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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연재 -미국의 여성 불교 >
수행과 학문을 하나로 통합한
나로파 대학의 여성 교수,
주디스 시머 브라운 (1)
글 | 스텔라 박
연구실 소파에 앉은 주디스 시머 브라운
명상수행을 강조하는 나로파 대학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시에 자리잡은 나로파 대학(Naropa University)은 티베트 불교 승려인 쵸감 트룽파 린포체가 1974년에 설립한 고등 교육기관이다. 규모로 보자면 그닥 내세울 만한 것이 없지만 개설 과목과 교수진들, 그리고 명상수행을 강조하는 독특한 학풍은 일반적으로 대학들에 매기는 순위와 상관 없이 지원자들을 매혹시킨다.
나로파 대학은 학부와 대학원에 불교학, 명상심리, 상담심리 등의 과목을 개설해 불교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로파 대학 학생들의 학문적 탐구는 명상이라는 정신적 수행과 병행된다. 이곳에서의 공부는 에고를 붙잡고, 그 에고를 더욱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드러나는 공성(空性), 즉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기반으로부터 시작되는 참 공부는 이기심으로 곧 파멸을 맞을 것 같은 인류의 앞날을 밝혀줄 수 있는 구원의 빛이다.
지난 4월 초, 나로파 대학을 방문했었다. 잔디밭에서 기공 수행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책을 들고 캠퍼스를 걷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다른 대학과는 달리 여유로움이 엿보였다. 실천 수행을 가장 중시하는 카규파의 가르침을 이 대학 모든 구성원들이 실천하고 있어서일까.
도서관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영적 노력들에 대한 도서들이 가득했다. 이런 책들에 둘러 쌓여 있다면 하루 온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명상실에는 화려한 색채의 티베트 탕카가 걸려 있고 바닥에는 명상 방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언제든 영혼의 목마름을 느낄때마다 자신과 연결됨으로 충전될 수 있는 공간이 평화로워보였다.
나로파의 여교수, 주디스 시머브라운
주디스 시머브라운(Judith Simmer-Brown)은 나로파 대학이 개교하던 1974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다. 그녀는 명상 종교학과(Contemplative and Religious Studies )의 교수로서 티베트 불교, 여성과 불교,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서양 불교, 명상 교육 등의 주제에 대해 깊히 연구해 왔다. 종교적으로 그녀는 약 50년째, 쵸감 트룽파 린포체로 이어지는 전통의 티베트 불교 신자이다. 그녀는 또한 샴발라 불교 전통에서 시니어 불교 스승인 아차랴(Acharya)이기도 하다.
그녀와 첫 대면의 순간은 비디오 플레이어가 정지했다가 느린 동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기억에 남는다. 양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그 동작 하나 하나가 어쩌면 그렇게도 우아하면서 겸손할 수 있는지. 동작 하나 하나를 알아차리는 듯, 천천히, 정성껏 하는 합장 인사… 하기야 그렇게 인사하지 않으면서 어찌 “나마스떼(내 안의 신성(불성)이 당신 안의 신성(불성)에 인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수행자라면 마땅히 그렇게 우주를 모두 담고 있는 내 앞의 그 사람에게 존중, 사랑을 담아 인사를 해야함을 주디스를 통해 깨달았다.
인사뿐 아니라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 그녀는 마음을 담아 천천히 또박또박 한다. 마음챙김과 메따 수행이 온 몸으로 체화되어 있음을 그녀는 전 존재로 보여주고 있었다.
“혹시 우마 써먼(Uma Thurman) 엄마, 아니냐는 질문, 많이 받지 않나요?”
주디스 시머브라운은 큼직큼직한 눈코입이 <영화 펄프픽션(Pulp Fiction)>과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Henry and June)>에 나왔던 여배우, 우마 써먼과 무척 닮아 있다. 우마 써먼은 잘 알려진 대로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던 로버트 써먼(Robert Thurman) 교수의 딸이다.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티베트 불교를 전파하고, 지금까지도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도반, 로버트 써먼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1946년생인 그녀는 올해로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이지만 탐스러운 금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안경을 쓴 모습에서 아직도 소녀 같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로파 대학의 명상실. 영혼이 목마를 때 자기자신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릴 때부터 영적이었던 주디스
주디스 시머 브라운 교수는 네브라스카 주, 인구 5천 명 규모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감리교 목회자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근원을 알 수 없는 영적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 처음 영적으로 끌렸던 이는 존 웨슬리(John Wesley)였다. 존 웨슬리는 체계적인 기도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던 감리교도이다. 감리교 목회자를 아버지로 둔 그녀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감리교적인 기도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존 웨슬리의 책을 읽었을 때엔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한다.
