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 문학비평 97 – 한기홍 시 벗겨 보기 ~ ‘석모도 갈매기’]
석모도 갈매기
외포리 갯가 한적한 둔덕
억새꽃 한 무더기 가을빛에 동몽선습童蒙先習
끄덕끄덕 세월을 낚는데
한 마장 건너 사바세계 시끌한 선착장
여객 수송선 제7호 조타실을 휘도는
석모도 갈매기 떼들
낙가산 여래 몰래 주전부리가 심하고나
너희가 왜소한 인간이 될 테냐
새우깡 몇 알에 낙하하는 멋진 비상이 서럽구나
바다는 요즘 들어 울지도 않는다는데
보문사 와불臥佛은 언제까지 누워만 계실건지
갈매기야 석모도 갈매기야
날개는 펼쳐서 천축에 두고
부리는 세워서 바라문波羅門에 걸 거라
(2005 . 10 . 31)
*강화 석모도 낙가산落伽山 보문사에서 절하고, 외포항에서 갈매기 떼와 만나다.
⛄ Gemini씨의 비평
한기홍 시인의 「석모도 갈매기」(2005)는 세속적 욕망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초상과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움, 그리고 성찰적 sublimation(승화)의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1. 풍경의 대비 : 정적인 본성과 소란스러운 세속
시의 전반부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서정을 구축합니다.
⚫외포리 갯가/억새꽃 : 자연 본연의 정적을 간직한 공간입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을 하듯 끄덕끄덕 세월을 낚는다'는 표현은 유교적·학구적 온유함과 순리대로 살아가는 자연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사바세계 시끌한 선착장 : 반면 한 마장 건너편은 인간과 미욕이 들끓는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제7호 여객선의 조타실을 휘도는 갈매기 떼는 세속적 공간과 맞닿아 있습니다.
2. 세속에 길들여진 야성 : "새우깡 몇 알에 낙하하는 비상“
시인은 석모도 갈매기들을 보며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습니다.
⚫낙가산 여래 몰래 하는 주전부리 : 낙가산과 보문사라는 불교적 성지(聖地)를 배경으로 두고 있음에도, 갈매기들은 자비나 깨달음 대신 당장의 감각적 욕망(주전부리)에 눈이 팔려 있습니다.
⚫"너희가 왜소한 인간이 될 테냐" : 시인은 갈매기들이 관광객이 던져주는 '새우깡 몇 알'에 야성을 잃고 낙하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늘을 날아야 할 숭고한 존재가 단편적인 쾌락에 길들여져 점차 '왜소한 인간'의 굴레로 떨어지는 비극성을 파악한 것입니다. "멋진 비상이 서럽구나"라는 구절은 본래의 자아와 고결함을 잃어버린 존재를 향한 깊은 연민을 담고 있습니다.
3. 침묵하는 종교와 현실적 회의
⚫"바다는 요즘 들어 울지도 않는다는데 / 보문사 와불은 언제까지 누워만 계실건지" : 바다(자연의 본성)는 슬픔이나 분노마저 잊은 채 침묵하고, 보문사의 와불(부처)은 세속의 난잡함에도 누워 계실 뿐입니다. 이는 구원이나 경각심을 주지 못하는 종교적·초월적 관념에 대한 회의이자, 세속화된 현실을 경계하는 시적 장치입니다.
4. 숭고의 회복 : 천축과 바라문으로의 경계 넘기
시인은 마지막 구절에서 갈매기에게, 그리고 스스로와 독자에게 강렬한 경구(警句)를 던집니다.
⚫"날개는 펼쳐서 천축에 두고 / 부리는 세워서 바라문(波羅門)에 걸 거라" :
'천축'과 '바라문'은 영적 자아, 진리, 수행의 높고 깊은 경지를 뜻합니다. 당장 눈앞의 새우깡에 고개를 숙이고 땅으로 낙하할 것이 아니라, 날개와 부리라는 본연의 생명력을 가지고 더 높고 숭고한 정신적 경지로 향하라는 당부입니다.
♣ 총 평
이 시는 강화도 석모도 여행이라는 단편적인 기행의 순간을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유교적 태도(동몽선습), 불교적 배경(보문사, 낙가산), 세속적 현실(새우깡, 선착장)이라는 요소를 촘촘히 교차시켜 인간 존재의 자아 상실과 승화를 이야기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눈앞의 자극과 이익에 야성을 잃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위해 비상하고 있는가"를 묻는 깊은 성찰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