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신경외과 학회장을 찾았다.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수술 기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고자 위함이었다. 10년 이상 지방에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에, 시설 좋은 대학에 와보니 그동안 내가 많이 뒤쳐져 있었던 것은 아닌가, 주눅이 들었다. 게다가 벗겨지고 빠진 흰머리를 가지고 젊고 유능한 의사들과 같이 견주려니 내가 cadaver(시신) 수술 실습 학회에 괜히 온 것 은 아닌가, 후회스러웠다.
첫날은 이론 강의였다. 자신감 가득 차 보이는 젊은 교수가 슬라이드 강의를 진행하였다. 나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수술적 경험을 쌓았나 보다. 뒤이어 외국의 한 의과 대학에서 온 역시 젊고 멋있게 생긴 교수가 최신 척추 수술 동향에 대해서 영어로 강의하였다. 학회장에서는 질문과 대답을 모두 영어로 해야한다. 기껏해야 초급 수준의 회화밖에 안되는 내가 그 강의 내용을 소화하기란 불가능했다.
역시 후회 막심이다. 괜히 내가 학회 등록을 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강의에다가, 젊은 의사들과 견주기도 쑥스럽고, 나이들어서 뭘 더 배우려고 내가 이런 고생을 했는가. 학회 등록비가 아까왔다. 내일의 cadaver(시신) 수술 실습은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내려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큰 맘 먹고 이렇게 어렵게 올라왔는데, 한번 끝까지 해 보자, 마음 먹고 인근 이발소를 찾아서 염색도 하고, 머리도 단정히 깍았다. 아무래도 머리를 짧게 깍으면 좀 더 젊어보일 것 같았다.
다음날, 달라진 내 모습에 흠칫 놀라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태연하게cadaver(시신) 실습에 임했다. 조별로 인원을 나누어, cadaver 1구를 놓고, 양 쪽에 3명씩 6명이 배치가 되어 실습에 임했다. 어제 강의를 한 교수들이 수술 시연을 먼저 보이고 이어서 차례대로 실습에 임했다. 은연중 수술 시연을 하는 교수들과 그 학회에 참석한 다른 의사들과 나를 자꾸만 비교하게 되었다. 개중에는 나보다 더 나이 들어보이는 의사도 눈에 띄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병폐다. 비교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낳는다. 우월하면 교만하고 열등하면 비굴해진다. 평소에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한 순간에 열등감 속에 빠진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긴 서로 다른 감정이지만 언제든지 서로 뒤바뀌는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교 의식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득 cadaver가 놓인 옆 벽면에 이름이 잔뜩 적힌 A4 용지가 눈에 띄었다. 해부 실습실에 있는 cadaver들의 생전의 이름과 그 옆에 세례명이 적힌 명단이었다. 그 시신들은 모두가 가톨릭 기독교 신자들로서 생전에 의학 발전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몸을 내어 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몸을 앞에 놓고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을 따진 내가 부끄러웠다. 내 앞에 놓인 시신들과 벽면에 붙어 있는 그들의 이름을 번갈아 쳐다보며 수술포로 덮여 있는 시신들 앞에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신의 영혼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타인들과 비교하여 우열을 따지는 그 이면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기 몸을 내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내 한 몸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나는 여러모로 사회에 빚을 졌다. 155cm의 단신인 나는 병역 신체 검사에서 키로, 면제 판정을 받고 의대 진학을 위해 여러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하며 실력을 배양하던 그 순간, 나의 동기들과 선후배는 젊음의 가장 중요한 때를 나 대신 국토 방위를 위해,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몇 해 뒤로 미루어야 했다. 그들의 꿈을 영영 포기해야만 했을 이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내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실습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은 홀가분했다. 일차적으로 후회막급했던 학회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뿌듯했다. 값진 교훈을 학회의 cadaver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cadaver는 수술 술기뿐 아니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 귀중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