“존 웨슬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성경 구절을 읽고 기도하는 등, 수행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나 역시 그를 따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 침대에 앉아서 성경을 몇 구절 읽은 후 기도를 했었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어요. 나는 계속해서 영적인 갈증을 느꼈답니다.”
인도…처음으로 느껴본 집(Home)과 같은 곳
어린 시절, 그녀는 인도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인도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한 선교사가 그녀의 고향인 네브라스카의 작은 마을에 와서 인도에서의 기독교 선교 경험에 대해 들려주었는데, 그 선교사의 경험담을 듣는 순간, 그녀는 즉각적으로 인도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 신비한 연결됨의 느낌은 전생의 인연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그래서 그녀는 인도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대학 진학 후, 교환학생으로 인도의 구자라트(Gujarat)에 있는 간디언 아슈람 컬리지(Gandhian Ashram College)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이들이 명상 수행을 했고 면으로 실을 만들어 내는 노동 수행을 했다.
그녀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명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단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명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의 사람들은 그녀의 질문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그녀는 돌이켜보며 말한다. 그래서 그저 다른 이들과 함께 가만히 앉아, 고요해지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인도로 떠났던 것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재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인도에 도착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집(Home)’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었으니까.
“제 생애 처음 느껴보는 평화였어요. 지구 반대편인 네브라 스카에서부터 저는 인도에 간다면 내가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는 사실이었어요. 인도에 도착한 그 순간, 제 진짜 삶이 시작됐으니까요.”
명상실 앞의 티베트 탕카
아카데믹한 이력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온 그녀는 그녀의 가족들이 갔던 아이오와의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콜롬비아 대학에서 종교학(남아시아 중심)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때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그 당시(1960년대)에는 불교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60년대의 미국에는, (아니 미국뿐만은 아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는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도 이미 정했겠다, ‘이제 졸업 후 무얼 할까?’ 하는 생각으로 1년동안 대학을 비웠다.
나로파 대학에서 강단에 서기 전, 그녀는 벤살름 컬리지(Bensalem College), 포댐 대학(Fordham University), 워싱턴주의 벨링햄에 있는 웨스턴 워싱턴 대학(Western Washington University), 페어헤이븐 컬리지(Fairhaven College), 왓컴 커뮤니티 컬리지(Whatcom Community College) 등에서 가르쳤다.
스즈키 로시와의 조우
웨스턴 워싱턴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그녀는 미국에 선불교를 전한 스즈키 로시의 학생을 알게 됐다. 그리고 1971년, 스즈키 로시가 입적하기 9개월 전, 샌프란시스코 젠센터에서 그를 친견했다. 좌선을 하기 위해 방석 위에 앉은 순간 그녀는 즉각적으로 다시 집(Home)에 왔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집에 있는 느낌을 갖기 위해 꼭 인도에 가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녀가 발견한 좌선 명상은 무척 직접적인 것이었고 그 이후 그녀는 매일 약속이라도 한 듯 정말 열심히 수행을 했다. 스즈키 로시는 그로부터 9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그리고 타싸하라 리트릿 센터에 앉아 좌선 수행을 했다. 그녀는 이 기간이 그녀의 삶 가운데 가장 영적으로 많이 성장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수행이냐, 학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1년 동안 캠퍼스를 떠났던 그녀는 다시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과 월든 대학(Walden University)에서 불교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이 즈음, 가슴 속에 남모르는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불교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던 그녀는 대학 캠퍼스에서는 그 누구도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아탑에서 수행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임을 눈치채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젠센터에 가서 수행을 할 때면, 불교학이나 불교 관련 책을 읽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 젠센터의 자매 기관인 그린 걸치 농장(Green Gulch Farm)에 가서 상추를 뽑는 노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녀가 불교학자라는 것이 함께 리트릿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 알려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묻더란다. “당신, 수트라를 읽어봤나요?”라고. 이처럼 젠센터에 가면 불교경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젠센터에서는 단지 방석 위에 앉아 마음을 바라보는 것만 해야 했단다.
