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 무너지면 노동자의 생명도 없습니다.
정승기(한국타이어 노동자)
지난 10년간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아우성치고 있지만, 한국타이어 노동자에게는 애초부터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62년 설립된 노동조합은 반세기가 다되어가도록 조합원 총회를 단한차례도 개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노조위원장을 조합원이 아닌 소수의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하고 있습니다.조합원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조합비 내는 일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이 꽃잎처럼 떨어져갔습니다. 한솔이 솔벤트 인줄도 모르고 목장갑이 흠뻑 젖도록 마구 사용하고, 고무흄, 분진, 온갖 화학약품 등 유해물질을과 과도한 직무스트레스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노사상생’이니 ‘家社不二’니 하며 노동자를 한 가족처럼 여기겠다는 회사는 사망한 노동자의 일가친척과 처가까지 샅샅이 뒤져 가계도를 작성했습니다.
생후 20일쯤 입양, 경찰관, 군인, 종교, 음주여부, 회사친분관계, 체형, 질병, 재산상태, 성격 등 언론방송으로는 보도하기 부적절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 누구도 사망한 노동자의 일가친척까지 뒷조사할 권한은 없습니다.
가계도를 작성한 것을 백배 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유족을 위해 작성했다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더 비참합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온 도급사 관리자는 병실에서 백지사표를 받아갔습니다.
삶의 의지가 꺾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끝내 생명줄을 놓고 말았습니다.
유가족이 공장 앞에서 시위를 해도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던 관리자와 동료는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외면할 뿐이며, 노동조합도 분향소는커녕 근조리본도 지급하지 않아 동료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2007년 특별근로감독결과 총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을 적발했고 이중 183건이 산업재해를 은폐한 것입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는 현장에서 다쳐 치료 후 복귀하면 안전모와 완장을 차고 안전관리자와 함께 현장을 순회해야하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사망사건은 회사가 노동자의 건강권을 중시하고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편에서 활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입니다.
2005년 대전지방노동청이 한국타이어 현장노동자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자, 한국타이어 노동조합 집행부와 한국노총 대전지역본부는 노동청에 몰려와 설문조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고, 결국 노동청은 설문조사를 포기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 대전시당에서 회사와 노동조합의 방해를 뚫고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수많은 부당노동행위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찾아냈지만, 노동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노동청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설문조사를 근거로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었더라면 많은 노동자를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설문조사를 방해했던 자들, 그리고 이들이 방해한다며 설문조사를 포기했던 대전지방노동청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얼마전 법원은 천문학적인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을 저질러 기소된 한국타이어 및 연구소소장과 대전공장, 금산공장 공장장등을 전원 유죄로 인정하고 사망노동자의 책임이 회사에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아무리 언론 방송이 보도하고 법원조차 회사의 잘못을 인정해도 한국타이어는 아직까지 사과나 반성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인 헝가리공장에서의 노동탄압으로 한국타이어 사장이 헝가리 국민들에게 사과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억압적으로 탄압하면 노동자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의 뒤에서 한숨과 눈물로 지새우는 가족의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타이어 노동조합이 노동자가 아닌 사측을 위해 존재하는 한 한국타이어 노동자와 가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조합을 민주화 시켜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길입니다.
노동조합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한국타이어 사망사건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회사와 노동조합은 사과공고문 한 장 붙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타이어 노조민주화 투쟁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국타이어노동자 집단사망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회의”에 감사드리며, 언론방송사에서도 노동자의 피 끓는 절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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