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는 신갈농협 서천지점장으로 전보발령이 나서 임지에서 근무 한지
몇일이 되었다.
얼마전까지 포곡농협 전무로 있을때 61세이상 65세까지의 조합원 해외견학
추진을 하다 전출된 관계로 하여 포곡조합장이 신갈조합장에게 본인의 동참
을 요청하였던바 동행 하게되어 이 글을 기록하게 되었다.
05.4.24(일) 오전 7시에 포곡농협에 도착하니 일행 70여명과 함께 정창진
조합장을 비롯한 관계직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인천국제 공항으로 출발했다.
행선지는 중국 북경이요 일정은 3박4일이다.
첯날 인천 영종도 공항을 이륙할때부터 본인은 어제 산에 갔다가 눈을 다처
오른쪽눈이 부어 계속약을 쓰고 있었는데 그 약이 무척 독했으며 엎친데 덮
친격으로 체해서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여러 일행이 근심했다.
기내에서 수지침으로 따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하였으나 북경에 내릴때까지
괴로움은 가시지 아니했다.
더욱이 중국대륙에 들어서자 강풍에 기체가 심하게 요동하면서 많은 사람들
이 멀미현상이 나서 고통스러워 했다.
아무튼 나의 첯 중국여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북경공항에 내리니 현지에 이미 가이드가 안내차 와 있었다.
아..!북경..!
북경은 연경이니 옛 연나라의 도읍이다
춘추전국시절의 제후국이니 삼천년 가까운 고도이며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
하고 순행을 할때 연태자 단이 창해역사를 시켜 황제를 주살하려다 실패 한
곳이 이곳 연경이며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룬대상이
바로 이곳 연왕 모용룡이였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아니 하랴!
창해역사는 우리 고조선의 인물이요 려왕 담덕은 우리민족사에 길이 빛나는
제왕이기에 이 중국 지나인들의 문화유산이 그져 위대하게만 보이지 않는바
이다
왜냐면,고구려,발해,백제가 망할적 마다 숱하게 많은 우리의 선조들이 끌려가
만리장성을 쌓고,노역에 동원되고 오랑캐와의 전쟁에 화살받이가 되어 죽어
갔기때문인것이다.
첯날 天壇公園(천단공원)을 들렸는데 이곳은 역대 皇帝(황제)들이 天祭(천제)
를 받들던 신성한 곳이였다 한다.
웅장한 경내 중앙에 석조물로 높다랗게 구축된 대위에는 圓球壇(원구단)이 이루어져
있었고 그대로 건물이나 지붕이 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 형국이였다.
과연 天祭(천제)를 받들수 있는자 천하에 天子밖에 또 있으랴
하기야 제후나 열후는 감히 하늘에 제사를 드릴수 없는 법이 있었다,그것이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의 어길수 없는 법도였다.
저녘에 오리구이로 석식을 한후 서커스 공연을 관람 했는데 과히 잘하는 수
준은 아니였다.
첯날 여장을 푼 호텔에서 내내 3일을 묶었는데 청화대학 계열의 호텔로서
이름을 " 淸華紫光國際交流中心 " (청화자광국제교류중심)이라 했다.
2인1실의 갈끔한 수준급의 객실을 받았는데 홍순만 이사와 룸메이트가 됐다.
비누는 제대로 녹지 않았고 샤워용 타올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첯날부터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밤늦도록 술을 마셨으나 본인은 피곤한 탓
에 12시경에 취침했다.
이틀째,4/25(월)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세면후 식당에 내려가 국내에서 가져
간 고추장으로 모두가 식사를 했다.
버스에 올라 明13릉을 관람 했다,이곳은 명나라 황제등 13릉을 모신곳이라
하는데 지하 30m 지경에 건설한 대규모의 석조왕릉이였다.
이 능은 명나라 4대 신종황제가 생전에 건설하였다는데 석실 중앙부분에 자
신의 관을 그리고 좌우 양편에 비를 안치하였다.
무협영화에서나 보았던 지하 석실의 요모조모 장쾌한 석조물들은 통로와 문
과 건축양식이 신비감을 더해만 갔다.
그 정교하고 어마어마한 역사를 어떻게 일으키고 아름답게 꾸몃던지 보는이
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였다.
결코 타지마할 묘에 견주어 손색없는 걸작이라 아니 할수 없다.
오후에는 만리장성을 구경했다.
북경주변에 있는 장성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 하는데 과연 허언이 아니였다.
만리장성...!