그녀는 박사 과정 졸업을 앞두고 집중 훈련을 받던 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곧 박사 학위를 받을 사람이 명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낙오자가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제게 선택의 시간이 왔던 것이죠. 저는 수행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학문의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어요. 그 둘은 공존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젠센터에 들어가 살면서 수행만 하고 제 학문적인 삶을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쵸감 트룽파 린포체와의 만남
1974년 여름, 나로파 대학이 세워지던 해, 그녀는 쵸감 트룽파 린포체를 만나게 됐다. 그 무엇보다 그녀를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티베트의 불교 전통에 대한 것이었다. 쵸감 트룽파 린포체는 수행과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수행과 삶은 완전히 통합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티베트의 불교 전통에서 연구와 수행은 통합적인 방식으로 늘 함께였다.
그녀는 린포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저는 학자로서의 미래를 포기하고 수행에 전념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린포체는 “아뇨.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당신은 학문과 수행을 통합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나로파 대학의 강단에 서다
그리고 그는 주디스를 나로파 대학으로 초대했다. 주디스는 1977년, 나로파 대학으로 옮겨왔다. 나로파에서 학위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그때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42년째 나로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와 동료들은 나로파 대학에서 재직하는 동안, 자신들이 가르치고 있는 과목(학술적인 주제)과 명상수행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오직 그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티베트의 대학에서는 학문과 명상 수행을 통합한다며, 나로파에서도 그 방안을 찾아보자고 린포체가 교직원들에게 특별히 당부했기 때문이다. 린포체의 수행과 학문을 통합하겠다는 비전과 포부는 그녀에게 큰 도전이고 감동이었다.
나로파 인스티튜트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던 1974년, 때 린포체는 개교식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린포체는 미국과 영국 등 서구의 대학교육 제도를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로 경이감을 갖고 있었다. 자연히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둘러보았던 것이다.
“서구의 대학들은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도 있고 임직원, 학생, 연구실이 있지만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학문을 향한 열정의 불씨가 꺼져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븐은 타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 그 지혜의 불씨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나로파 대학을 세우려 합니다.”
샴발라… 깨달은 이들의 공동체
린포체는 서구로 건너와 샴발라 전통을 설립했다. 샴발라는 고대 티베트의 샴발라 서사시로부터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샴발라는 깨달은 이들, 즉 수행자들이 이룬 사회를 의미한다.
이 신비한 샴발라의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깨달은 이들의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수행이 모든 것의 밑바탕이고, 그들의 삶은 모두 수행의 영향을 받아 수행과 따로 분리된 다른 삶이란 없다. 수행과 삶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지 삶 따로, 수행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린포체가 이런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주디스는 볼더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나로파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린포체는 수행과 삶의 결합이란 “우리들이 하는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뛰어난 서예가이자 꽃꽂이도 수준급이었던 그는 나로파 임직원들이 일상적 삶을 예술로 여기도록, 그리고 예술로 만들도록 북돋워주었다.
린포체는 ‘수행하는 삶은 삶을 마법으로 바꾸는 방법’임을 몸으로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아주 멋진 한 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설사 가진 것이 콩과 쌀밖에 없다고 할 지라도 말이에요.
플래스틱 포크와 플래스틱 접시만 있다 할 지라도 근사한 식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누추한 장소일지라도 우리들의 침실과 생활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고 멋진 환경을 창조할 수 있어요. 우리들 삶의 모든 순간들을 마치 수도원에서 사는 것처럼 아름답고 단순하면서도 절도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으로 삶 속에 마법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곳곳에 들어서 있는 불상
월급 밀려 가진 것 팔아 렌트비 내던 시절
그녀는 나로파 인스티튜트가 아직 학교의 형태를 갖추기 전, 그러니까 아직 먼지 투성이일 때부터 함께 했다. 그녀의 사무실은 거의 4년 동안이나 뉴욕 델리의 한쪽 부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시 임직원들을 위한 사무실 공간은 하나도 없었다. 강의실은 임대 공간으로 대신 했었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직원들은 월급을 몇 달씩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녀는 단지 아파트 렌트비를 충당하기 위해 옷과 살림살이 등 소유물들을 모두 내다팔았다고 회고한다.
