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존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적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복음을 전하는 이유도, 성도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이유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존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 들어가는 미래적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어 현재의 삶 속에서 역사하며, 인간의 전 존재를 새롭게 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완성되는 살아 있는 구원의 여정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구원의 길을 매우 실제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인간을 찾아오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할 때 의롭다 하심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어 가며, 마침내 사랑으로 온전해지는 성화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구원론은 한순간의 결단으로 끝나는 구원이 아니라 은혜에서 은혜로 나아가는 성경적 구원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Ⅰ. 구원의 시작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은총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구원의 첫 출발점은 인간의 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이 말씀은 웨슬리의 구원 이해를 잘 보여 줍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한 걸음 내딛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인간을 향하여 은혜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웨슬리는 이것을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설명했습니다. 선행은총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양심을 깨우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일으키시는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을 말씀합니다. 웨슬리는 이 말씀과 여러 성경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먼저 역사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도 은혜입니다. 마음에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은혜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싶어지는 것도 은혜입니다. 기도하고 싶어지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가 부모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모는 아이를 찾기 위해 이미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발견한 순간보다 먼저 부모가 아이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신학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잘해서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고백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은혜의 감격입니다. 신앙이 의무가 되고, 교회생활이 습관이 되고, 봉사가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복음의 중심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웨슬리가 가르쳐 준 성경적 구원의 길은 먼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무엇을 행하셨는가?”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Ⅱ. 구원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롭다 하심이다
하나님의 선행은총이 인간의 마음을 깨우고 하나님을 찾게 한다면, 구원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이 죄에서 의롭게 되는 길은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 업적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로마서 5장 1절도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고 말씀합니다.
웨슬리는 이 믿음을 단순한 지적인 동의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칭의(justification)가 중요합니다. 칭의는 죄인이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도 부족함이 있고, 우리의 사랑에도 부족함이 있으며, 우리의 봉사에도 자기중심성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웨슬리 자신도 이 진리를 자신의 삶에서 깊이 체험했습니다. 오랫동안 경건한 삶을 살려고 애썼지만 자신의 의와 노력만으로는 참된 구원의 확신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구원이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구원의 길은 행위에서 믿음으로, 자기 의에서 그리스도의 의로, 불안에서 확신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믿음과 삶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킵니다. 야고보서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인간관계를 변화시키고, 삶의 방향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칭의는 구원의 끝이 아니라 성화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Ⅲ. 구원의 완성은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온전해지는 성화의 길이다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구원을 현재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후에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이를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는 구원이 한순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삶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삶을 새롭게 하셔서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웨슬리에게 성화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세상과 단절된 종교적 고립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웨슬리가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고백했던 것도 이러한 영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에게 다가가게 됩니다.
웨슬리에게 성결은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며, 교육하고, 병든 사람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삶이 거룩함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의 유명한 신앙 원리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성결과 사회적인 성결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성령으로 거룩해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웨슬리가 말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도 이러한 사랑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더 이상 실수하거나 연약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죄와 한계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을 지배하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웨슬리가 바라본 구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거룩함이 자라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구원의 길입니다.
맺는말 ― 은혜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구원의 길
존 웨슬리가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는 성경적 구원의 길은 매우 분명합니다. 선행은총에서 시작하여, 회개와 믿음으로 나아가고, 칭의를 거쳐, 성화와 사랑의 완전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먼저 찾아오고,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키며,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사랑이 우리 안에서 열매 맺어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웨슬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이 구원의 길을 회복해야 합니다. 구원을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축소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선행과 종교적 열심을 구원의 근거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주어집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구원은 성령 안에서 현재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사랑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교회에 오래 다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선행은총을 의지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듭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은혜를 감사합시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거룩함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시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웨슬리의 구원론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는가?”에서 멈추지 말고, “나는 지금 구원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은혜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굳게 서고, 성령으로 거룩해지며, 사랑으로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하고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 말씀이 웨슬리가 바라본 성경적 구원의 길이며,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걸어가야 할 거룩한 길입니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
카페지기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 카페운영도 포기해야 할 형편입니다
요즘은 끼니도 거르며 하루하루 겨우 살고 있습니다
예수코리아 카페에서 알려드리는 글입니다
도움을 주셔야만 문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는 아주 어렵게
지냅니다 투병중에 생활고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후원이 없다 보니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못삽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이체 회원이 없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카페후원계좌-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