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 하 촌
강 경 애
해는 서산 위에서 이글이글 타고 있다. 칠성이는 오늘도 동냥자루를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비틀비틀 이 동리 앞을 지났다 . 밑 뚫어진 밀짚모자를 연신 내려쓰나, 이마는 따갑고 땀방울이 흐르고 먼지가 연기같이 끼어, 그의 코 밑이 매워 견딜 수 없다.
“이애 또 온다. ”
“어 아.”
동리서 놀던 애들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칠성이는 조놈의 자식들 또 만나는구나 하면서 속히 걸었으나, 벌써 애들은 그의 옷자락을 툭툭 잡아당겼다.
“이애 울어라 울어.”
한 놈이 칠성이 앞을 막아서고 그 큰 입을 헤벌리고 웃는다. 여러 애들은 죽 돌아섰다.
“이애 이애, 네 나이 얼마?”
“거게 뭐 얻어 오니? 보자꾸나.”
한 놈이 동냥자루를 툭 잡아채니, 애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칠성이는 우뚝 서서 그 중 큰 놈을 노려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앞으로 가려든지 또 욕을 건네면, 애들은 더 흥미가 나서 달라붙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바루 바루 점잖은데.”
머리 뾰죽 나온 놈이 나무꼬챙이로 갓 누은 듯한 쇠똥을 찍어 들고 대들었다. 여러 놈은 깔깔거리면서 저마다 쇠똥을 찍어 들고 덤볐다. 칠성이도 여기는 참을'수 없어서 막 서두르며 내달아 갔다. 두 팔을 번쩍 들고 부루루 떨면서 머리를 비틀비틀 꼬다가, 한발 지척 내디디곤 했다. 애들은 이 흉내를 내며 따른다. 앞으로 막아서고 뒤로 따르면서 깡충깡충 뛰어 칠성의 얼굴까지 쇠똥 칠을 해 놓는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이 이놈들!”
입을 실룩실룩 하다가 겨우 내놓는 말이다. 애들은,
“이 이놈들!”
하고 또한 흉내를 내고는 대굴대굴 굴면서 웃는다. 쇠똥이 그의 입술에 올라가자, 「앱 투」 하고 침을 뱉으면서 눈을 떴다.
“무섭다, 바루 바루.”
애들은 참말 무섭게 보았는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였다. 칠성이는 팔로 입술을 비비치고 떠들며 돌아가는 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자신은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 그렇게 고적하고 분하였다. 그들이 물러간 후에 신작로는 적적하고 죽 뻗어 나가다가 조 밭을 끼고 조금 굽어진 저 앞이 뚜렷했다. 그 위에 수수밭 그림자 서늘하고‥‥‥ 그는 걸었다. 옷에 묻은 쇠똥을 털었으나,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퍼렇게 물이 든다. 그는 어디라 없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산 밑으로 와서 주저앉았다.
긴 풀에 잔 바람이 홀홀히 감기고 이따금 들리는 벌레 소리, 어디 샘물이 있는가 싶었다. 그는 보기 싫게 돋은 머리를 벅벅 긁어 당기며 무심히 앞을 보았다. 수림 속에 햇발이 길게 드리웠고, 짹짹 하는 새 소리 처량하게 들리었다. 난 왜 병신이 되어 그 놈의 새끼들한테까지 놀림을 받나 하고 불쑥 생각하면서 곁의 풀대를 북 뽑았다. 손목은 찌르르 울렸다. 큰년이가 살까! 그는 눈이 멀고도 사는데, 난 그보다야 훨씬 낫 지. 강아지의 털같이 보드라운 털을 가진 풀 열매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큰년이가 천천히 떠오른다. 곱게 감은 눈, 고것 참! 그는 진저리를 쳤다 . 그리고 곁에 놓인 동냥자루를 보면서 오늘 얻어온 것 중에 가장 맛있고 좋은 것으로 큰년에게 보내야 하지 하였다.
어떻게 보낼까? 밤에 바자 위로 넘겨줄까. 큰년이가 나와 바자 곁에 서 있어야 되지 . 그럼 누가 나오라고는 해 둬야지. 누가? 그래, 안되어. 그럼 칠운이 들려서 보내야지. 아니 아니, 큰년의 어머니가 알게 되고 또 우리 어머니 알지. 안되어, 낮에 김들 매러 간 담에 몰래 바자로 넘겨 주지. 그는 가슴이 설레어서 부시시 일어나고 말았다. 가죽을 벗겨낼 듯이 내려 쬐던 해도 어느덧 산 속으로 숨어 버리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풀잎을 살랑살랑 흔들고 그의 몸에 스며든다. 그는 동냥자루를 매만지다가, 어깨에 메고 지척 하고 발길을 내디디었다. 하늘은 망망한 바다와 같이 탁 터지고 저 멀리 붉은 너울이 유유히 떠돌고 있다. 그는 밀짚모자를 젖혀 쓰고 산밑을 떠났다. 걸음에 따라 쇠똥내가 물씬 하고 났다. 그가 산모퉁이를 돌아 동리 앞까지 왔을 때 그의 동생인 칠운이가 아기를 업고 쪼루루 달려온다.
“성 이제 오네. 히, 자꾸자꾸 봐도 안 오더니.”
큰 눈에 웃음을 북실북실 띠우고 형의 곁으로 다가서는 칠운이는 시꺼먼 동냥자루를 덤썩 쥐어 무엇을 얻어 온 것을 어서 알려고 하였다.
“오늘도 과자 얻어 왔어?”
“아아니.”
칠성이는 얼른 동냥자루를 옮기고 주춤 물러섰다. 칠운이는 따라섰다.
“나 하나만 응야, 성아 .”
침을 꿀떡 넘기고 새카만 손을 내민다. 그 바람에 아기까지 두 손을 쭉 펴들고 칠성이를 말끔히 쳐다 본다. “이 이 새끼는‥‥‥”
칠성이는 홱 돌아섰다. 칠운이는 넘어질 듯이 쫓아갔다.
“응야 성아, 나 하나만.”
“없, 없어-.”
형은 눈을 치떴다. 칠운이는 금시로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형을 보았다.
“난 어마이 오면 이르겠네. 씨, 도무지 안 준다고, 아까 아까 어마이가 밭에 가면서 아기 보라면서 저 성이 사탕 얻어다 준다고 했는데, 씨, 난 안 준다고 다 일러. 씨 흥.”
칠운이는 입을 비쭉 하더니,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다. 아기는 영문도 모르고 으아 하는 울음을 내쳤다. 주위는 감실감실 어두워 오는데, 칠운이는 흑흑 느껴 울면서 그들의 어머니가 올라 가 있을 저 산을 바라고 뛰어간다.
“어머이 어머이.”
하고 칠운이가 목메어 부르면 , 번번히 아기도,
“엄마 엄마.”
하고 또랑또랑히 불렀다. 응응 하는 앞산의 반응은 어찌 들으면 어머니의 「왜」 하는 대답 같기도 했다. 칠성이는 칠운이와 영애가 보이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돌아서 걸었다. 동네는 어둠에 푹 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동네 앞으로 우뚝 서 있는 늙은 홰나무만이 별을 따려는 듯 높아 보였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서라도 큰년이를 만날 것과 또 얻어 오는 이 과자를 큰년의 손에 꼭 쥐어 줄 것을 생각하며 걸었다.
“칠성이냐?”
어머니의 음성이 들린다. 그는 돌아보았다. 나무를 한 짐 이고 이리로 오는 어머니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웬일인지 그의 머리가 숙어지는 듯해서 번쩍 머리를 들었다.
“왜 오늘 늦었느냐?”
아까 밭에서 산으로 올라갈 때 몇 번이나 아들이 나오는가 하여 눈이 가물가물 해 지도록 읍 길을 바라보아도 안 보이므로 어디가 넘어져 애를 쓰는가 , 또 애새끼들한테서 돌팔매질을 당하는가 하여 읍에까지 가볼까 하였던 것이다. 칠성이는 어머니의 이 같은 물음에 쇠똥 칠 당하던 것이 불시에 떠오르고, 코허리가 살살 간지럽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갈잎 내를 확 풍기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선다. 그 큰 짐을 이고서 아기까지 둘러 업었다.
“어마이, 나 사탕 성은 안 준다야 씨.”
칠운이는 어머니의 치맛귀를 잡고 늘어진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앞으로 쓰러질 듯했다가 도로 서서 한 손으로 칠운이를 어루만졌다.
“저 놈의 새 새끼, 주 죽이고 말라.”
칠성이는 발길로 칠운이를 차려 하였다. 어머니는 또 쓰러질 듯 막아섰다.
“그러지 말어라. 원 그것이 해종일 아기 보느라 혼났다. 허리에는 땀띠가 좁쌀알같이 족 돋았구나. 여북 아프겠니 원.”
어머니는 말끝에 한숨을 푹 쉬인다. 칠성이는 문득 쇠똥내를 물큰 맡으면서 화를 버럭 올리었다.
“누 누구는 가만히 앉아 있었나!”
“아니 그렇게 하는 말이 아니어. 칠성아 .”
어머니는 목이 메어 다시 말을 계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잠잠히 걸었다. 집에 온 그들은 나뭇단 위에 되는대로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칠성의 마음을 위로하느라고 이 말 저 말을 끄집어 냈다.
“올해는 웬 살쐬기 그리 많으냐. 손이 얼벌벌 하구나.”
어머니는 그 손을 한 번쯤 들여다보고 싶은 것을 참고 아기를 어루만지다가 젖을 꺼냈다. 칠운이는 나뭇단을 퉁퉁 차면서 흥흥 거린다. 칠성이는 동생들이 미워서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일어났다. 그는 어둠 속을 휘 살피고 큰년이가 저 속에 어디 섰지 않는가 했다. 방으로 들어온 칠성이는 이제 툇돌에 움찔린 발가락을 엉덩이로 꼭 눌러 앉고 일변 칠운이가 들어오지 않는가 귀를 기울이며 문을 걸었다. 그리고 동냥자루를 가만히 쏟았다. 흩어지는 성냥과 쌀알 흐르는 소리 , 솜털이 오싹 일어, 그는 몸을 움씩 하면서 얼른 손을 내밀어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역시 그 안에 있는 돈 생각이 나서, 돈마저 꺼내 가지고 우두커니 들여다보았다. 비록 방안이 어두워서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으나, 눈꼽같이 눈 구석에 박여 있는 듯 했다.
