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紀新編列傳(본기신편열전)
曷思太后(갈사태후)
曷思太后曷思王女也 柳花生金蛙曷思王明王在扶余時 曷思王庇護之 及南來 承嗣 帶素立 數窘明王 曷思王諫止之
且又以曷思太后送之 作親 '庚申'生再思 後又生公主五人 而明王崩 欲殉之 松太后止之曰 汝若殉之 兩國不睦 乃使大武神王復娶之 而生好童太子及公主五人 而'十九年'丙申崩 春秋'五十二' 國祖立 追尊爲曷思宮神太后
曷思太后(갈사태후)는 曷思王(갈사왕)의 딸이다. 柳花(유화)가 金蛙(금와)와 曷思王(갈사왕)을 낳았다. 明王(명왕, 유리왕)이 부여에 있을 때, 曷思王(갈사왕)이 그를 비호하였고, (明王이) 남쪽으로 오게 되자, 帶素(대소)가 嗣(사)를 승계하여, 왕위에 섰다. 帶素(대소)가 여러 번 明王(명왕)을 곤경에 빠뜨리자, 曷思王(갈사왕)이 간하여 이를 만류하였고, 또 曷思太后(갈사태후)를 보내어 친분을 맺었다.
庚申(경신, BC1년)에 再思(재사)를 낳았고, 뒤에 또 공주 다섯 명을 낳았는데, 明王(명왕)이 붕어하자, 순장하려고 하였다. 松太后(송태후)가 만류하며 말하기를 "네가 만약 순장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가 화목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大武神王(대무신왕)이 다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好童太子(호동태자) 및 공주 다섯 명을 낳았다.
(대무신왕) 19년 丙申(병신, AD36년)에 붕어하니, 춘추는 52세였다. 國祖(국조, 태조왕)가 즉위하여, 추존하여 曷思宮神太后(갈사궁 신태후)라고 하였다.
*갈사태후 BC15년, 丙午 출생.
*AD36년, 52살 사망.
*갈사태후가 15살 때, BC1년, 庚申에 再思(재사)를 낳음.
*갈사왕 = 해소.
烏太后(오태후)
烏太后左輔烏婁之女也 功臣沸流谷烏伊之孫也 烏婁娶東明女生后 大武神王即位 立爲后 生慕本王及公主四人 而大武臨崩 禪于太弟 后仍爲閔中后 生公主二人
慕本立 爲太后 慕本崩 與慕本后麻氏出居茅山 麻氏功臣卒本公摩離之孫女也 父勁娶禾太后女生麻氏 慕本納之 生太子翊 辛亥以後 慕本命龍陽輩通之 生子國祖 廢爲庶人 尋以翊請復之
烏太后(오태후)는 左輔(좌보) 烏婁(오루)의 딸이다. 功臣(공신) 沸流谷(비류곡) 烏伊(오이)의 손녀이다. 烏婁(오루)는 東明(동명)의 딸을 취하여 后(후)를 낳았다. 大武神王(대무신왕)이 즉위하여 后(후)로 삼았다. 慕本王(모본왕) 및 공주 네 명을 낳았는데, 大武神王(대무신왕)이 임종에 이르러, 태제(太弟, 閔中王)에게 선위하였다. 后(후)는 그대로 閔中王(민중왕)의 后(후)가 되어, 공주 두 명을 낳았다. 慕本王(모본왕)이 즉위하자, 太后(태후)가 되었다.
慕本王(모본왕)이 붕어하자, 慕本王(모본왕)의 后(후) 麻氏(마씨)와 함께 나와서 茅山(모산)에서 살았다.
麻氏(마씨)는 공신 卒本公(졸본공) 摩離(마리)의 손녀이다. 아버지 摩勁(마경)은 禾太后(화태후)의 딸을 취하여, 麻氏(마씨)를 낳았다. 慕本王(모본왕)이 그녀를 받아들여, 태자 翊(익)을 낳았다.
辛亥(신해, AD51년) 이후에, 慕本王(모본왕)이 龍陽(룡양, 미소년) 무리에게 명령하여 그녀와 통하게 하니, 아들 國祖(국조)를 낳았다. 이에 폐위되어 庶人(서인)이 되었다가, 얼마 후 翊(익)의 청으로 인하여 복위시켰다.
*국조왕 출생년, AD68년. (여기 분위기에서는 국조왕은 AD58년 출생이라야 어울리죠.)
*국조왕의 아버지는 미소년 무리 龍陽(룡양), 어머니는 麻氏(마씨).
*慕本王(모본왕)의 아버지는 대무신왕, 어머니는 烏氏(오씨).
*모본왕(해우)의 출생년은 AD18년(대무신왕 원년)이후가 되야 맞음. AD27년?
*閔中王(민중왕)의 출생년 추정 = AD7년.
*호동태자 출생년 추정 = AD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