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기설(緣起說). (2) 불교적 존재의 법칙
연기법은 나의 존재를 위해서 타(他)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요,
그 역(逆)도 성립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기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이다.
서로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 skt. idam-pratyaya-ta)이 있다는 말이다.
상의상관성이란 존재와 존재 사이에 인연화합에 의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다시 그를 발생시킨 원인을 포함한 다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단순히 결과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원인이 되고 연이 돼 다른 존재에 관계하게 된다는 말이다.
상의상관성이란 말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나타내는 술어이다.
이러한 상의상관성에 대해 상응부경전(쌍윳따 니까야/잡아함경)에는
연기의 공식으로 알려져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유명한 연기송(緣起頌) 또는 차기송(此起頌)이라 하는 것이다.
• 此有故彼有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 此起故彼起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 此無故彼無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도 없고,
• 此滅故彼滅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동시적(同時的) 의존관계를 나타낸 것이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라고 하는 것은
이시적(異時的) 의존관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연기의 공식에는 무(無)시간적, 논리적 관계는 물론,
시간적, 생기적(生起的) 관계까지 고려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불교 술어로 표현하면 연기의 계기성(繼起性-시간성)과 구기성(俱起性-논리성)이다.
즉, 연기의 발생 원리는 계기성과 구기성의 양면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인과론적인 종적(從的)관계로의 해석은 계기성(시간적)에 착안한 것이고,
인연론 중심의 논리관계로의 해석은 구기성(논리적)에 착안한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와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와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의존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연기법이란 한마디로 존재에 대한 ‘관계성의 법칙’이요,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며, ‘원인, 결과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생물은 서로 기생하는 존재… 결국 함께 살아간다.
넷플 드라마 '기생수'(연상호 감독)의 주제이다. 모든 생물은 상호의존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연기의 원리에 의하면,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생겨났거나
또는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된다.
그리하여 생성 - 변화 - 발전 - 소멸의 연결고리를 이루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존재를 성립시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변하거나 없어질 때 존재 또한 변하거나 없어져버린다는 말이다.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그것은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홀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영원한 것도, 그리고 절대적인 것도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독립⋅영원해서 불변하는 것이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연기사상의 핵심이다.
이러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시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 - 제행무상(諸行無常) - 시간적 상의성
• 공간적 개념에서 바라본 연기 - 제법무아(諸法無我) - 공간적 상의성
또한 연기법은 전변설(轉變說)과 적취설(積聚說)의 치우친
존재론을 깨뜨리고[파사(破邪)],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한
구원의 논리로서 제시된 것이다.
즉, 우주에는 일체 삼라만상을 전변해내는 어떤 선험적(先驗的)인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제법(諸法)]은 서로 연관돼
동시에 일어난 것이라는 뜻이다.
• 적취설(積聚說)은 우주의 많은 원자들의 결합ㆍ집적에 의해
다양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다원론적 세계관, 다분히 유물론적인 주장이다.
붓다 당시 신흥 사문인 자이나교(Jaina敎) 계통의 주장이다.
• 전변설(轉變說)은 적취설의 반대말이다.
이 우주를 신 혹은 브라만(Brahman)이 창조하고, 절대적으로 섭리한다는 주장이다.
삼라만상 모두가 신에게서 우러나와 현상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바라문교 계통의 가르침이다.
그러니 위의 적취설이나 전별설 모두 불교의 12연기법에 배치된다.
붓다는 연기법으로써
우주 창조의 중심이 초월적 신(超越的神)이라는 전별설을 부정하고,
인간 즉 살아있는 존재의 편임을 해명했고,
다시 존재 그 자체의 허구성[제법무아(諸法無我)]을 설해
적취설을 부정함으로써 삶의 무한한 해방된 공간을 깨우쳐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
또한 연기의 뜻을 깨달아 공(空)을 체득하는 것만이
불생불멸하는 생명의 도(道)에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자아의 회복임을 강조했다.
헌데 여기서 붓다께서 12연기의 가르침을 제시한 근본취지를
재확인해야 하겠다.
12연기는 원래 객관적인 실재의 발생과 소멸을 규명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었다. 즉, 존재론을 규명하기 위한 교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연기론은 괴로움의 현실을 해명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붓다는 형이상학자도 자연과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괴로움의 극복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러한 이유에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경로를 드러냈을 뿐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라든지,
또는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라고 하는
이 단순한 원리가 고(苦)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설하신 것이 12연기법이다.
즉, 12연기란 괴로움의 현실이 전개되는 과정을
12단계로 분석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연기가 설명된 본래의 목적은
어떠한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고(苦)가 생기고
또 어떠한 인연조건(因緣條件)에 의해서 고를 멸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인생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과 길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연기법이
고(苦)와 고의 소멸을 해결하기 위한 교리로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전별설과 적취설에서 봤다시피
후대에 내려올수록, 특히 근래에 와서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제 현상을 설명하는 존래론에도 이 연기법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두에서도 말했다시피 연기법(緣起法)은
이제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모든 현상계의 이치를 밝히고 있는
교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 번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연기법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苦)’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점을 망각할 때 12연기는 자칫 현상계의 구조를 밝히는 형이상학적 논리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