성냥갑 따로, 쌀과 과자부스러기 따로 골라 놓고 문득 큰년이를 생각하였다. 어느 것을 주나, 얼른 과자를 쥐며, 이것을 주지 하고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바작 소리가 이 사이에 돌고 달큼한 물이 사르르 흐른다. 그는 입맛을 다시고 나서 칠운이가 엿듣는가 다시 한 번 조심했다. 그는 온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 있는 돈을 펴서 보고 한푼 한푼 세어 보다가, 이것으로 큰년의 옷감을 끊어다 주면 얼마나 큰년이가 좋아할까, 그의 가슴은 씩씩 뛰었다. 고것 왜 우리 집엘 안 올까, 오면 내가 돈도 주고 이 과자도 주고 또 또 큰년이가 달라는 것이면 내 다 주지. 응 그래. 이리 생각되자 그는 어쩐지 마음 송구해졌다. 해서 성냥갑과 과자부스러기를 한데 싸서 저편 갈자리 밑에 밀어 놓고, 돈은 거기에 넣은 담에 쌀만 아랫방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뒷문 곁으로 바싹 다가앉아서 큰년네 바자를 바라다보았다. 바자에 호박넌출이 엉키었고 그 위에 벌들이 팔팔 날았다. 어떻게 만날까, 그는 무심히 발가락을 쥐고 아픔을 느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볼 위에 흘러내렸다. 그는 안타까웠다. 지금 이 발끝이 아픈 것보다도 어딘가 모르게 또 아픈 것을 느낀다.
“이애 밥 먹어.”
칠성이는 놀라 돌아다보았다. 어머니가 샛문 밖에 서 있다는 것을 알자, 웬일인지 가슴 한 구석에 공허를 아득하게 느꼈다.
“왜 문을 걸었나?”
어머니는 문을 잡아챈다. 과자를 달라거나 돈을 달래려고 저리도 문을 잡아 흔드는 것 같다. 그는 와락 미운 생각이 치올랐다.
“난 난 안 먹어! ”
꽥 소리쳤다. 전신이 후루루 떨린다.
“장메서 뭐 먹고 왔니?J ' 어머니의 음성은 가늘어진다. 언제나 칠성이가 화를 낼 땐 어머니는 저리도 기운이 없어진다. 한참 후에,
“좀 더 먹으렴.”
“시 싫여.”
역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뭐라고 웅얼웅얼하더니 잠잠해 버린다. 칠성이는 우두커니 앉았노라니 자꾸만 갈자리 속에 넣어 둔 과자가 먹고 싶어 가만히 갈자리를 들썩하였다. 먼짓내 싸하게 올라오고 빈대 냄새 역하다. 그는 자리를 도로 놓고, 내일 아침에 큰년이 줄 것인데 내가 먹으면 안되지 하고, 휙 돌아앉고도 부지중에 손은 갈자리를 어루 쓸고 있다. 큰년이 줘야지, 냉큼 손을 떼고 문턱을 확 붙들었다. 마침 바람이 산들산들 밀려들어 이마에 흐른 땀을 선뜻하게 한다. 고는 얼른 적삼을 벗어 던지고, 그 바람을 안았다. 온몸이 가려운 듯하여 벽에다 몸을 비비치니 어떤 쾌미가 일어, 부지중에 그는 사정없이 비비치고 나니, 숨이 차고 등 가죽이 벗어져 아팠다. 그래서 벽을 붙들고 일어나 나왔다. 몸을 움직이니 아니 아픈 곳이 없다. 손 끝에 가시가 박혔는지 따끔거리고 팔뚝이 쓰라리고 아까 다친 발가락이 새삼스러이 더 쏘고, 그는 꾹 참고 걸었다.
울바자 밑에 나란히 서 있는 부초종 끝에 별빛인가도 의심나게 흰 꽃이 다문다문 빛나고, 간혹 맡을 수 있는 부초 냄새는 계집이 곁에 와 섰는가 싶게 야릇했다. 그는 바자 곁으로 다가섰다. 큰년네 집에선 모깃불을 피우는지 향긋한 쑥내가 솔솔 넘어오고, 이따금 모깃불이 껌벅껌벅하는데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귀를 세우니, 바자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호박 잎의 솜털이 그의 볼에 따끔거린다. 문득 그는 바자 저편에 큰년이가 숨어서 나를 엿보지나 않나 하자 얼굴이 확확 달았다. 어느 때인가 되어 가만히 둘러보니, 옷에 이슬이 촉촉하였고, 부초 꽃이 물 속에 잠긴 차돌처럼 그 빛을 환히 던지고 있다. 모깃불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며, 어디선가 벌레 소리가 쓰르릉 하고 났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자 가슴이 답답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니, 벌써 뒷뜰은 햇빛으로 가득하였다. 칠성이는 일어나는 참 어머니와 칠운이가 아직도 집에 있는가 살핀 담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뒷 문턱에 걸터 앉아서 큰년네 바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큰년의 아버지 어머니도 김 매러 갔을 테고, 고것 혼자 앉아 있을 터인데‥‥‥ 혹 마을군이나 오지 않았는지, 오늘은 꼭 만나야 할 터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무심히 그의 팔을 들여다보았다. 다 해진 적삼소매로 맥없이 늘어진 팔목을 뼈도 살도 없고, 오직 누렇다 못해서 푸른 빛이 도는 가죽만이 있을 뿐이다 .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어 그는 머리를 들고 한숨을 푹 쉬었다. 큰년이가 눈을 감았기로 잘 했지, 만일 두 눈이 동글하게 띄었다면 이 손을 보고 십리나 달아날 것도 같다. 그러나 큰년이가 이 손을 만져 보고 왜 이리 맥이 없어요, 이 손으로 뭘 하겠소 할 때엔‥‥‥ 그는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그저 맥없이 막숨만 내 쉬고 들이 쉬다가 문득 약이 없을까? 하였다. 약이 있기는 있을 터인데‥‥‥ 큰년네 바자 위에 둥글하게 심어 붙인 거미줄에는 수 없는 이슬방울이 대룽대룽했다. 저런 것도 약이 될지 모르지, 그는 벌떡 일어 나왔다. 거미줄에서 빛나는 저 이슬방울들이 참으로 약이 되었으면 하면서, 그는 조심히 거미줄을 잡아당겼다. 팔은 맥을 잃고, 뿐만 아니라 자꾸만 떨리어 거미줄을 잡을 수도 없지만 바자만 흔들리고, 따라서 이슬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그는 손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이슬방울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한 방울도 그의 손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에이, 비 빌어 먹을 것!”
그는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이렇게 소리치고 말없이 하늘을 노려보는 버릇이 있다. 한참이나 이러하고 있을 때, 자박자박 하는 신발 소리에 그는 가만히 머리를 돌리어 바라보았다. 호박 잎이 그의 눈썹 끝에 삭삭 비비치자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눈물 속에 비치는 저 큰년이! 그는 눈가가 가려운 것도 참고 눈을 점점 더 크게 떴다. 빨래 함지를 무겁게 든 큰년이는 이리로 와서 빨래 함지를 쿵 내려놓고 일어난다. 눈은 자는 듯 감았고, 또 어찌 보면 감은 듯 뜬 것 같이도 보이었다. 이제 빨래를 했음인지 양 볼에 붉은 점이 한 점 두 점 보이고, 턱이 뾰죽한 것이 어디 며칠 앓은 사람 같다. 큰년이는 빨래를 한 가지씩 들어 활짝 칠성이는 숨이 턱턱 막혀서 견딜 수 없다. 소리 나지 않게 숨을 쉬려니 가슴이 터지는 것 같고, 뱃가죽이 다 잡아 씨웠다 . 그는 잠깐 머리를 숙여 눈물을 씻어낸 후에 여전히 들여다보았다. 지금 그의 머리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그저 큰년의 동작으로 가득했을 뿐이다. 큰년이는 한 가지 남은 빨래를 마저 가지고 그의 앞으로 다가온다. 그때 칠성이는 손이라도 쑥 내밀어 큰년의 손을 덥썩 잡아 보고 싶었으나 , 몸은 움찔 뒤로 물러나지며, 온 전신이 풀풀 떨리었다. 바삭바삭 빨래 널리는 소리가 칠성의 귓바퀴에 돌아 내릴 때, 가슴엔 웬 새 새끼 같은 것이 수없이 팔딱거리고 귀가 우석우석 울고 눈은 캄캄하였다. 큰년의 신발 소리가 멀리 들릴 때 그는 비로소 온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또 호박잎을 젖히고 들여다보았다. 큰년이는 빈 함지를 들고 부엌문을 향하여 들어가고 있다. 그는 급하여 소리라도 쳐서 큰년이를 멈추고 싶었으나 역시 마음뿐이었다. 큰년의 헤어진 치마폭 사이로 뻘건 다리가 두어 번 보이다가 없어진다. 또 나올까 해서 그 컴컴한 부엌문을 뚫어지도록 보았으나, 끝끝내 큰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후 하고 한숨을 내 쉬고 물러섰다. 햇볕은 따갑게 내려쬔다. 과자나 들려줄 걸‥‥‥ 돈이나 줄 것을, 아니 돈은 내가 모았다가 치마나 해 주지 하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바자만 바삭바삭 소리를 내고 고요하다. 이제 큰년의 손으로 널은 빨래는 희다 못해서 햇빛같이 빛나고. 그는 눈을 떼고 돌아섰다. 자기가 옷가지라도 해 주지 않으면 큰년이는 언제나 그 뻘건 다리를 감추지 못할 것 같다.
“성아, 나 사탕 좀‥‥‥”
돌아보니, 칠운이가 아기를 업고 부엌문으로 나온다. 그는 도둑질이나 하다가 들킨 것처럼 무안해서 얼른 바자 곁을 떠났다. 칠운이는 저를 다우쳐 형이 저리도 급히 오는 것으로 알고, 부엌으로 달아나가 살짝 돌아보고 또 이리 온다.
“응야, 나 하나만‥‥‥‥”
손을 내민다. 아기도 머리를 갸웃 하여 오빠를 바라보고 손을 내민다. 아기의 조 머리엔 종기가 지질하게 났고, 거기에는 언제나 진물이 마를 사이 없다. 그 위에 가늘고 노란 머리카락이 이기어 달라붙었고 또 파리가 안타깝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기는 자꾸 그 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 당기고 , 종기 딱지를 떼어 오물오물 먹고 있다. 아기는 그 손을 오빠 앞에 쳐들었다 . 손가락을 모을 줄 모르고 짝 펴들고 조른다. 칠성이는 눈을 부릅떠 보이고 방으로 들어왔다. 칠운이는 문 앞에 딱 막아서서 흥흥 거렸다.
“응야 성아 , 한 알만 주면 안 그래.”
시퍼런 코를 훌떡 들여 마신다.
