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편에서 선 기도(왕하19:14-19)
2024.7.14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의리(義理)라는 말이 있다. “의리”에 대해서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정의한다. 만약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비난받고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끝까지 나를 믿어주면서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사람이 정말 고맙고, 마음에 큰 위로를 얻고, 평생 그를 잊지 못할 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을 진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는가? 하나님과의 나 사이에도 영적인 의리가 필요하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멸시받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의리를 지킨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의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죠지 뮬러(George Müller, 1805~1898)는 평생 동안 5만 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았다. 죠지 뮬러는 복음주의자로서 영국 브리스톨의 애쉴리 도운(Ashley Down) 고아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60년 동안 1만 명의 고아들을 보살피며, 720만 달러 이상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았다.
그중에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침에 고아들에게 다음 날 아침에 줄 빵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지 않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새벽 3시에 갑자기 그 지역의 어느 빵공장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면 자꾸 누가 저를 깨우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공장에 나가 빵이나 구우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아침 목사님에게 빵 좀 갔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죠지 뮬러에게 이처럼 많은 기도응답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을까? 그의 전기를 보면, 그가 이렇게 많은 기도응답의 은혜를 체험했던 비결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철저하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췄던 기도의 순수성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기도에서 자신의 욕심이나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기를 소원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지켜야할 영적인 의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의리이다.
성경에는 죠지 뮬러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서 믿음의 의리를 지켰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들 중의 하나가 오늘 설교 본문 속에 등장하는 히기스야왕(King Hezekiah)이다. 히스기야왕은 남유다의 13대 왕이다. 그가 왕위에 있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B.C722년)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은 18만 5천명의 군대를 보내서 예루살렘을 에워쌌다 . 산헤립은 랍사게라는 신하를 보내서 험한 말로 하나님을 망령되게 비난했고, 온갖 감언이설로 협박과 이간질을 하게 했다. 또한 히스기야에게 편지를 써서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항복을 요구했다.
그때 그 긴급한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가장 먼저 취했던 모습이 오늘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 자신도 옷을 찢고 성전에 들어가서 앗수르왕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다(왕하19:14-19).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왕하 19:14-15)
그랬더니 그 새벽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앗수르의 18만 5천명을 일시에 멸하셨다(왕하19:2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왕하 19:35)
그렇다면 죠지 뮬러나 히스기야의 기도와 오늘 우리(나)의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들은 한결같이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편에 선 기도(=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기도, 하나님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들의 기도의 초점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의 의리를 지켰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이점이 오늘 설교말씀의 핵심이다.
이처럼 하나님 편에 섰던 히스기의 기도는 그의 기도 내용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하 19장 15절과 19절 말씀에 보면, 히스기야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고, 기도를 마치면서도 동일한 표현을 반복했다.
(기도 시작부분)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왕하19:15)
(기도 끝부분)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 19:19)
히스기야가 반복하는 기도 내용 중에서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는 표현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라는 말이 중요하다. 홀로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여러 신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단 한 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히스기야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심으로 인해서, 유일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나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에는 하나님 외에 어떠한 개인적인 욕심이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내용은 단 1도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백한 후에 비로소 그들이 처한 현재의 상활을 진술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도 그 밤에 히스기야를 향해 믿음의 의리를 지켜 주셨다. 그것은 한 천사를 보내어 18만 5천의 대군을 멸해 주신 것이다(왕하19:35). 뿐만 아니라 이 일을 통해서 히스기야를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다(대하32:23,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왜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이런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고 멸시함을 받을 때, 그는 끝까지 변치 않고 하나님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믿음의 의리와 기도 응답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사람과의 의리를 중시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의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만 초점을 두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급한 그 심정은 백번 천 번이라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태도나 기도는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 ‘내 편 선 기도’이며, ‘나에게 초점을 맞춘 기도’일 뿐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까지도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분명한 것은기도의 본질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것을 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의 편에서 건 기도(=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기도, 하나님을 드러내는 기도)에 힘써야 한다. 우리들의 기도가 이러한 방향으로 성숙해져 가야 한다. 성도는 자빠져도 하나님 쪽으로 자빠져야 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 쪽으로 자빠지는 것이다. 설령 내가 좀 창피를 당해서라도 주님이 영광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제자의 길이다. 그래서 제자의 길은 좁은 길이다.
본 설교자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저로 인해서 이 지역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보여지게 하옵소서. 저는 초개와 같이 사라질 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만 나타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는 당신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죠지 뮬러나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천하만국에 한 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의 생명을 이 땅에 내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우리(나)의 모든 문제들과 몸 상태까지도 가장 잘 아신다. 최소한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히스기야나 죠지 뮬러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 처할 지라도 끝까지 믿음의 의리를 지키자. 자빠져도 하나님 쪽으로 자빠지자.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종이 종다운 모습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변치 않고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는 기도를 올린다면, 하나님도 반드시 우리를 향해서 영적인 의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