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總理(총리)가 되기 위해서 먼저 구덩이에 던져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창 37:18~20)
◾부제목: 구덩이와 監獄(감옥)은 總理(총리)로 올라가는 사다리라는 것을 아는가?
🔯 구덩이(형님들)→감옥(보디발 장군의 아내)→애굽의 총리(바로 왕)
🎶 고난이 유익이라(미가엘 1341장)
1. 네짐이 무겁고 힘이드냐 주를 보라
고난이 유익이라 주님 말씀하시네
나의 가는 그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소망이요
쓰라린 아픔뒤에 축복이 있다네
2. 고난은 인생의 참의미를 알게하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 할 수있어요
나의 가는 그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고난이 크면은 영광도 크는 법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 할 수없다네
3. 고난의 십자가 보배이며 능력이라
주님을 따르는자 십자가 져야만하리
나의 가는 그길을 오직 주가 아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
좁은길 가는자 생명길 영광의길
십자가 진 후에 면류관 있으리
◾본문 말씀에 대한 質疑應答(질의응답)
(1) 구덩이에 빠져도, 하늘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을 아는가?
(2) 구덩이는 축복의 마중물이라는 것을 아는가?
(3) 구덩이는 변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가?
(4) 요셉이 구덩이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총리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아는가?
(5) 구덩이를 보지 말고, 구덩이를 예비한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가?
(6) 구덩이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아는가?
(7) 사별의 구덩이와, 이혼의 구덩이와, 자녀의 구덩이와, 질병의 구덩이와, 사업의 구덩이와, 상처의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8) 요셉과 바울도, 구덩이 때문에 전화이복이 된 것을 아는가?
(9) 구덩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바라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장소라는 것을 아는가?
(10)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덩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前)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者)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惡)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의 형님들은, 요셉을 죽이는 계획 뿐만이 아니었다. 요셉을 살인하기 위한,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 성경을 보면, 꿈은 곧 고난이다. 열정은 곧 고난이다. 꿈을 꾸는 자와, 열정적인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
✔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The Passion"은, 열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는 고난이다. 패션(Passion)은 열정이면서, 또한 고난이다.
요셉은 꿈을 꾸는 자였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렸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 요셉은 너무나도, 억울한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요셉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꿈을 잃지 않았다.
✔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매 순간마다 기억했다. 이는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요셉을 일으켜 세우는 힘의 원천이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기 때문에, 별로 감동이 없이 읽을 때가 많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이 되어 보시라. 기막힌 사연이 아닌가?
비록 배가 다른 형님들이지만, 피를 나눈 형님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애굽으로 팔려가서, 노예가 되었을 때에, 얼마나 비참하고 참담했을까?
✔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날마다 사랑을 나누자고 유혹을 했다. 그 유혹을 거절하다가, 모함을 해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 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한 댓가로, 감옥에서 벗어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얼마나 낙심되고 절망스러웠을까?
마침내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 같은 꿈을 주신 이유가 드러났다. 바로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계보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 야곱을 비롯한 70명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 덕분에, 애굽의 고센 땅에 와서, 7년 동안 계속된 흉년을 피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어린 시절 요셉이 꾸었던, 꿈의 실현을 통해서, 비로소 현실이 되고 있었다.
✔ 하나님이 요셉을, 천하대국 애굽의 총리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이는 바로 고난이었다. 꿈꾸는 요셉이 애굽의 궁중보다, 먼저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요셉이 던져진 장소는, 애굽의 궁정이 아니라, 뜻밖의 장소인 구덩이였다.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만일 요셉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시기를 하는 형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꿈꾸는 사람들은, 시련을 통해서 성장을 한다. 시련을 통해서 준비를 한다. 뜻밖의 장소였던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었다.
✔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을 경험하게 된다. 고난을 통해서, 형통한 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 또한 인생의 신비요, 믿음의 역설이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구덩이와 감옥에 들어간 요셉은, 완전히 망한 것이었다.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결단코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형통의 복과, 출세의 복이 임하고 있었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 하나님의 인도는 신비롭다. 하나님의 인도는 아이리니하다. 하나님은 어두운 구덩이와 감옥에서,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시켰다.