“보, 보기 싫다!” 칠운이 역시 옷이 없어 잠뱅이만 입었고, 그래서 저등은 햇빛에 타다 못해서 허옇게 까풀이 일고 있으며, 아기는 그나마도 없어서 쫄 벗겨 두었다. 동생들의 이러한 모양을 바라보는 그는 눈에서 불이 확확 일어난다. 눈을 돌리어 벽을 바라보자 문득 읍의 상점에 첩첩히 쌓인 옷감이 생각났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 칠운이를 치려 했으나, 그 손은 맥을 잃고 늘어진다.
“난 그럼, 아기 안 보겠다야, 씨.”
칠운이는 아기를 내려놓고 달아난다. 그러나 아기는 악을 쓰고 운다. 칠성이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돌아앉아 파리가 우글우글 끓는 곳을 바라보니 밥그를이 눈에 띄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그가 늦게 일어나므로 저렇게 밥바리에 보를 덮어놓고 김 매러 가는 것이다. 그는 슬그머니 다가앉아 술을 들고 보를 들치었다. 국에는 파리가 빠져 등등 떠다니고, 밥바리에 붙었던 수 없는 바퀴 떼는 기급을 해서 달아난다. 그는 파리를 건져내고 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밥이란 도토리뿐으로 ․밥알은 어쩌다가 씹히곤 했다. 씹히는 그 밥알이야말로 극히 부드럽고 풀기가 있으며, 그 맛이 달큼해서 기침을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맛은 잠깐이고 또 도토리가 미끈하고 씹혀 밥맛이 쓰디쓴 맛으로 변한다. 그래도 도토리만은 잘 씹지 않고 우물우물 해서 얼른 삼키려면 그만큼 더 넘어가지 않고 쓴 물을 뿌리며 혀끝에 넘나들었다. 얼마 후에 바라보니, 아기가 언제 울음을 그쳤는지 눈이 보숭보숭해서 발발 기어오다가, 오빠를 보고 멀거니 쳐다보다가는 그 눈을 밥그릇에 돌리고 또 오빠의 눈치를 살핀다. 칠성이는 고 듣기 싫은 울음을 그친 것이 대견해서 얼른 밥알을 골라 내쳐 주었다 . 그러니 아기는 그 조그만 손으로 밥알을 쥐어 먹다가, 성이 차지 않아서 납작 엎드리어서 밥알을 쫄쫄 핥아 먹고는 또 말가니 오빠를 본다. 이번에는 도토리 알을 내쳐 주었다. 아기는 웬일인지 당길성 없게 도토리를 쥐고는 손으로 조모락조모락 만지기만하고 먹지는 않는다.
“아, 안 먹게이!”
도토리를 분간해서 아는 아기가 어쩐지 미운 생각이 왈칵 들어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니 아기는 입을 비죽비죽 하다가 으아 하고 울었다.
“우, 울겠니 ?”
칠성이는 발길로 아기를 찼다. 아기는 눈을 꼭 감고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 바람에 아기 머리의 파리는 웅 하고 조금 떴다가 곧 달라붙는다. 칠성이는 재차 차려고 달려드니 아기는 코만 풀찐풀찐하면서 울음 소리를 뚝 끊었다. 그러나 그 눈엔 눈물이 샘솟듯 흐른다. 칠성이는 모른 체하고 돌아앉아 밥만 퍼먹다가 캑 하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아기는 언제 그 도토리를 먹었던지 캑캑 하고 게워 놓는다. 깨느르르한 침에 섞이어 나오는 도토리 쪽은 조금도 씹히지 않은 그대로였고 그 빛이 약간 붉은 기가 띠운 것을 보아 피가 묻어 나오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아기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목에 힘줄이 불쑥 일어났다. 그 찰나에 칠성이는 입에 문 도토리가 모래알 같아 씹을 수 없고, 쓴 내가 콧구멍 깊이 칵 올려 받쳐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술을 뎅긍 내치고 아기를 번쩍 들어 문 밖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뼈만 남은 아기의 볼기를 짝 붙이니, 얼굴이 새카매지면서도 여전히 느껴 운다. 이번에는 밥그릇을 냅다 차서 요란스레 굴리고 웃방으로 올라오니, 게우는 소리에 몸이 오시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문득 갈자리 속의 과자를 생각하고, 그것을 남김없이 꺼내다가 아기 앞에 팽개치고 뒷뜰로 나와 버렸다. 그는 빙빙 돌다가 침을 탁 뱉았다. 한참만에 칠성이는 방으로 들어오니, 방안은 단 가맛속 같았다. 그는 앉았다 섰다 안달을 하다가, 머리를 기웃하여 보니, 아기는 손을 깔고 봉당에 엎드려 잠들었고, 게워 놓은 자리엔 쉬파리가 날개 없는 듯이 벌벌 기고 있으며, 아기 머리와 빠끔히 벌린 입에는 잔 파리, 왕파리가 아글바글 들싼다. 과자! 그는 놀라 둘러보았다. 부스러기도 볼 수 없었다. 아기가 다 먹을 수 없고 필시 칠운이가 들어왔던 것이라 생각될 때 좀 남기고 줄 것을 하는 후회가 일며 칠운이를 보면 실컷 때리고 싶었다. 그는 달아나오면서 발길로 아기를 차고 나왔다. 손을 거북스레 깔고 모로 누운 꼴이 눈에 꺼리고 또 여윈 팔다리가 보기 싫어서 이러하고 나온 것이다. 아기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칠운이를 찾았다. 저편 버드나무 아래에 애들이 모여 떠든다. 옳지 저기 있구나 하고 씩씩거리며 그리로 발길을 떼어 놓았다. 몰래몰래 오느라 했건만, 칠운이는 벌써 형을 보고서 달아난다. 애들은 수숫대를 시시하고 씹고 서서 칠성이를 힐끔힐끔 보다는 히히 웃었다. 어떤 놈은 칠성의 걸음 흉내를 내기도 한다. 칠운이는 조 밭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잡풀에 얽히어 넘어지니, 뒤로 따르던 애들은 허허 하고 웃고 떠든다. 칠성이는 겨우 일어나서 애들을 노려보았다. 이 놈들도 달려들지나 않으려나 하는 불안이 약간 일어 이렇게 딱 버티어 보인 것이다. 애들은 무서웠던지 슬금슬금 달아난다. 애들 같지 않고 무슨 원숭이 무리가 먹을 것을 구하러 눈이 뒤집혀서 다니는 것 같았다. 이 동리 애들은 모두가 미운 애들 만이라고 부지중에 생각되어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걸었다. 이마가 따갑고 발가락이 따가운데, 또 애들이 벗겨 버린 수숫대 껍질이 발끝에 따끔거린다. 애들은 내를 바라고 달아난다. 그 무리에 칠운이도 섞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버드나무 아래로 왔다. 여기는 수숫대 껍질이 더 많고 또 소를 갖다 매는 탓인지 소똥이 지저분했다. 버드나무에 기대서서 그는 바라보았다. 저절로 그의 눈이 큰년네 집에 멈추고 또 큰년이를 만나볼 마음으로 가득하다. 지금 혼자 있을텐데 가볼까, 그러나 누가 있으면‥‥‥ 무엇이 따끔하기에 보니 왕개미 몇 마리가 다리로 올라온다. 그는 툭툭 털고 다시 보았다. 펴 가지고 더듬더듬 바자에 넌다. 멀리 큰년네 바자엔 빨래가 희게 널렸는데 방금 날으려는 새와 같이 되룩되룩하여 쉬 하면 푸르릉 날 듯하다. 있기는 누가 있어, 김 매러 다 갔을 터인데‥‥‥ 신발 소리에 그는 돌아보았다. 개똥 어머니가 어떤 여인을 무겁게 업고 숨이 차서 온다. 전 같으면,
“요새 성냥 많이 벌었겠구먼, 한 갑 선사하게나.”
하고 농담을 건넬 터인데 오늘은 울상을 하고 잠잠히 지나친다. 이마에 비지땀이 흐르고 다리가 비틀비틀 꼬이고 숨이 하늘에 닿고. 그는 머리를 들어보니 등에 업힌 여인인즉 죽은 시체 같았다. 흩어진 머리 주제며 입에 끓는 거품 꼴, 피투성이 된 옷! 눈을 크게 뜨고 머리카락에 휩싸인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보니 큰년의 어머니였다. 그는 놀랐다. 해서 뭐라고 묻고 싶은데 벌써 개똥 어머니는 버드나무를 지나 퍽이나 갔다. 웬일일까? 어디 넘어졌나, 누 구와 쌈을 했나 하고 두루 생각하다가 못 견디어 일어나 따랐다. 맘대로 하면 얼른 가서 개똥 어머니에게 어찌 된 곡절을 묻겠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점점 더 비틀거리기만 하고 앞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는 화를 더럭 내고 몸짓만 하다가 팍 거꾸러졌다. 한참이나 버둥거리다가 일어나서 천천히 걸었다. 큰년네 굴뚝에는 연기가 흐른다. 옳구나, 큰년의 어머니가 어찌해서 그 모양이 되었을까, 또다시 이러한 궁금증이 일어난다. 그가 큰년네 마당까지 오니, 큰년네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발길이 자꾸만 돌려진다. 그런 것을 참고 무슨 소리나 들을까 하여 한참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집으로 왔다 . 봉당에 들어서니, 파리가 와그그 끓는데, 그 속에서 아기가 똥을 누고 있다. 깽깽 힘을 쓰러, 똥은 안 나오고 밑이 손길같이 빠지고 거기서 빨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아기는 기를 쓰느라 두 눈을 동그랗게 비켜 뜨니, 얼굴의 힘줄이 칼날같이 일어난다. 그 조그만 이마에 땀이 비오듯 하고. 그는 못 볼 것이나 본 것처럼 머리를 돌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음대로 하면 아기를 칵 밟아 죽여 버리든지 어디 멀리로 들어다 버리든지 했으면 오히려 시원할 것 같다. 칠성이는 발길에 채워 구르는 도토리를 집어 먹으며, 아기 기쓰는 소리에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그만 뒷뜰로 나와 버렸다 . 아기로 인하여 잠깐 잊었던 큰년 어머니의 생각이 또 나서 그는 바작 곁으로 다가섰다.
“으아 으아.”