달에서도 보인다는 인간이 만든 구조물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건축물!
나는 오늘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가파르게 오르는 케이불카는 이따금 불어대는 강풍에 심하게 흔들렸고 천야
만야한 계곡은 한줌 같이 내려다 보였다
저 秦(진)나라 始皇帝(시황제)가 쌓기 시작해서 明靑代(명청대)에까지 무려 2천년을 내려오며 구축한 장성이라니 총연장길이 6,400km면 만리가 넘고도 남는다.
중국대륙의 서부 기련산 가욕관에서 출발 하여 하북성 산해관까지의 거리가
무릇 기하인가?
험준한 산과 협곡을 오르고 내닫고 등성이를 둘러치듯 펼처진 장성은 마치
혁혁한 무장의 기개를 보는듯했고 우뚝한 장대에서는 고대의 어느 장수가 장
창을 빗겨들고 대군을 호령하며 나타날것만 같은 감동마져 안겨주는 순간이
아닐수 업었다.
그 어마어마한 무게의 돌을 어찌 험한 산꼭대기까지 올려 갔을것이며 흙을구
운 벽돌 또한 현대의 건축공법에서도 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리고 이
어나가 장성을 양편으로 대를 만들듯 치를 형성하여 중앙통로를 군사들이 오
가며 전쟁을 수행할수 있게끔 설계되었단 말인가?
아아탕탕 험준한 산하는 말이 없고 다만 흰구름 머무는 저 등성이 넘어로
장성이 함께 구불구불 넘고 있는데 여기저기 산벗꽃이 피어 산성의 봄을 노
래 하는듯 했다.
장성을 내려오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찿을수 있을텐가?
다시 차에 오르고 알수 없는곳을 지나고 또 달려서는 어느 장대한 산협에
다다랏다.
산중턱을 바라보니 " 龍慶峽 " " 江澤民 "(용경협,강택민)이라 붉은 페인트 글씨로 바위에
쒸어 있었다,아마도 강택민 주석이 왔다가 휘호를 남긴것일게다.
그렇다 용경협에 온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5명씩 조를 짜서 낡을대로 낡은 다마스 차에 올라
용경협 땜 바로 밑에 다달았는데 협곡을 막아 유원지를 만든곳이였다.
땜 중하단부에 역시 가로 쓰인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비류직하삼천척,의시은하낙구천) 이라 하니 바로 이백의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의 한귀절이다.
아닌게 아니라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구만리 장천에서 은하수가 내려 꼿
힌듯 무지게를 발하고있었다.
용이 트림하듯 외형을 그럴사하게 만들어 땜위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장치
를 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타고 선착장에 다달아 유람선을 탓다.
전후좌우로 갂아지른듯 펼처지는 층암절벽의 산과 산.....
마치 시루떡을 칼로베어 치켜쌓듯 수직으로 산이 하늘을 가린 그곳에는 그저
경이로운 절경이 물을 품고 있을뿐이였다.
일찌기 무릉도원이 이런것이였을까...해질녘 까마득한 절벽위로는 소나무 위
태롭고 천길 아래 물위로는 한쌍 원앙이 자태를 드러낸다
거기에 또 한귀절의 아름다운 글귀가 나를 반기었다.
가로되, "靑山喜迎八方客" (청산희영팔방객)이라 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말일까보냐
청산은 그저 팔방의 나그네를 즐겨 맞는다네 하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壁空(벽공)에는 아스라히 산새가 날고 기화이초는 때를 만난듯 피어 났더라
불게핀 도화꽃은 선계를 암시하듯하는데 푸른물이 여울지는 음지에는 아직도
殘氷(잔빙)이 허였구나.
물새는 쌍으로 날고 배가 지나는 물놀이 따라 원앙이 내려 앉는데
굽이굽이 협곡사이로 젊었던 한때를 넘나드는 환상을 떠올리노라면
서늘한 물기운에 차워진 가슴을 커피로 데워야만 했다.
그저 재주가 모자라고 필력이 딸려 글로 옮길수가 없을뿐이로세
구구절절 경탄의 감탄사를 무슨수로 다 옮길것이며 그 빼어난 산수의 경관을
어찌 다 필설로 그려낼수 있단 말인가?
선계가 따로 없음이요 무릉도원이 예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식당에 다달아 그저 짜릿한 한잔의 고량주로 가슴을 추수려야만 했다.
셋째날 4/26(수) 역시 조식후 8시에 차에 올라 이화원으로 갔다.
