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선물
임병식 rbs1144@daum.net
내가 수십 년 째 글을 쓰며 가장 빠져 지내는 것이 수석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해왔으니 나를 아는 이들은 내가 수석애호가인 것을 모르지 않을 터이다. 그러므로 누가 ‘임병식은 애석인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과하다고 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 건 아니다.
일반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애석생활을 오래하면 ‘좋은 명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 테지만 그렇지는 않다. 누구나 명석을 가져보길 동경하나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소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명석은 부르는 게 값이어서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그것을 소장하려면 우선 천행으로 자탐(自探)을 하거나 거금을 주고 사야만 하는데 나는 그런 행운을 누릴 만큼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구경조차 못해 보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전시회에서 나가 더러 보았고, 그런 명석에 드는 수석이 내가 사는 고장에서도 한동안 머물러 있어서 실컷 보았다. 소장자는 그 돌 때문에 직장에서 옷을 벗었다.
말하자면 수석과 직장을 맞바꾼 것이었다. 그만큼 그 돌은 탐이 난 돌이었다. 소장자는 고향에 돌아와 즉시 수석가게를 차렸다. 그 바람에 고장에서 산 나는 가게를 드나들며 구경했던 것이다.
그는 고장에서 수석매장을 열면서 가지고 있는 그 명석을 전시하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주요 행사를 열리면 장식용으로 대여하기고 하였다.
그때가 70년대 말, 그 돌은 당시 가격이 500만원이 책정되었다. 이는 서울변두리의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살 만한 액수였다. 그러니 고소원이기는 하나, 어찌 가난한 사람이 소장 해볼 엄두를 냈겠는가. 그 돌은 영광낙월도 산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웅장한 바위 형으로 아래쪽은 푸른빛이 돌고 위로 올라 갈수록 주황색으로 물이든 것이었다. 거기에다 그 돌은 밑자리도 마치 칼로 벤 듯이 반득하였다.
이 돌은 낙월도 주민들이 노둣돌로 밟고 다니던 것이었다. 그런데 탐석자가 우연히 뒤집어보니 깜짝 놀라는 형태가 나왔다.
한데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주민이 바로 토를 달고 나선 것이었다. ‘이 돌은 우리가 사는 낙월도를 닮았다’고 입소문을 냈던 것이다.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이에 소장자는 이 돌을 취할 것이냐, 직장을 버릴 것이냐 양자선택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고심 끝에 돌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직장을 버렸다.
나는 그 돌을 보면서 한동안 그것이 눈에 어른거려 잠을 설쳤다. 그렇지만 상상을 초월한 거금이 책정된 현실 앞에서 낙담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장한 돌중에 좋은 돌이 아주 없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그 돌에는 어림이 없긴 하지만 나름 쓸만한 한 돌 두 점은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기도하는 인물상을 꼽고 싶다. 한 인물이 정 중앙에 서서 두 손을 모와 합장하는 형상인데 여간 볼만하지 않다.
나는 이 돌이 내게 안긴 것을 큰 석복으로 생각한다. 이마져 없다면 애석 인을 자처한 내 마음이 무척 공허할 것이다.
엊그제 형수님 상을 당하여 영안실에 도착해 문상 온 친지들과 이야기 나누던 중이었다. 장조카나 다가와 무엇을 내밀었다. 보니 여간 귀티 나는 호도가 아니었다.
“작은아버지 쓰세요.”
“있는데 뭘”
있다는 건 전 부터 가지고 있는 호도를 말한 것. 그것 역시도 16년 전 이 조카가 내가 환갑을 맞았을 때 건네준 것이었다.
“ 어렵게 구했어요. 사각호도는 현지에서도 백만 원을 호가해요.”
자세히 보니 생김새가 다르다. 열십자로 각이 나있는데 우둘투둘한 것이 손에 잡히는 맛이 있다. 이것을 보니 나중에 좋은 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16년이 지나 기어이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호품일수록 기왕이면 고급스런 것이 좋다. 사람이 달라지기야 할까마는 사람이 한 등급이 더 나가는 기분이다. 그것을 받아드니 조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서 콧등이 시큰했다.
귀족호도는 전남 장흥이 주산지이다. 독특한 형태가 특징인데, 이곳에는 300년이 넘은 원조 호두나무가 버티고 있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데 그러나 그 나무는 수년전에 태풍으로 쓰러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열매를 맺고 있다고 한다.
장흥 귀족호도는 우선 크기부터가 다르다. 유달리 크고 골이 많다. 생김새는 분명 호도이나 일견 보기에 가래열매에 가깝다. 속살 또한 거의 없다. 그러니 만큼 망치로 내려쳐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이런 것 중에서 4각 호도는 일 년에 몇 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돌연변이이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것인가.
나는 이것을 머리맡에 두고 애지중지한다. 조카의 정과 사랑이 많이 느껴져서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것이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무엇이냐 하면 방한모와 고급손목시계로, 외국에 나가있는 동생이 일시 고국을 방문 오면서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방한모는 원단 재질이 독특하고 시계는 큼지막해서 품이 있어 보인다.
한꺼번에 선물을 받고 보니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인생 종착지에서 웬 홍복인가 싶어 마음이 흐뭇하다. (2023)
첫댓글 애석인의 가슴을 동경과 아쉬움으로 물들이는 희귀한 수석도 귀하기 그지없겠습니다만 사람의 정과 사랑이 깃든 귀한 선물은 감히 값으로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카 분의 깊은 정이 담긴 사각 호두에 특히나 선생님 가문의 자랑인 아우 분의 모자와 시계 선물에 제 마음도 찡해집니다 덕분에 저도 귀한 선물을 받고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되는 보배로운 말씀까지 받았군요 아우 분의 도골선풍이 선하네요
아우가 귀국하여 6일간 머물다가 오늘 떠납니다.
여러 지인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좋은 선물을 받게 되었는데,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할까 합니다.
아우의 사진을 언제 찍어서 놀려놓으셨군요.
2023 수필세계 봄호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