐하면 자기 집단이 커지는 것이 신의 계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내가 구원 받았는냐 안 받았냐를 어디서 보는고 하면, 자기가 속한 교단이 커지는 것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축복의 증거로 찾는다.
이것이 19세기 중반의 무디, 스펄전, 핫지, 이런 인간들이 부흥운동을 하면서 전부다, 교주가 되고 싶은대로 다 된다.
천년왕국적인 황상, 이상적인 교회건설이 유행이 되어. 그 세대주의가 그대로 한국에 다 들어 왔다.
애천교회 정명석, 안식교에서 갈라진 것 , 권신찬에서 갈라진 것. 박옥수, 이현레, 워치만니, 지방교회
특징들이 다 근본주의 사고방식이다. 자기 집단의 절대성이다.
그래서 대성교회 박윤식 욕했다고 이단 연구하는 탁명한 죽여 버리고. 실제로 죽였잖아요.
근본주의 오대교리 빼놓고, 칼빈주의 오대 교리 그대로 지키고, 기도해서 뭐되고, 기도해서 뭐 되고, 사람들의 무속신앙 그대로 다 집어 넣어도, 그래도 그것은 전통 신앙이고,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라인홀드 니브(신정통주의에 속한 사람)-일 이차 대전 거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쓰면서 왜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면서 사회적으로 비도덕적 인간인가?
그것은 인간은 아가페란 사랑을 실현할 수 없어서 오직 정의만 이루어 질 뿐이다.
인간은 사랑을 알 고 있어도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대체물로 나온 것이 오직 정의로움만 나올 수 밖에 없다.
역사란 죄가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배경에 불구하다.
니브는 디트로이드 자동차 공장 노동자를 목회 하면서, 진짜 자유주의가 가진 대로 이상적 공동체가 되는 줄로 알았다. 실망과 실망을 하면서. 인간의 죄는 어떤 경우든 항상 나오게 되어 있으며, 이게 신정통주의 특징이다. 오직 역사란 인간의 죄를 받아 내는 하나의 발판 역할 밖에 못한다.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있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그래도 이상적인 교회가 된다고 하는 쪽이 어디인가? 근본주의 쪽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이다.
이들은 근본주의 오대교리만 있으면 충분하게 이상적인 교회가 된다고 본다.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구미를, 욕망을 채워주어 자기 집단만 채우면, 목사 밥 먹고 살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게 다 가르쳐 왔다. 옛날 천주교가 그렇게 했다.
다음 마지막 시간에는 쟈크 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로 대미를 장식하겠다.
통일교, 안식교, 합동측, 기장측, 전부다. 합동측이 자기를 향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장자교단이라고 한다. 이런 인식자체가, 사도바울의 복음에 관심 없고, 우리 특정집단이야 말로 비로소 정통이며, 웨스트 민스터가 여기 있으며 라고 한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치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고, 뭐 교회의 삼대표징인 말씀선포와 성례와 치리.
이것은 다 A.A. 핫지가 이야기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