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의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이 강제 해산될 처지에 놓였다. 러시아 대법원은 28일 '메모리알' 본부는 물론, 그 산하 조직에 대해 해산 명령을 내렸고, 모스크바 시법원도 이튿날 핵심 산하 조직인 '인권센터 메모리알'에게 해산하라고 판결했다.
메모리알 측은 즉각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도움을 요청하고, 헌법재판소에도 항소(우리식으로는 위헌청구소송)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사법적 오류는 결국 수정될 것"이라며 불복 의지를 꺾지 않았다.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로고
유럽인권재판소, 메모리알 해산 중단 권고(가처분)/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EGHR는 29일 '메모리알'측에 의해 제기된 러시아의 '외국 에이전트(대리인)' 제도에 관한 법룰에 대한 심의가 끝날 때까지, 러시아 당국은 '메모리알' 해산 절차를 중단할 것을 촉구(가처분 명령)했다. ECHR은 "그렇지 않을 경우, 러시아는 인권 협약 제34조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HCR는 유럽평의회가 제정한 유럽인권협약에 근거해 설치된 것으로, 재판소가 내린 최종 판결은 유럽평의회 가입국 전체에 효력을 미친다. 러시아도 유럽평의회 회원국이다. 그러나 그동안 EHCR의 판결을 따르지 않았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러시아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은 지난 2013년 '메모리알'을 시작으로, ECHR에 '외국 대리인 제도에 관한 법률'이 인권 침해라며 제소한 바 있다. 제소한 NGO 단체는 60여개에 이른다.
그렇다고 러시아 당국이 대법원의 메모리알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EHCR의 권고를 따를 가능성은 낮다. 러시아 자체의 사법적 판단을 우선해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대법원, 외국 대리인 법률 위반으로 메모리알 해산 명령/얀덱스 캡처
앞서 러시아 대법원은 28일 메모리알 해산 청구 소송에서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국제 역사-교육·자선·인권 단체인 메모리알과 그의 지방 조직 및 관련 산하 단체들을 해산한다"고 선고했다.
소송을 제기한 검찰 측은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된 메모리알이 자체 출판물에 외국대리인임을 표기하도록 한 현행 법을 계속적으로 무시하고, 옛 소련에 대해 테러국가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조장하며, '역사적 기억을 되살린다'는 명분하에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범죄자및 반역자들의 복권을 꾀하고 있다"며 해산을 요구했다. 변호인 측은 검찰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으나 대법원의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메모리알 해산의 근거가 된 '외국 대리인' 제도는 지난 2012년 도입됐다. 외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러시아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NGO, 언론매체, 사회단체, 개인 등은 법무부에 자진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자금 내역 등 활동 상황을 신고하도록 했다. 또 발행하는 모든 간행물에는 '외국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명기해야 한다.
이 법률에 따라 지난 2016년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된 메모리알은 최근 몇 년 동안 법률 위반혐의로 여러 차례 과징금 처벌을 받았다.
메모리알 해산 판결이 내려지자, 러시아 일부 야당과 민주 양심 야권세력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100여명의 시민들은 대법원 청사로 몰려와 "국가의 수치"라는 구호를 외치며 판결에 항의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공정한 러시아 - 진실을 위해'(정의당)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대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이번 선고는 탄압받은 모든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침을 뱉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90년대 민주개혁정당인 '야블로코'를 창당한 그리고리 야블린스키는 "러시아 정부는 스스로 스탈린주의와 소비에트 정권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메모리알 운영위원장 얀 라친스키는 "대법원의 판결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공정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가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나쁜 신호"라고 반발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도 이날 성명을 통해 "메모리알 폐쇄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 침해"라며 "외국대리인에 관한 법을 시민단체 해산에 이용한 것은 국가적 탄압을 기억하려는 시민사회를 향한 명백한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앞에서 메모리알 해산에 반발하는 시민들/현지 매체 rbc 유튜브 캡처
국내외에서 메모리알 해산 명령에 일제히 반발하는 것은, 소련(러시아)에서 메모리알이 가져온 상징성 때문이다. 메모리알은 지난 1987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와 '글라스노스티' 정책에 힘입어 탄생한 단체다.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하는 일로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소련의 인권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와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등이 메모리알 창립 발기인 20명에 포함돼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우여곡절 끝에 1989년 1월 창립총회를 가졌으나 정식 등록은 요원했다.
결정적인 기회는 그해 12월 사하로프가 사망하면서 찾아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사하로프의 미망인에게 조문하는 자리에서 '사하로프를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고, 미망인은 '메모리얼의 등록을 받아주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후 한 달 반만에 소련 당국의 허가를 받았고, 1991년에는 전국 단위의 조직이 만들어졌다.
소련의 강제수용소(굴라그)를 쓴 반체제 작가 솔체니친은 메모리얼 발기 회원 권고를 받았으나, "해외에 머물고 있어 실제로 단체를 도울 방법이 없다"며 정중하게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메모리알의 활동은 눈부시다. 그 어렵던 시기에 자체 신문 '10월 30일'(30 октября)을 창간하고, 1997년에는 '1994~1996년 카프카스 전쟁(체첸전)의 무명용사'라는 책을 출간해 1차 체첸 전쟁 당시 전사하거나 실종되고, 포로로 잡혀간 러시아 군인들의 이름을 공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