✔ 하나님은 자신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사람의 고난을, 결코 낭비를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심지어, 사람들의 실수마저도, 결단코 낭비를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요셉이 가는 곳마다, 좋은 만남을 예비해 주셨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만남을 갖도록 주선해 주셨다.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간수장을 통해서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 우리는 요셉에게서 배워야 한다. 요셉은 하나님이 머물게 한 구덩이나 감옥에서, 원망이나 불평이나 자포자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만나도록 예비한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섬겼다. 감옥은 요셉에게 있어서, 정치를 배우는 로스쿨 학교였다.
요셉은 모든 환경과, 수많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모든 상황과 모든 환경을 통해서도 배운다.
✔ 때로는 밝은 곳에서보다는, 어두운 곳에서, 더욱더 잘 배울 수 있다. 지저귀는 새는 노래하는 법을, 어둠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낮은 곳으로 내려 가도록 하신다. 우리는 높은 곳을 좋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요셉처럼 구덩이와 감옥에 던져 넣으신다.
✔ 구덩이와 감옥이다. 가장 낮은 곳이다. 춥고 외롭고 어두운 곳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이다.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누군가가 건져 주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기가 막힐 수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내려 가도록 하실까?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덩이와 감옥으로 빠뜨리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구덩이와 감옥에는, 신비로운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낮은 곳을 싫어 한다. 그러나 사실은 낮은 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감추어져 있다. 역전과 전화이복의 도약대가 기다리고 있다.
✔ 낮은 곳에 내려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경험을 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 신비한 역사가 감추어져 있다.
낮은 곳에 내려 간다는 것은, 바닥으로 추락을 한다는 것이다. 포기하기 직전까지, 바닥에 내려가는 경험은, 삶에서 가장 비참한 경험이다.
왜냐하면 바닥은, 삶의 막다른 골목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은 곳이다. 실패를 한 곳이다. 세상 사람들이 멸시하고, 비웃는 곳이다.
✔ 요셉의 생애는, 어느 기간 동안 계속 구덩이와 감옥이라는, 낮은 곳으로 내려 갔다. 요셉이 구덩이와 감옥에 던져진 것은, 장차 그가 경험할, “낮은 곳”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우리는 바닥으로 내려갈 때에, 이제는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방심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바닥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바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바닥이 깊은 만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가는 것이다.
만일에 요셉이 구덩이와 감옥이라는 바닥까지 내려 가지 않았더라면, 결단토 천하대국인 애굽의 총리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시이소와 같과 그대와 같은 것이다. 시이소와 그대가, 높이 올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가장 깊이 내려 가야 한다.
🔥 주기철 목자의 주님을 위한 고난
일제치하 시절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주기철 목자를 일본의 순사들이 체포를 하려고, 주일날 예배를 집례하고 있는 교회로 찾아 갔다.
주기철 목자는 그 당시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계셨다. 일본 순사가 주 목자를 잡으려고, 교회로 찾아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한 성도가, 서둘러서 주 목자에게 소식을 전했다.
※ 그러나 주기철 목자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설교를 할 때에 이렇게 말씀을 전하셨다
▪예수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예수님을 대면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위하여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예수님께서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과 영광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라고 물으시면, 내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하겠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오는 십자가를 내가 지금 피했다가, 이 다음 예수님께서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라고 물으시면, 내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일본의 순사들에게 끌려간 뒤에,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결국에는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를 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다버리고,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머리를 둘 곳도 없이, 매우 가난하게 사셨다. 온갖 고난과 환난과 핍박을 받으셨다. 최후에는 치욕의 십자가에서 순교를 하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숭고한, 고난과 핍박과 희생과 십자가는, 고난 주간이나, 부활절 예배 때만이 아니라, 우리의 매사와 만사의 삶에서 우리도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능히 피할 수도 있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크신 고난을 감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