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실종된 제자
다음 날 아침.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걸걸 천부장 소속 중걸 백 부장이 게르로 찾아와 박지형과 잠시 면담하였다.
“걸걸 천 부장의 자녀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소?”
“아니오, 어제 오전에 헤어지고는 보지 못했는데요”
“어제 오후에 사부님을 만나러 간다며, 이쪽으로 갔는데”
“어제 저녁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는데,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른 곳도 찾아 보겠소”하며 돌아갔다.
일행들은 떠날 채비를 하며 각자 짐을 챙기기에 바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서누리가 중부를 보고,
“나도 너희네 일행을 따라가겠다”라고 한다.
눈두덩이가 부기는 조금 빠졌는데, 멍든 부위는 더 검게 짙어져 보인다.
“왜?” 물어보니,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우문청아가 끼어든다.
“사부님 제자를 한 명 더 키우세요”
“또, 사저가 되어 사제를 부러 먹으려 하지?”
“아, 아~니, 이왕에 가르치는 것, 하나 보다는 둘이 좋죠?”
“그렇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누리는 내 동무니까 함부로 대하면 안 돼”하고 서열 序列 정리를 확실히 해버린다.
우문청아는 입술을 좌우로 삐쭉거리며,
“알았습니다” 코맹맹이 소리로 답한다.
그러던 우문청아는 중부에게 어제 저녁부터 마음속으로 궁금하게 여기고 있던 것을 물어본다.
애교 어린 목소리로 중부를 부른다.
“사부님~”
“왜?”
“사부님은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요?”
“험~”
중부는 마치 대단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곧바로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먼 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뜸을 들인다.
이를 보고 있던 우문청아는 궁금증에 몸이 달아 목으로 침을 꼴깍 삼긴다.
그때, 고발후와 팽이가 가족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오랜만에 일궁 고발후와 만난 우문청아는 서로 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부 인사 도중에 자연스레 고발후는 중부와 조선하 박달촌의 수련 동기생임을 알려준다.
그러니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이 불필요하다.
중부는 뜸을 너무 들이다, 그만 솥뚜껑이 살짝 열리면서 김이 새어버렸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가는 길이 같다.
모두가 초원으로 향하고 있다. 목적지가 동일하다.
그래서 일행이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이제 해결할 일도 잘되었고, 만날 사람은 모두 만났고, 떠날 사람만 남아 있는 모양새다.
그러자 이를 확인한 해천은 일행들에게 인사하고는 예족 병사 둘을 데리고 고향인 금주 방향으로 다시 발길을 되돌렸다.
중부는 담비에게 얘기하여, 조선하부터 홍산까지 넉 달 동안 함께 동고동락 同苦同樂하였던, 지휘관 指揮官이자 전우 戰友였던 해천에게 튼튼한 말 세 필을 주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표하였다.
해천 일행은 걸어서 갈려면 두 달 이상이 소요될 먼 거리를 말을 타면, 이제 사흘 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해천 일행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식전 食前에 왔던 중걸 백 부장이 다시 박지형을 찾는다.
박지형을 만난 중걸 백 부장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밤세워 찾아 다녔는데, 아이들 행적이 오리무중 五里霧中이오”.
박지형의 표정이 어둡게 변한다.
천 부장 자녀들의 실종이유가
아이들이 사부인 자신을 찾으러 나갔다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난감한 표정이다.
그러자 가마우지가 나선다.
“우리가 사람 찾는 데는 일가견 一家見이 있으니 찾아보겠소”
이 드넓은 대륙에서 이중부를 찾아낸 자신감에서 나온 발언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박지형은 사로국 출신인 자신들의 무술 사부다.
그럼, 걸걸 추로 천부장의 자녀들도 엄격히 따지면, 자신들에게는 사제가 되는 관계다.
그러니 동문 사제가 실종되었다는데, 모른척할 수가 없다.
사부인 박지형의 체면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사부인 박지형을 찾으러 나갔다가 실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로국 출신 모두에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에 청하 문도의 사림 四林 낭자가 재빠른 걸음으로 바삐오더니 우문청아를 찾아서는
“이중부 사부님의 모친이 여기 안 오셨느냐?”고 묻는다.
금시초문 今始初聞이다.
