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보산장 지나면
유혹하는 추어의 냄새
고부간 맛보는 추어탕엔 이 십 여년 정이 섞여
새까만 머리엔 어느덧 흰서리 내리고
호박꽃 시들듯 키가 줄어든 시어머님
작은 고추 달랑거리며 달려다니던
주인집 꼬마녀석 마당 한가운데
오줌을 싸놓더니 박수를 친다
귀여운 손주녀석 재롱에
입이 귀에 걸리는 주인할머니
키가 몇자나 됨직한 소나무들
건너편에서 이 광경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솔내음 속에
초가을 바람 서늘히 담겨있어
구월 추어맛은 더욱 맛깔스럽다
3. 평사리
낮은 언덕가 푸르게 펼쳐지는 대숲 길
염산 반아리 구장터 내음이 거기 있네
내 고향 숨결이 거기있어
이렇게 반가운가
그런데 늘어나는
새 목재로 단장되는 저 건물은
왜 저렇듯 낯선 건지....
4. 한가위
시댁 가는 길
뉘 집 울 너머 담쟁이 넝쿨엔
어느새 빠알갛게 가을이 내려앉고
멀쑥 발돋움하는 저 들국은
노오란 웃음으로 반기는 듯
함평천지 들어서면 나비들의 물결
담벽마다 화려한 꽃들의 향기에
춤 추는 나비 나비들
가을 쑤시 밭 서숙 밭에도
가뿐한 나래 짓 물결이 이네
내 맘 한가위 맞아
나비의 나래 빌려
푸르른 창공 날아 볼까
고향 못 찾는 지친 사람들 우로
화알짝 화알짝 날아 볼까
그래,
올 가실 풍성한 한가위 맞아
자식학비 밑천 말리는
저 농부내외 흐뭇한 손길 우로
살며시 살며시 날아 볼까
신의 빛줄기 흠뻑 담은
저 농익은 표산마을
너른 들판 금빛물결 우으로
나비처럼 그렇게
훨훨 훠얼훨
화안히 화안히 날아보리라
(서평) 보물을 찾아 나선 양치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이 책을 읽는 프롤로그(머리말)부터 나는 작가가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을 했었다. 수선화의 전설이 담긴 나르키소스의 묘사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또다른 시각에서 본 결론,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라고 감탄을 터트리는 연금술사. 나는 이 짧은 글에서 모든 사건은 반전을 거듭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관점에서 현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세상을 자유로이 여행하길 원하는 한 젊은 양치기가 똑같은 이상한 꿈을 꾸면서 시작되는 모험기이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해몽을 잘한다는 노파를 찾아가게 되고 보물을 찾으면 십분의 일을 달라는 노파에게서 시원한 해답을 듣지 못한다.
실망한 산티아고는 꿈 따위는 다시는 믿지 않으리라 결심하는데, 우연히 광장에서 만난 신비한 노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랍인 차림의 자신의 이름이 멜기세덱이라는 노인은 자신이 살렘의 왕이라고 소개하고는, 현재 산티아고가 소유한 양의 십분의 일을 주면 보물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다음날 여섯 마리 양을 가져간 그에게 노인은 나비가 행운의 표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금 흉패 한가운데 박혀있던 우림과 툼밈이란 흰색(아니오)과 검은색(예)의 보석을 하나씩 빼내 건네준다.
산티아고는 열여섯 살 때까지 신학교를 다녔는데, 그의 부모는 신부가 되어 시골 집안의 자랑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는 라틴어와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했으나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다. 이것을 안 아버지는 들에서 주웠다며 스페인 금화가 든 주머니를 주며 양을 사서 세상을 맘껏 돌아다니라고 했다.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라면서......
아프리카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아랍어에 두려움을 느끼는 가운데 자신과 비슷한 젊은이가 고국어인 스페인어로 말을 건네오자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가르쳐달라며, 우선 낙타를 사야한다는 그를 믿고는 그만 돈을 맡겨버린다. 결국 장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찾던 산티아고는 포기하고는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지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모험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산티아고는 크리스털 가게의 상인을 만나게 되고 그곳의 일을 돕게 된다. 크리스털 상점의 새로운 진열대로 매상을 더욱 올린 산티아고는 크리스털에 차를 담아 손님들에게 권해 더욱 손님을 끌었다. 아프리카 대륙에 열한 달 하고도 구일이 지난 어느 날 피라미드로 떠날 것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나이든 상점주인은 “마크툽”(종교적인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란 뜻)이라며 축복해준다. 산티아고는 상점주인의 머리카락이 늙은 왕의 머리카락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진열대 일을 도와주었던 과자장수의 미소 또한 노인의 미소와 닮았다는 것도.