하는 아기 울음 소리에 머리를 돌렸다. 영애의 울음소리가 아니요, 아주 갓난 어린 아기의 울음인 것을 직각하자 큰년의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는가 했다. 그러자 불안하던 마음이 다소 덜리나 아기하고 입에만 올려도 입에서 신물이 들 지경이었다 . 지금 봉당에서 피똥을 누느라 병든 고양이 꼴 한 그럴 아기를 낳을 바엔 차라리 진 자리에서 눌러 죽여 버리는 것이 훨신 나을 것 같았다. 큰년이 같은 그런 계집애를 낳았나, 또 눈 먼 것을‥‥‥‥ 그는 히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이 입가에서 사라지지도 전에 왜 이 동네 여인들은 그런 병신만을 낳을까 하니, 어쩐지 이상하였다. 하기야 큰년이가 어디 나면서부터 눈 멀었다디, 우선 나도 네 살 때에 홍역을 하고 난 담에 경풍이라는 병에 걸리어 이런 병신이 되었다는데, 하자 어머니가 항상 외던 말이 생각되었다. 그때 어머니는 앓는 자기를 업고, 눈이 길같이 쌓여 길도 찾을 수 없는 데를 눈 속에 푹푹 빠지면서 읍의 병원에를 갔다는 것이다.
의사는 보지도 못한 채 어머니는 난로도 없는 복도에 한 겻이나 서서 있다가 하도 가깝해서 진찰실 문을 열었더니 의사는 눈을 거칠게 떠 보이고 어서 나가 있으라는 뜻을 보이므로, 하는 수 없이 복도로 와서 해가 지도록 기다리는데 나중에 심부름하는 애가 나와서 어머니 손가락만한 병을 주고 어서 가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만 하면 흥분이 되어 의사를 욕하고 또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를 핀잔하고 그 말을 막아 버리곤 하였다. 무엇보다도 불쾌하여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약만 먹으면 이제라도 내 병이 나을까 , 큰년의 병도‥‥‥ 아니야, 이미 병신이 된 담에야 약을 쓴다고 나을까, 그래도 알 수가 있나, 어쩌다 좋은 약만 쓰면 나도 남처럼 다리 팔을 제대로 놀리고 해서 동냥도 하러 다니지 않고, 내 손으로 김도 매고 또 산에 가서 나무도 쾅쾅 찍어오고, 애 새끼들 한테서 놀림도 받지 않고‥‥‥ 그의 가슴은 우쩍 하였다. 눈을 번쩍 떴다. 병원에나 가서 물어 볼까‥‥‥ 그까짓 놈들이 돈만 알지 뭘 알아. 어머니의 하던 말 그대로 되풀이하고 맥없이 주저앉았다. 큰년네 집도 조용하고, 아기의 울음 소리도 그쳤는데, 배가 쌀쌀 고팠다. 그는 해를 짐작해 보고, 어머니가 이제 들어오면 얼굴에 수심을 띠고 귀밑에 머리카락을 담뿍 흘리고서, 너 왜 동냥하러 가지 않았니 , 내일은 뭘 먹겠니 할 것을 머리에 그리며 무심히 서 있는 대싸리나무를 바라보았다. 혹시 이 대싸리나무가 내 병에 약이 되지나 않을까, 그는 대싸리나무 냄새를 코 밑에 서늘히 느끼자 이러한 생각이 불쑥 일어, 대싸리나무 곁으로 가서 한 입 뜯어 물었다. 잘강잘강 씹으니 풀내가 역하게 일며 욱하고 구역질이 나본다.
그래도 눈을 꾹 감고 숨도 쉬지 않고 대강 씹어서 삼켰다. 목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고 맑은 침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그는 이 침마저 삼켜야 약이 될 듯해서 눈을 꿈쩍거리면서 그 침을 삼키고 나니 까닭없이 두 줄기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고 제발 이 손을 조금만이라도 놀려서 어머니가 하는 나무를 내가 하도록 합시사 하였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한 번도 내본 적이 없건만 , 어머니가 나무를 무겁게 이고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무심했건만 웬일인지 이 순간에 이러한 생각이 일었다. 한참이나 꿈쩍 않고 있던 그는 손을 가만히 들어보고 이번에나 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후닥닥거렸다. 하나 손은 여전히 떨리어 옴츠러든다. 갑자기 욱하고 구역질을 하자, 땅에 머리를 쾅! 들이 쪼고 훌쩍훌쩍 울었다. 아주 캄캄해서야 어머니는 돌아왔다. 또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 이고 온 것이다. “어디 아프냐?” 어둠 속에 약간 드러나는 어머니의 윤곽은 피로에 싸여 넘어질 듯하다. 그리고 짙은 풀내가 치마폭에 흠씬 배어 마늘내 같이 강하게 풍겼다.
“이 애야, 왜 대답이 없어?”
아들의 몸을 어루만지는 장작개비 같은 그 손에도 온기만은 돌았다. 칠성이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누웠다. 어머니는 물러앉아 아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혼자 하는 말처럼,
“어디가 아픈 모양인데, 말을 해야지 잡놈 같으니라구.”
이 말을 남기고 일어서 나갔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푸성귀 국에다 밥을 말아 가지고 들어와서 아들을 일으켰다. 칠성이는 언제나 처럼 어머니 팔목에서 뚝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 앉아 떨리는 손으로 술을 붙들었다.
“이 애야, 어디 아프냐? ”
아까와 달리 어머니 옷 가에 그을음 내가 풍기고, 숨소리에 따라 밥내 구수한데, 무겁던 몸이 가벼워진다. “아, 아니. ”
마음을 졸이던 끝에 비로소 안심하고 아들이 국 마시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에그, 큰년네 어머니는 오늘 밭에서 아기를 낳았다누나. 내 남 없이 가난한 것들에서 새끼가 무어겠니.” 아까 버드나무 아래서 본 큰년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으아으아 울던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 또 영애의 그 꼴이 선히 나타난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새끼가 왜 태워, 진절머리 나지. ”
한숨 섞어 어머니는 이렇게 탄식하고, 빈 그릇을 들고 나가 버린다. 칠성이는 방안이 덥기도 하지만, 큰년의 일이 궁금해서 그만 일어나 나왔다. . 뜰 한 모퉁이에 쌓여 있는 나뭇단에서 짙은 풀내가 산 속인 듯싶게 흘러 나오고, 검푸른 하늘의 별들은 아기 눈같이 예쁘다. 왱왱 거리는 모기를 쫓으면서 나무 말리어 모아 놓은 곳에 주저앉았다. 마른 갈잎이 버석버석 소리를 내고 더운 김에 밑이 뜨뜻하였다. 어머니가 저리로부터 온다.
“칠성이냐? 왜 나왔니.”
버석 소리를 내고 곁에 앉는다. 땀내와 영애의 똥내가 훅 끼치므로, 그는 머리를 돌리었다. 어머니는 젖을 꺼내 아기에게 물리고 한숨을 푹 쉰다.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칠성이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나, 안타깝게 병든 고양이 새끼 같은 영애를 어루만지기만 하고,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해종일 김 매기에,그 몸이 고달팠겠고, 더구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려기에 그 몸이 지칠 대로 지쳤으련만, 또 아기에게서라도 시달림을 받으니, 오늘 날이라도 잠만 들면 깨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피로한 몸을 돌아보지 않는 어머니가 어딘지 모르게 미웠다.
“계집애는 자지도 않아 !”
칠성이는 보다 못해서 꽥 소리쳤다. 영애는 젖꼭지를 문 채 울음을 내 쳤다. 그 애가 어디 자게 되었니, 몸이 아픈데다 해종일 굶었고 또 이리 젖이 안 나니까, 하는 말이 혀 끝에서 뚝 떨어지려는 것을 꾹 참으니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오오, 널 보고 안 그런다. 어서 머‥‥‥”
겨우 말을 마치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문득 어머니는 이 눈물이 젖으로 흘러서 영애의 타는 목을 추겨주었으면 가슴이 이다지도 쓰리지 않으련만 하였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글쎄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나서 어미만 죽을 경을 치게 하겠니. 이제 가보니 큰년네 아기는 죽었더구나. 잘 되기는 했더라만‥‥‥ 에그 불쌍하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매이었는지, 아기 머리는 그냥 흙투성이 라더구나.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겠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었더라니, 아이구 죽기를 잘했지, 잘 했지!”
어머니는 흥분이 되어 이렇게 중얼거린다. 칠성이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크게 쉬었다. 그리고 자신도 어려서 죽었더라면 이 모양은 되지 않을 것을 하였다.
“사는 게 뭔지, 큰년네 어머니는 내일 또 김 매러 가겠다더구나, 하루쯤 쉬어야 할텐데, 이게 이게 어느 때냐. 그럴 처지가 되어야지, 없는 놈에게 글쎄 자식이 뭐냐. 웬 자식이냐.”
영애를 낳아 놓고 그 다음날로 보리 마당질하던, 그 지긋지긋하던 때가 떠오른다. 하늘이 노랗고 핑핑 돌고 보리 이삭이 작았다 커 보이고, 도리깨를 들 때 내릴 때 아래서는 무엇이 뭉클뭉클 나오다가 나중엔 무엇이 묵직하게 매어 달리는 듯해서 좀 만져 보았으나, 사이도 없고 또 남들이 볼까 꺼리어 그냥 참고 있다가 소변 보면서 보니 허벅다리에 피가 흔전했고, 또 주먹같이 살덩이가 축 늘어져 있었다. 겁이 더럭 났지만, 누구보고 물어 보기도 부끄럽고 해서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그 살덩이가 오늘까지 늘어져서 들어갈 줄 모르고 또 무슨 물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것 때문에 여름에는 더 덥고 고약스런 악취가 나고, 겨울엔 더하고 항상 몸살이 오는 듯 오삭오삭 추웠다. 먼 길이나 걸으면 그 살덩이가 불이 붙는 듯 쓰라리고, 또 염증을 일으켜 퉁퉁 부어서 걸음 걸을 수가 없으며, 나중에 주위로 수 없는 종기가 나서, 그것이 곪아 터지느라 기막히게 아팠다. 이리 아파도 누구에게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병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척척히 늘어져 있는 그 살덩이를 느끼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갈잎이 바삭바삭 소리를 낸다. 마침 영애는 젖꼭지를 깍 물었다.
“아이그!”
소리까지 내치고도 얼른 칠성이가 이런 줄을 알면 욕할 것이 싫어서 그 다음 말은 뚝 그치고 손으로 영애의 머리를 꼭 눌러 아프다는 뜻을 영애에게만 알리었다. 그러고도 너무 눌렀는가 하여 누른 자리를 금시로 어루만져 주었다.
“정말 오늘 그 난시에 글쎄 큰년네 집에는 손님이 와서 방 안에 앉아도 못 보고 갔다누나.”
칠성이는 머리를 들었다. 어디서 불려 오는 모기 쑥내는 향긋하였다.
