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근처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우리집에 모였습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뜻과 마음이 맞어 서너번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다가
고운정이 들어 얼마전 이사한 우리집에서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오늘 한자리에 모였던거지요.
한 사람 한 사람..모두 조용한 성품이라 소곤소곤 마치 봉오리를 터트릴 것 같은 꽃들의
목소리같이... 차분하게 내리는 봄을 재촉하는 비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친구들...(나이는 열살이 훨씬 더 차이가 나는...내가 제일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친구...)
엊저녁부터 지난 가을에 하나 얻어 놓은 누런 호박덩이를 껍질을 벗겨 씨를 발라내고
푹푹 삶았습니다.
완두콩과 팥은 따로 삶아야 합니다.
찹쌀가루는 미리 냉동실에 준비해 두었다가 사용해도 좋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삶는 노오란 호박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면 저는 약간의 설탕을 첨가합니다.
알맞게 익어 갈 무렵 참쌀가루를 넣으며 주걱으로 잘 저어줍니다.
걸죽해져 가면 따로 삶아 놓은 콩과 팥을 맑은 물로 한번 슬쩍 휑궈서 함께 모두 섞습니다.
그렇게 해야 호박의 고운 빛깔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저는 꼭 그렇게 헹구어 넣습니다.
맛이야 콩과 팥을 삶은 물을 함께 넣는게 나을테지만 그래도 보기좋으라고 그렇게합니다.
이제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이렇게 한소큼 끓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호박죽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백김치와 겉절이 그리고 돌산 갓김치 양상치샐러드 동그랑땡이랑 녹두 빈대떡이 오늘의 주 메뉴이지만 혹시 호박죽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떡만두국을 끓이고 또 그것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잡곡밥을 조금 했습니다.
마침 며칠 후면 정월 대보름이라 시장에선 오곡밥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잡곡을 조금씩
한데 섞어서 팔고 있었습니다.
아침엔 마침 부근의 전민동 장날이라 후식으로 먹을 과일과 시골 할머님들이 직접 캐서 들고 나오신 달래나 냉이를 사러갔습니다.
촌에 살고계신 할머님들이 잘 다듬어 오신 달래..뿌리가 하얗고 통통하니 참 실합니다.
냉이 역시 두번 손이 가지 않게 잘 다듬어서 내오셨습니다.
새콤달콤하게 식초를 듬뿍 넣고 무친 달래는 춘곤증이나 봄을 타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워 주고...냉이...냉이는 삶아서 된장이나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거나 된장을 풀어 국이나 찌개를 끓이는 게 전부였답니다.몇개의 조개나 멸치라도 넣을 수 있음 금상첨화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냉이 차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식사가 다 끝나갈 즈음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찻물을 끓였습니다.
방법이야 아주 간단해서 깨끗하게 씻어 놓은 냉이를 한두뿌리 잔에 담고는
펄펄 끓는 물을 붓기만 하면 됩니다.
조금 기다리니 그 연초록의 물이 ...어디서 그런 빛깔이 나타나는지...
너무 곱습니다...물감으로 만들 수 없는 환상의 빛입니다.
찻잔이 하얀 색깔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연초록의 빛깔과 너무 잘 어울리니까요.
맛인들 인스턴트의 다른 차류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향긋한 냉이의 향과 흙냄새가 어우러져 찻잔 속에 봄이 가득하답니다.
친구들이 돌아 간 시간...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들갑을 떨며 냉이 차를 만듭니다.
지금도 컴퓨터 옆에는 냉이차가 담긴 찻잔에 연초록 찻물이 우러나 있습니다.
점점 짙게 우러나는 차의 빛깔을 보며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마치 신록을 보는듯
눈까지 시원해집니다.
백사는 우거지 삶는 냄새라며 정말 멋이 없는 말을 하지만 오늘은 커피 보다
냉이차가 훨씬 더 좋은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