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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시죠? 추석 연휴는 잘들 보내고 잘 일상으로 복귀하셨나요?
그 기념이라고 하기는 뭣하고, 여행의 아쉬움과 퍽퍽해지는 감성을 달래기 위한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별, 감성적인 키워드가 가득한 책, 그 속으로 떠나봅시다.
도서명: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저자: 이명현
*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사이트 아이프리 도서관 순수과학 코너에 데이지 전자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몇 있다. 바람, 하늘, 꽃, 구름, 구슬, 이슬, 종소리, 방울, 오로라, 눈, 햇살, 바다, 달, 숲, 그리고 ‘별’이다. 이 가운데 단연 별이 1등이다.
어둠 안에서 반짝이는 별, 그것은 사람에게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나는 시각장애인이라 별이 보이지 않는다. 뭐, 요즘은 미세먼지와 공해 탓에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별을 볼 수 없다고들 하지만, 볼 수 없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고 별을 좋아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런 이유에서 이 책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을 들었다. 제목이 낯익은 것도 한몫을 했다. 저 유명한 시,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같은 제목이 아니던가.
- 사진 설명: 까만 밤하늘 배경으로 별무리가 화사하게 펼쳐져 있다. 어떤 성단인지 혹은 무슨 성운인지는 모르겠다. 마치 벨벳에 자잘한 비즈를 흩뿌려 놓은 것 같다.
이미지 출처: 《이명현의 별 헤는 밤》 - 7번째 이미지
별을 헤아리며 쓴 별의 별 이야기,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우주에 별이 무수히 많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랴. 내가 그 우주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 우주를 인식하고 그 우주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우주를 경외하고 그 우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내게는 우주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주와 나와의 관계는 내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결코 잊지 않았으면. 내가 먼저 있고 우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먼저 있어서 비로소 내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천문학자가 쓴 수필 시집이다. 천문학자인 만큼 당연히 ‘별’이 소재로 들어간다.
까만 밤 별을 헤아리며 했던 저자의 생각, 인생 경험, 연애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일화가 짧은 수필로 엮어져 있다. 그런데 감상적인 부분이 두드러져서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 앞에는 저자가 인용한 여러 가지 시도 나오는데, 그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목에 나왔던 윤동주의 <별 헤는 밤>도 포함해서 말이다.
천문학자들은 가끔씩 ‘천문학은 문학이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단다. 저자가 책에서 했던 ‘천문학자와 일반 대중을 이어주는 것은, 시인들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과 맥락이 같다. 별자리 이야기나 신화가 아닌 분명히 천문학을 주로 다루고 있고, 대중 과학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카테고리를 나눈다면 ‘자연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은 책.
저자 이명현이 천문학자니까 좀 어려운 내용이 있지 않을까, 책을 처음 펼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렇지만 내용은 과학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었고, 그가 살아온 삶과 그 속에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물 흐르듯 별에 관한 토막 과학 이야기도 따라온다. 그러나 과학은 부록이란 인상이 강하다. 천문학이긴 한데, 천문학은 소재일 뿐 별의 별 이야기,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는 저자 이명현의 ‘연애 실습 1’ 관련 에피소드였다. ‘봄의 대곡선’ 대목에서 나온다.
따뜻한 봄철의 어느 날, 파릇하게 젊은 시절의 저자는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누나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상상 속의 여자 친구에게 고백하기 위한 연습 상대가 필요하다는 깜찍한 핑계를 만들어 밤중에 그 누나를 불러냈다고 한다. 당시 아마추어 천문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그는 별자리를 알려준다며 ‘봄의 대곡선’을 손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했단다.
여기서 잠시, 별자리 과학 상식 하나. 북두칠성, 목동자리의 아크투르스, 처녀자리의 스피카를 부드럽게 이은 선이 봄의 대곡선이다. 이건 시각장애인인 나도 아는 상식. 엣헴~!
좌우간 그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고, 목동자리의 아크투르스와 처녀자리의 스피카로 넘어가면서 둘의 고개가 돌아가고, 자연스럽게 누나가 저자와 가까워지고, 품에 안기는 구도가 이루어지도록 상황을 연출했단다. 비록 고백은 하지 못했지만, 짝사랑하던 누나를 원없이 안아보아서 행복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고, 나중에 대학생 때 이 ‘연애 실습 1’을 실전에 써먹어보려고 했다가 살짝 실패했다는, 그런 경험인데 말이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잠시 데이지도서 파일을 닫고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니 더욱 그랬다. 아,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이명현 천문학자님, 이런 거 써도 되나 싶지만, 왜 이렇게 귀여우세요! ㅎㅎㅎ!
물론 현실은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별이 만나면 그 현실은 드라마보다 낭만적이게 되는 모양이다. 젊은 저자가 그렇게 깜찍한 연애 작전을 짜다니 말이다. 연애 세포가 말라비틀어진 나라도 좀 두근거릴 것 같은 느낌의 별 쏟아지는 한 장면이었다. 아니, 별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한 장면이었다.
또 ‘메시에 마라톤’이란 표제를 달고 있는 M16과 M60에 얽힌 해프닝도 재미있었다. 저자가 고등학생 때 아마추어 천문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천체 관측회에 난데없이 군인들이 총을 겨누면서 들이닥쳤단다. 대체 별 보는 학생들 모임에 군인이 왜?
알고 봤더니 학생들이 천문 관측하며 읊어댄 메시에 마라톤 m30이니 M31이니, 또 M16과 M60이니 했던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군대에서는 최소한 M16과 M60이 죄다 무기, 즉 총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중얼대는 게 수상쩍게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천문학 관점에서 보면 M16은 독수리 성운을, M60은 처녀자리 은하에 속한 타원은하를 의미하는 거였다. 그리고 M1부터 시작해 M110까지 이어지는 ‘메시에 천체 목록’이기도 하고 말이다.
