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보다 속 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지난주 치러진 수학능력시험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데, 주말이면 수시 대학별고사(논술 등)에 응시하러 대학들을 순례해야 한다. 몸만 고되면 견딜 만하겠지만 '눈치작전'도 펼쳐야 해서 피곤이 배가 된다. 지금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은 이미 지원서를 넣은 6곳의 수시 전형 가운데 대학별고사를 포기할 곳을 결정하는 일이다. 정시에 넣어도 갈만한 곳은 과감히 결시하고, 소신 또는 상향지원인 경우만 응시해야 한다. 수시에 일단 합격하면 정시 응시기회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자신의 점수와 전체 수험생의 점수 분포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정식 채점결과가 나오기까지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크게 의존하는 것이 입시정보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들이다. 고3 수험생을 둔 가정치고 J, M, E 사 등 온라인 입시정보 업체 한두 곳에 가입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가채점을 하고 자신의 점수와 다른 수험생들의 점수 분포를 확인해 봤다. 이들 사이트는 수험생이 얻은 점수가 각 과목별로 어느 등급에 해당하는지를 보여주는 '등급 컷', 전체 평균과 표준편차를 반영한 '표준점수', 전체 수험생 가운데 석차를 의미하는 '백분위 점수', 국어+영어+탐구 등 '특정 과목 조합점수' 등 대학들이 입시전형에서 활용하는 각종 지표를 무료로 보여준다. 또 따로 3~5만 원을 결제하면 예년의 커트라인 등을 고려해서 지금 점수로 정시에 어느 대학, 어느 과에 갈 수 있는지 합격예측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이들 정보는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대체로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예년에 시험을 치러본 학부모들의 평가다. 이들 입시정보 회사들은 자신의 점수를 입력한 학생들의 정보를 기초로 각종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J 사의 경우 수능 다음날인 8일 현재 자신의 점수를 입력한 학생이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시험을 치른 전국의 수험생 60여만 명의 약 8%에 해당하는 것으로, 표본을 통해 모집단의 특성을 추정하는 통계로서는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표본 수가 된다. 이번 18대 대통령선거에서 1,2위 후보의 득표율을 얼추 비슷하게 맞췄던 출구조사도 전체 투표자 3072만 명의 0.28%인 8만 6000여 명을 조사하는데 불과했다.
▲ 2014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일인 7일 오전 서울 대치동 휘문고 시험장 앞에서 한 학부모가 교문 앞에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그런데 입시 정보업체가 운영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지식·정보 사회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의 원리를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우리가 학교에서 '경제' 라고 배운 시장이론은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에 관심을 집중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자원은 주로 제조업에서 생산되는 형체가 있는 유형재다. 삼성 갤럭시 노트, 현대 그랜저 같은 유형재는 경합성(rivarlry)과 배제성(excludability)를 특징으로 한다. '경합성이 있다'는 것은 내가 갤럭시 노트를 가지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다는 뜻이고, '배제성이 있다'는 돈을 내지 않으면 그랜저를 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장 이론에서는 경쟁과 선택, 그리고 확실한 소유권 보장이 제한된 자원으로 최적의 효율을 달성하는 해법이 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원의 중요도는 유형재에서 무형재로 이동한 지 오래됐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콘텐츠 산업의 시장규모는 2008년 1조 7015억 달러로, 정보기술산업(8000억 달러)는 물론이고 제조업의 총아라 불리는 자동차 산업(1조 7000억 달러)를 추월했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률은 제조업 성장률의 10배 수준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력은 갈수록 줄어 미국은 10%가 안 되고 한국도 20% 이하로 하락했다.(<협력의 경제학>(최배근 지음, 집문당 펴냄) 4페이지 인용). 사실 요즘은 설계·디자인·아이디어 개발을 본부에서 담당하고 제작은 중국, 인도 등 개도국에 간단히 맡기는 추세여서 제조업은 크게 부가가치를 내기 힘든 '글로벌 공공재'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 무형재는 유형재와 성격이 다르다. 소프트웨어, 게임, 영화, 법률, 의료, 교육 같이 오늘날 중요성이 매우 커진 무형재는 경합성과 배제성이 약하다. 소프트웨어는 처음에 만들 때는 돈이 들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추가로 사용하는 데 따른 생산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재에서는 유형재와 반대로 반경합성(antrivalry) 과 포괄성(inclusiveness)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성질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가치를 만들고 높여간다는 의미이다.
이를 입시정보회사의 사이트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자신의 점수를 넣음으로써 비로소 전체 수험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게 된다.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기에 결국 알고 싶은 것을 얻게 되는 것으로 협력적 생산과 협력적 소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수험생은 정보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 즉 생비자(生費者)가 된다. 사이트 입장에서 보면 될 수 있으면 많은 수험생들이 자신의 점수를 넣을 때 데이터가 점점 정확해지고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많은 수험생이 몰리는 사이트는 정확성이 높다는 소문이 나고 이곳에 더 많은 수험생이 몰리는 '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
애플의 '앱스토어', <브리태니커>를 누른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모두 이런 원리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서비스다. 기업의 혁신도 이제는 연구소에서 자체 인력으로 하던 폐쇄성에서 벗어나고 있다. 네트워크화, 개방화를 통해서 협력업체, 공급자, 다른 연구소, 그리고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기업이 혁신에서 앞서 가게 된다.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개방형 협력적 혁신', '소셜 매뉴팩처링', 남을 이롭게 함으로써 자신도 이득을 얻는 이타자리(利他自利) 형 비즈니스 모델,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 등이 모두 협력에 기반을 두고 공동창조의 이점을 활용하는 새 패러다임의 양상들이다.
지식정보화, 네트워크화를 특징으로 한 최근의 경제에서 '개방', '공유', '협력'이 핵심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네트워크화된 관계가 지속적인 혁신과 협업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관계를 얼마나 밀도 있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기업이나 사회의 성패가 좌우된다. 구성원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자신의 것을 공개하며 상부상조하느냐의 여부는 신뢰도가 좌우한다. 그래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열린 자세로 소비자, 공급자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경제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