“전에부터 말 있는 그 집에서 왔다는데, 넌 정 모르기 쉽겠구나, 읍에서 무슨 장사를 한다나. 왜 돈 푼이나 있다더라. 한데, 손을 이때까지 못 보았다누나, 해서, 첩을 여남은두 넘어 얻었으나, 이때까지 못 낳았단다. 에그 그런 집에나 태지. ”
어머니는 영애를 잠잠히 내려다본다. 칠성이는 이야기하면서도 아기를 생각하는 어머니가 보기 싫었다. 하나 다음 말을 들으려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가 큰년의 말이 났는데 사내는 펄쩍 뛰더란다. 그래도 안으로 맘이 켕기어서 그러하다고 하더니, 하필 오늘 같은 날, 글쎄 선 보러 왔다 갔다니‥‥‥ 큰년이는 이제 복 좋을라! 언제 봐도 덕성스러워, 그 애가 눈이 멀었다 뿐이지 못하는 게 뭐 있어야지. 허드렛일이나 앉아 하는 일이나 휭 잡았으니 눈뜬 사람보다 낫다. 이제 그런 집으로 시집 가게 되고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아 놀게다. 아이그 좀 잘 살아야지 ‥‥‥‥”
“눈 먼 것을 얻어다 뭐를 해!”
칠성이는 뜻밖에 이런 말을 퉁명스리 내친다. 그의 가슴은 지금 질투의 불길로 확 찼고, 누구든지 큰년이만 다친다면 사생을 결단 하리라 하였다. 이러구 나니 머리에 열이 오르고 다리 팔이 떨리었다..
“그 그래, 시 시집 가기로 됐나?”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고 어쩐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동시에 저것도 계집이 그리우려니 하니 불쌍한 마음이 들고 또 아들의 장래가 캄캄해 보이었다.
“아직은 되지 않았더라만은‥‥‥‥”
이 말에 그의 마음은 다소 가라앉은 듯하나, 웬일인지 슬픈 생각이 들어 그는 일어났다.
“들어가 자거라 . 내일은 일찍이 읍에 가게 해. 어떡허겄니.”
칠성이는 화를 버럭 내고 어머니 곁을 떠나 되는대로 걸었다. 발걸음에 따라 모기 쑥내 없어지고 산뜻한 공기 속에 풀내 가득히 흐른다. 멀리 곡식대 비벼치는 소리 바람결에 은은하고, 산기를 띤 실바람이 그의 몸에 싸물싸물 기고 있다. 잠뱅이 가랑이 이슬에 젖고 , 벌레 소리 발끝에 채여 요리 졸졸졸, 고리 쓸쓸쓸‥‥‥‥ 그는 우뚝 섰다. 저 앞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으로 덮였고, 하늘 아래 저 불타산의 윤곽만이 검은 구름같이 뭉실뭉실 떠있다. 그 위에 별들이 너도나도 빛나고, 별빛이 눈가에 흐르자 눈물이 핑그르르 돌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저 산도, 저 하늘도 너무나 그에겐 무심한 것 같다.
“이 애야, 들어가자.”
어머니의 기운 없는 음성이 들린다.
“왜, 왜 쫓아다녀유.”
칠성의 마음에 잠겼던 어떤 원한이 일시에 머리를 들려고 하였다.
“제발 들어가. 이리 나오면 어쩌겠니.”
어머니는 그의 손을 붙들었다. 칠성이는 뿌리치려 했으나 힘이 부친다. 길 풀이 그들의 옷에 비비쳐 실실 소리를 낸다 . 어머니는 절반 울면서 사정을 하였다. 그는 어머니 손에 붙들리어 돌아오면서, 오냐 내일 저를 만나 보고 시집 가는지 안 가는지 물어 보고, 또 나한테 시집 오겠니도 물어야지, 할 때, 가슴은 씩씩 뛰고 어떤 실같은 희망이 보인다.
“날 보고 네 동생들을 봐라.”
어머니는 이러한 말을 하여 아들을 달래려 고 한다. 칠성이는 말없이 그의 집까지 왔다. 이튿날 일부러 늦게 일어난 칠성이는, 오늘은 기어코 큰년이를 만나 무슨 말이든지 하리라, 만일 시집 가기로 되었다면‥‥‥ 그는 아득하였다. 그때는 그만 죽여 버릴까, 나는 그 칼에 죽지하고 뒷뜰로 나와서 바자 곁에 다가섰다. 큰년에 집은 고요하고, 뜨물동이에서 왕왕거리는 파리 소리만이 간혹 들릴 뿐이다. 가자! 바자에서 선뜻 물러섰다. 눈에 마주 띄는 저 앞의 큰 차돌은 웬일인지 노랗게 보이었다. 그는 숨이 차서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이 모양을 하구 가, 하고 굽어보았다. 쇠똥자국이 여기저기 있고 군데군데 해졌고. 뭘 눈이 멀었는데 이게 보이나 , 그럼 만나서는 뭐라구 말을 해야지, 그는 천정을 바라보고 생각하였다. 입가에 흐르는 침을 몇 번이나 시 하고 들여 마시나, 그저 캄캄한 것뿐이다. 생전 말이라고는 못해 본 것처럼 아득하였다. 내가 병신임을 제가 아나 하는 불안이 불쑥 일어 맥이 탁 풀린다. 「너까짓 것에게 시집 가!」 하는 큰년의 말이 들리는 듯해서 그는 시름없이 밖을 내다보았다.
바자에 얽힌 호박 넌출, 박 넌출, 그 옆으로 옥수숫대, 썩 나와서 살구나무, 작고 큰 대싸리가 아무 기탄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가지가지를 쭉쭉 쳤으니 , 잎잎이 자유스럽게 미풍에 흔들리지 않는가. 웬일인지 자신은 저러한 초목만큼도 자유롭지 못한 것을 전신에 느끼고 한숨을 후 쉬었다. 한참 후에 칠성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마당으로 나와서, 큰년네 집 앞으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싸리문을 가만히 밀고 껑충 뛰어들었다. 봉당 문도 꼭 닫히었고 싸리비만이 한가롭게 놓여 있다 . 얼떨결에 봉당 문을 삐걱 열었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야옹 하고 튀어나간다. 그는 어찌 놀랐는지 숨이 하늘에 닿을 것처럼 뛰었다. 봉당으로 들어서서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방문을 열어 보았다 . 무거운 공기만이 밀려 나오고 큰년이는 없었다. 시집을 갔나? 하고 얼른 생각하면서, 부엌으로, 뒷뜰로 인기척을 찾으려 하였으나 조용하였다.
그는 이러하고 언제까지나 있을 수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려 했을 때 싸리문 소리가 난다. 그는 얼떨결에 기둥 이편으로 와서 그 뒤 멍석 곁에 바싹 다가섰다. 부엌문 소리가 덩그렁 나더니, 큰년이가 빨래 함지를 이고 들어온다. 그의 눈은 캄캄해지고 정신이 나른해 진다. 큰년이가 그를 알아보고 이리 오는 것만 같고, 그의 눈은 먼 것이 아니요, 언제나 창 틈으로 볼 수 있는 별 눈을 빠끔히 뜨고서 쳐다보는 듯했다. 숨이 차서 견딜 수 없으므로, 멍석 아래 뒤로 돌아가며 숨을 죽이었으나, 점점 더 숨결이 항항거리고 멍석 눈에 코가 맞닿아서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큰년이는 뒷뜰로 나간다 . 짤짤 끄는 신발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내밀어 밖을 살피고 발길을 옮기려 했으나, 온몸이 비비 꼬이어 한 보를 옮길 수 없다. 어색하여 그만 집으로 가려고도 했다. 그의 몸은 돌로 된 것 같았으나 마침 빨래 널리는 소리가 바삭바삭 나자, 큰년이가 읍으로 시집간다! 하는 생각이 들려, 발길이 허둥하고 떨어진다. 큰년이는 빨래를 바자에 걸치다가 휘끈 돌아보고 주춤한다. 칠성이는 차마 큰년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구요?”
“누구야요? ”
큰년의 음성은 떨려 나왔다. 칠성이는 무슨 말이든지 해야 할 터인데, 입이 칵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 후에 발길을 지척하고 내디디었다.
“난 누구라구‥‥‥‥”
큰년이는 바자 곁으로 다가서고, 머리를 다소곳 한다. 곱게 감은 그의 눈등은 발랑발랑 떨렸다. 칠성이는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알고 조금 마음이 대담해 졌다. 이번엔 밖이 걱정이 되어 연신 눈이 그리로만 간다. .
“나가! 야, 어머니 오신다. ”
큰년이는 암팡지게 말을 했다 . 어려서 음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너, 너 시집 간다지. 조 좋겄구나!”
“새끼두 별소리 다 하네. 나가 야.”
큰년이는 빨래를 조몰락거리고 서서 숨을 가볍게 쉰다. 해어진 적삼 등에 흰 살이 불룩 솟아 있다. 칠성이는 무의식간에 다가섰다.
“아이구머니 ! ”
큰년이는 바자를 붙들고 소리쳤다. 칠성이는 와락 겁이 일어 주춤 물러서고 나갈까도 했다. 앞이 캄캄해지고 또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 오신다 야.”
칠성이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덜덜 떨리어 나오는 이 소리에 눈을 떴다 . 등어리로 흘러내려 온 삼단같은 머리채는 큰년의 냄새를 물씬물씬 피우고 있다. 칠성이는 얼른 큰년의 발을 짐짓 밟았다. 큰년이는 얼굴이 새빨개서 발을 빼어 가지고 저리로 간다 . 손에 들었던 빨래는 맥없이 툭 떨어진다. 쟤가 돌을 집어 치려고 저러나 하고 겁을 먹었으나, 큰년이는 바자 곁에 다가서서 바자를 보시락보시락 만지고 있는데, 댕기 꼬리를 풀풀 날린다. 야물야물 하던 말도 쑥 들어가고 애꿎은 바자만 만지고 있다.
“사탕두 주구, 옷 옷감두 주 주께. 시집 안 가지?”
큰년이는 언제까지나 잠잠하고 있다가 조금 머리를 드는 체하더니,
“누가‥‥‥ 사탕‥‥‥ 히‥‥‥‥”
속으로 웃는다. 칠성이도 따라 웃고,
“응야 안 안 가지.”
“내가 아니, 아버지가 알지 .”
이 말엔 말이 막힌다. 그래서 우두커니 섰노라니,
“어서 나가 야.”
큰년이는 얼굴을 돌린다. 곱게 감은 눈에 눈썹이 가무레하게 났는데, 그 눈썹 끝에 걱정이 대글대글 맺혀 있다:
“그 그럼 시집 가 가겄니?”
큰년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발 끝으로 돌을 굴리고 있다. 칠성이는 슬픈 마음이 들어 울고 싶었다.
“안 안 안 가지, 응야?”
