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의 산업
▲강화풍물시장
산업구조의 비중은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하는 3차산업이 가장 크다. 지역내 총생산(GRDP)은 2018년을 기준하여 1조 6492억 원으로 인천시 전체 GRDP의 1.9%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옹진군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금융·보험업(3121억 원)이 20.6%로 가장 크고, 이밖에 제조업(13%),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10.1%), 부동산업(9.7%),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8.8%), 건설업(8.4%) 등의 순이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5745개로 인천시 전체 사업체의 2.8%에 그쳐 옹진군 다음으로 적다. 사업체별로는 숙박·음식점업체(1739개)가 30.3%로 가장 많고, 이밖에 도소매업체(22.3%),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체(10%), 제조업체(7.3%), 운수업체(6%) 등의 순이다. 지역별로는 전체 사업체의 약 41%에 강화읍에 집중되어 있다. 전체 사업체 가운데 개인 사업체가 82%를 웃돌고, 종사자 5인 미만의 사업체가 약 88%를 차지한다.
사업체 종사자는 2만 579명으로 인천시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1.9%에 그쳐 옹진군 다음으로 적다. 업종별로는 숙박·음식점업 종사자(4144명)가 20.1%로 가장 많고, 이밖에 제조업(5.9%),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14.1%), 도소매업(12.6%), 교육서비스업(8.4%),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6.6%) 등의 순이다.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60% 이상이 강화읍(41.7%)·길상면(11.2%)·선원면(10.3%)의 3개 읍·면에서 종사한다.
상업 활동은 예로부터 5일장 형태의 정기시장을 통하여 이루어져 조선시대에 강화 지역에서 매달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남문외장 또는 천교장이 열렸고, 교동 지역에서는 부내장(5일·10일)이 열려 미곡과 어염(魚鹽), 면포와 돗자리 등의 물품을 거래하였다. 또한 정묘호란 직후 강화에 구관소(句管所)가 설치되어 관청에서 직접 어염을 판매하는 등의 상업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시장이 지역 상거래의 기반이 되었으며, 상인들의 조합인 강화산업조합이 197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정기시장은 1970년대까지 강화장을 비롯하여 6개소가 운영되었으나, 도시화와 유통구조 변화 등의 요인으로 점차 쇠락하여 상설시장으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강화군의 전통시장은 강화읍 갑곶리의 강화풍물시장과 남산리의 강화터미널시장, 신문리의 강화중앙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열리고, 강화풍물시장에서 매달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5일장(강화장)을 병행한다. 이밖에 길상면 온수리의 공설시장에서 길상장이 5일장(4일·9일)으로 열린다. 2018년 도소매업의 부가가치는 652억 원으로 10개 군·구 가운데 옹진군 다음으로 적다.
농업
오랜 간척사업으로 확충된 농경지와 논농사에 적합한 토양·기후 등의 환경을 겸비하여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1970년대까지 전 인구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할 만큼 농업중심 지역이었으며, 산업화·도시화 등의 영향으로 경지면적과 농가 인구, 식량작물 생산량 등이 감소하는 추세이나 인천시의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경지면적은 1만 2075ha로 군 전체 면적의 29%를 웃돌고, 인천시 전체 경지면적의 약 66%를 차지한다. 논밭의 비중은 논(1만 159ha)이 84%를 웃돌아 벼농사를 위주로 한다. 농가 인구는 1만 4932명으로 군 전체 인구의 21%를 웃돌고, 인천시 전체 농가 인구의 약 54%를 차지한다. 농가 인구는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1995년(3만 3407명)과 비교하면 55% 이상 감소하였다. 2018년 농업을 포함한 농림어업의 부가가치는 약 705억 원으로 인천시 농림어업 총부가가치의 28%를 웃돌아 서구 다음으로 비중이 크다. 식량작물은 미곡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밥맛이 좋고 저장성이 뛰어난 강화섬쌀이 특산물로 꼽힌다. 속이 노랗고 당도가 높은 강화속노랑고구마도 강화를 대표하는 농특산물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채소류는 달큰하면서도 겨자향의 인삼 맛이 나고 칼슘·칼륨·철분 등의 미네랄이 풍부한 강화순무가 대표적 특산물로 꼽히며, 오이·수박·토마토·고추·마늘 등도 주요 작물이다. 과실류는 강화섬포도와 강화섬배가 특산물로 꼽힌다. 이밖에 강화인삼은 본래 개성의 고려인삼이 원산인데,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개성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재배하면서 강화의 대표적 특산물이 되었다.
수산업
군의 전역이 섬들로 이루어져 예로부터 수산업은 농업과 함께 생업의 기반이 되었다. 어로(漁撈) 활동은 해수면어업을 위주로 하고 내수면어업도 이루어져 새우를 비롯하여 조기·가무락·숭어·도미 등을 어획하며, 갯벌어장에서 나는 강화갯벌장어가 수산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어항(漁港) 시설은 어촌어항법에 따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석모도의 어유정항을 비롯하여 지방어항 6개소(선두항·장곳항·청포항·주문항·창후항·후포항), 어촌정주어항 7개소(건평항·더러미항·분오리항·서두물항·선두4리항·황산도항·초지항), 동검항을 비롯한 19개소의 소규모 어항이 있다. 어가(漁家) 및 어가 인구는 2018년을 기준하여 해수면어업 329가구 829명, 내수면어업 11가구 24명으로, 인천시 전체 어가 인구의 약 18%를 차지한다. 어선은 동력선 347척과 무동력선 14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톤수는 1321t으로 인천시가 보유한 어선 총 톤수의 약 9%에 해당한다. 수산물 어획고는 1155t으로 인천시 전체 어획고의 4.4%를 차지한다.
