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을 보고 온 날
-조문경
낙조대 가는 돌계단에서
일몰을 보고 온 날, 아니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울렁거리는 속을 누르고 누르며
내려온 날이었다
어디서나 해가 진다
수없이 빛나고 깨지고 다시 터지는 긴 까치놀의 춤
속이 울렁거리고
땅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세상 속에는 온통 일몰이 있었으니
주황색도 아니고 붉은 색도 아닌
알 수 없는 섬광으로
순간순간 변하는
변하여 빛일 수밖에 없는
장엄함
데이트하던 남녀도
카메라 각도를 잡기 위해 부산스럽던 사진작가들도
바다와 나조차도
섬광 뒤로 사라졌느니
왼종일 울렁거린다
깊은 사랑을 한 날이다
"깊은 사랑을 한 날" -도대체 '깊은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그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가 '울렁거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반하는 현상이 '변화'이고 '섬광'입니다. 바다를 무정형의 카오스(혹은 여성성)로 생각하고 빛을 로고스(혹은 남성성)라고 생각한다면, 까치놀(햇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모습)이라는 현상은 매우 특수합니다. 그것은 바다나 빛 어느 것 하나로 지칭될 수 없고, 환원되지도 않습니다. 그런 현상을 "주황색도 아니고 붉은 색도 아닌/ 알 수 없는 섬광으로/ 순간순간 변하는/ 변하여 빛일 수밖에 없는/ 장엄함"이라고 명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깊은 사랑은 장엄함 안에 너와 나의 차별(差別)이 없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런 바다의 일몰 현상을 여성인 화자가 (여성성으로) 느끼고 "깊은 사랑"이라는 인간적 이미지로 말합니다. 모름지기 인간적인 이미지로서의 사랑도 바다의 일몰의 현상과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인간의 사랑에서도 너와 나의 해체에 준하는 강도와 밀도를 가진 하나됨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내가 해체되었다면서 어떻게 하나인 줄은 아는가? 그게 바로 장엄함을 일으키는 '울렁거림'의 리듬입니다. 다시 말해서 울렁거림 안에서 너와 내가 해체('변화'와 '섬광')되어 하나가 된 것입니다('울렁거림'이 없는 하나되기는 전부 거짓말이다). "데이트하던 남녀도/ 카메라 각도를 잡기 위해 부산스럽던 사진작가들도/ 바다와 나조차도/ 섬광 뒤로 사라졌느니" 온종일 울렁거림만 남은 상태입니다. 이렇게 "깊은 사랑"은 섬광을 일으키며 너와 나라는 차별을 해체시키고, 장엄한 울렁거림의 리듬만 남길 때입니다. 실제로도 모든 일에서 이런 체험은 인간을 한 단계 도약시킵니다. 그러니 그런 깊은 사랑이 흐르는 사회를 잠시 꿈꿔본다는 것, 정말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 글/ 오철수 시인
첫댓글 아모르파티의 또다른 보석 조문경 시인. 요즘들어서 시세계에 거대한 여성성의 힘이 투여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집을 낼 때는 너무 자신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는데...이젠 한 포스합니다. 스스로 발열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길이라면 가야합니다. 전 보기 좋습니다. 근자에 그녀의 눈에 걸리는 시감이 하나 같이 강한 여성성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들이라는 게 놀랍고, 우리 시에 부족한 부분을 온힘으로 채우려는 것 같아 기쁩니다. 아모르파티의 여성동지 여러분들의 많은 격려 바라며, 파트너십을 원하는 남성동지들도 많은 격려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조시인 이렇게 썬파우어진 예전에 미쳐 몰랐서와~요~^^
전 알았어와~요~^^
쌤 겁나게 민망시럽네요 연세가 드시긴 드신갑네요 이리 칭찬을 다해주시고라 ~~ 나를 넘어서는 일, 게으름을 쥐약으로 여기겠습니다
울렁거림으로 대상을 체험한 시를 쓰면 어떤 시가 나올까요?
울렁거린다니까 갑재기 울릉도 호박엿이 생각나누만..
이 시를 읽고 감상글을 쓰면서..이렇게 편한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많이 지쳤습니다. 한결, 신숙, 수현, 시몽 등등도 이렇겠구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럴 때 이런 좋은 시를 쓴 분들과 한잔 땡기는 것이 기분전환에 젤로 좋습니다. 그러니 이번주 송년회 때 바카스처럼 나타나시어 바카스신처럼 술 드시와요.
생활에 집중하면 좋은 시를 쓸 것 같은데...이상하게 집중해도 시가 되지 않는 생활이 있어요. 그건 생활 탓인가요, 생활을 대하는 저 자신의 탓인가요?