큰년이는 대답 대신으로 한숨을 푹 쉬고 머리를 들려다가 돌아선다. 그때 어린 애 울음 소리가 들렸다. 칠성이는 놀라 뛰어나왔다. 집에 오니, 칠운이가 아기를 부엌 바닥에 내려 굴리고 띠로 아기를 꽁꽁 동이려고 한다. 아기는 다리 팔을 함부로 놀리고 발악을 하니, 칠운이는 사뭇 죽일 고기 다루듯 아기를 칵칵 쥐어박는다.
“이 계집애 자겄니 안 자겄니. 안 자면 죽이고 말겠다.”
시퍼런 코를 쌍 줄로 흘리고서 주먹을 겨누어 보인다. 아기는 바르르 떨면서 눈을 꼭 감고 눈물을 졸졸 흘리고 있다.
“그러구 자라. 이 계집애.”
칠운이는 아기 옆에 엎어지고,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꼬집어 당긴다.
“어마이, 난 여기 자꾸자꾸 아파서 아기 못 보겠다야 씨‥‥‥흥.”
코를 혀 끝으로 빨아 올리면서 칠운이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눈에 졸음이 가득하더니, 그만 씩씩 자 버린다. 칠성이는 무심히 이 꼴을 보고 봉당으로 들어섰다.
“엄마!”
자는 줄 알았던 아기가 눈을 동글하게 뜨고 오빠를 바라본다. 칠성이는 머리끝이 쭈뼛하도록 놀랐다. 해서 이 결에 발을 들어 찰 것처럼 하고 눈을 딱 부릅떠 보이니, 그 얇은 입술을 비죽비죽하며 눈을 감는다 .
“엄마! 엄마!”
아기는 그 입으로 이렇게 부르고 울었다. 칠성이는 방으로 들어와서 빙빙 돌다가 뒷뜰로 나와 큰년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으면 하고, 바자를 가만히 뻐개고 들여다보니, 큰년이는 보이지 않고 빨래만이 가득히 널려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서 벽에 걸린 동냥자루를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큰년의 옷감 끊어다 줄 궁리를 하고, 그러면 큰년이와 그의 부모들도 나에게로 뜻이 옮겨질지 누가 아나 하고, 동냥자루를 벗겨 메고서 밀짚모자를 비스듬히 젖혀 쓴 다음에 방 문을 나섰다. 눈결에 보니 아기는 무엇을 먹고 있으므로, 그는 머리를 넘석하여 보았다. 아기는 띠 동인데서 벗어나와 아궁 곁에 오줌을 눈 듯한데, 그 오줌을 쪽쪽 핥아 먹고 있다.
“이 애! 이 계집애!”
칠성이는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물 속에 들어서는 듯 전신이 후끈하였다. 신작로에 올라서며 그는 옷을 바로 하고 모자를 고쳐 쓰고 아주 점잖은 양 하였다. 이제부터는 이래야 할 것 같다. 에헴! 하고 큰 기침도 하여 보고 걸음도 천천히 걸으려 했다. 이러면 애들도 달려들지 못하고, 어른들도 놀리지 못할 테지 할 때 큰년이가 떠오른다. 슬며시 돌아보니, 벌써 그의 마을은 보이지 않고 수수밭이 탁 막아섰다. 수수밭 곁으로 다가서니 싱싱한 수숫잎 내가 훅 끼치고, 등어리가 근질근질하게 땀이 흘러내린다. 두어 번 몸을 움직이고 어디라 없이 바라보았다. 수수밭 머리로 파랗게 보이는 저 불타산은 몇 발걸음 옮기면 올라갈 듯이 그렇게 가까워 보인다. 그의 집 창문 곁에 비껴 서서 맘놓고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저 산이요, 또 이런 수수밭 머리에서 오가며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저 산이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 언제나 저 산을 바라볼 때엔 흩어졌던 마음이 한데 모이는 듯하고 또한 깜박 잊었던 옛날 일이 한두 가지 생각되곤 하였다. 먼 산에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기는 어느 봄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곁에 서니, 동무들이 조그만 지게를 지고 지팡이를 지게에 끼웃이 꽂아 가지고 열을 지어 산으로 가고 있다. 어찌나 부럽던지 한숨에 뛰어나와서 우두커니 바라볼 때, 언제나 나도 이 병이 나아서 재들처럼 지팡이를 저리 꽂아 가지고 나무하러 가보나, 난 어른이 되면 저 산에 가서 이런 굵은 나무를 탕탕 찍어서 한 짐 잔뜩 지고 올 테야‥‥‥‥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흠 하고 코웃음 쳤다.
뼈 마디마디가 짜릿해 오고 가슴이 죄어지는 것 같다. 두어 번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터벅터벅 걸었다. 지금 그의 앞엔 큰년이가 있을 따름이다. 이틀 후-. 칠성이는 그의 마을에서부터 육리나 떨어져 있는 송화읍 어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읍에 와서 돌아 다니나 수입이 잘 되지 않으므로, 이렇게 송화읍까지 오게 되었고 , 그래서야 겨우 큰년의 옷감을 인조 궁금하고 불안해서 그는 가기로 결정하고 걸었다. 쳐다보니, 별도 없는 하늘, 검정 강아지 같은 어둠이 눈 속을 아물아물하게 하는데, 웬일인지 마음이 푹 놓이고 어떤 희망으로 그의 눈은 차차로 열렸다. 산과 물은 그의 맘속에 파랗게 솟아 있는 듯, 그렇게 분명히 구별할 수 있고, 신작로에 깔린 자갈돌은 심심하면 장난치기 알맞았다. 사람들이 연락부절하고, 자동차가 먼지를 피우며 달아나는 그 낮 길보다는 오히려 이 밤길이 그에게는 퍽이나 좋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걸었다. 가다가 우뚝 서면 산 냄새 그윽하고 또 가다가 들으면 물소리 돌돌 하는데, 논 물내 확 풍기고, 간혹 산새 울음 끊었다 이어질 제, 멀리 깜박여 오는 동네의 등불은 포르릉 날아오는 것 같다가도, 다시 보면 포르릉 날아간다.
그가 숨을 크게 될 때마다 가슴에 품겨 있는 큰년의 옷감은 계집의 살결 같이 조약돌을 밟는 발가락이 짜르르 울리었다.
“고것 어떡하나?”
그의 무의식간에 입을 쩍 벌리고 무엇을 물어 당길 것처럼 하였다. 지금 큰년이와 마주 섰던 것을 그려본 것이다. 이제 가서 옷감을 들려주면 큰년이는 너무 좋아서 그 가무레한 눈썹 끝에 웃음을 띠울 테지. 가슴은 소리를 내고 뛴다. 차츰 동녁 하늘이 바다와 같이 훤해 오는데, 난데없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그는 놀라 자꾸 뛰었으나 비는 더 쏟아지고 , 멀리서 비 몰아 오는 소리가 참새 무리들 건느듯 했다. 그는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빗발에 묻히어 어림해 보이는 저 동리로 부득이 발길을 옮겼다. 큰년의 옷감이 아니면 이 비를 맞으면서도 가겠으나, 모처럼 끊은 이 옷감이 비에 젖을 것이 안되어 동네로 발길을 옮긴 것이다. 한참 오다가 돌아보니, 신작로가 뚜렷이 보이고, 어쩐지 마음이 수선해서 발길이 딱 붙는 것을 겨우 메어 놓았다. 동네까지 오니, 비에 젖은 밀짚 내 콜콜 올라오고, 변소 옆을 지나는지 거름 내가 코밑에 살살 기고 있다. 그는 어떤 집 처마 아래로 들어섰다. 몸이 오솔오솔 춥고 눈이 피로해서 바싹 벽으로 다가서서 옹그리고 앉았다. 그의 마을 앞에 홰나무가 보이고, 큰년이가 나타나고‥‥‥ 눈을 번쩍 떴다. 빗발 속에 날이 밝았는데, 먼 산이 보이고 또 지붕이 옹기종기 나타나고, 낙숫물 소리 요란하고. 그는 용기를 내어 일어나 둘러보았다. 그가 서 있는 이 집이란 돈 푼이나 조이 있는 집 같았다 . 우선 벽이 회벽으로 되었고, 지붕은 시커먼 기와로 되었으며 널판자로 짠 문의 규모가 크고 또 주먹 같은 못이 툭툭 박힌 것을 보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의 얼었던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흰 돌로 된 문패가 빗소리 속에 적적한데, 칠성이는 눈썹 끝이 희어지도록 이 문패를 바라보고 생각을 계속하였다.
“오냐, 오늘은 내게 무슨 재수가 들어 닿나 보다. 이 집에서 조반이나 톡톡히 얻어먹고 돈이나 쌀이나 큼직히 얻으리라‥‥‥‥”
얼른 눈을 꾹 감아 보고,
“눈도 먼 체 할까. 그러면 더 불쌍하게 봐서 쌀이랑 돈을 더 줄지 모르지.”
애써 눈을 감고 한참을 견디려 했으나, 눈 등이 간지럽고 속눈썹이 자꾸만 떨리고, 흰 문패가 가로 새로 나타나고, 못 견디어 눈을 뜨고 말았다 . 어떡허나, 내 옷이 너무 회지, 단숨에 뛰어 나와서 흙물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 섰던 자리로 왔다. 아까보다 더 춥고 입술이 떨린다. 그는 대문 틈에 눈을 대고 안을 엿보려 할 때, 신발 소리가 절벅절벅 나므로, 날래 몸을 움직이어 비켜 섰다. 대문은 요란스런 소리를 내고 열렸다. 언제나처럼 칠성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어떤 사람의 시선을 거북스러이 느꼈다.
“웬 사람이야?”
굵직한 음성, 머리를 드니 사내는 눈이 길게 찢어졌고, 이 집의 고용인인 듯 옷이 캄캄하다.
“한 술 얻어 먹으러 왔슈.”
“오늘은 첫 새벽부터야.”
사내는 이렇게 지껄이고 나서 돌아서 들어간다. 이 집의 인심은 후하구나, 다른 집 같으면 으레 한두 번은 가라고 할 터인데 하고 어깨가 으쓱해서 안을 보았다. 올려다 보이는 퇴 위에 높직히 앉은 방은 사랑인 듯했고, 그 옆으로 조그만 대문이 좀 비딱해 보이고, 그리고 안 대청마루가 잠깐 보인다. 사랑채 왼편으로 죽 달려 이 문간에 와서 멈춘 방은 얼른 보아 창고인 듯 앞으로 밀짚 낟가리들이 태산같이 가리어 있다. 밀짚 대에서 빗방울이 다룽다룽 떨어진다. 약간 누른 빛을 띠었다. 뜰이 휘휘하게 넓은데 빗물이 골이 져서 흘러내린다. 저리로 들어가야 밥술이나 얻어먹을 텐데, 그는 빗발 속에 보이는 안 대문을 바라보고 서먹서먹한 발길을 옮겼다. 중 대문을 들어서자, 안 부엌으로부터 개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 나온다. 으르릉 하고 달려들므로 그는 개를 얼릴 양으로 주춤 물러서서 혀를 쩍쩍 채었다. 개는 날카로운 이를 내놓고 뛰어오르며 동냥자루를 확 물고 늘어진다. 그는 아찔하여 소리를 지르고 중문 밖으로 튀어나와, 사랑에 사람이 있나 살피며 개를 꾸짖어 줬으면 했으나 잠잠하였다. 개는 눈을 뒤집고서 앞발을 버티고 뛰어오른다. 칠성이는 동냥자루를 잎에 물고 몸을 굽혔다 폈다 하다가도 못 이겨서 비슬비슬 쫓 겨 나왔다. 개는 여전히 따라 큰 대문에 와서는 칠성이가 용이히 움직이지 않으므로 으르릉 달려들어 잠뱅이 가랑이를 물고 늘어진다 . 그는 악 소리를 자르고 달아나왔다. 아까 나왔던 사내가 안으로부터 나왔다.
