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804]作號法(작호법)-호를 짓는방법
호를 짓는방법
1)소처이호(所處以號)
처소를 호로 쓰는 것이다. 자신이 지난 날 살았던 곳,
지금 살고 있는 곳, 남다른 인연이 있는 처소,
곧 지명(地名)으로 호를 삼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짓고 있는것 같다.
이를테면① 마을 이름, ② 산(山)이나 골짜기[谷] 이름,
③ 물[水]이름이나 물과 관련이 깊은 지명을 호로 삼는 것이다.
마을 이름으로 호를 지을 때
村(촌), 里(리), 洞(동), 州(주), 郊(교) 같은 한자를 썼다.
산과 골의 이름으로 호를 지을 때에는
山(산=뫼), 峰(봉=봉우리), 巖(암=바위), 岡(망=언덕),
岳(악=큰 산), 谷(곡=골)같은 한자가 써였다.
물과 관련하여 호를 지을 때에는 溪(계=시내),
海(해=바다), 江(강=큰 강), 湖(호=호수), 浦(포=물가),
洲(주=섬), 川(천=내), 潭(담=못) 등의 한자가 동원되었다.
호를 짓는 방법 중에서 비교적 쉬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때문일까, 옛 어른들이 지은 호 중에서 이 방법으로
지은 호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황의 퇴계(退溪)나 도산노인(陶山老人)은
안동의 지명을 호로 삼은 것이다.
정도전의 삼봉(三峯)은 단양의 도담삼봉(島潭三峯)에서 딴 것이다.
이이의 율곡(栗谷)과 석담(石潭)은 본가가 있던 파주와 해주의 지명이다.
박지원의 연암(燕巖)은 홍국영을 피해 백동수가 마련해주어 살았던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에서 딴 호다.
정약용의 다산(茶山)은 19년간 귀향살이했던 곳, 강진의 다산을 자호한 것이다.
2)소축이호(所蓄以號)
자신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物)을 호로 삼는 것이다. 특별히 귀하게 여겨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호로 삼는다. 梅(매=매화나무), 松(송=소나무), 竹(죽=대나무), 柏(백=잣나무), 蓮(연=연), 瓜(과=오이), 池(지=연못) 같은 한자를 주로 사용했다. 이들 물(物)이 은밀히 감추고 있는 '상징'(simbol)이 작호자의 뜻과 합치되어 호로 삼은 것이니, 소축의 호이면서, 작호자의 뜻 소지(所志)를 그 안에 담은 호라고 할 수 있다. 이규보가 예거(例擧)한 도잠(도연명)의 오류선생(五柳先生)과 정훈의 칠송처사(七松處士)는 각기 집 주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와 일곱 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자호한 것이다. 구양수의 육일거사(六一居士)는 일만(一萬) 권의 장서, 일천 (一千)권의 집고록(集古錄 자신의 경전 주석서), 일장(一章)의 거문고, 일국(一局)의 바둑판, 일호(一壺)의 술, 일(一) 늙은이老翁 구양수 자신, 합해 여섯을 가졌다 하여 호로 삼았다.
오상순의 공초(空超)는 빔과 넘음을 말했으니, 작호자의 뜻 소지(所志)이 담긴 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담배 꽁초의 다른 표현 같기도 하다. 김시습의 매월당(梅月堂)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호에는 선생, 처사, 거사와 같이 사람을 지칭하는 말을 덧붙인 것도 있고, 당(堂)과 같이 집을 덧붙인 것도 있다. 뒤에 당을 붙인 것은 거처하는 집의 이름, 곧 당호를 말하니, 소처로 호를 삼은 것이기도 하다.
3) 소지이호(所志以號)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호로 쓰는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삼아 도달한 어떤 경지와 또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목표나 의지 등으로 호를 짓는 방법이다. 옛사람들의 호 중에 이런 뜻을 담아 지은 호가 다수라고 한다. 이런 류의 호는 '수신'(修身)의 뜻으로 삼은 것이 가장 많고, '은둔'(隱遁)이나 '풍류'(風流)를 담은 것도 흔하며, '해학'(諧謔)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도 간혹 있다고 한다. 뜻이나 가치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추상의 것이다. 그 추상의 것은 소축이 담고 있는 가치 같은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물(物)과 그것이 상징하는 뜻이나 가치는 각자 다르니 각자 다른 뜻을 담아 호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5만원권의 주인공이자 이이의 어머니 신씨의 호는 사임당(師任堂)이다.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스승으로 삼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규보의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는 백운(흰 구름)을 말했으니 소축의 호라고 할 수 있다. 거사를 붙였으니 소처의 호라고 할 수도 있다. 집에서 살며 오직 도(道)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으니, 소지의 호라고 할 수도 있다. 앞의 둘을 물리치고 맨 뒷 것으로 자신의 호를 삼은 것이다.
4)소우이호(所遇以號)
자신의 처지를 호로 짓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여건이나 상황을 호로 삼는 방법이다. 귀인(貴人)이나 부자(富者)됨 또는 건강해짐 등과 같이 긍정의 처지를 나타낼 수도 있지만 드물다. 이보다 늙음, 괴로움, 가난함, 병듦, 외로움, 허무함 등을 나타내는 호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隱(은=숨음), 遁/遯(둔=달아남), 翁(옹=늙은이), 叟(수=늙은이), 老(노=늙음), 夫(부=사내) 등의 글자 또는 居士 處士(거사 처사=벼슬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 散人(산인=이곳저곳 흩어져 사는 사람), 山人(산인=산에 사는 사람), 布衣(포의=벼슬없는 사람), 野人(야인=들에 사는 사람) 등의 말들이 사용된다.
고려 후기 절의를 지킨 세 선비, 이색, 정몽주, 길재를 통칭하여
삼은(三隱)이라 한다. 각각 목은(牧隱), 포은(圃隱), 야은(冶隱)이란 호를 썼다.
이숭인의 도은(陶隱)도 있다. 그리고 출처(出妻)할 만한 정당한 사유없이
정실 아내를 내쫓아 벼슬길이 막혀버린 김숙자(김종직의 부친)의 호가
강호산인(江湖散人)이다.
5) 소명이호(所名以號)
자신의 이름(名)으로 호를 대신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 名에 쓰인 한자를 소리(音)는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로 바꾸어 호를 삼는 것이다.
동음이의자(同音異意字)를 호로 쓰는 것이다.
또, 이름에 쓰인 한자를 파자(破字)하여 호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방법으로 호를 지은 사람은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본다. 이름이 '賢珉(현민)이라면,
玄民(현민=어두운 백성, 유진오의 호이기도 하다)으로 호를 삼는 것이다.
또, 珉(민=옥돌)자를 파자하여 玉民(옥민=옥과 같이 귀한 백성) 또는
民玉(백성은 옥과 같이 귀하다)을 호로 삼을 수 있다.
호의 경우는 아니지만, 비슷한 실례도 있다.
박지원과 같이 북학파의 일원이었던 유득공(柳得恭)의 숙부
유련(柳璉)은 제 이름 璉(현=호련)자를 파자하여
連玉(연옥)을 자(字)로 삼았다. 이런 방식으로 호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