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화 투매 속출… 美연준 “英 탓에 세계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강한 달러’의 충격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신흥국 통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준(準)기축통화인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까지 추락하면서 연쇄적 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27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연례 포럼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관련 지표가 세계 무역 성장률 하락세를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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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글로벌 증시가 크게 하락하는 등 시장이 공포 장세로 돌아선 가운데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주요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등 위기가 닥쳤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6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른 차원의 위험 영역에 진입했다. 강한 달러와 치솟는 금리가 (경제의) 초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연준發 ‘킹달러’ 공포, 글로벌 침체 우려 키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21일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촉발된 침체 공포는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강타하고 있다.
최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감세 등으로 돈을 풀겠다고 지난 23일 발표한 뒤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한 것이 유럽의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전년 동월 대비)에 달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영국의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더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부양책 발표 후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까지 하락하고, 투매가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 악화 우려 등 충격이 번지자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26일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텐데, 이를 막겠다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한다면 경기 침체가 덮칠 수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6일 유럽의회에서 “2023년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내년은 분명히 어려운 해가 될 듯”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 상황도 심각하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유로 대비 달러 환율이 20년 만에 1달러 아래로 내려가는 등 유로화 가치가 급락 중이다. 경기가 식어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일본의 엔화와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1990년대 말에 이어 ‘제2의 외환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금융정보 업체 네드데이비스리서치 자료를 인용해 “최근 글로벌 경제가 심각한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글로벌 경기 침체 확률이 98%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 확률이 이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와 코로나 확산 초기인 2020년 두 번뿐이었다.
◇킹달러는 미국에도 악영향 가능성
달러 강세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미 주식 전략가는 보고서를 통해 “달러 강세는 역사적으로 금융과 경제의 위기를 초래했다. 2023년 초까지 미국 S&P500 지수가 (현재보다 20% 떨어진) 3000 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시장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연준은 도자기 매장에 들어온 황소와 같다”며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금융 시장을 깨부술 것”이라고 했다.
‘킹달러’를 만들어 낸 미 연방준비제도의 일부 인사들도 우려하고 있다. 래피얼 보스틱 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영국의 감세 조치 등이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할 것이라는 공포를 초래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경제는 미국의 성장에 매우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