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도 자르고요. 주말엔 프리지어 끝단을 정리합니다. 프리지어는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음에도 키가 작아졌다며, 칼을 원망합니다. 칼은 반복됩니다. 칼을 엉덩이로 찧은 마늘이 미완성된 채 재가 되어 재떨이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것은 환상이 되어가다 동화 속 주인공을 바꿉니다. 꽃도 나무도 아닌 내가 다치게 되면서부터 날 선 것들도 함께 조금씩 망가질 뿐입니다.
칼이 안 들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김도영= 대구 출생. 《천년의 시작》으로 2021년 등단.
<해설> 칼이 주는 알레고리를 자르는 행위와 연결하면서 끝자락에서 있는 절망을 어떻게 자를까 시인의 고민은 깊다. 칼이 잘 들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부수고, 무딘 칼의 목소리까지도 귀담아들으려는 걸로 보아 연륜, 나이에 비해 깊은 사유가 만만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오리와 오이는 서로가 동물과 식물의 다른 성질을 가졌지만, 칼에게는 단지 하나의 자를 대상일 뿐이고 프리지어꽃 가지 끝단을 자르는 칼은 본래 칼이 지닌 죽이는 용도가 아닌 살리는 위력이 있음도 말한다. 시인은 사물의 본질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상상 놀이를 즐기고 있다. 시인이란 바로 “AI가 따라오지 못할 새로운 상상의 문을 여는 자”라는 것을, 기존의 존재 탐구 방식과 다른 차원에서 자신 내면의 직관을 시로 표현해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가르친 제자이지만 전도가 밝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