축산업
경사가 완만한 산지가 많고 수초가 풍족하며 수도인 한양과 가까운 입지 조건으로 인하여 조선시대에 제주도에 버금가는 마장(馬場)으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진강산에 진강목장, 길상산에 길상목장, 북일곶에 북일목장, 신도에 신도목장, 매도에 매도목장 등이 설치되어 말을 위주로 하여 소도 함께 사육하였으며, 일부 목장에서는 염소나 양도 사육하였다. 오늘날에도 강화의 축산업은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활발하다. 2018년을 기준하여 주요 축종인 한육우는 579가구 1만 7736마리, 젖소는 58가구 2264마리, 돼지는 34가구 3만 6822마리, 닭은 716가구 60만 9402마리를 사육한다. 인천광역시에 편입된 1995년과 비교하면 주요 축종의 사육 가구 수는 35~96% 가량 감소하였으나, 규모화·전업화가 이루어져 한육우는 가구당 12마리에서 31마리로, 젖소는 26마리에서 39마리로, 돼지는 77마리에서 1083마리로 늘어났다. 지역 특산물인 강화사자발약쑥으로 사육한 강화섬약쑥한우가 축산 특산물로 꼽힌다.
임업
산림면적은 2017년을 기준하여 1만 7743ha로 군 전체 면적의 약 43%, 인천시 전체 산림면적의 약 44%를 차지하여 10개 군·구 가운데 가장 넓다. 이 가운데 국유림이 1272ha, 공유림이 1200ha, 사유림이 87%를 웃도는 1만 5469ha를 차지한다. 임상(林相)별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입목지가 1만 5871ha로 산림면적의 약 90%를 차지하고, 이 가운데 활엽수림이 가장 많은 7117ha, 침엽수림이 3300ha,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뒤섞여 자라는 혼효림이 5454ha를 차지한다. 임산물은 홍시를 만들어 먹는 떫은감의 일종인 장준감이 조선 중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실릴 만큼 강화의 오랜 토산품으로 유명하며, 이밖에 도라지와 주목·기타 교목류를 비롯한 조경수 등을 생산한다.
제조업
예로부터 물들인 왕골로 꽃무늬 등을 놓아 짜는 화문석의 고장으로 이름났으며, 오늘날에도 지역 특산물로 유명하다. 1970년대에는 직물을 제조하는 섬유공업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오늘날에는 식료품 제조업이 주류를 이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제조업체 수는 429개로 인천시 전체 제조업체의 1.7%에 그쳐 옹진군 다음으로 적다. 업종별로는 약 46%를 차지하는 식료품 제조업을 비롯하여 금속가공품 제조업(7.7%)·산업용 기계 및 장비 수리업(7.2%)·기타 기계 및 장비 제조업(6.3%)·가구 제조업(6.1%)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조업 종사자는 2967명으로 인천시 전체 제조업체의 1.2%에 그쳐 옹진군 다음으로 적으며, 전체 종사자의 70%가 강화읍(33%)·불은면(21%)·선원면(16%)의 3개 읍·면에서 종사한다. 2018년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1969억 원으로 인천시 제조업 총부가가치의 0.9%에 해당하여 옹진군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산업단지로는 하점면 부근리 일원의 강화하점일반산업단지, 강화읍 옥림리·월곶리 일원의 강화일반산업단지가 있으며, 48개 업체 790여 명이 종사한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무태돈대[無殆墩臺]
요약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국방 유적.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무태돈대
지정종목지정일소장관리단체소재지시대종류/분류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지었다. 조선시대 때, 성곽이나 변방(邊方) 요지에 세워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련한 초소인 돈대(墩臺)는 주변보다 높은 평지에 쌓는데, 밖은 구릉을 깎아서 높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고 안은 낮게 하여 포를 설치하였다. 창후리 선착장 서북쪽 해안으로 돌출한 언덕 위에 직사각형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무태돈대는 인화돈대·광암돈대·귀등돈대·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인화보(寅火堡)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남쪽으로 3,418m 거리에 망월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2,313m 거리에 인화돈대로 이어진다.
돈대의 규모는 둘레 210m, 너비 2m로, 성벽은 안팎을 모두 화강암으로 쌓았고 잡석과 흙으로 안을 채웠다. 석축은 지형에 맞추어 쌓아서 경사진 부분이 많다. 현재는 동쪽과 서쪽의 성벽이 잘 남아 있고 남쪽 성벽은 하부는 원형이 남아 있으나 상부는 최근에 새로 쌓았다. 동쪽 성벽에 있는 성문은 남쪽 성벽에서 매우 가까운데, 안팎에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무사석(武砂石) 두 단을 쌓고 그 안쪽으로 장대석 석축을 세운 위에 두껍고 긴 천장돌 6개를 덮었다.
성안에는 해안을 향해 대포를 올려놓는 자리인 포좌(砲座)를 4곳 설치하였다. 이 포좌는 현재 서쪽 성벽에 2개, 서북쪽 모서리에 1개 남아 있고 나머지 하나는 서남쪽 모서리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성벽이 허물어져 확인할 수 없다. 남아 있는 3개의 포좌 중에서도 서북에 있는 것은 그 위치만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돈대 내부는 현재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024-10-25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