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의 명탐정 에르퀼 포아로가 ‘오리엔트 특급열차 Orient Express’에 오른다. 기차는 이스탄불을 출발해 사흘간 발칸의 베오그라드를 거쳐 프랑스 칼레까지 나아갈 예정이다. 호화롭고 안락한 인테리어, 특급요리사들이 탑승한 카페와 주방 등은 모두가 당대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열차가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어느 산중을 지나던 중 쏟아진 눈 때문에 갑자기 멈춰 서게 되고 그때 밀실 상태에서 한 남자가 온 몸에 피를 흘린 채 시체로 발견된다. 영국의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줄거리다. 영화로도 몇 번 만들어졌는데, 최근에는 영국배우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주연을 도맡은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은 이스탄불의 시르케지 역에서 출발해 유럽 대륙을 단번에 횡단한 후 파리까지 연결되던 기차였다. 3천여 킬로나 떨어진 동서 문명권의 대표도시 이스탄불과 파리를 이어주었고, 중간 기착지 또한 빈과 잘츠부르크, 뮌헨, 베네치아, 밀라노, 스위스 로잔느 등 아름답고 우아한 문화 도시들을 망라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인 철골 구조물인 기차를 통해 오랫동안 반목을 거듭하던 동서 문명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은 당대의 인텔리와 예술가들을 무척이나 감격케 한 역사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계몽의 ‘정신’이 산업혁명이라는 ‘물리’적 비약을 이끌어냈고, 급기야는 기차라는 강철의 실체까지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동서양의 인간 정신들을 이어준다는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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