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해운대 입춘 모임
진주 사람들은 남강물처럼 따뜻하다. 그 진주 사람 중에 문인들은 더 다정하다. 4일 입춘 날 수원서 정태수 선생님 모시고 새마을호 4호차 올라가니, 일곱분이 앉아계신다. 두 분 여류 옆에 갈래말 사전 펴내신 박용수님은 벌써 맥주 한 캔 하셨다. 나는 정태수 총장님과 전 문인협회 부이사장 이유식 교수님 옆에 앉았다. 여류 수필가 함순자님은 진주 신안동 우리 할아버지 사시던 동네 분이다. 혈육을 만난듯 반가워 이멜로 꼭 만나자고 약속한다. 여고시절 꽃처럼 고와 총각들 가슴 설레게 하던 그 옆 분은 누구신가? 정재필 회장이 '안네'란 애칭으로 불러준 여류 안병남 이다. 이분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며 다섯 시간 해운대로 향하여 가는 기차여행 자체가 행복하다.
정총장님이 두 여류 옆 꽃밭에 앉자마자 웃음판 벌어졌다. 함순자 선배 바깥분 내무부 차관도 정태수요, 옆에 앉은 분도 문교부 차관 출신 정태수, 함선배는 집에 정태수 두고 나와 밖에서 다른 정태수 옆에 앉으신 것이다. ‘함선배님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좀 더 부군 옆으로 바짝...’ 거사가 농담을 던지자, 얼굴 상기된 함선배, ‘현이 너 나중에 혼 난다.’ 누나처럼 엄포를 놓는 바람에 새마을호 기찻칸이 발칵 뒤집어진다.
차가 대전 지나 봄에 복사꽃 매화꽃 만발하는 낙동강 지나니, 곧 부산역이다. 거기 환영 꽃다발 든 사람들 누구인가. 부산 임원진들 이다. 같이 연산동 총회 자리 옮겨가 일장 축사판 벌어진다. 월계, 청다, 덕암, 선배님들 축사도 일품이거니와 미국서 오신 회원까지 포함하여 진주 출향문인 40여분이 모였으니, 입춘절 매화향기 보다 문향이 향기롭다. 부산역 그 환영 꽃다발은 발족 1년만에 100명 회원 확보한 정재필 회장님 가슴에 옮겼다가, 후임 성종화회장님 가슴으로 옮겨 실용적으로 세 번이나 써먹었다. 남강문학회 100명 째 꼴찌로 등록한 회원은 거사 동기 양왕용 교수다.
천리길 달려내려와 시퍼런 해운대 바다를 봄도 멋진 일이다. 해운대의 밤은 수십개 횟집이 불을 밝혔는데, 우리는 노래방 가서 <진주라 천리 길>과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으로 시작, 각자 비장의 노래 한곡씩 부르는 속에 절창은 정재필 초대 회장 노래, 춤은 허일만 총무가 볼만했다.
김상남 부회장이 글 줄이나 아는 문인이라면 해운대 <봉자네 집> 가봐야 한다는 바람에 몇사람 거기서 2차를 했다. 거기 허름한 판자집 막걸리와 파전 맛볼만 했다. 3차는 회원 다 모여 횟집 2층에서 열었고, 4차는 이영성시인이 신임회장님과 남강문학회 마담 뽕빠드르 봉화님을 자신의 제자가 운영하는 일식집에 모시고 가서 열고. 5차는 거사와 이영성 둘만 포장마차에서 끝냈으니, 그때는 시간이 새벽 4시였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어지지 말자고..' 마음이 해운대 에레지같이 흘러간 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한국콘도 창문 밖 발밑에 밤새도록 푸른 파도에 씻긴 백사장 보이고, 하얀 모래톱 위로 갈매기 날아다닌다. 면경알처럼 맑은 바다에 멀리 오륙도 보이고, 새벽에 고기 잡고 돌아오는 작은 조각배도 보인다. 옆방에서 자고온 성종화 회장님 때문에 아침부터 폭소가 터졌다. 술자리서 새벽 3시 쯤 콘도로 돌아오니 초저녘 잠 깊은 영감들이 방문을 열어주지 않더란다. 그래 부득불 두 숙녀 방에 가서 외박하고 온 것이다. 법을 하신 분이니 좀 물어보겠습니다. 이런 건 '미필적 고의' 인지 아닌지.
아침에 콩나물해장국 먹고, 선배님들과 백사장 거닐었다. 분재처럼 전지 잘된 파라다이스호텔 해송들이 인상적이었다. 나무를 깐 산책길에서 사진 전문가 박용수 고문님이 잡아준 구도로 사진도 찍었다. 해운대에 세운 두 노래비 그 자리에 잘 세웠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은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언제 까지나 언제까지나...' 바위에 새겨진 고운 최치원 선생의 <海雲臺> 각자(刻字) 구경하고 동백섬 한바퀴 돌았다. 무성한 동백잎은 햇볕에 빤짝이고, 아열대 숲에 핀 춘백(春栢) 붉은 빛 한편의 시다. 동백섬 산책길 서울 사람들에게 참 부러운 길이다.
동백섬이 좋더니만 태종대도 좋다. 회장단이 자갈치 시장에서 배불리 회를 먹이더니, 승합차로 영도로 이동한다. 차속에서 마이크 잡은 분은 어제 밤 재기발랄한 춤 잘 추던 허일만 선배다. 어찌나 와이당을 잘 풀던지 웃겨서 배를 도로 홀쭉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바람에 지천, 청다, 에베네셋 세 선배도 각각 비장의 유머 선보였다. 태종대 내린 일행은 마차인지 기차인지 알송달쏭한 차를 타고 상록림 속에 들어갔다. 바위는 절경이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이다. 흰 파도는 자살바위 아래 밀려와 부서지고, 노송은 맑은 바람을 보낸다. 과연 절영도란 이름 부끄럽지 않다. 이 속을 진주 출신 시인,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 한 무리가 신선이 되어 돌아댕긴 것이다.
그 다음에 바다 위로 새로 건설한 남항대교 드라이브하여 송도에 닿으니, 웬 고래 한 마리가 물속에서 머리와 꼬리 내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조각 작품이다. 보름 달맞이 하려고 공원엔 청사초롱이요, 모래밭엔 대나무로 커다란 달집 만들어 놓았다. 영도 출신 가수 현인 동상 옆에 노래방 기계가 있다. 우리는 거길 그냥 지나갈 사람들인가. <굿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비내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합창도 했고, 허일만 총무는 봉화 시인을 껴안고 한바탕 땐싱까지 했다.
그리고 만남은 항상 이별을 전제로 한 것. 새마을호 출발시간 앞두고, 수평구 고갯길에 있는 손동인 시비(詩碑) 둘러보고, 부산역 앞에서 냄비우동 먹고, 금잔디님 등 부산 회원들과 헤어졌다. 스케쥴 모두 회장단의 세심한 배려 속에 정이 뚝뚝 흐르게 진행되었다.
(2009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