그는 창고에서 한 영국인을 만나 그가 연금술사를 찾으러 여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래전 이백살이 넘은 유명한 아랍인 연금술사가 유럽을 방문해 고체로 된 ‘철학자의 돌’과 만병을 치유하고 늙지 않는‘불로장생의 묘약’을 발견해 어떤 금속이든 금으로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영국인은 파이윰까지 가는 이 청년을 지루함을 달래주는 말동무로 삼기로 했다. 산티아고를 업신여기던 영국인은 주머니에서 우림과 툼밈을 꺼내 노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우림과 툼밈이 귀하다고 말한다.
도중에 그들은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에 들렀는데, 그곳에는 삼백여개의 우물과 오만여 그루의 야자나무가 있었고, 종려나무 숲 한가운데에는 알록달록한 천막들이 흩뿌려진 듯 점점이 박혀 있었다. 주민들은 전통적 계율에 따라 손님들에게 가장 좋은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이후 만나게 된 연금술사는 그에게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임을 알려주었다. 연금술사는 자신 만든 금을 분배하고는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개는 그 사실은 모르고 있을 뿐이지.”라며 작별을 고했다.
모래언덕에 올라섰을 때, 산티아고는 뛰는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보름달과 사막의 순결한 흰빛으로 환히 빛나는 신성하고 장엄한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금술사는 만물의 언어를 알고있고 납을 금으로 변하게 하는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막에서 계속 살고 있었으며, 자신의 학문과 기술을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산티아고의 눈에 풍뎅이 한 마리가 눈물이 떨어진 자리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집트에서는 풍뎅이가 신의 상징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피라미드가 그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는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온 몸으로 느꼈다. 바로 자신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그는 버려진 낡은 교회 앞에 다다라 삽으로 무화과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앞에는 스페인 옛 금화가 가득 담긴 궤짝이 놓여 있었다. 눈부신 보석들과 황금마스크, 갖가지 보석으로 세공된 조각상들은 아주 오래전 잊혀진 옛 왕국의 유물로 보였다.
그는 배낭 속에서 우림과 툼밈을 꺼내 궤짝 속에 넣는다.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늙은 왕에 대한 기억 때문에도 그 돌들은 그에게 소중한 보물이었다. 아프리카로부터 오는 바람, 레반터(leventer, 동부 지중해의 강한 동풍)가 불어왔다. 그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향기, 그것은 마치 파티마 그녀의 부드러운 입맞춤과 같았다.
나는 이 작품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풍경의 묘사가 마음에 든다. 사막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흰 달빛과 회오리를 일으켜 도시를 모래에 파묻히기도 한다는 모래폭풍이며, 야자나무 숲과 우물들. 이러한 소재들은 오랜 여운을 남겨주며, 이 소설의 내용은 이슬람의 코란에 나오는 내용들과 비슷하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나누어지고 그들의 끝없는 싸움들의 영향이 바로 아프리카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속에 나오는 도적들이 쳐들어오는 광경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그들의 전쟁과도 흡사하다. 이슬람의 성경과 기독교 성경은 내용이 다른 곳이 많은데, 많은 독자들과 기독교인들도 자칫하면 이 소설의 내용과 같다고 혼동할 수도 있으리라.
현재의 이슬람국가의 상황은 이 작품과 달리 아름다운 환경이 아니다. 일부 지도자들은 어린 여자아이를 강제로 후처로 맞이하는 등 일부다처제가 일반화 되어 있고 결혼식에서도 웃음소리가 새어나가면 잡아가는 등의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십자가 전쟁 때의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나쁜 인상이 지금도 아프카니스탄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에 많이 남아있어 기독교인이라 말하면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결코 반겨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기독계에서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십자군에 대한 이미지를 여성들이 씻어주고, 특히 사회에서 아직도 억압받고 짓눌려있는 이슬람 여성들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치유해주자는......
그러나 반면 이 책의 연금술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는 많은 금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능력을 지녔지만 금을 고루 나누어줄 뿐 아니라 또다른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모습, 그리고 욕심 없이 숨어사는 그 겸손하고 초연한 태도는 나를 숙연케 했다.
마크툽! 우리의 인생에 있어 각자의 마크툽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코란; 이슬람교의 교주 마호메트가 받았다는 알라의 계시에 관한 내용. 30편 114장으로 되어 있으며, 151년 오스만시대에 편집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