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낡아빠진 책과 만났다
체코작가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었다>
"보후밀 흐라발"의 작품이었다. 몇 장을 펼치니 낡은 책은 내용을 예시하는 메시지와도 같았고,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읽고는 가져와 다시 "보후밀 흐라발"과 만났다
지하실에 처박혀 삼십오 년째 폐지압축기 노동자인 주인공 한탸 그는 이차대전중 분서들이나, 왕립도서관 인장이 찍힌 귀한 책들과 만나곤 한다
그러면서 헤겔이나 칸트, 니체, 노자,
휠덜린등이 남긴 사상과 이미지들을 사탕을 빨듯 자신의 뇌로 공수하여 원하지 않게 학자가 된 지경이다
자신의 사상이 진짜인지
책 속에서 본 사상들이 진짜인지도 모를 만큼
그의 생활은 책과 함께한다. 그것도 그의 면도칼도 녹여버리는 압축기와 함께, 그러면서 그는 하늘도 부조리 인간도 부조리하다며, 별이 총총, 가슴에는 도덕이 총총, 이라는 아름다운 말, 칸트를 위해 별이
잘 보이는 옥상으로 향하고, 프로이센 왕실도서관의 수많은 장서들이 전리품으로 판정되어
짐칸에 가득 실려 킬로그램당 1코루나에
팔려가는 기차역에서 한탸는 한없이 운다.
그는 파괴행위에 깃든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주의깊게, 끔찍한 광경을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한탸, 그는 이미 부조리이다.
사실 그도 파괴행위의 일등공신 아니던가
그의 삶은 이미 책이 정복했다.
허무가 페이지마다 장악하고 연민이 받혀준다.
책들이 끝없이 말을 하고
생쥐들은 책을 갉아먹으며 말을 한다.
하수구에서는 쥐들이 영역다툼으로 늘 전쟁 중이다. 압축기 속으로 함께 빨려 들어가는
어미쥐와 새끼쥐들, 한탸는 부조리라는 말로 거든다.
그토록 숭배하는 철학자들을 깔아뭉개는 일로
먹고 살며 주위의 죽음들과 마주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는 그의 절망을 확산시키지 않는다.
은퇴하면 외삼촌의 정원에 압축기를 놓고 새 삶을 꿈꾸는 한탸는 거대한 압축기를 보게 되며
지하실에서 사장에게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부조리에 저항하던 자신을 떠올리는데, 현대식 시설을 갖춘 폐지처리장에서 두 젊은이는 날렵하게 일을 처리하며 콜라를 마신다. 저항은 끝났다
잘 길이든 육체와 마음이 부패를 모르며 부패될 것이다
이번 휴가에는 그리스로 갈거라는 젊은이들의
말을 들은 한탸는 자신의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그리스가 한번에 갈수있는 곳이란 상대성에 환멸과 고독을 느낀다. 구식의 압축기는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의 저항도 끝이다.
압축공 한탸도 이제 필요없다.
그는 수많은 인물들과 생쥐들을 함께 압축하던
압축기속에 앉아 늘 자던모양으로 몸을 동그랗게 만다. 젊은 한때 그를 스쳐간 이름도 모르던 집시여인을 떠올린다 기억의 마지막 에너지는 오래전
연놀이하던 몽환을 헤집고 이름을
찾아내며, 그가 지금까지 함께했던 작가들과의
동행을 행동에 옮긴다.일론카 물론 그녀도 함께다.
압축기의 초록불을 누른다.
쇠도 녹이는 압축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끝이 시작이다. 문학이 주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이제는 당신이 들어갈 차례다.
*보후밀 흐라발은 이 책을 쓰기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말을 남겼다.
그와 동시대를 영위한 밀란 쿤데라가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것과
달리 그는 그의 책들이 금서로 분류되었음에도
조국 체코를 떠나지 않고 체코어로 글을 썼다.
**보르헤스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이 쓰인 날부터
우리가 읽는 날까지 흘러간 모든 시간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신연옥>
첫댓글 <너무 시끄러운 고독>
함께 책을 본 듯 귀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수고에 감사합니다.
보르헤스의 명언을 마무리로 인용,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이 밤이 더욱 고즈넉해지며 감동입니다.
홀로 가는 듯한 밤길, 그러나 결코 외롭지 않은 책 속의 길, 앞서 걸으시는 선생님의 등을 봅니다. 마음이 먼저 환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