혜성을 찾는 데 몰두한 프랑스 천문학자 메시에가 혜성과 일반 별무리인 성단과 성운 등을 분류하기 위해 만든 ‘메시에 천체 목록’이 빚은 ‘웃픈’ 오해였다. 아래만 보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뜬 별은 그야말로 낯선 별세계였을 터였다. 아는 것만 보인다고, 오해가 생겨서 군인들이 별무리 명칭을 무기로 착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만큼 슬픈 이야기도 또 없지 싶었다. 그만큼 보는 세계가 한정적이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지금도 예비군 용도로 현역 중인 자동소총 M16과 대량 살상 무기인 기관총 M60만 있는 세상이라니, 무기 M16과 M60이 전부인 인식이라니...... 그 얼마나 삭막한 현실이란 말인가?
독수리 성운 M16에서 별이 태어나고, 처녀자리 은하에 속한 타원은하 M60이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는데, 지상에 우리들은 상대를 향해 자동소총 M16을 겨누고, 기관총 M60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조준하고 있다.
저자 이명현은 책에서 별 M16과 M60을 알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평화가 깃들길 바란다. 나도 이 글을 보면서 같은 마음을 품는다. 총보다 별이 몇 배는 더 세상에 이로우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데는 총보다 별이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별을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 머리 위에서 빛나고, 어둠에서도 반짝이고, 한없이 넓은 우주에서도 제 빛을 잃지 않는 별. 그에 비하면 인간은 그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별을 보다 보면 자연히 겸허함을 배우게 된다.
그 하고 많은 별 중에 푸른 초록별 지구에 태어나 만나게 된 인연은 또 얼마나 귀한 것인가. 저절로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사진 설명: 실하게 뜬 보름달을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하얀 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이 꼭 그리스 신화의 사냥과 달빛의 여신 아르테미스 여신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이명현의 별 헤는 밤》 - 23번째 이미지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문득 그리워진다면, 그것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일 테고, 우리들의 고향이 저 별들의 뜨거운 내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별 내부에서 만들어진 원소들이 바로 우리 몸을 이루는 그 원소들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런 천문학자들의 자세한 설명보다 이런 시인의 시 한편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시인이야말로 별과 천문학자와 보통사람 우리들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터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내가 천문학에 관한 막연한 동경과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별에 대한 과학적인 상식은 좀 많이 빈곤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별에 대한 토막 상식은 물론, 감성까지 충전할 수 있어서 플라레타리움 중앙에 누워서 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천문학 전문가가 DJ가 되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를 들으면서 말이다.
끝으로 인상에 남는 구절은 인간이 별에서 왔다는 대목이었다.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는 요소를 우리들 인간도 가지고 있고, 그 물질은 전부 우주에서, 즉 별에서 왔다. 그리하여 우리들 인간도 별에서 왔다는 결론이다. 문득 별이 보고 싶어질 때 우리는 유전자 깊은 곳에 잠제된 본능으로 고향을, 우리의 근원이 된 별을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별을 동경하는 것도 영 이상한 습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천문학자가 그렇다잖아, 인간은 별에서 왔노라고.
- 사진 설명: 분홍과 푸르름과 연한 녹색의 빛너울이 오로라로 너울거리고 있다. 그리고 사선이 아닌 수평으로 혜성이 하얀 빛의 선을 그리며 오로라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왜 이 혜성은 사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수평을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오로라의 빛 너울 가운데 용케 별똥별이 빛나는구나 싶다.
이미지 출처: 《이명현의 별 헤는 밤》 - 4번째 이미지
끝으로 이 책에 아쉬운 점을 하나 적겠다. 그것은 바로 그림 및 사진 설명이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에는 온갖 천체 관련 그림이 담겨 있다. 오로라와 혜성을 담은 사진, 자유의 여신상과 풍성한 만월이 담긴 사진, 별의 사진 등.
일반 사람이 아닌 시각장애인에게 이런 시각적 이미지 자료는 설명 없이는 이해가 곤란한 영역이다. 그런데 데이지도서 제작 과정 중, 이런 해설이 디테일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솔직히 이미지 제목 빼면 그림 및 사진 자료는 인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각장애인 재활통신 사이트에서 데이지도서 파일을 입수한 후 압축을 푸니, 도서 파일과 함께 40여 개의 이미지 파일이 나왔다. 그것도 제목도 없이 이미지 1, 이미지 2, 이미지 3, 뭐 이런 식으로 된 파일이었다.
이러니 내가 잔존 시력이 있는 시각장애인 약시라 해도 데이지도서 파일과 대조하며 이미지 파일을 보기에는 어려웠을 것 같다. 하물며 깜깜이인 이 상태에서는 오죽하겠나.
가령 위에 발췌한 이미지 4번 파일, 오로라와 혜성을 예를 들어 보자.
나는 궁금했다. 오로라가 그렇게 예쁘다는데, 대체 무슨 색으로 빛의 너울이 형성되어 있는지. 또 궁금했다. 혜성은 어떤 방향으로 오로라의 너울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는지.
이런 시각적 매체가 독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은 데이지도서 제작 시, 그림 및 사진 설명을 좀 신중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 3퍼센트라도 좋다. 나도 대중이 느끼는 시각적 그림․사진 정보를 교류하고 싶으니까.
PS. 이번 서평 감상문에 발췌한 사진은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의 데이지도서 파일이 출처입니다. 일반 묵자책에도 똑같은 이미지가 실려 있겠죠.
데이지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특수매체도서입니다.
첫댓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밤 풀벌레 우는 뜰에서 별을 헤는 밤을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