어제 저녁에 사로국 출신이 모두 모인 자리에 이중부, 슬비의 모친은 다른 사람들보다 연세가 많아, 젊은이들과 함께 있기가 불편해 보여 사림 낭자가 모시고 별도의 게르에서 잠을 잤는데, 사림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중부의 모친이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잠시 볼일을 보러 갔거나, 가까운 곳에 산책나가신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주변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청하 문주인 우문청아에게로 달려온 것이라 한다.
우문청아와 사로국 젊은이들 모두가 황당하다.
걸걸호루 남매의 실종에 이어 이중부의 모친까지 행방불명이라니,
설상가상 雪上加霜이다.
딸인 슬비도 안타깝지만, 이중부는 더 더욱 황망스럽다.
삼 년 만에 어렵게 상봉 相逢한 모자 母子 간의 회포 懷抱도 제대로 풀지 못하였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실종되었으니, 하늘이 원망스럽고 자신이 불효를 저지른 것 마냥 괴롭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사로국 출신들과 청하 문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중부 모친과 걸걸호루 찾기에 열심이다.
우문청아의 부탁으로 우문 무특 천부장의 무리에서도 ‘실종자 찾기’에 모두 동참하였다.
주변의 인가 人家나, 개울가,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까지 모두 수색하였다.
그렇게 종일토록 삼 백여 명의 인원이 아동 찾기에 동분서주 東奔西走하였으나, 실종자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사부인 박지형의 표정이 곤혹 困惑스럽다.
크게 먼 거리도 아닌데, 10살 전후의 남매와 중년의 여인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석 달 이상 함께 이동하며 무술을 가르치며, 정이 든 제자가 실종되었으니, 아이들의 안위 安危가 걱정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후에 담비가 이주민 무리 선두의 앞쪽 20여 리 떨어진 길 옆에서 어린이용 목검 하나와 여성용 모자를 하나 발견하여 가져왔는데 확인한 결과, 목검은 걸걸 호루의 것이며, 모자는 이중부의 어머니 것이라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걸걸 호루 남매와 이중부의 모친이 서쪽으로 갔을 가능성이 짙어졌다.
또, 목검과 모자 물품들이 발견된 지점이 서로 가까워 함께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였다.
저녁에 모두 모여 회의한 결론은 이 지역에서는 구석구석 샅샅이 뒤적였으나 행적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일단 이주민 무리들과 같이 움직이면서 찾기로 하였다.
이제 난하 상류까지는 석 달 전에 왔던 길이다.
패잔병의 각설이 패거리 처럼 초라했던 중부의 낡은 옷도 슬비 덕에 깨끗한 사슴 가죽옷으로 바뀌었다.
패잔병 신세로 부상 당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걸어왔던 길을 이제는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과 함께 다시 되돌아서 가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든다.
이동 중에도 중부 모친과 실종된 아이를 찾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노력도 하지만, 담비 일행과 청하문도 간의 대결은 매일 계속된다.
이제는 서로 합의하여 아침저녁으로 봉과 목검을 사용하기도 하며 상대를 바꾸어 가며 대결을 벌인다.
이제는 자존감의 문제다.
이동하는 공간이 무술 수련장이 된 분위기다.
십여 명이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대련하며 수련에 열중한다.
중부와 지형이 수련생들의 잘못된 초식과 동작을 한 번씩 지적해준다.
박지형은 격투기를 중부는 각종 무기 다루는 법을 전담하기로 하였다.
을지 담열 소왕은 이동 중에 이따금 이를 지켜 보고 있다.
그 표정이 나름의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서누리는 일주일간 중부에게 기공연마법 단전호흡 丹田呼吸과 낙법 落法을 배웠다.
그 이후로는 오전에는 우문 청아에게 격투기를 배우고, 오후에는 사로국 친구들에게 봉술과 창술을 배운다.
박지형은 사로국 일행과 동행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걸걸추로 천부장을 찾아가 아이들의 행방과 안위를 걱정하였다.
그런데 걸걸 추로 천 부장은 아이들의 실종 사건에 대하여 크게 근심하는 태도가 아닌 것 같아보였다.
없어진 아이들보다 통솔하고 있는 이주민의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박지형은 속으로 ‘역시 통이 크신 분이구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니 요하의 최상류인 서쪽 시라무렌하를 지나 초원지대로 접어들었다.
고원 高原지대이다.
동북 방면에서 거대한 산줄기, 대흥안령산맥 大興安嶺山脈이 아무르강의 남쪽에서 돌연 솟구쳐 나와 남서 방향으로 뻗어가며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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