지일을 넘한테 묻는 놈은 또 첨이네..ㅋ
푸하하핫.....진짜 웃겼어요. "지일을 넘한테 묻는 놈은 또 첨이네...ㅋ "
장근이의 저 심오한 질문 실은 저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생활에 집중하면 그것에 내가 끌려 다니니까 시가 아니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되어요. 장근아~ 정답 갈쳐 줄까? 누구탓도 아니니라 ㅋ
쌤~! 저는 막연하게나마 내년쯤을 기약하고 있습니다.그때 쯤이면 지친 생활에서 다소 벗어날 수도 있을것 같거든요.워낙에 일복이 많은 년이라 사실 기대도 하지 않지만요,그래도 그때 쯤이면 그 많은 일 복 속에서라도 훨씬 자유로울 수 있을것 같거든요. 생활에 집중하면 참말 좋은 시가 써 질거라고 생각해요.그러나,그 생활이란 것들의 종류,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각종 환경들,뭐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다사다난하게 뒷골을 땡기게 할 때, 그런 때는 정말 생활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에요.대충 제가 그렇거든요. 누구에게나 지칠때가 있으리니, 샘도 에너지 충전 잘 하시고,다시 빠샤빠샤..해 주세요.
직장생활 시를 많이들 쓰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르케님 말에 동감이예요 다양한 시들이 나올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일몰을 보시고 이런 멋진 시를...... 부럽습니다. 샘님의 해석도 멋지시고요. ^^
운이 좋았던거지^^
시가 꿈틀꿈틀 모태의 자궁처럼, 폭발하는 우주처럼 울렁울렁~~ 거대한 호흡 같아요.
눈까지 멀어지는줄 알았당게요 그렇게 강렬한 일몰은 처음이었어요 그것도 가차이서..
깊은 사랑을 해 본 지가 언제인지... 문경언냐 깊은 여성성에 푹 빠졌어요. ^^
사모님 가정을 버리시죠(제비버젼).오늘 한번 땡기실랍니까 ㅋㅋ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전 저를 깊이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슬프네요. 이래서야 누굴 사랑할까 싶기도 하고... 다 놓고 일몰이나 보러 가면 참 좋겠네요. 사랑좀 하게^^
소주 먹다 일몰 놓치지 말게나 병째 들고 먹기^^
'너와 내가 해체되는 지점까지 사랑하라!' 신이 하나가 아니구나 생각되요. 시를 잘 쓰는 문경언니도 신이 아닐런지 ...
뭔 큰일날 소리^^ 보리신
낙조가 주는 감명으로 읽어야 하나 싶습니다 결국 시의 핵심어는 울렁거림이고 섬광이고 장엄함이고 깊은 사랑을 한... 낙조광경을 한번 보고싶어집니다 이런광경을 접해보지 못해서인지 느낌이 확 와닿지 않아 내 자신이 좀 갑갑합니다 끝까지 보지도 않았는데도 속이 울렁울렁거렸다니 정말 장광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일몰의 속성은 사라짐이 아닐까 싶은데 마지막연에서 그 사라짐을 말해주면서 깊은사랑을 한 날이라 마무리하는 이렇게 시를 좀 파고보니 이제야 시가 좀 읽히는 것 같습니다 좋은시 잘 보았습니다 샘의 해설도 감이 잡히네요
이리 깊이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깊은 사랑을 한 날이다'.......우리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만감이 교차되고, 이러저러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어떤 것이 클로즈업 됐다가 사라지고, 어렴풋한 것들의 오버랩의 반복...결국 여기서는 '까치놀'과 '온통 일몰'이 동기가 되어진 것일진대, 그 날 문경님은 하나 더해 만물을 사랑하게 되는 깨달음도 얻지 않았을까..저 부분에서 깊은 사랑을 하지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뭉경, 여자 맞네..ㅎ 저러니 들이대도 이쁘쥐..푸하하핫!
시몽 ! 뭘 내가 그리 들이댔다고 자꾸 그래싼다요.시몽 이름밖에 부른게 없는것 같은디,성이라고 부를려고 혔느디 민증나이는 같담시롱..
마치 깊은 사랑이라도 한 듯 하루가 저물었던 어느 날이 생각납니다. 사람의 향기가 그렇게 진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문경 님의 시를 읽으니 문득 그 사람이 '일몰'이었구나 싶네요.
일몰은 어디에나 있지요 언니 부끄럽네 히히^^
깊은 사랑을 나눈 느낌이어요? 좋겠네...
그러게요 좋은지 어쩐지 울렁거리네요^^참 갑장(牛)이죠 한번 얼굴을 봐야 말을 트지 ㅋㅋ..
좀 바빴습니다. 자주 들어와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근 근원을 알수 없는 어떤 회의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긍정적 생의 의지를 다시 불피워 올려야 하겠다고 어금니를 깨물고 있습니다.
생이여 다시 한 번! 파이팅 구암님!
그렇구 말구 '그게 삶이었던가, 그럼좋다. 다시한번!' 이번 토요일날 오시구랴.
역시 시인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 눈엔 아직 노을이 보일 듯 말 듯해서.. 너무 속상하다는...
일몰의 아름다움에 닿지 않는 손을 느낍니다. 노상 쥐고 있으면서도 노상 손사래로 빠져나가는. 일몰은 일출의 뒷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