“나로파에서의 초기 생활은 정말 도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파의 공기에는 뭔가 마법처럼,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게 있었어요. 우리는 학술적인 연구와 수행을 결합한 이 엄청난 시도가 나로파에 마법의 근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수행은 우리들 개개인에게 마법을 가져다줬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마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로파는 결국 작은 빌딩을 임대할 수 있게 되었고 훗날, 이 건물을 구입하게 됐다. 그리고 시 정부로부터 보조를 받아 건물 꼭대기에 종탑을 올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볼더 시에 3동의 캠퍼스가 개발됐다. 개교 당시 나로파의 학생 수는 120명에 불과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0배에 달하는 1200명으로 늘어났다.
수행.. 나로파 마법의 비밀
대학 교육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가졌던 린포체와 함께 그녀와 나로파의 임직원들은 함께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함께 가르쳤고 수행이 어떻게 개별적 훈련을 개발할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알아내고자 애썼다. 그 일련의 교수진들 가운데 주디스는 가장 따분한 학구적인 교수였다. 하지만 팀내에는 시인과 작가, 보컬리스트와 무용가, 심리학자, 사회과학자 등 뛰어난 재주가 있고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마법은 확실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디스는 초창기부터 그 변화의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그리고 특히 자신의 강의실에서도 이런 마법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나로파의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거나 다른 좋은 학교로부터 온 학생들이 다수였다. 그들은 예전에 매우 학업성적이 뛰어났었지만 어느 틈엔가 공부에 열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더 이상 배우는 것을 사랑하지 않았고 감정의 롤로코스터를 오가며 힘들어했다. 그러다보니 학업에도 전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학문과 수행 사이에서 얼마나 방황을 했었던가. 린포체는 그녀에게 뇌 속의 수행과 학문을 갈라놓은 그 부분을 없앤 후 그둘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학문과 수행의 통합 가능성들을 실험하면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변화는 그들의 사적인 삶과, 학문적인 면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1인칭 탐구… 전혀 새로운 대학에서의 탐구
칠레에서 온 유능한 철학자, 생화학자, 뇌과학자이자 <마인드 앤 라이프(Mind and Life)의 공동 창업자인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바렐라 가르시아(Francisco Javier Varela García) 역시 나로파 대학 초기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당시 주디스는 아직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과 결혼하기 전이었고 그와 교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수행으로 인한 내면의 변화가 어떻게 우리들의 외면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었다고.
그는 1인칭 탐구, 2인칭 탐구, 3인칭 탐구 등 탐구의 3가지 모드에 대해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명상과 성찰의 공부에 매우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다.
먼저 3인칭 탐구란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다른 장소에서 발견해낸 것들에 대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책과 같은 도서관에 쌓여 있는 과거의 지혜들, 실험실과 연구실에서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들 말이다. 물론 이런 지식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구글이 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구글 없이 살 수 없는 시기를 살고 있다. 구글은 대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가 교수직을 처음 시작했던 시절에 교수들은 정보를 너무 사랑해서 그 정보들을 학생들에게 다운로드시켜주려 애썼다. 하지만 이제 어떤 학생도 그런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냥 자기 컴퓨터로 원하는 것을 검색한 후 정보들을 다운로드하면 된다.
덕분에 이제 대학들은 정말 창조적인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의 창조성에도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대학은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합법성을 정의할 것인가?’, ‘어떤 종류의 합법성과 힘을 발견할 것인가?’ 등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구글 덕에 3인칭의 탐구는 완전히 변화했다. 그녀는 이에 대해 구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예전처럼 정보를 다운로드하는 학습 방식은 학생들로서 시간 낭비밖에 되지 않는다. 앉아서 끝도 없이 필기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필기는 불필요한 일이다.
