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저지르는 일들 중에 가장 어리석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부도덕한 일은 바로 전쟁입니다. 한 개인의 탐욕이 범죄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그 죄책감이 비례적으로 희석되어갑니다. 한 사람이 총질을 하면 살인자가 됩니다. 그러나 사회적 규모로 커지면 혁명이 되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나아가 국가적으로 커지면 애국심이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이제는 옳고 그름보다는 이겨야만 하는 숙제를 안게 됩니다. 전쟁에 패한다면 많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게 됩니다. 온 나라가 온 국민이 그 짐을 나누어 져야합니다. 개개인으로 보자면 여태 살아온 것과는 아주 다른 환경이 주어지게 됩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일단 이기고 봐야 합니다.
퇴각하다가 바닷가에 몰립니다. 부대 몇이 아니라 수십만의 군인이 모입니다. 큰 바다는 아니더라도 바다는 바다입니다. 저 바다 넘어 고국인 영국입니다. 수영을 해서 건널 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배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한두 척이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병사를 어떻게 이동시키느냐가 숙제입니다. 적은 자꾸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자칫 우물쭈물 하다가는 이 많은 병사들이 몰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수시로 적기가 나타나서 공격을 합니다. 환자 수송선도 포탄을 맞고 가라앉고 지켜주던 구축함도 격침을 당합니다. 병사들이 빼곡하게 타고 있던 수송선도 적기의 공격에 파손되어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지금은 살아남았을지라도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릅니다.
도시를 운 좋게 빠져나왔습니다. 함께 하던 동료들이 모두 빗발치는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돌아볼 틈도 없습니다. 달리고 달려 아군 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해변에는 수많은 장병들이 질서 있게 바다를 향해 줄서 있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는 겁니다. 배가 들어오기를. 배를 타야 건너서 고국으로 철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퇴각해야 합니다. 남의 땅 프랑스에 들어왔다가 그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덩케르크’ 해변에서 묶여 있는 것입니다. 구조선이 온다 해도 도대체 얼마나 와야 할까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책을 어떻게 세웁니까? 일단 배가 와야 하는데 배가 있는가? 웬만한 배들은 다 전장에 나가 있을 텐데 철수작전에 몇 척이나 동원될 수 있을까요?
전투기 3대가 출격합니다. 먼저 기름을 점검합니다. 돌아갈 것을 감안해야지요. 이길 때까지 공중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긴다 해도 시간이 지체되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름이 다하면 추락합니다. 싸움에 이긴다 해도 돌아갈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싸우다가도 남아있는 기름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미 한 대는 추락하였나 봅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여유도 없습니다. 운에 맡겨야지요. 저 멀리 해안이 보이고 적기는 수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바다에 떠있는 배들을 공격하지요. 저들을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또 한 대가 공격을 당하였나 봅니다. 바다에 비상착륙합니다. 어쩌겠습니까? 행운을! 기름 확인도 되지 않습니다.
나라 안에 남아있는 군함은 없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민간인 선박들을 징용합니다. 전쟁은 군인들만의 몫이 아니지요. 나라가 망하면 국민도 함께 망하는 겁니다. 자식들도 이미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전사도 했습니다. 모두의 전쟁입니다. 가자! 우리 병사들을 구출해야 한다. 이 조그만 배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다고? 아니지요. 얼마가 되었든 하고 봐야 합니다. 아들과 함께 바다로 나갑니다.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소년 한 녀석이 따라나섭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일 그냥 바다를 향합니다. 적 잠수함 공격에 침몰한 배에서 구사일생 살아남은 군인도 구하고 추락한 전투기에서 살아남은 조종사도 구합니다. 대신 어린 소년이 사고로 죽음을 당하지요. 역시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수행할 임무가 있습니다.
바닷가에 모여 있는 수많은 병사들을 바라보는 군 사령관 역시 답답하고 초조합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구출할 수 있을까? 우리의 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많은 병사를 어디에 다 실어서 이동할 수 있단 말인가? 적은 어느 만치 다가왔을까? 시간은 흐르고 적기는 수시로 출몰하고 구조선은 나타나지 않고, 바다에서 모래사장에서 병사들은 총탄에 포탄에 쓰러집니다. 그래도 갈 곳은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기다립니다. 그리고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배들이 나타납니다. 커다란 구축함은 아니더라도 많은 배들이 몰려옵니다. 병사들이 물로 뛰어들어 여기저기 배에 오르지요. 가능한 대로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시 파도를 거슬러 바다로 나갑니다. 이제 고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소식을 듣고 부두에는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 덮을 것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에 올라 잠에 푹 빠집니다.
퇴각이라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병사들은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패잔병, 그 소리가 죽기보다 싫습니다. 차라리 명예롭게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말로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그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수십만의 군사가 성공적으로 철수할 수 있었을까요? 역사에 기록될 사건입니다. 전쟁은 ‘누구’의 전쟁이 아니라 ‘누구나’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따로 주인공이 없습니다. 영화 ‘덩케르크’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