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65개국 중 수학 1위, 읽기 1~2위, 과학 2~4위. 반면에 내적 동기 58위, 도구적 동기 62위, 자아효능감 62위, 자아개념 63위.
우리나라 교육의 성적표다.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는 잘 하지만 행복하지 않고,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공교육의 반성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제기되었고 올해부터 충북지역 126개 중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은 공교육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좀 더 신명나게 공부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진로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진로교육은 요즘 교육에 있어서 확실히 대세다. 그래서일까? 최근 중·고둥학교에서는 진로교육을 필수항목으로 여기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급별 진로교육 목표’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진로교육 목표는 ‘자기이해’, ‘진로탐색’, ‘진로개발역량 향상’이다. 즉 자기이해를 통한 직업탐색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잘 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 속에서 자유학기제 도입 이전부터 자기이해를 통한 구체적인 직업탐색 시간을 갖고, 꾸준히 진로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학교가 있어 화제다.
바로 4년째 ‘내 꿈을 job아라’라는 주제로 진로박람회를 개최, 학생들의 자기이해와 진로탐색에 도움을 주고 있는 성화중학교(교장 석방현)다.
진로박람회 통해 자기이해와 진로탐색에 도움 줘
성화중학교는 지난 25일, 제4회 진로박람회를 개최하고 학생들에게 자기이해와 직업탐색의 시간을 제공했다. 1학년 17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박람회는 자아인식을 통한 직업적성을 찾아 자기이해를 돕고, 자기주도적인 진로설계로 학습동기를 향상시킨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석방현 교장은 “진로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이번 박람회를 통해 학생들이 미래지향적인 진로결정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화중 진로박람회는 진로탐색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오전에 실시된 ‘나의 꿈 발표대회’는 김지수 학생 외 14명의 학생이 꾸민 시간으로 PPT자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표를 들은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미래 디자인을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꿈 발표대회 최우수상은 통역사를 희망하는 구본상 학생이 차지했다. 사회를 맡은 오준석, 강민주 학생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나의 꿈을 생각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역 저명인사 6명 초대, 반별로 특강 실시
오후에는 전문 직업인 및 지역사회 저명인사 6명(노무사, 주택관리사, 농부, 보육교사, 심리상담사, 배우 등)이 참여하여 ‘꿈과 희망 갖기, 직업인이 되기까지의 길, 직업인으로서 갖는 보람과 애로사항’ 등에 대해 특강을 실시했다.
시민단체 ‘함께사는우리’에서 주최한 이번 특강은 1학년 1반부터 6반까지 각 반별로 강사를 배치, 학생들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직업인을 찾아 강의를 듣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1학년 1반에서는 ‘청주노동인권센터’의 주형민 노무사가 노무사의 개념과 역할, 노무사가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며 1학년 2반에서는 조해순 주택관리사(삼호아파트 관리소장)의 강의가 있었다. 3반에서는 ‘거북이학교’의 신재호 씨가 농부에 대해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4반에서는 시립성화5누리봄어린이집 강수현 보육교사가, 5반에서는 정은경 심리상담사가, 6반에서는 ‘예술공장두레’ 한명일 배우가 연기자의 길이 어떤 것인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특히 6반에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한명일 강사에게 배우의 연봉을 묻는 등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강의를 들은 박 모 군은 “배우는 사람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강의 이후 성화중 1학년 학생들은 강당에 모여 진로와 관련된 OX퀴즈를 풀고 상품을 받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진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경구 교사는 “학생들에게 뜻 깊은 시간이 된 것 같아 보람 있었다”며 “다음엔 더 알차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 굶지 않아”
성화중학교 진로박람회에서는 시민단체 ‘함께사는우리’ 주최로 보육교사, 농부, 심리상담사, 주택관리사, 노무사, 배우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역인사 6명을 초대, 학생들에게 해당 직업에 대해 강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에서 노무사와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주형민, 한명일 씨의 강의 소감을 들어본다.
험난하지만 매력적인 직업, 배우
<한명일 ‘예술공장두레’ 배우 인터뷰>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연예인과 배우. 많은 청소년들은 스타급의 배우를 열망하며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스타급의 연예인, 배우가 되기란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다. 특히 변변한 연기학원 하나 없는 지방에서 배우를 꿈꾼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나?’ 연예인이나 배우가 되길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고민이다.
‘어찌해야 할까?’ 이 질문에 ‘예술공장두레’ 한명일 배우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배우가 되길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무엇보다 공연을 많이 보고 연기와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한명일 씨는 “배우로 가는 길을 험난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라며 “배우란 사람과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진로박람회에서 한명일 씨는 성화중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기의 전반적인 이해와 연극 및 배우와 관련된 직업군을 설명했다.
그는 “배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그만큼 많은 희생이 따르는 직업”이라고 전했다. 사실 배우는 몇몇 스타급 배우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곤궁과 고단함’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로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직업에 대해 자세히 안다면 이를 준비하는 자세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한명일 씨는 “강의 후 학생들이 배우의 수입을 질문했다. 작품 당 억대를 호가하는 배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진로교육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배우나 연기와 관련된 직업을 정말 희망하는 꿈나무들에게 체험 및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와 노동자의 상생을 꿈꾸다
<주형민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인터뷰>
청소년들에게 ‘노무사’라는 직업은 낯설다. 특히 노무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에 청소년들 가운데는 ‘노무사는 어렵다’, 심지어 ‘무섭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달할수록 노무사의 역할과 위상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노무사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무사를 통해 노동자들은 노동문제를 상담하고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무섭다는 인식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사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로써의 삶을 시작하게 되고 부당한 일들은 늘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노동인권센터’에 소속된 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주형민 노무사는 이번 진로박람회에서 학생들에게 노무사의 역할과 아울러 노동이 지닌 가치, 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에 관하여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주형민 노무사는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지 은 못했지만 학생들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생각해보고 노동 문제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 공교육에서 학생들은 노동, 노동자, 부당함에 관하여 배우기란 쉽지 않다. 주형민 노무사는 “하지만 주변을 잘 살펴보면 노동자의 삶이 어떠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노무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노동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노동 관련 문제를 눈여겨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노동법 또는 노동인권 감수성 교육을 주로 하는 주 노무사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 관련 교육을 정규 과목으로 편성하여 배우게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는 노무사란 직업에 관해서 학생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관심분야를 좀 더 넓혀 사회에 나가 겪을 부당한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