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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결미의 처리기법과 필요 요건 - 한국수필 2008. 10월호 지상강좌-하재준
봉황앉음터 추천 0 조회 51 08.10.21 03:56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수필 2008. 10월호 지상강좌

 

결미의 처리기법과 필요 요건

하  재  준

 

 

  수필에서의 결미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제목을 잘 붙이고 서두에서 흥미를 유발시키며 전개에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내용으로 짜였다 할지라도 결미가 잘못 된다면 작품 전체가 부실해지고 만다. 
이른 봄, 밭에 씨를 뿌렸을 때 소담스러운 새싹이 돋아나면 농부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기에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며 가꾸어 간다. 그런데 결실기에 와 보니 기대와는 다르게 탐스러운 열매는커녕 쭉정이가 되었다든가 엉뚱하게도 가라지였을 때 거기서 오는 실망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미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독자는 한편의 수필을 다 읽고 난 후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젖어든다든가, 아니면 마음 속에 재미있는 글로 남아 또다시 수필을 읽고 싶다는 등 그의 매력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한 작품은 대부분 결미처리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문예지에 발표된 몇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작품의 결미를 말하려 할 때 우선 서두와 전개부분의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결미부분이 어떻다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곧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 부분을 대략 살펴본 연후에 결미부분에 대하여 밝혀 놓았음을 미리 말해둔다. 

  전윤권 「사랑의 기쁨」이란 작품에서 결미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목원에서 문우들의 모임이 있었다.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마침내 자분자분 봄비가 내렸다.” 이렇게 도입부분을 시작한 작품이다. 전개에 와서는 봄밤에 내리는 빗속에서 고교시절의 첫사랑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침내는 그 그리움이 마음에 일렁이었고 이윽고 가슴을 파고드는 「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의 노래로 이어졌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남았네.”의 노랫말과 그 곡이 심연에 울려 퍼진다. 라고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심정을 단적으로 들어내 놓고는 순진무구한 사랑의 사연과 함께 결미에 이른다.

  내 마음속에 잊혀졌던 그 노래「plaisir d'amour(사랑의 기쁨)」가 이 밤 봄비를 타고 다시금 살아남은 것은 왜일까. 무슨 환영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욱하고 솟아오른다.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까. 첫사랑은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한다지만 애련함이 노래에 실려 가슴 깊게 파고든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포켓에서 다급하게 나를 깨운다. 
“여보, 어디야? 밖에 비가 오는데 우산 갖고 있는 거야?” 

  사춘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 일을 심리적 갈등의 구조로 형상화시켜 독자로 하여금 잠시도 작품에서 눈길을 뗄 수 없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결미에 이르도록 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히 돋보인다. 
  포켓에서 다급하게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지난 날의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온다. 그러한 반전의 계기는 독자로 하여금 은은하게 여운을 남기게 하는 결미다. 더욱이나 맨 마지막에 “여보 어디야? 밖에 비가 오는데 우산 갖고 있는 거야?”라고 하는 말로 종지부를 지었다. 그로 인하여 작가의 가슴에도 지금 비가 내리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의 심정은 물론 지난날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게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 보게도 한다. 이럴 때 작품의 폭은 한없이 넓혀져 문학의 진가를 드러내게 한다.

김은자의 「팔뚝베개」작품 중 결미를 살펴본다. 이 작품의 도입은 
“밤늦은 시각 시부(媤父)의 제수거리를 장만하려 오랜만에 식구들과 장을 보러 갔다.(중략) 문득 누런 황토베개가 눈에 들어온다.(중략) 이리저리 살피니 아이 엄마가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 

로 시작된 작품이다. 전개부분에서는

“남편의 팔을 제대로 베보지도 못하고 그를 보냈기에(중략) 새로 사온 베개를 떠올리며 사뭇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댁처럼 흥분된 하루였다.(중략)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품에 안아보니 어린 아이처럼 쭉 가슴에 안겨든다. 이제 자기 전 이 베개와 씨름하는 것에 재미들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얹어보기도 하고 발목을 올려보기도 하고 다시 목 아래 넣어본다. 야곱은 들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홀로 잠들었다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중략) 그는 꿈으로 인도받아 모든 어려움을 이긴 이스라엘 영웅이다.(중략) 허전한 내 마음을 이 베개는 어떤 꿈으로 인도해 줄 것인가.” 

라며 결미에 이른다. 

