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송광사 선원수선사에서 동안거를 하였다. 선원 생활은 각자의 수행력과 대중의 공덕으로 부처임을 확신 하기 위한 노력들로 주야 에너지 넘치는 공덕의 바다가 되었다. 총림 공동체 생활에서 사시 예불과 공양 만큼은 사중 전체 대중이 큰방에서 함께 함으로 선원 율원 강원 대중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선방 생활 외 기억에 남는 일은 강원 강백스님과 차담에서 반야심경을 설하시던 때였다. 나름 진지하게 듣고있는 나에게 뭔가 불편함을 느끼셨는지 잘 듣지 않고 있다고 하시며 뭐라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매우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어던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용주사 지내던 시절 저녁 때 달을 보다가 달이 가슴으로 들어오며 반야심경 전체가 일시에 들어온 일이 있었기에 선원을 찾아 송광사 수선사에 방부를 들였던 것이었다. 반야심경을 대하는 나의 심경은 지금도 그때와 늘 같다. 조금도 변함없는 확신을 지닌 대의가 나를 지탱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때 강백 어르신은 왜 나에게 런 행동을 하였을까? 당시 나는 생각없는 생각으로 경청을 하였단 사실만이 내게 남을 기억으로 자리하고있다. 나와 강백 어르신의 차이는 그것 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 봉은사 화엄산림 법회 입법계품 각성스님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 역시 각성스님께서도 나에게 유사한 행위를 하신적이 있다. 내가 가장 즐겨워 하는 경은 화엄경이다. 지금도 변함없는 화엄경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내가 경전을 이해하고 대하는 방식이 강백들의 방식과 다른 것이 특정한 에너지로 부딪치는 것일까? 당시 송광사에서 강백스님과의 인연 그리고 법정스님께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송광사 선원 생활 두번째 기억으로 남았다. 법정스님 입적 후 추모글 "내가 만나 법정스님"을 남겨 유언으로 남긴 출판서적 절판의 의미를 옳게 해석 함이 좋겠기에 올려던 법정스님 이야기는 당시 최고의 검색 순위를 유지 했다. 만으로 39년만에 찾은 불일암에 부도탑이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세번째 송광사의 일상이 방송으로 송출 되었으니 선원 운집 목탁 소리가 방송을 타고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음이다. 선원 용상방을 짤 때 그 목탁를 치던 소임을 내가 맡았으니 목탁 치던 것 역시 나였다. 선원의 일상을 영상 속으로 보여줌으로 사회에 불교을 알리는 문화 공덕 바다를 펼쳐 보임이 되었던 시절이 그때였다. 당시 선방과 법당 외 작은 전각조차 둘러보지 않고 3개월 정진을 하였으니 선원 방부 신청하고 나서부터 지낸 송광사 100 여 일 동안의 시간이 만으로 39년이 흘러 새로움으로 되살아난다. 여기저기 흩어진 암자들과 부도와 탑 그리고 비문들 이번 송광사 방문은 불일암으로 시작 되어 감로암을 둘러 율원 그리고 관음전, 대웅전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였다. 대웅전 삼세불 복장을 넣고 점안을 하였던 39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신으로 증명된다. 이번에는 이렇게 송광사를 보고 순천에서 점심을 먹고 남해 사리암으로 왔다. 오늘 김천 백련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