2인칭 탐구는 대인관계 학습, 그리고 실험 교육 운동을 포함한다. 1970년대에는 2인칭 탐구라는 교육적인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상호작용, 대화, 해외에서의 공부를 통한 직접 체험, 봉사, 인턴십, 실험실에서의 학습으로부터 배운다. 이런 접근은 교육에 혁명을 가져왔다. 주디스가 포댐 대학에서 가르치던 시절, 체험 대학이 추가됐었다. 체험 대학에서는 모두다 상호작용을 하는, 매우 다른 종류의 학습이 펼쳐졌었다. 이런 교육 방법의 가장 좋은 예는 블랙 마운튼 컬리지(Black Mountain College)와 프리스캇 컬리지(Prescott College)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1인칭 탐구는, 명상하고 사색하는 삶으로부터 나오는 탐구이다. 우리 각자는 성장하고 배우면서 각기 나름대로의 지혜를 내부로부터 가져온다. 그런데 학교는, 특히나 대학교는 우리 자신에게 그런 지혜가 없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학기말 논문을 제출할 때에는 절대로 “나(I)”라는 주어를 사용하지 않고 논문을 쓰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의견을 내지 말라고. 그 대신 우리는 제 3자의 논물을 각주로 달아 내 의견을 증명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 각주란 것은 다른 사람이 이미 발견한 것들이어야 한다.
이에 반해 1인칭 탐구는 실제로 우리들 안에 내재돼 있는 지혜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혜를 수행과 함께 점점 더 깊게 발전시킬 수 있다. 1인칭 탐구란 진실을 알아가는 것이다. 명상에 기반한 교육의 아름다움은 학생들로 하여금 내면의 지혜에 신뢰를 갖게 하고 그에 대한 확신 속에서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1인칭 탐구는 주디스와 나로파 대학의 교육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주디스의 절친한 친구인 할 로스(Hal Roth)는 브라운 대학(Brwon University)에서 명상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명상 수행을 해온 수행자이다. 1인칭 탐구를 계속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그 누구의 탐구도 없어지게 된다. 에고가 사라진 탐구이다 보니 우리 마음에 너무나도 멋진 황금의 물음표만이 남겨진다. 그리고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내부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질문을 가장 아름답게 말하는 방법이 아닐까.
수년간 수행해오면서 주디스는 자신의 삶에서 떠오르는 질문, 그리고 수행에서 떠오르는 질문을 노트북에 적어, 책처럼 지니고 있다고. 그 질문들은 그녀의 학문적 커리어를 다음 단계로 올라가게 해주었고 그녀가 가르치는 코스를 다음 단계로 끌어주기도 했으며, 독립적인 탐구를 다음 레벨로 올라가게 해주기도 했었단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질문들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부터 항상 그녀에게 오곤 했었다고 한다. 우리들이 계속적으로 1인칭 탐구를 추구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밝아오기 시작한다.
대학이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들은 학습 과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어요. 정말 멋진 불교학자이자 스승인 알란 월러스(Alan Wallace)는 <주관성의 금기(Taboo of Subjectivity)>이라는 책을 썼어요. 이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내면의 지혜를 신뢰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책이에요. 특히나 우리들이 학습하는 공간(학교 등)에서는 내면의 지혜를 신뢰하지 말라고 가르치죠. 그는 이야말로 우리들이 극복해야 하는 금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탐구하는 가장 깊은 선물, 즉 의문을 갖고 질문한다는 선물로부터 우리 자신을 소외시켜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 내면에서 들려오는 지혜의 목소리를 신뢰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은 한쪽 면은 연구, 다른 한쪽 면은 개별적인 지혜 또는 개별적인 주관성이 차지하고 있는 분리된 삶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다른 대학들을 좀 돌아다니는 편인데요. 대학의 카운셀링 센터로부터 ‘요즘처럼 대학에서 자살 시도가 많았던 적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비참한 상태로 카운셀링 센터에 온답니다. 그들은 대학 교육에 대해 불안 초조와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이죠. 성공에 대한,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한다는,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한다는 압력에 압사할 지경인 것이죠.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경우, 학생들의 자살율이 너무 높아지자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 교육을 합니다. 자살을 방지하려는 것이죠.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결성된 명상 모임, 요가 클럽도 대학마다 결성됐습니다.
대학들은 학생들을, 젊은 이들을, 다음 세대들을 실패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서 나오는 지혜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런 것들이 대학 내에 위기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강조해야 하는, 간과하면 안 되는 위기들이에요.
