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김교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사나 그 아래 중생에게는 지옥이나 천계도 엄연한 실체입니다.
한가지, “먼저 '신선'이라고 할 때 어느 문헌에 등장하는 신선이며,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추구하는 신선인지 알아야, 삼계 속에서 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겠습니다. “라고 하셔서 말씀드립니다.
잘 아시겠지만, 중국의 [태평광기]는 송나라때 까지 7천여개의 일화가 정리된 기록 문헌입니다. 그중에는 노자를 위시한 신선과 여자신선 등 약 500명의 사적, 불도징 등 특이한 능력의 승려 백 수십명의 이적, 인과와 업보에 관한 기록, 신, 귀신 관련 기록 등이 넘칩니다. 그중 김성철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많은 생생한 일화의 글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여쭤본 겁니다.
그런데 육신의 욕망 여부와 ‘지구 중력권’이라는 물리적인 조건으로 지거천 공거천을 나눈다면 저희 같이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저는 어렴풋하게 ‘차원’의 다름이 아닐까 추측합니다마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신선이 된 사람들의 행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의 하나는, 산 계곡 등 지구 상의 어떤 공간의 건축물에서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장면을 현실의 사람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스베덴 보리 처럼 영적 능력이 특출했던 사람이나, 잠시 죽어서 귀신이 되었던 사람들의 경험에서도 다른 세계가 ‘실제로’ 있음을 말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전기록이나 임사체험자들이 남긴 많은 진술 자료를 봤습니다. 더구나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장면의 체험을 했다면 ‘신선 세계’가 단지 꿈과 유사한 주관적 환상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만대학 이사잠 교수의 관점대로 저는 그것을 현재의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시공간과 중첩돼 있는 竝行 우주(객관적 환상의 세계)가 아닐까 상상으로만 이해하는 겁니다. 불교문헌에 혹시 그런 언급이 어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머리 옥졸, 마두 나찰 등의 지옥 세상에 관한 김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해가 많이 됐습니다. 소개하신 불교문화유산 아카이브도 들어가 보았습니다. 반야의 공과 유식학으로 보면 일체가 환상이 되겠지요. 근자에 어떤 스님이나 어느 불교 전공 교수가 ‘윤회는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미적분 박사나 양자물리학 교수의 말을 듣고 와서 덧셈 뺄셈을 하면서 사는 시장 상인 계산법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김성철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많은 사람들이 윤회가 무엇이고 공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범속한 중생인 우리는 덧셈 뺄셈을 절절한 현실로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선의 세계와 마두나찰의 세계가 환상이라는 것과 그 공성을 머리로는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그것은 상사의 경지에서 보는 것이므로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답답함을 져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 관점을 확대해서 수 많은 천계가 다 환상이요 공이라면 그건 열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정견이건 사견이건 모든 생명이 현실로 체험하는 고락이 모두 환상이라면, 정신병자가 자신이 미친 줄 모르고 일생동안 기쁨을 느끼며 사는 걸 의사가 고쳐줄 필요가 없을 겁니다. 고통을 벗어남이 부처 수행의 동기였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확철대오하고 보니 고통이나 기쁨 모두가 본래 없는 것이고 부처는 그 세계로 들어가신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모든 중생이 매일 헤헤 히히 하면서 고통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정신병자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한다면, 그들을 병든 기쁨 속에 살아가도록 그냥둬야 할까, 아니면 치료를 받아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고통의 현실 속으로 돌아오게 할까 하고 의사는 갈등할 겁니다.
저는 그들이 치료를 받고 고통스런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의사가 볼 때 하사들에게는 꿈속을 헤매는 기쁨보다, 깨어있는 고통이 더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상’이라고 생각한 우두옥졸과 마두나찰은 하사에게 모두 ‘실재하는 환상’이 아닐까요. 공이 색인 것처럼 말입니다. 중화민국 시기의 장병린이 한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옥의 실체를 잘 묘사했습니다. 지옥의 옥졸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은 죄인들을 가두기만 할 뿐 사람들이 말하는 잔인한 지옥 형벌 형구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옥의 죄인들에게 물어보면 손으로 형벌 장면과 형구를 가리키며 고통받는 경험을 상세하게 말합니다. 장병린은 그들 두 쪽의 말을 다 들어보고 지옥 옥졸이나 죄인이 아닌 사람의 눈에는 그런 지옥 정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서 지옥이란 사람의 업장에 따른 의식이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김교수님 답변과 여러 자료를 가지고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될 듯합니다. “수다원 이상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욕계의 중생에게 지옥과 천당이란 실재한다.”