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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시 37:4절
제 목 : 하나님이 기뻐하는 신령한 삶
일 시 : 2023. 12. 17.
시37: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37:4절은 우리가 암송하는 성경구절 첫 번째 구절이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 말씀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다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동기가 아름답거나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시고 나의 소원보다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도록 마음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긍휼과 자비에 풍성하신 주님께서는 무지하고 미련한 나를 깨우쳐 주셔서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바꾸어 가시고, 나의 소원이 주님보다 앞서지 못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 나의 소원보다 주님을 더 귀하게 여기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깨달은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37:4/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말씀이 기록된 순서를 보거나 아니면 말씀의 우선순위로 볼 때 나의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진짜 의도는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로 볼 때 하나님은 나의 소원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어떤 일과 하나님이 이루시는 어떤 기적보다도 하나님 그분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우리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기도제목과 계획과 소원보다 더 크고 많은 것으로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고 싶어하십니다.
만약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게 되면 결코 내가 소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곧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을 신격화시키는 것이고 일종의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제일계명과 제이계명을 보시면 뭐라고 했습니까? 출20:3-6/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 우상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 나의 소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형상을 만들어서 거기에 절을 하고 그것을 섬기는 죄와 같은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섬겨야 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유일하신 하나님(신)으로 섬기며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을 경배하게 되면 하나님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채우시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2.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내가 원하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색하거나 구두세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항상 많은 것을 주시되 넉넉히 그리고 풍성하게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롬8:32절에서도 말씀이 기록된 순서가 있고 말씀이 강조하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아들을 주시고 싶어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사탄 마귀의 손에서 건지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참된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인 자유를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요삼1:2절 말씀이 강조하는 것처럼 가장 먼저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라고 했는데 사실은 우리의 혼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영은 이미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영은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고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수가 있고, 고난과 고통과 불안과 두려움으로 등으로 몹시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롬8:32절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마음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고 사탄 마귀의 거짓말과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과 각종 불안에서 벗어나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드리고 예수님과 연합하여 우리의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아들을 주신 첫 번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롬8:32절을 통해서 그토록 원하시는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래서 예수님을 모시고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다른 말로 참된 평안이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천국창고에 쌓아 놓은 우리에게 필용한 모든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복들과 필요한 모든 것들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통해서 나타나시고 일하시고 싶어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들을 주셔서 아들과 함께 아들을 통하여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아들이 없거나 아들을 무시하거나 아들과 관계가 깨어진 상태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받아 누리려고 하게 되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신 아들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고, 아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과 하나됨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들보다 하나님이 주실 복과 돈과 성공과 문제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즉 내가 소원하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이 소원하는 아들을 모시고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시16:2/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16:8-11/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습니다.
3. 구원보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시68:19-21/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9절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20-21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가지의 구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구원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구원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째 구원은 우리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드는 원수의 머리를 깨뜨리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두 가지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죽음과 사망 즉 사탄 마귀가 가지고 있는 사망의 권에서 해방되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사망에서는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날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해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원수들의 머리를 깨뜨리시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두 가지의 구원보다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원받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날마다 나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씀입니다. 즉 나에게 필요한 구원보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돌파와 구원에 꽂혀 있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보다 구원받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고쳐져야 할 부분입니다.
4. 내가 가진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막11:22-24/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나타나면 하나님보다 당면한 문제를 더 크게 보고 거기에 함몰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당면한 문제 때문에 허둥대는 순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놓쳐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놓쳐 버립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이 산더러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말로나 기도로 산을 향하여 수 없이 많은 말을 합니다. 산은 사라지라고 말입니다. 문제는 없어져라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없어지지 않고 산은 그대로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속에 의심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약속을 믿기 보다는 문제를 더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산이나 문제보다 하나님께 더 집중하고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바다 위를 걸어가는 베드로의 삶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바다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귀신)이라고 무서워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주여 주시어든 나를 오라하소서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인 유령(귀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깨닫고 너무나 기뻐서 배에서 뛰어내려 예수님께로 걸어갔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바다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베드로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바다도 보이지 않았고 바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눈과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바람과 바다로 향하는 순간 즉시 바다에 빠져 버렸습니다.
막11:22-24절에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만을 믿고 산더러 바다에 던져져라고 말하면 반드시 그대로 될 텐데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산으로 옮겨지고 문제로 옮겨집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큰 산과 같은 문제만 보여집니다. 그러면 의심과 불신앙이 엄습해 와서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문제나 산보다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산을 없애고 문제를 없애 줍니다.
5. 성령의 능력과 은사보다 성령님을 더욱더 사모해야 합니다.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과 은사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하며, 성령님을 귀하게 모시고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분명히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시고 그렇게 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고전12:7-11/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 즉 초자연적인 은사를 소개하는 이 말씀을 보시면 마지막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은사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성령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즉 성령님의 마음에 들지 않고 성령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은사를 주실 수가 없으십니다. 때문에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님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령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그분과 하나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서 그분을 섬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합동측 목사님이십니다. 성령이 불을 받으신 굉장히 능력이 많은 분이셨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미국에서 전국목회자 연합집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전역에서 목사님들이 다 모이는 큰 연합집회가 있었는데 그 때 미국에서 내노라 하는 목사님이 강사로 초청받았고 이 목사님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그렇게 이름이 없었으니까 이 목사님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목사님은 미국에서 내노라 하는 강사님들이 보이는 대형집회에 강사로 초대받았으니까 얼마나 설교를 잘 하고 싶었겠습니까? 거기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면 전 세계적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순서가 되었을 때 목사님은 다른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할렐루야! 아멘. 이것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것만 하라고 시키시니까? 다른 것은 하지 않고 그것만 했습니다. 한참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목사님 대부분은 웅성웅성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이름없는 목사를 불렀더니 별 볼일 없는 목사네 하면서 여기저기서 일어나서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시간을 하고 나니까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 강력한 불을 내려 주셔서 완전히 불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부터 그 목사님이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을 높이는 일을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자신을 희생하니까 성령님께서 그렇게 강력하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요일2:20,27/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것도 아니고, 능력받은 목사님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이사 오셔서 살고 계시는 성령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귀하게 여기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때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그분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충만하게 넘치도록 기름부어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나 능력보다는 성령님과 그분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기름 부으심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과 하나되고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성령님과 하나될 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드디어 일하시고 기름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과 복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하나님과 성령님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보다는 하나님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을 더욱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나의 문제 해결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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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앉으십시오.
1. 시37:4,롬8:32,시68:19-21,막11:22-24,고전12:7-11절을 읽고 나의 관심과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보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출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보다 아들 예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이유는?
3. 구원받은 자로서 또 다른 구원보다는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까?
4. 산과 문제를 향하여 사라지라고 명령하는데도 없어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성령의 능력과 은사와 성령님을 혼돈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6. 하나님께서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소원은 이루어지지않고 또 이것이 나의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자리를 대신하게 되어 그것을 섬기는 죄를 짓게 됩니다
2.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이신 아들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고 아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과 하나됨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모든것을 우리에게 부어주실것이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는일에 관심을 두어야합니다
4.마음에 의심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5.은사와 능력은 성령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나누어주시는것인데 성령님께는 관심이 없고 성령님 마음에 들지않고 성령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은사와 능력을 받을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그분과 하나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때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6.하나님과 성령님만을 구해야 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