처음 사용했을 때에는 불편하던 것이 차츰 익숙해져 간다. 너무 편해 일어나기기 싫어져 나태하게 만드는 그런 폭신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마치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려주는 듯 탄탄하게 힘을 주는 이 팔뚝베개에 애착이 붙기 시작한다. 마치 젊은 사내의 힘을 느끼게도 하는 이것을 누구에게 권해볼까. 꼭 필요할 성 싶은 한 친구를 떠올리며 혼자 웃어본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근본 의도는 무얼까?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잘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듯이 이 베개를 베고 잔 나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 허전한 이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일까. 아니면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일까. 이 두 부분 중 한 부분을 빼내면 주제가 좀 더 선명하게 독자에게 다가서지 않을까. 물론 이 작가는, ‘수필은 어디까지나 나상(裸像)문학이요, 또 진솔하게 표현해야만 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이같이 쓰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작가의 심정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한 작품이 완성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정작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결미에 통괄적으로 요약정리 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영희의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란 작품의 결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서두는 “가방을 꾸렸다. 마음만큼이나 너절한 옷을 개켜 넣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선 서늘한 바람이 돌아 나온다. 그래, 가자. 무엇에 더 미련을 두랴.” 라는 말로 이 작품을 연다. 그리고 집을 나가려는 딸을 다독이면서 적극 말리는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들었던 가방을 힘없이 내려놓는다. 라는 내용으로 전개부분이 시작되어 아직도 철없이 나풀대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는 내용과 함께 결말에 이른다.
 
“지난 결혼 25주년, 나무를 사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누구도 모르게 못질을 하고 락카 칠을 하며 몇 날에 걸쳐 야무지고 튼튼한 책장을 만들어 내게 선물한 남편, 은혼식을 기념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이 선물에 몇 배나 행복하다. 책을 꺼내 들 때마다 남편을 만지듯 책장을 애무한다. 
살아보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우리 속담에 “비가 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마치 이 작품의 결미를 읽고 나니 언뜻 그 속담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 작가가 내게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은 도입 부분에서 작가가 심리적 갈등으로 가정파탄에 직면한 것을 전개 말미에 와서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하므로 마침내 감사로 바뀐다. 그리고 결미에 와서는 사랑으로 승화시킨 그 심리변화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같이 자기 성찰을 통하여 희망으로 끝을 맺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미라 여겨진다. 수필은 자성의 문학이요, 고백의 문학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런데 맨 마지막 행에서 “살아보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가 2002년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제목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나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란 말이 여전히 대중에게 정상적인 의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그 말을 맨 마지막에 써 강조하려한다면 독자들에게 이 글이 작가의 감정만을 쏟아 놓은 작품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럴 때 이 작품이 수필이 아니라 신변잡기 즉 잡문으로 오인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말을 빼거나 다른 말로 바꿨으면 한다. 
결미의 처리기법은 이 외에도 있다. 작가가 결미에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수법이다. 피천득의 <은전 한 닢>이 이러한 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요?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이 글의 결미는 사건의 심리묘사와 행동묘사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할 수 있겠다. 
이상에서 몇 작품을 통해, 결미의 예를 살펴보았다. 필자는 꼭 이러한 결미여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겠다. 그러나 잘 된 부분과 모순된 결미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미래의 수필이 보다 나은 문학작품으로 독자에게 환영을 받으리라고 여겨지기에 여기서 지적했을 뿐이다.

하재준_ 1986년 <한국수필>로 등단. 고등학교 작품교과서 작품등재 작가. 노산문학상 외 4회 수상. 수필집 󰡔��웃고 사는 마음󰡕�� 외 4권. 수필이론서 「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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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0.21 03:57

    첫댓글 필자 하재준 선생님은 전윤권 회원님의 작품 <사랑의 기쁨>을 모범 예문으로 인용,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 08.10.23 11:30

    청목 선생님의 사랑의 기쁨을 읽어보고 싶네요..

  • 08.10.23 12:17

    정 말 ~~~ 읽으면서 " 아, 좋다 . " 하고 읽다가 다 읽고도 "정~말 좋네 " 한 작품이었습니다.

  • 08.10.24 01:14

    청목선생님 회원작품란에 다시 올려주십시오.

  • 08.10.30 14:06

    예문 좋지요. 선생님 올려주세요.

  • 08.11.03 10:05

    부족한 작품입니다. 등단 작품을 화요수필에 싣는다니까 그 때 봅시다.

  • 08.11.04 08:35

    바둑의 끝내기처럼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글도 훨씬 더 빛나게 되는군요~~ 명심하여 글 읽고 공부 많이 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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