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파주 운정에 계시는 한 선배와는 반세기 이상을 같이 마신 사이다. 과장을 좀 보태 언제 어디서든 아무리 마셔도 자세라든가 말씀이 흐트려지지 않는 분으로 정평이 나 있는 선배다.
그 선배와 어제 모처럼 을지로3가의 한 오래 된 순대국집에서 한 잔을 했다. 다른 한 선배 등 3명이 소주 세병을 마셨다. 나는 이즈음 그러는 것처럼 소주 딱 세 잔만 마셨다. 이런 저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운정 선배는 소주 한 병 반 정도를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술집을 나오면서 그 선배가 휘청거리는 것이다. 근처의 생맥주 집으로 옮겼을 때 이 선배는 횡설수설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곁 손님들의 눈치까지 봐야했다. 그러는 와중 이 선배의 말씀이 좀 자극적이다.
매일 소주를 서너 잔을 마신다는 것이다. 한 후배가 술 좀 덜 드시라며 ‘절주 잔’을 선물했는데, 그걸 그냥 둘 수 없어 그 잔에다 매일 소주 석잔 분량의 7잔을 마신다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고 있었다. 왜 그리 마시느냐 했더니, 그럼 딱히 무슨 할 일이 있겠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 선배와는 집이 같은 방향이다. 나는 3호선 대곡역에서, 선배는 대곡역에서 경의선으로 환승하는 운정역이다. 휘청거리고 횡설수설하는 선배가 과연 댁까지 무사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선배는 대곡역까지 가는 3호선 안에서도 산만한 취기를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어떤 중년 분의 눈썹이 하얗고 긴 것을 시비(?) 삼는가 하면 앞에 선 두 젊은이의 대화에 되지도 않은 말로 끼어드는 바람에 그걸 또 차단하느라 젊은이들을 달래야했다.
문제는 선배가 과연 내릴 곳에서 내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취기로 잠이 드는 바람에 내릴 곳에서 못 내려 소동을 벌여 내가 형수로부터 핀잔(?)을 받은 적도 있었다. 대곡역에서 일단 둘이 내렸다.
그리고 경의선 환승역까지 함께 갔다. 선배의 취기는 가라앉지 않고 여전했다. 환승구에서 일단 일산까지 가는 열차에 태워드렸다. 그러면 일산서 다시 갈아타야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같이 타고 갈까하다가 내심 한번 시험(?)이나 해보자는 얄궂은 심사에 그냥 혼자 태웠다.
그리고 나는 대곡역에서 상황을 체크하면서 대기상태로 있었다. 15분 쯤 지나 전화를 했더니, 선배는 일산역이라고 했다. 15분 쯤 뒤 문산가는 열차가 올 터이니 그걸 타라고 했고, 운정역에 내려 전화를 달라고 했다. 선배는 씰데없는 걱정 말라고 했는데, 마치 나를 조롱하듯 다독이는 듯 했다. 취기는 여전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도착했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내심 불안했지만, 여차하면 내가 뒤따라 그 노선을 따라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좀 느긋하게 기다렸다. 20여 분 지나 내가 다시 전화를 했다. 선배는 운정역에 이미 내려 있었다. 그럼 빨리 댁으로 가시라고 했더니, 담배 한 대 피우고 가겠다고 했다. “그럼 오늘 상황은 끝입니다. 단디 들어가시기를…” 내가 그리 얘기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대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대곡역을 나와 어둔 길을 걸어 집으로 오면서, 술에 관한 한 이제 가까운 사람들이 한 둘 내 곁을 떠나고 있구나 하는 좀 슬픈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같이들 어울린 자리에서 내가 함께 많이 마시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면 될 일이었다.
어제 마셨던 을지로3가 순대국집이 꽤 괜찮았다. 한 골목 귀퉁이에 자리잡은 ‘농가’라는 옥호의 이 순대국집은 가게이름 만큼이나 노포의 분위기가 물씬한 맛집이었다. 오소리감투와 머릿고기 등 안주들이 여늬 순대국집의 그것들에 비해 어떤 차별성을 주고있었는데, 그 특징은 노포 이미지에 비해 아주 고급지게 장만해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집 순대국의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