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담는 그릇
강미란
도시의 경계를 넘어 덩그러니 홀로 터를 잡고 있는 한적한 카페와 공방이다. 작업실과 전시장, 집을 겸한 세 동의 건물과 널찍한 마당이 있다.
건물 입구에 다가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고 스산하다. 유리문 뒤편으로 보이는 카페는 사람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도란도란 놓인 탁자 뒤편으로 전시된 도자기만 공간을 지키고 있다.
일행과 되돌아 나오려는 순간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부부 도예 작가가 나와 작업이 밀러 당분간 카페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작가님은 돌아가려는 우리에게 집에 오신 손님은 그냥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기어코 차 한 잔 대접하겠다며 굳게 닫힌 카페 문을 열었다. 잠시 후 작가님은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내려왔다. 차가운 기온을 머금고 겨우내 무심하게 놓여 있던 커피잔에 주인의 마음이 담겨 왔다. 자연 속에서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며 작가와 담소를 나누었다. 도공의 정성으로 빚어진 찻잔에 담긴 커피의 맛과 향이 사뭇 달랐다.
카페에 전시된 도자기를 둘러보았다. 도공의 손길이 세심했다. 부부가 빚어낸 작품이라 더욱 느낌이 남달랐다. 작가는 단순한 생활자기의 유려함을 넘어, 트렌디한 생활의 윤택함을 배가시키는 아름다움을 담고 싶다고 했다. 부부 작가는 작업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완성된 도자기들은 여느 도자기와 비슷한 형태인 듯 여겨지나 분명 달랐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형태’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작가가 추구하는 형태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형태가 가지는 강렬함을 나만의 작업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했다.
작가는 하나의 디자인을 오래 고집한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익숙한 것에 대한 작은 변화의 추구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색감의 미와 형태의 미를 균형 있게 담아낸다. 전통에 현대를 덧입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런 작가의 방향성은 남다른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니 온전히 작가의 정신을 담은 세상에 단 하나의 그릇이 분명하다.
부부 도예가의 작품은 지금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트렌드를 의식하지 않는 부부 도예가의 남다른 정신 때문이다. 한국의 미에 장인의 감성. 새로운 생활 속 트렌드가 융합되어 전통의 가치를 재창조해 낸다. 작가의 작품은 독특하다. 쓰임에 있어 용이하다. 전통이 살아 쉬는 그릇 그 본질 속에 보이지 않는 감성과 히스토리까지 세심하게 담겨 있다. 한국의 단아한 아름다움과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같이 고급스럽고 정성스러운 식탁을 차려낸다. 명품으로서의 인정을 충분히 받을 만한 작품이다.
모방이 아니라 온전히 작가의 영혼을 담은 ‘나을 담는 그릇’이기에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담아내는 용기나 방식에 따라 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예전에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대충 차려서 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먹는 식탁이지만 플레이팅을 한다. 위로받고 싶어서이다. 그러면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정성스러운 음식 한 상을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직접 만든 반찬은 아닐지라도 우아한 그릇에 담으면 격은 한층 더 높아진다.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담는 그릇이 ‘무엇’이냐에 따라 색다른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나는 어떤 그릇에 담겨 있을까 생각한다. 그릇은 일상에서 쓰임이 있고 편리함이 너하고, 더불어 아름다움까지 겸비하면 제 값어치를 한다. 조금 투박해도 작가의 따스한 손맛이 느껴지는 그릇처럼 말이다. 도자기의 독특한 질감과 색감은 흙과 유약에서 나온다. 나를 담은 그릇은 내 삶의 모든 순간이 흙과 유약이 되어 빚어졌을 터이다. 그 속에 세월의 풍파가 녹아있으리라. 도전과 실패,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세상의 이지를 깨달으며 내 삶의 레시피를 만들었으리라.
오늘 아침 광주요에서 사 온 도자기 그릇을 식탁에 올렸다. 왠지 정겹고 사랑스럽다. 시원스레 뻗은 직사각형의 그릇은 테이블의 중심을 듬직하게 잡아준다. 어떤 음식을 올려놓아도 꽤 멋스럽다. 각이 있고, 곡선이 있어 매력인 그릇과 컵들이 식탁 위 감상을 한 뼘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곳에 나를 담은 그릇 하나를 놓는다. 그릇마다 나름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나를 담는 그릇도 무엇을 담고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오늘 메뉴는 어떤 그릇이 어울릴까,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하는 것도 식탁에 마주 앉을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그날의 날씨, 기분, 메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그릇에 담는 정성은 식탁에 앉은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나를 담은 그릇에 빈 곳을 남긴다. 그 공간에 타인의 생각을 담고 세상 흐름의 변화를 담아 둔다. 나를 담는 그릇은 내 삶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하리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