퀘이커 교도인 파커 파머(Parker Palmer)는 고등교육에 대해 상당한 양의 책을 썼는데요. 그는 ‘고등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는 이제 여러 면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대학원이 형성되어 있는 방식, 교수들이 교육받는 방식 등 여러 면에서요. 교수들은 스스로를 산파라기보다는 전문가라고 생각하며 공동체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임직원들에게도, 그리고 대학 측에게도 좋지 않아요. 임직원들은 서로에게 매우 고립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의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 있습니다. 임직원이 그런 심경일 때, 그들은 강의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게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학문적인 세계로 나아갈 때, 믿지 못할 만큼 극심한 위기에 처해진 것이죠. 많은 대학에서 정말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고등 교육 시스템이 처한 가장 큰 위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파커 파머는 우리들이 내적인 가치를 내팽개친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내적인 가치들이 성공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가치를 주입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커 파머는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 이원화된 삶을 포기하라고 도전합니다.”
나로파 대학은 마음챙김 명상의 산실
어떻게 우리들이 이원화된 삶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에 대한 해답을 마음챙김 수행, 명상 커리큘럼, 연민 수행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수행들은 대학의 생태계를 좋게, 그리고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나로파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시도하고 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로파에서 개교 초기부터 마음챙김 수행과 연민 수행을 해오고 그 결과가 수치로 증명되면서, 많은 대학과 교육기관에 마음챙김 명상이 퍼져나가고 있다.
그녀의 남편인 리처드 브라운(Robert Brown)은 마음챙김 명상 수행을 초등학교과 고등학교에 널리 퍼뜨리는 데에 애쓰고 있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내면의 지혜와 연결된다. 그녀와 남편은 이런 수행이 우리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녀는 1980년, 리처드 브라운(Richard Brown)과 결혼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 역시 주디스와 함께 나로파 대학에서 2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두 부부의 노력, 그리고 교육기관의 깨어남으로 인해 이제 미국에는 제법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명상과 학문을 통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로파 대학을 필두로 버지니아 대학, 에머리 대학, 브라운 대학, 레슬리 대학, 벌링턴 대학, 앤티옥 대학 등이 이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명상과 학문을 통합하는 운동은 개인적인 레벨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수 한 명이 오랜 세월 동안 명상을 해온 수행자라고 하자. 그는 학교 전체에 수행을 전파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의 커리큘럼을 명상에 기초하여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학생이 명상 수행을 시작했다고 하자. 대학이라는 환경에서 이런 변혁이 처음엔 개별적으로 시작됐을지라도 나중에는 수업에 참가하고, 그러다가 부전공을 하게 되고, 전공을 하게 되다 보면 아마도 나중에는 대학 전체가 변화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는 그녀의 비전이기도 하다. 그녀는 “우리들이 대학 교육 과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아직도 놓지 않는다.
나로파 대학과 샴발라 전통은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화두가 된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을 미국에 알리기 시작한 기관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음챙김에 대해 “호흡과 같은 현재 경험에 대해 있는 그대로, 비판 없이, 편견 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 호흡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다 보면 늘 우리가 함께 하는 호흡이라는 것도 사실, 호흡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늘 변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은 우주의 리듬이에요.”라는 그녀의 고백은 모든 것을 내맡긴 자만이 할 수 있는 수승한 표현이었다.
우리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뭔가를 성취하겠다는 의도(탐욕), 무엇인가를 고치려 하는 의도(성냄), 내가 원하는 바가 이뤄지게 하겠다는 의지를 완전히 내려 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음은 태울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아라한의 경지라 할 수 있겠다.
마음챙김 수행에 있어 내가 변화하고 싶다는 의도와 욕망을 일으킬수록 어찌된 것인지 우리는 이상적인 변화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고통이 더 커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마음 챙김이란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것으로 충분해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는 성취할 수 있는, 붙잡을 수 있는,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고요히 앉아서 변화를 포기하는 순간,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고요히 앉아, 깊게 숨을 쉬고, 현재의 삶과 함께 완벽하게 현존하는 것… 그것이 마음챙김입니다.”
마음챙김 수행을 한 교사는 설사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을지라도 교실에 조화를 가져오고 학습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사실로 증명되었다고 한다. 물론 명상 수행을 하면 생산력도 좋아진다. 하지만 단지 생산력 때문에 명상을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챙김 명상은 교육현장과 우리 삶의 현장을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파워풀한 도구이다.
마음챙김은 탐구와 인식, 안목을 갖게 하는 토대이다. 하지만 마음챙김만으로는 완전한 수행이 아니다. 그녀는 마음챙김 수행으로 시작해 탐구력, 인식력, 안목을 갖춘 학생들의 보고서는 정말 빛이 날 만큼 뛰어나더라고 말한다.