“워리 워리.”
개는 들은 체하지 않고 삐죽한 주둥이로 자꾸 짖었다. 저 놈의 개를 죽일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부쩍 일어 그는 휘 돌아서서 노려볼 때 사내는 손짓을 하여 개를 부른다. 그러니 개는 슬금슬금 물러나면서도 칠성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갑자기 속이 메식해 지고 등어리가 오싹 하더니, 온몸이 열이 화끈 오른다. 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고, 큰 대문만이 보기 싫게 버티고 있었다. 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다소 머리를 드나, 그 개를 만날 것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났다. 해서 단념하고 시죽시죽 걸었다. 비는 바람에 섞이어 모질게 갈겨 치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 도랑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탱탱할 지경이다. 붉은 물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그 위엔 밀짚이 허옇게 떠 있고, 파랑새 같은 나뭇잎이 뱅글뱅글 떠돌아 간다. 비에 젖은 옷은 사정없이 몸에 착 달라붙고 지동치듯 부는 바람결에 숨이 흑흑 막혔다. 어쩔까 하고 둘러보았으나 집집이 문을 꼭 잠그고 아침 연기만 풀풀 피우고 있다. 혹 빈 집이나 방앗간 같은게 없나 했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무거운 눈엔 그 개가 자꾸만 얼른 거리고 또 뒤에 다우쳐 오는 것 같다.
개에게 찢긴 잠뱅이 가랑이가 걸음에 따라 너덜너덜 하여 그의 누런 다리 마디가 환히 들여다보이고 푹 눌러 쓴 밀짚모자에선 방울져 떨어지는 빗방울이 눈물같이 건건한 것을 입술에 느꼈다. 문득 그는 큰년의 옷감이 젖는구나 생각되자 소리를 내어 칵 울고 싶었다. 그는 우뚝 섰다. 들은 자욱하여 어디가 산인지 물인지 분간할 수 없고 곡식대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그 속으로 무슨 큰 짐승이 웡웡 우는 듯한 그런 크고도 굵은 소리가 대지를 울린다. 지금 그는 빗발에 따라 마음만은 앞으로 앞으로 가고 싶은데, 발길이 딱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바라보니 동네도 거반 지나온 셈이요, 앞으로 조그만 집이 두셋이 남아 있다. 그리로 발길을 돌렸으나 들에 미련이 남아 있는 듯 자주자주 멍하니 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개에게 쫓긴 것이 이번 뿐이 아니요, 때로는 같은 사람한테도 학대와 모욕을 얼마든지 당하였건만, 오늘 일은 웬일인지 견딜 수 없는 분을 일으키게 된다.
“이 친구 왜 그러구 섰수.”
그는 놀라 보니 자기는 어느덧 조그마한 집 앞에 펐고, 그 조그만 집은 연잣간 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를 넘석하여 내다보는 사내는 얼른 보아 사오십 되었겠고, 자기와 같은 불구자인 거지라는 것을 즉석에서 알았다. 사내는 쭝긋이 웃는다. 그는 이리 찾아오고도 저 사내를 보니 들어가고 싶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없이 들어갔다. 쌀겨내 가득히 흐르는 그 속에 말똥 내도 훅훅 풍겼다.
“이리 오우, 저 옷이 젖어서 원‥‥‥‥”
칠성이는 얼른 희뜩희뜩 세인 머리털과 수염을 보고 늙은 것이 내 동냥해 온 것을 뺏으려나 하는 겁이 나고 싫어졌다.
“그 옷 땜에 춥겠수. 우선 내 헌 옷을 입고 벗어서 말리우 .”
사내는 그의 보따리를 뒤적뒤적 하더니,
“자 입소 . 이리 오우.”
칠성이는 돌아보았다. 시커먼 양복인데 군데군데 기운 것이다. 그 순간 어디서 좋은 옷 얻었는데 , 나도 저런 게나 얻었으면 하면서 이상한 감정에 싸여 사내의 웃는 눈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 동냥자루나 뺏을 사람 같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소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았다. 사나이는 나무다리를 짚고 이리로 온다.
“왜 이러구 섰수. 자 입으시우.”
“아 아니유.”
칠성이는 성큼 물러서서 양복 저고리를 보았다. 난 생전 입어 보지 못한 그 옷 앞에 어쩐지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허! 그 친구 고집 대단한데, 그럼 이리 와 앉기나 해유.”
사내는 그의 손을 끌고 거적자리로 와서 앉히운다, 눈결에 사내의 뭉퉁한 다리를 보고 못 본 것처럼 하였다.
잠잠하였다가,
“안되었구려. 뭘 좀 먹어야 할 터인데‥‥‥‥”
사내는 또 무슨 생각을 하듯 하더니, 그의 보따리를 뒤진다.
“자, 이것 적지만 자시유.”
신문지에 싼 것을 내들어 펴보인다. 그 종이엔 노란 조밥이 고실고실 말라가고 있다. 밥을 보니 구미가 버쩍 당기어 부지중에 손을 내밀었으나, 손이 말을 안 듣고 떨리어서 흠칫 하였다 . 사내는 이 눈치를 채었음인지 종이를 그의 입 가까이 갖다대고,
“적어 안되었수 .”
부끄럼이 눈썹 끝에 일어 칠성이는 눈을 내려뜨고 애꿎이 코를 들여마시며 종이를 무릎에 놓고 입을 대고 핥아 먹었다. 신문지 내가 이사이에 나들고 약간 쉬인 듯한 밥알이 씹을수록 고소하였다. 입맛을 다실 때마다 좀더 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혀끝에 날름거리고 사내 편을 향한 귓바퀴가 어쩐지 가려운 듯 따가움을 느꼈다.
“저 것이 원‥‥‥‥”
사내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신문지에서 입을 메고 히 하고 웃어 보이었다. 사내도 따라 웃고 무심히 칠성의 다리를 보았다.
“어디 다쳤나보 ! 피가 나우.”
허리를 굽히어 들여다본다. 칠성은 얼른 아픔을 느끼고 들여다보니, 잠뱅이 가랑이에 피가 빨갛게 묻었고, 다리엔 방금 선혈이 흐르고 있다. 별안간 속이 무쭉해서 그는 다리를 움츠리고 머리를 들었다. 바람결에 개 비린내 같은 것이 흠씬 끼친다.
“개 개한테 그리 되었지우 .”
“아, 그 기와집 가셨수‥‥‥ 그 개를 길러도 흉악한 개를 기르거든 흥! 한 놈이 아니우, 어디 이리 내놓우, 개에게 물린 것이 심상히 여길 것이 못되우.”
사내는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었다. 그는 얼른 다리를 치우면서도 코 안이 사 해서 몇 번 코를 움직일 때 뜻하지 않은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린다. 사나이는 이 눈치를 채고 허허 웃으면서,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친구 우오. 울기로 하자면‥‥‥ 허허 울어선 못 쓰오.”
칠성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사내를 바라보니, 눈에 분노의 빛이 은은하였다. 다시 다리로 시선이 옮겨질 때, 가슴이 턱 막히고 목에 무엇이 가로 질리는 것 같아, 시름없이 머리를 숙이고 무심히 부드러운 먼지를 쥐어 상처에 발랐다.
“아이고! 먼지를 바르면 되우 ?”
사내는 칠성의 손을 꽉 붙들었다. 칠성이는 어린 애 같이 히 웃고나서,
“이러면 나유.”
“아 원, 그런 일 다시는 하지 마우. 약이 없으면 말지, 그런 일하면 되우? 더 성해서 앓게 되우.”
칠성이는 약간 무안해서 다리를 움츠리고 밖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또다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기는 것 같다. 바람이 비를 안고 싸싸 밀려들고, 천정에 수 없는 거미줄은 끊어져 연기같이 나부꼈다. 바라 뵈는 버드나무의 잎은 팔팔 떨고, 아래로 시뻘건 물이 좔좔 소리를 내고 흐른다. 어깨 위가 어찔해서 돌아보면 큰 매매이 쌀겨를 뽀얗게 쓰소서 얼음같은 서늘한 기를 품품 피우고 있다.
“배 안의 병신이우?”
사내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칠성이는 머리를 숙이고 머뭇머뭇 하다가,
“아, 아니유.”
“그럼 앓다가 그리 되었구려‥‥‥ 약 써 봤수?”
칠성이는 또다시 말하기가 힘든 듯이 우물쭈물하고 다리만 보았다. 한참 후에,
“아 아니유, 못 못 썼 어유.”
“흥! 생다리도 꺾이우는 지경인데, 약 못쓰는 것쯤이야 허허허허 ‥‥‥‥」
사내는 허공을 향하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소름이 오싹 끼쳐 힐끔 사내를 보았다. 눈을 무섭게 뜨고 밖을 내다보는데, 이마엔 퍼런 힘줄이 불쑥 일었고 , 입은 꼭 다물고 있다. “허, 치가 떨려서. 내 왜 그리 어리석었는지 지금만 같으면 지금이라면 죽더라도 해볼 걸. 왜 그 꼴이었어! 흥!” 칠성이는 귀를 밝혀 이 말을 새겨 들으려 했으나 무엇을 의미한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내는 칠성이를 돌아보았다. 눈 아래 두어 줄의 주름살이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와 흡사했다.
“이 친구, 나도 한 가정을 가졌던 놈이우. 공장에선 모범공인 이었구. 허허 모범공인‥‥‥ 다리가 꺾인 후에 공장에서 나오니, 계집은 달아나고, 어린 것들은 배고파 울고, 부모는 근심에 지레 돌아가시구‥‥‥ 허 말해서 뭘 하우.”
