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메신저는 가족·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 필수품이다. 직장에서도 메신저의 힘은 막강하다. 업무지시와 보고가 메신저에서 오가는 등 '스마트워크'가 보편화됐다. 그러나 너무 많아진 메신저(TMM·TooMuchMessenger)는 일상의 '족쇄'가 되기도 한다. <머니S>는 현대 직장인들이 메신저를 어떻게 사용하고 느끼는지 조사했다. 또 메신저를 이용한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기업용 협업툴을 소개한다. 퇴근 후에도 메신저로 업무지시를 남발하는 시대, 전세계 '로그아웃법'의 현황도 알아봤다. 일주일간 메신저 없이 2G폰으로 살아보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메신저는 상생의 도구일까 공멸의 도구일까.
[‘메신저 천국’의 역설] ④‘로그오프법’ 확산되는 지구촌
네트워크와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달로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머니S>가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69%가 일과 후에 메신저를 통해 업무 관련 메시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가량이 퇴근 후에도 일에 시달리는 셈이다.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로 온전한 휴일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지 오래다. 퇴근 후에도 수시로 울려대는 알람은 직장인에게 악몽이다. 퇴근 후 업무지시가 전혀 없다면 임금을 8.7%까지 덜 받을 용의가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메신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메일 등 실시간 연락수단의 발달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했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어디서나 ‘업무 대기 상황’을 유지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었다.
전세계 메신저 가입자 수는 2016년 기준 44억명이 넘는다. 와츠앱(10억명), 페이스북 메신저(9억명), QQ모바일(8억5300만명), 위챗(6억9700만명) 등 상위 4개 가입자만 해도 34억5000만명에 달한다.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다. 1996년 이스라엘의 벤처기업 미라빌라스가 PC기반 메신저 ‘ICQ’를 내놓은 지 20년 만에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메신저의 늪에 빠진 셈이다.
/사진=로이터
◆로그오프법 확산되는 세계
스마트폰이 발달하기 시작한 2010년대 들어 상황은 더 악화됐다. 메신저가 일상을 파고들면서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발생했고 근로자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영국 데이비드 루이스 박사는 “여러 상황에서의 스트레스 강도를 측정한 결과 휴일에 직장 상사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것이 번지점프를 하거나 배우자와 싸우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준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일과 생활의 균형 증진과 근무시간 단축,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장시간 노동과 과밀노동, 가정생활에의 간섭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국립보건안전산업연구원(INFR)도 “이메일, 메신저 등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기업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결근, 병가, 사직, 해고 등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혁명의 나라’ 프랑스가 칼을 빼들었다. 프랑스는 2017년 1월 세계 최초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일명 ‘로그오프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일과 휴식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를 24시간 일하게 만드는 행태를 방지하는 걸 골자로 한다. 노사는 근무시간 외 연락에 대한 사내규칙을 협의해야 하며 근무시간 외의 연락에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로그오프법 도입을 ‘자유·평등·박애’에 비교하며 극찬했다.
로그오프법 발효 후 프랑스 기업들은 퇴근 후 연락을 제재하는 방식을 제도화하거나 기술적으로 메신저의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도입 중이다. 세계적인 타이어기업 미쉐린은 지난해 로그오프법 관련 노사합의문을 작성해 별도의 원격연결 제어시스템을 통해 스마트폰, 노트북, PC 등으로 업무시간 이외에 접속한 건수를 파악해 한달 5회 이상일 경우 해당 직원에 제재를 가한다. 처음 적발 시 구두 경고, 2회 적발 시 인사조치를 취하고 세번째 적발되면 외부 기관에 고발한다.
정보기기 사용 자체를 제한하는 기업도 있다. 프랑스 최대 통신사 오랑쥐(구 프랑스텔레콤)는 직원에게 각자 디지털 기기 사용량을 점검해 표로 만들도록 하고 지나치게 사용시간이 긴 직원은 경고한다.
미국 뉴욕시도 지난해 말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조례안으로 추진 중이다. 조례안은 10인 이상의 기업에 적용되며 근무시간 외에도 연락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종업원이 이에 답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골자다. 답장을 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적발되면 1회에 약 500달러의 벌금이 기업에 부과되며 불법적인 해고의 경우에는 종업원을 복직시켜야 하며 종업원이 입은 손실을 전액 보상하고 2500달러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업무시간 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제정한 ‘스마트워커 보호법’을 고용계약에 명시토록 했고 독일도 퇴근 후 연락하지 않는 문화가 확산 중이다. 독일 다임러사는 2014년부터 휴가 중인 직원에게 보낸 메일은 자동으로 삭제되도록 해 직원이 마음껏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다른 독일 기업 폭스바겐은 자체적으로 근로시간 종료 30분 이후에는 회사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메신저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차단하며 ‘과로사의 나라’ 일본도 노동기준법 개정을 통해 퇴근 후 상사가 업무상 연락하는 것을 금지했다.
◆국내 ‘카톡금지법’ 3년째 제자리
국내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을 추진 중이지만 힘을 얻지 못하는 형국이다.
2016년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근로시간 이외에 메신저를 통해 근로 지시를 내리는 행위를 막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검토보고서를 통해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타당하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집행 가능성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2017년에는 연결을 끊을 수 없다면 추가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모두 환노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을 줄이면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은 깨진 지 오래”라며 “퇴근후 연락을 차단하도록 강제한다면 기업의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노무사 A씨(35)는 “한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업무량은 줄지 않았는데도 근무시간만 줄어 퇴근 후 연락이 늘어난 것”이라며 “기업이 추가 고용 등을 통해 업무를 배분하지 않는 이상 정부의 ‘카톡금지법’이 퇴근 후 연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적은 해외에서도 카톡금지법이 시행 중인 만큼 국내 정치권도 조속히 관련 법안에 대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