그녀는 마음챙김 명상에 기초한 작문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1인칭 경험들을 대학 보고서에 사용하라고 권장한다. 이렇게 1인칭으로 서술할 때 그들의 보고서는 정말 창조적이어진다. 그래서 보고서를 읽는 것도 재미있어진다. 그 안에 반짝이는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3인칭으로 쓴 것은 마치 컴퓨터가 돌려서 대충 쓴 것 같은 느낌
이 든다.
나로파의 오늘날
나로파에는 현재 90명의 풀타임 직원들이 있다. 이 임직원의 2/3는 각기 다른 전통이기는 하지만 명상 수행자들이다.
많은 이들이 요가 수행자이고 불교신자, 기독교 신자, 카톨릭, 유대교 전통, 수피스트 등 다양한 전통의 영성을 수행하고 있다. 지구와 자연에 근원을 둔 영성 수행자들도 있다. 어쨌든 나로파는 임직원, 학생 모두를 아우르는 영성 수행자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으며 완전히 명상 수행하는 대학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개교 44년째를 맞는 나로파는 학생 수 1200명 규모의 대학으로 성장했다. 학부는 550명, 대학원은 650명으로 구성돼 있이다. 콜로다로 볼더 지역에 3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모든 강의실에서 마음챙김 명상 수행을 한다. 학생들의 종교가 기독교나 이슬람 수피일지라도 마음챙김 명상은 졸업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러니 마음챙김은 나로파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학생들은 또한 마음챙김에 기초한 성악, 댄스, 아트, 시 등의 예술을 배운다.
나로파에서는 시험이나 평가도 다른 대학과는 다르다. 전사의 평가(Evaluation of Warriors)라고 해서 원을 만들어 앉고 구술로 자신의 이해를 프리젠테이션 하는 등, 기존의 평가 제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험을 본다. 졸업 역시 마인드풀 엔딩(Mindful Ending)이라고 하여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진행한다.
건물에서 휘날리고 있는 오색의 룽다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곳, 나로파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의 영성 수행 공동체는 코케시언이 대다수였다. 그러다보니 유색 인종들은 수행 공동체에 오면 왠지 모를 소외감을 갖게 됐었다.
나로파 대학에서는 약 9년 전쯤, “흑인의 삶도 삶이다(Black life matters)”라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나로파 대학의 영성과 가치관을 다시 한번 재평가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당시 그들은 텐트를 치고서 “우리들의 요구를 받아주고 다양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유색인종 대표들과 나로파의 임직원들 사이에서 약 3주 정도의 기간 동안 치열하게 대화를 했다. 결국 나로파 대학은 유색인종들에게 백인 수행자로서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인종주의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이제 나로파 대학에서는 임직원 회의 때도, 학과의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도 명상 수행에 더해 다양성에 대한 과정을 꼭 포함한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의 영성을 더 깊게 해주는 수행이라고 주디스는 말한다. 9년 전 그 사건으로 인해, 나로파 수행 공동체는 그동안 무지했던 부분에 대해 마음을 열고 열린 의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두 가지 지성…
그녀는 루미의 시, <두 가지 종류의 지성>이 나로파가 지향하는 지성을 잘 얘기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두 가지 종류의 지성이 있다.
그 하나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책이나 교사로부터 개념을 배우고 암기를 하면서 배우는 지성, 진통으로부터 또한 새로운 학문으로부터 배우는 지성이다.
그러한 지성의 힘으로 너는 세상에서 일어선다.
등급에서 남을 앞서기도 하고 남에게 뒤처지기도 한다.
그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에 따라, 그 지시의 장 안팎으로 드나들며, 네 안의 지식의 판에 더 많은 지식을 새긴다.
또 다른 종류의 지성이 있다.
네 안에 이미 완성되어 존재하는 지성, 샘에서 흘러넘치는 샘물 같은 지성, 그 신선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적신다.
이 지성은 시들지도 썩지도 않는다.
그것은 늘 흐른다.
그것은 주입식 학습의 경로를 통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번째 지성은 샘의 근원이다.
네 안에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젤랄루딘 루미
“우리는 두 가지 지성 다 필요해요. 내적 지혜만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구글도 필요하고 내적 지혜도 필요합니다.”
<주디스 시머브라운의 기사는 다음 호로 이어집니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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