사내는 칠성이를 딱 쏘아본다. 어쩐지 칠성의 가슴은 까닭없이 두근거려, 차마 사내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꺾인 다리를 보았다. 그리고 사내의 다리 밑에 황소같이 말없는 땅을 보았다. 어느덧 밖은 안개비로 자욱하였고, 먼 산이 눈물을 머금고, 구불구불 솟아 있으며, 빗소리에 잠겼던 개구리 소리가 그의 동네 앞인가도 싶게 했고 또한 큰년의 뒷매가 홰나무 아래 어른거려 보인다. 칠성이는 부시시 일어났다.
“난, 난 집에 가겠수.”
사내도 따라 일어난다.
“아, 집이 있수?‥‥‥ 가보우.”
칠성이는 머리를 드니 사내가 곁에 와서 밀짚모자를 잘 씌워 주고 빙긋이 웃는다. 어머니를 대한 것처럼 어딘가 모르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과 믿는 마음이 들었다.
“잘 가우‥‥‥ 세월 좋으면 또 만나지.”
대답 대신으로 그는 마주 웃어 보이고 걸었다. 한참이나 오다가 돌아보니, 사내는 우두커니 서 있다. 주먹으로 눈을 닦고 보고 또 보았다. 길 좌우에 늘어앉은 조밭 수수밭은 이랑마다 물이 충충 했고, 조 이삭, 수수 이삭이 절반 넘어져 물에 잠겨 있다. 올해도 흉년이구나 할 때, 어디서 맹하니 또 어디서 꽁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귀 시끄럽게 우짖는 개구리 소리는 무심한데, 이제 그 어딘가 곁에서 맹꽁 한 그 소리는 사람의 음성같이 무게가 있었다. 안개비 나실나실 내려온다. 조금 말라 오려던 옷이 또 촉촉히 젖고, 눈썹 끝에 안개비 엉기어 마음까지 묵중하고 알 수 없는 의문이 뒤범벅이 되어 돌아간다. 그가 그의 마을까지 왔을 때는 다시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시원해 보이는 홰나무도 찡그린 하늘아래 우울해 있고, 동네 뒤로 나지막히 둘려 있는 산도 빗발에 묻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큰년이가 물동이를 이고 이 비를 맞으면서도 저 산 아래 박우물로 달려가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집집의 울 바자며 채마밭의 긴 바자가 차츰 선명히 보일 때 선뜻 들어 그의 발길은 허둥거렸다. 집에까지 오니 어머니는 눈물이 그득해서 나왔다.
“이 놈아, 어미 기다릴 것도 생각지 않고 어딜 그리 다니느냐.”
어머니는 동냥자루를 받아 쥐고 쿨적쿨적 울었다. 칠성이는 잠잠히 방으로 들어오니, 빗물 받는 그릇으로 절반 차지했고, 뚝뚝 듣는 빗소리가 장단 맞추어 났다. 칠성이는 그만 우두커보다 더 춥고 떨리어서 견딜 수 없다. 칠운이와 아기는 아랫목에 누워 있고 아기 머리는 무슨 헝겊으로 허dug게 싸매 있었다. 그들의 그 작은 몸에도 빗방울이 간혹 떨어진다.
“아무 데나 앉으렴. 어쩌겠니‥‥‥ 에그, 난 어젯밤 널 찾아 읍에 가서 밤새 싸다니다 왔다. 오죽해야 술집 문까지 두드렸겠니. 이놈아, 어딜 가면 간다고 하지, 그게 뭐이.”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어 운다. 남편을 잃은 뒤 그나마 저 병신 아들을 하늘같이 중히 의지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 칠운이가 울음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성 왔네! 성 왔네!”
눈을 잔뜩 움켜쥐고 뛰었다. 그 통에 파리는 우그르르 끓고, 아기까지 키성키성 보챈다. 칠운이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비치고 형을 보려다는 못 보고 또 비비친다.
겄다. 거게다 눈까지 덧치니. 그런데 이 동리는 웬일이냐. 지금 눈병 때문에 큰일이구나. 아이 어른 모두 눈병에 걸려 눈을 못 뜬다.”
칠성이는 지금 아무 말도 귀에 거치지 않고, 비 새지 않는 곳에 누워 한잠 푹 들고 싶었다. 칠운이는 마침내 응응 울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뒷문 밖으로 나가더니 오줌을 내 뻗치며, 그 오줌을 눈에 바른다.
“잘 발라라- 눈등에만 바르지 말고 눈 속에까지 발러‥‥‥ 저것도 보고 반가워서 저리도 눈을 뜨려는구. 어제는 성아 성아 찾더구나.”
어머니는 또 운다. 칠성이는 등에 선뜻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여 앉으니, 이번에는 콧등에 떨어져 입술에 흐른다. 그는 콧등을 후려치고 화를 버럭 내었다.
제 제길!”
“글쎄 비는 왜 오겠니. 바람이나 불지 말아야 할 터인데, 저 바람! 기껏 키운 조는 다 쓰러져 싹이 나겠구나. 아이구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으냐. 하느님 맙소사!”
두 손을 곧추 들고 애걸한다. 그의 머리는 비에 젖어 이기어 붙었고, 눈은 눈꼽에 탁 엉키었고, 그 속으로 핏줄이 뻘겋게 일어 눈이 시커매서 바라볼 수 없는데, 시커먼 옷에 천정 물이 어룽어룽 젖었다. 칠성이는 얼른 샛문 턱에 걸터 앉아 눈을 딱 감아 버렸다. 눈이 자꾸만 피곤하고 그래서 새 속눈썹이 가시 같아 눈 속을 꼭꼭 찌른다. 그는 눈을 두어 번 굴렸을 때 문득 방앗간이 떠오른다. “어제 개똥네 논에 동이 터졌는데, 전부 쓸려나갔다누나. 에구 무서워. 저게 무슨 바람이냐. 저 바람! 우리 밭은 어쩌나.” 어머니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칠운이는 울면서 따르다가 문턱에 걸려 공중 나가 넘어지고 시재 가르려는 소리를 하였다. 칠성이는 눈을 부릅떴다.
“저 저 놈의 새끼, 주 죽이고 말까부다.”
어머니는 얼른 칠운이를 업고 물러나서 정신없이 밖을 바라보고, 또 나갔다가 들어왔다. 칠운이를 때리다가 중얼중얼하며 돌아간다. 칠성이는 이 꼴이 보기 싫어 모로 앉아 눈을 감았다. 무엇에 놀라 눈을 뜨니, 아랫목에 누워 할락할락 하는 아기가 일어나려다 쓰러지고 소리 없는 울음을 입으로 운다. 머리를 갈자리에 비비치다도 시원치 않은지 손이 올라가서 헝겊을 쥐고 박박 할퀴는 소리란 징그러워 들을 수 없었다. 칠성이는 눈을 안 뜨자 하다도 어느새 문득 뜨게 되도, 아기와 저 노란 손가락이 머리를 쥐어 뜯는 것을 보게 된다. 조 놈의 계집애는 죽었으면! 하면서 눈을 감는다. 바람은 점점 더 세차게 분다. 살구나무 꺾이는 소리 들어와서 눕는다.
“성아, 내일은 눈약두 얻어 오렴. 개똥이는 저 아버지가 읍에 가서 눈약 사왔다는데, 그 약을 넣으니까 눈이 낫다더라 응야.”
이나 사올 것을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으나 사라지고, 어떻게 큰년에게 이 옷감을 들려줄까 하였다. 부엌에서 성냥 긋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머니가 들어온다.
“아궁에 물이 가득하니 이를 어쩌냐. 저것들도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너두 배 고프겠구나.”
이런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곧 뛰어 들어온다.
“큰년네 논두 동이 터졌단다. 그리 튼튼하던 동두, 저를 어쩌니.”
칠성 이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좀 자려무나 요 계집애야, 왜 자꾸만 머리를 뜯니, 조놈의 계집애는 며칠째 안 자고 새웠단다. 개똥 어머니가 쥐 가죽이 약이라 기, 쥐를 잡아 저리 붙였는데 자꾸만 떼려구 저러니 아마 나으려구 가려운 모양이지.”
그렇다구 해 줘야 어머니는 맘이 놓일 모양이다. 큰년네 말에 칠성이는 눈을 떴는데 딴 푸념을 하니 듣기 싫었다. 하나 꾹 참고,
“그 그래, 큰년네두 논이 떴대?”
“그래! 젖이 안 나니‥‥‥‥”
어머니는 연신 아기를 보고 그의 젖을 주물러 본다. 명주 고름끈 같이 말큰거린다. 아기는 점점 더 할딱할딱 숨이 차오고, 이젠 손을 놀릴 기운도 없는지 손이 귀밑으로 올라가고는 맥을 잃고 다르르 굴러 떨어진다. 어머니는 바람 소리를 듣더니,
“이전 우리 조는 못 쓰게 되었겠다! 큰년네 논이 뜨는데 겐디겠니‥‥‥ 참 큰년이는 복 좋아, 글쎄 이런 꼴 안 보렴인지 어제 시집갔단다.”
“큰년이가?”
칠성이는 버럭 소리쳤다. 그의 가슴에 고이 안겨 있던 큰년의 옷감은 돌같이 딱 맞질리운다. 어머니는 아들의 태도에 놀라 바라보았다.
“어마이 저것 봐!”
칠운이는 뛰어 일어나서 응응 운다. 그들은 놀라 일시에 바라보았다. 아기는 언제 그 헝겊을 찢었는지, 반쯤 헝겊이 찢어졌고, 그리로부터 쌀알같은 구더기가 설렁설렁 내달아 오고 있다.
“아이구머니 이게 웬일이야 응, 이게 웬일이어!”
어머니는 와락 기어가서 헝겊을 잡아 젖히니, 쥐 가죽이 딸려 일어나고 피를 문 구더기가 아글아글 떨어진다.
“아가 아가 눈 떠, 눈 떠라 아가!”
이 같은 어머니의 비명을 들으며 칠성이는
「엑!」
소리를 지르고 우둥퉁퉁 밖으로 나와 버렸다. 비는 확확 쏟아지고 바람은 미친 듯 몰아치는데, 가다가 우르릉 쾅쾅 하고 하늘이 울고 번갯불이 제멋대로 쭉쭉 찢겨 나가고 있다. 칠성이는 묵묵히 저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첫댓글 우리 삶의 뿌리, 민초들의 모습이 생생하구려
좋은 글 감사하구요... 이 같은 글은 <좋은 글>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그곳에 앞으로도 실어 주시면 감사^^
세상에 이것을 올리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 텨누가 했을리는 만무하고
이 천우 선생님, 어떻게 이런 긴 글을 올리실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엄청난 분량을 올리신느라 가뜩 붉은 얼굴 더 붉어지신걸 상상하니 웃음이 나옵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무리하지 마십시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