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지: 교룡산(518m)
2.산행일: 2011.09.25(일요일)
3.산행코스:성터-선국사-정상-전망대-성문(2시간30분)
4.여행시간및 거리 : 1시간30 분
5.시간계획:상무역(06:45)-염주체육관(07:00)-용봉동(07:20)-문예후문(07:30)-교룡산입구
산행시작(09:00)-산행완료(11:30)남원공설운동장으로이동-점심식(12:00-13:00)
-행사 - 행사완료()-광주도착()
산행들머리에 있는 등산 안내도
남원시내에서 서북쪽으로 산곡동과 대산면을 경계로하여 서있는 산이 교룡산이다. 해발 518m로 특별한 특징을 갖은 산은 아니고 산속에 있는 교룡산성이 더 알려진 산이기도 하다.
남원의 산들이 지리산 자락과 맞물려 크고 작은 고봉과 준봉들로 연결된 것에 비하여 교룡산은 넓은 들판 위에 저 혼자 외롭게 서있는 산이다.
입구에 있는 교룡산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0여m만 오르면 교룡산성의 성벽이 나타난다. 교룡산성은 교룡산(蛟龍山)의 험준함에 의지하여 축조된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둘레가 3,120m이다. 현재 동문의 홍예(虹예)와 옹성(甕城) 그리고 산중턱의 성벽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축성의 내력에 대하여는 명확하지 않으나, 택지(擇地)나 형식으로 보아 삼국시대 백제의 축성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기록상으로는 임진왜란 중인 선조 25년(1592)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의거한 승병장 처영(處英)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선조(宣祖) 30년(1597)에는 남원부사 최염이 주변 일곱 고을의 군사를 징발하여 수축하였고, 숙종(肅宗) 때에도 수축공사가 있었다.
교룡산성 동문의 홍예문
성은 교룡산의 동쪽 수구(水口)에 동문을 설치하고, 산세에 따라 양쪽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모양이며 동문은 옹성(饔城)에 쌓여 있어 남쪽에서 성벽을 따라 들어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ㄱ자형으로 꺾인 곳에 홍예문이 있다. 홍예문의 측면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의 액부(額部)는 아홉 개의 돌을 아취형으로 맞춘 것이다. 가구는 매우 단조로와 금산사 입구 홍예문보다 뒤떨어지는 것 같으나 처영이 당초 금산사에 머물렀던 것을 미루어 볼 때, 양쪽의 성문은 그의 중수(重修)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 바로 안에 있는 부사와 별장의 공덕비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계곡도 있어서 유사시에 주변의 주민들을 징발하여 성을 지키기에 좋은 곳이었다. 북쪽으로는 밀덕봉(密德峰)· 복덕봉(福德峰)의 험준함이 있고 서쪽도 험준하여 남북이 서로 바라다보이지 않는다. 성을 지키는 책임은 남원부사(南原府使)와 별장(別將)이었고, 성 안에 용천사(龍泉寺)가 있었다.
선국사 보제루
홍예문을 지나 300m 쯤 오르면 금산사의 말사인 선국사가 나온다. 선국사는 685년(신라 신문왕 5)에 창건했다고 하며, 창건 당시 절 근처에 용천(龍泉)이라는 샘이 있어서 절 이름을 용천사(龍泉寺)라 했다가 절 둘레에 교룡산성을 쌓은 뒤 절의 성격이 호국도량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선국사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절 건물이 성을 지키는 본부로 쓰인 바 있고, 산성 안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산성절이라고도 부른다.
선국사 대웅전
선국사는 동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이 절에서 8개월을 머물렀으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개남은 선국사 안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전라좌도를 통솔했었다.
1862년 겨울, 사람이 한울이라는 큰 이치를 펴고있던 최제우가 영남지방의 박해를 견디다 못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해 온다. 그는 남원 밖 주막에서 서공서의 소개로 이곳 선국사에 방 한칸을 빌려 은적암이란 당호를 붙이고 8개월여를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동학 남접의 시작이었으며 1894년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되니 그 혁명의 산실이 바로 이 선국사인 것이다.
선국사 경내 모습
경상, 전라의 경계인 남원은 옛부터 전투가 그칠 날이 없었다. 남원지방에만 있는 20여개의 성이 그 실체를 말해주고 있으며 6.25 한국전쟁을 예외로 하더라도 멀리 김춘추의 동생이 전사한 아막성전투에서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황산대첩을 거쳐 정유재란시엔 조명연합군이 몰살당한 남원성전투까지.... 그런 남원의 한가운데서 묵묵히 지켜본 산이 교룡산이요, 그 지휘소가 선국사요, 그 현장이 교룡산성인 것이다.
능선 위로 올라가자 고사목들이 많이 보인다
교룡산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주봉인 밀덕봉과 2봉인 복덕봉을 거쳐 쉬엄수엄 내려 오더라도 2시간 정도면 산행을 끝낼 수 있는 자그마한 산이다. 능선까지 오르기가 제법 가파르긴 하지만...
능선에서 내려다 본 고리봉쪽 남원들판
교룡산의 매력은 날끼가 좋은 날이면 지리산 전체의 산군을 조망할 수 있으며 섬진강과 남원 들녘까지도 한눈에 들어 온다.
교룡산 정상인 밀덕봉
정상인 밀덕봉에는 방송 송신탑과 산불경보용 CCTV까지 설치되어 정상은 이미 빼앗긴 상태다. 더우기 정상부근에서 송신탑을 보호하기 위하여 철망을 두르고 산행로를 우회시켜 놓았다.
밀덕봉에서 바라 본 제2봉인 복덕봉
교룡산은 주봉과 2봉이 거의 높이가 같다. 그러나 주봉에서 2봉으로 이동하기는 거리가 가까워 거의 힘들지 않는 길이다.
복덕봉 정상
2봉인 복덕봉에도 그 누군가가 팻말 하나를 세워 놓았다. 이곳 복덕봉은 주봉과 연결된 길말고는 삼면이 각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아마 옛 산성의 망루 역활을 했을 것 같다.
복덕봉 정상 암벽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틈새가
복덕봉의 피고 있는 억새
하산길에는 자연 솟대가 서있다
하산길에 만난 고사목 한그루가 마치 솟대의 모양을 하고 서있다. 솟대는 민간신앙이나 경사가 있을때 세우는 것인데 오늘 산행내내 등산객 한사람도 만날수 없던 이 버림(?) 받은 유적의 산이 우리 두사람의 방문을 경사로 생각하고 세운것일까??????. 그래 교룡의 힘이여! 너의 정기를 우리에게 가득 주어 영광 있길 바라노라.....
첫댓글
오랫만이시네요
늘 든든하신 모습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