이화원은 청나라 말기 함풍제의 후궁이며 동치제의 생모인 서태후의 궁전이
다 가히 일세를 풍미한 여걸답게 제국을 뒤흔든 요녀답게 이화원을 꾸미고
단장한 면면을 살펴보면 나라의 재산을 기울였을만큼 호화롭고 사치로웠다.
그는 호수와 전각과 수목과 꽃의 세계에 온만가지 귀한 보물을 수중에 넣고
천하를 농단한 여장부였다.
그는 저 당나라 측천무후에 견주지는 못하더라도 비슷은 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녀 역시 자금성 정문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였다 하니 천하에 법
도가 그래서 있다 함이다.
중식후에 천안문 광장엘 갔다.
과연 거대중국의 한복판 도읍의 광장다왔다,이곳이 천안문 사태의 현장이다
농협에서 조제해서 가져온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렸더니 중국공안이
발견하고 제지하여 현수막 없이 촬영을 해야만 했다.
천안문에는 예의 사진과 같이 모택동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이는 그가
국공대전에서 승리, 장개석정부를 무너트리고 공산당정권을 세운데서 비롯
함인데 그 주도세력이 농민군위주였기에 부패무능한 장개석 정부에 비하면
중국인의 우상이였을것이다.
그들의 혁명가인지 알수없는 노래가 계속 확성기로 울려퍼지고 있어 무척
시끄럽게 느껴졌다.
대로의 지하도를 지나 자금성....!
명나라로부터 청나라가 도읍했던 황성이요 천년고도이다.
하기야 북경 자체가 춘추전국시절때부터 연나라의 도읍 연경이였으니 유서
깊은곳이기는 하나 천하를 지배하는 황제가 도읍한 것이 明과靑으로줄잡아
6백년 황도라 할것이다.
모든 궁문이 자체의 성벽을 이루고 높이가 무려 2장은 넘는듯했고 그위에
성루와 각루를 지어 그 위용이 혁혁하기만 했다.
그러한 성문을 몇개를 지나노라면 그 어마어마한 위용에 가히 타국의 사절
들이 기가 질리고도 남음이 있었을것이다.
정문에 속하는 남문 즉 午門을 지나 太和門,太和殿,中和殿,保和殿이 일렬로
건축되있었는데 그 웅장함과 문화적 가치에 놀라웠다
거의 모든전각의 현판명칭에 청나라 문자가 같이 쓰여 있었으나 알수 없었다
황제의 후원경에 속하는 내정을 지나면 神武門이 북문이다.
이 북문을 지나면 곧바로 해자(방어용 인공호수)가 나타나고 큰길건너 산꼭
대기에 우뚝한 정자가 지어졌는데 부처님을 모시었다.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자금성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중앙부에는 부처님이 가사를 걸친 모습으로 모셔져 있었는데 쉴새없이
중국인들이 참배를 하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좌우로는 백송과 향나무가 수없이 심겨져 그 아름다움의
고전적 가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삼삼오오 기념촬영도 했고 중국인 싸구려 장사꾼들의 어거지 상행위도 재미
있게 격어 보았다.
다시 귀환 버스에 올라 발맛사지로 하루의 피곤을 풀고 석식후 숙소로 왔다.
넷째날(4/27) 오늘은 귀국 하는 날이다.
북경공항으로 가는길에 이름이 기억않나는 어느 해저 수족관 시설에 들려
관람하고 공항에 도착,비행기를 탓다.
인천 영종도공항에 내려 짐을 챙겨 나오니 정창진 조합장님,이성규 상무,
김현구 주임등이 영접을 나와 있었다.
꿈 같은 나흘간의 여정이였다 2008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에 대한 나의
논평은 너무나 냉혹 하기만 하다.
분명코 중국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수도 북경에 일방적으로 내부는 귀따가운 노래소리,자동차와 자전거
가 함께 달리는 무질서,명승지와 식당마다 좁고 지저분한 화장실,거리의 부
랑아와 장사꾼,관리들의 부패를 그대로 둔채 세계제전을 벌이겠다는 그따위
발상이야 말로 도둑놈의 심뽀 아니겠는가?
진정 중국이 中華(중화)를 부르짖고져 한다면 보편타당한 예절을 지켜야 할것이고
그만한 투자 또한 아끼지 말아야 할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우리는 88올림픽때 너무 많은 희생을 한것만 같아 씁쓸하다.
앞으로 포곡농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아울러 포곡면민의 무사안녕을
비는 마음 간절하다.
첫댓글 오랫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